◈ 82화. 古 흑기사.
있는 힘껏 흑기사에게 돌진한 궁수가 먼저 마력을 담은 발로 땅을 밟아 충격파를 일으켰다.
콰앙!
“크흡!?”
일순간 당황한 흑기사가 궁수를 향해 손을 뻗었으나 그의 자세는 이미 불완전한 상태였다.
“오랴아아!”
콰아앙! 콰아앙!
“크흐으윽!”
자세가 무너진 틈을 탄 궁수는 곧바로 놈의 명치 깊숙하게 주먹을 꽂아 넣었다.
궁수 뒤의 그림자의 주먹이 한 번 더 들어가며 놈의 몸이 조금 떠올랐다.
“흐으읍!”
분쇄자에 바람을 담은 궁수는 그대로 공중에 뜬 놈을 한 번 더 후려쳤다.
한번으로는 부족하지만 그림자의 일격이 더해지자 육중한 갑주를 입은 흑기사의 전신이 위로 날아갔다.
궁수 또한 바닥에 바람이 담긴 분쇄자를 후려쳐 하늘 위로 날아갔다.
흑기사는 섬뜩한 적안을 번뜩이며 궁수를 노려보았으나 자세가 무너진 그가 허공에서 균형을 잡기란 묘연한 일이었다.
“뒤져 이 새끼야!”
궁수는 그대로 공중에서 있는 힘껏 분쇄자로 놈의 복부를 내려쳤다.
궁수가 한번, 그 다음에 그림자가 한 번 더.
“같잖은 수를…!”
화아아아악!
흑기사는 어떻게든 자세를 잡으려 했으나 폭풍처럼 몰아치는 궁수와 그림자의 공격에 혼이 쏙 빠져버리고 말았다.
“내가 말했지!”
아직 궁수는 끝나지 않은 듯 허공에서 장궁을 겨눴다.
트루 스나이핑에 타임 익스플로전, 거기에 추가로 몰아치는 화염이 깃들은 속성 화살까지.
“뒤졌다고 복창하라고!”
쐐애애애액!
궁수의 손아귀를 떠나간 화살이 공기를 찢고 날아갔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강력한 파공음을 내며 날아간 화살은
“끄아아아악!”
흑기사가 떨어지기 직전 그의 복부를 관통하여 그와 함께 땅에 박혔다.
“아직 안 뒤진 거 다 알아 이 새끼야!”
땅으로 착지한 궁수는 주먹을 불끈 쥐며 화살에 넣어둔 타임 익스플로전을 발동시켰다.
퍼어어어엉!
궁수가 일으킨 폭발에 그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었다.
사람이라면 이미 숨이 끊어졌을 법도 하지만 궁수는 살기를 기세등등하게 띄우고 놈에게 다가갔다.
- 팔이 잘려도 도망갔던 놈이다, 확인사살을 하기 전까지는 방심하지마라.
“나도 알아.”
장궁에 활대를 낀 궁수는 놈을 향해 겨냥하며 조심히 다가갔다.
기감을 발휘하여 전신의 모든 감각을 날카롭게 만든 궁수는 쓰러진 놈을 노려보며 계속해서 의심했다.
‘머리에 화살을 꽂아도 안 죽었는데 아직 모른다.’
반응은커녕 옅은 숨소리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으나 궁수는 놈의 머리에 직접 화살을 꽂아주기 전까지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뒤져 이 바퀴벌레 같은 새끼야!”
콰직!
궁수의 기다란 화살이 정확히 놈의 머리통에 박혔다.
‘사람’이라면 즉사할 정도의 위력이었기에 그제야 궁수는 다시 괴물들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마물들을 상대로 고군분투 하는 아군을 바라보며 궁수는 후다닥 무기를 바꿔 뛰어가려 했다.
우드드드득.
“어?”
그러나 뒤에서 들려온 기괴한 소리에 궁수는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돌린 곳에서는 흑기사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듯 축 처진 그의 시체는 힘없이 허우적거리길 반복했다.
“아 제발. 이런 거 재미없다고.”
[야 궁수야 이거 뭔가 이상하다.]
[짜잔! 눈 찔리고 상반신 하반신 분리시키고 미간에 화살이 박혀도 살아난답니다!]
[씨바 그렇게 듣고보니 존나 너무하긴 하네 ㅋㅋㅋㅋㅋㅋㅋ]
[바퀴벌레 1패 ㅋㅋㅋㅋㅋㅋㅋㅋ]
[흑기벌레 연전연승 ㅋㅋㅋㅋㅋㅋ]
흑기사가 궁수 뒤의 마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파지지직!
[몬가…. 몬가 일어나고 있는거에요.]
[된거에요, 궁수는 좆 된거에요.]
[하와와와와 궁수짱 좆빠지게 도망치는 거시와요!]
흑기사에게서 뿜어져 나온 검은색 전류가 파지직 일어났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던 괴물들이 행동을 멈추고 흑기사를 바라보았다.
쿵 쿵 쿵
한 놈, 두 놈, 결국에는 전부.
갑자기 시선을 바꾼 괴물들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흑기사에게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흑기사의 아래에 칠흑의 마법진이 그려졌다.
눈이 파인 듯한 용의 머리에 해골과 마법 기호가 들어간 섬뜩한 마법진은 흑기사와 괴물들을 끌어당겼다.
마치 찰흙이 뭉쳐지듯 기괴한 장면에 궁수는 곧바로 발리스타를 들어 화살을 장전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저것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 변신할 때 때리냐]
[존나 악랄한 새끼;]
[변신 충들 캍!]
“다 닥쳐! 발사!”
쐐애애액!
근거리이기 때문에 폭발에 휘말릴 수 있었다. 빙결을 머금은 거대한 쇠뇌가 저 구체를 향해 날아갔다.
콰직!
“뭣?”
한계까지 방아쇠를 당긴 일격이었으나. 화살은 구체에 박혀 들어가지 못했다.
오히려 주변에 생성된 투명한 막 같은 것이 간단히 화살을 막아내었다.
궁수의 마력 화살이 산산조각나며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그러는 와중에서도 알 수 없는 마법은 계속되었다.
“야 나법사! 저것 좀 어떻게 못해!?”
“뭔지 모른다!”
“아오 요즘 더럽게 무능하네!”
“우헤헤헿!”
화아아아악!
“크흐으윽?!”
마법진에서 검은 어둠이 뿜어져 나오며 주변을 집어삼켰다.
우드드득! 콰직!
시야를 가린 어둠 속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기괴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좀처럼 걷잡을 수 없는 굉음에 궁수는 언제든 반응할 수 있도록 최대한 몸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화아아악!
“이번에는 또 뭐야!”
펴져있던 어둠이 마치 청소기가 빨아들이듯 다시 나왔던 곳 그대로 흡수되었다.
어둠이 사라지고 시야를 확보한 궁수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흑기사였다.
“에이 씨팔 진짜.”
그것도 기존에 10배는 덩치를 키운 흑기사가 여섯 개의 팔에 각각 검 하나씩을 쥐고 있었다.
기사보다는 괴수가 더 어울릴법한 비쥬얼이었기 때문에 화살을 쥔 궁수의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어 설마 바로 움직이는 거….”
콰아아아앙!
“바로 움직이네에에에!?”
궁수를 향해 여섯 개의 대검이 쏟아져 내렸다.
마치 아수라처럼 여섯 개의 팔을 가진 놈은 미친 듯이 날뛰며 오직 궁수만을 노렸다.
워낙에 덩치가 있는 놈이었기에 날아드는 속도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위력과 팔의 개수가 6개나 되다보니 궁수의 입장에서는 정신없이 피하기만을 반복했다.
“베로니카! 내 아래에 벽 만들어 줄 수 있어!”
“노력해보겠셈!”
“내가 말할 때 세워줘!”
좌우로 현란한 스텝을 밟던 궁수는 놈이 검을 휘두르려 할 때 기습적으로 적의 다리 사이를 향해 돌진했다.
궁수가 완전히 적의 다리 사이로 들어왔을 때 힘껏 소리쳤다.
“벽! 최대한 높게!”
“알았셈!”
쿠콰콰콰쾅!
궁수가 딛고 있는 땅이 진동하더니 서서히 네모난 벽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궁수는 서둘러 최대한 기다란 화살을 만들어 바닥에 꽂아 넣었다.
화살의 높이만 거의 2미터가 넘어 창에 가까운 모습이었으나 큰 상관은 없었다.
화살 여덟 개를 박은 궁수는 서둘러 그 자리에서 벗어나며 소리쳤다.
“최대한 빠르게 올려!”
“알았셈!”
콰콰콰콰쾅!
슬금슬금 올라가던 벽은 궁수가 신호를 줌과 동시에 순식간에 치솟았다.
[아아 설마.]
[야이 니가 사람새끼냐.]
[존나 너무하네요, 오늘부터 나궁수 안티합니다.]
[아니, 그, 허 (입틀막)]
콰아아앙!
빠른 속도로 솟아난 벽은 그대로 흑기사의 다리 사이를 강타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미안해! 내가 미안해! 미안해!]
[아아 그는 좋은 흑기사였습니다…]
[RIP - FIRE EGG]
[삼가 그곳의 명복을 빕니다…]
“닥쳐! 이기면 장땡이야!”
[씨발 이 새끼가 악당이네.]
[흑기사 힘내! 할 수 있어!]
[소시지만 남았지만 힘내!]
[ㅂㄹㅇ! ㅂㄹㅇ! ㅂㄹㅇ!]
ㄴ 이게 뭔데.
ㄴ X알업!
ㄴ 미친놈들 ㅋㅋㅋㅋㅋㅋㅋ
잠시 정적이 일어났다.
전투원 중 남자인 사람들은 일제히 다리 사이를 오므리며 공포에 찬 눈빛으로 궁수를 바라보았다.
“크흐흐흐 그래, 이기면 그만이야 이기면!”
“존나 악랄한 거셈….”
“캬하하하하 내가 이겼…. 이…. 허어억?!”
쓰러질 거란 궁수의 예상과는 달리 흑기사는 다리 사이의 벽을 부수며 뚜벅 뚜벅 걸어 나왔다.
[뭐여 왜 멀쩡해요.]
[뭐야, 형이 아니라 눈나였어?]
[형 (진)]
[짜식 처음부터 없었구나…(코쓱)]
[고래잡이
잠시 발을 털며 검을 갈무리한 흑기사는 다시 궁수를 바라보았다.
“잠깐만 우리 대화ㄹ….”
콰아아앙!
“끼야아아아악!”
궁수가 비명을 지르며 전속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고통을 느꼈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놈은 전력으로 궁수를 쫓아오고 있었다.
쾅! 쾅! 콰아앙!
여섯 개의 팔이 궁수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뒤늦게 대기하던 마법사들도 놈을 향해 마법을 날렸으나 놈은 몸이 파괴되면서도 상관없다는 듯 궁수를 노렸다.
“미안해! 고자인 줄 몰랐어! 미안해!”
놈이 끈질기게 궁수를 쫓아오며 이미 아카데미는 개판이 되어있었다.
중간중간 베로니카가 궁수와 놈 사이에 벽을 세우기도 하였으나 흑기사는 거칠게 벽을 발로 차 부숴버리며 궁수를 쫓았다.
***
“후우…. 이렇게 무력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오래간만이군.”
어둠에 갇힌 학원장은 차분하게 자리에 앉아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해서 학원장을 도발하던 조커도 씨알도 먹히지 않자 이제는 지친 듯 말을 아끼고 있었다.
‘이 괴물같은 놈,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그가 벽에 줄 수 있는 대미지는 원래 위력의 고작 1퍼센트.
그럼에도 현재 벽은 아슬아슬하게 학원장의 공격을 버티고 있었다.
잠시 자리에 앉아있던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방법은 쓰기 싫었건만.”
그는 인벤토리를 뒤적이며 지팡이 하나를 꺼내들었다.
검은 막대에 이어진 그것은 지팡이 보다는 낫에 더 가까운 형상을 하고 있었다.
붉은 용의 갑주를 가공하여 만든 낫.
그리고 그 끝에 박힌 붉은 보옥은 심상치 않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전 S급 게이트 레드 드래곤을 처치하고 만들어낸 최상위 지팡이였다.
다섯 속성의 정수를 뽑아 만들어낸 학원장의 메인 지팡이보단 못하지만 그래도 그의 2번 스태프의 자리를 차지하는 든든한 녀석이었다.
“쯧, 참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군.”
“아핰핰핰! 네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한들 이곳에선 나갈 수 없다!”
조커는 조롱이 담긴 목소리로 학원장을 비웃었으나 그의 말끝에는 은근한 긴장감이 담겨있었다.
스태프를 손에 쥔 그는 짤막하게 말했다.
“일프로라….”
낫을 양손으로 쥔 그는 작게 조소했다.
학원장의 방대한 마력이 낫으로 스며들며 어둠 속에서 붉은 빛이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가히 바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엄청난 그의 마력을 절반이나 먹은 낫은 만족스러운 듯 섬뜩한 빛을 내었다.
“충분하군.”
촤아아악!
놀랍도록 날카로운 일격에 어둠 속에 붉은색 선이 그어졌다.
“크흐으으윽…. 이 정도는…. 버틸 수 있….”
“흐흠, 글쎄.”
촤아아악!
“끄아아아악!”
“내 일격을 버틸 정도로 유능한 제자를 가르친 기억은 없군.”
붉은 선은 더욱 검은 결계를 파고들었다.
쨍그랑!
그의 손에 결계가 산산조각 분해되며 학원장을 뒤덮고 있던 어둠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사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학원장의 낫 또한 내구도가 다하여 모래처럼 사르르 사라졌다.
“추억이 닮긴 물건이라 쓰기 싫었건만.”
손을 턴 학원장은 아쉬운 듯 한숨을 쉬며 뚜벅 뚜벅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쾅! 콰아앙!
“끄아아아악! 살려줘어어어!”
“씨파 저거 왜 안 죽는 거셈!?”
“펑펑! 쾅쾅!”
결계 바깥에서는 아카데미가 개판이 되어있었다.
선생과 학생들은 언제 만들었는지 모른 벽 위에서 저 거대한 무언가를 요격하고 있었다.
성벽 내부는 비교적 정돈되어 있었으나 그 바깥은 거의 폐허가 다 되어 있었다.
“허허허.”
휘리릭!
“어!?”
법사의 손에 있던 학원장의 지팡이가 주인의 명령에 다시 그의 손으로 돌아갔다.
“하, 학원장님?!”
“….”
학원장은 인자한 표정으로 스태프를 들고 제자들 앞으로 나섰다.
그의 안면은 평온했으나 이마에 잡힌 힘줄까지 평온하진 못했다.
‘아, 극대노다.’
10년에 한번 본다는 학원장의 극대노.
‘전에는 작은 섬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렸지.’
꿀꺽.
학생들은 물론 제자들도 슬금슬금 그에게서 멀어졌다.
법사를 제외하곤 말이다.
학원장의 주변으로 푸른 마력이 미친 듯이 방출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지팡이가 빛나며 초고속 캐스팅이 시작되었다.
다중 연산.
고비율 합 마법.
마법식 역연산.
마법진 합식.
다중 원소 결정 캐스팅.
슈타인즈 오리지널 헥사 매지컬 드로윙.
법사도 감히 따라하지 못할 정도로 고차원의 마법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마법은 이내 1분도 되지 않아 실행되었다.
콰아아아앙!
하늘에서 내려온 열 개의 번개가 흑기사의 주변에 박혔다.
황금빛 전류는 미친 듯이 파지직 거리며 그를 감금했다.
궁수는 그 사이에 걸음아 나 살려라 후다닥 도망쳤다.
이제는 흑기사보다는 학원장의 마법에 쓸려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흑기사의 위아래로 두 개의 마법진이 생겨났다.
두 가지 모두 순백의 마법진이었다.
신성한 느낌을 내는 마법진과 달리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마법은 신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콰직! 콰지직!
마법진에서 나온 날카로운 쇠사슬이 흑기사의 전신을 관통하며 놈을 구속시켰다.
그러나 아직 학원장의 진노는 끝나지 않았다.
추가로 만들어진 파란색 마법진이 흑기사의 전후좌우를 모두 가렸다.
푸욱!
그곳에서 만들어진 빙결의 거대한 칼날이 흑기사를 찔렀다.
마지막으로 학원장은 스태프를 들어 놈을 향해 가로로 그었다.
촤아아아아아악!
그의 전신을 가린 청색 마법진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곧 흑기사의 몸에 박힌 칼날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흑기사의 전신이 갈려나가며 그로테스크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리고 멀찍이 떨어져 이를 구경하던 궁수는.
“엄마 보고싶어요….”
어째서인지 부모님의 따뜻한 품이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