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배틀메이지(진)
“미쳤어요!? 호이든은 C클래스 학생이라고요!”
“그게 뭐?”
“저는 D급이라구요 D급! 제가 어떻게 이기라는 거에요!”
궁수와 법사의 방에 돌아온 푸린이 화들짝 놀라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궁수는 법사를 등에 업고 스쿼트를 하며 말했다.
“훈련해서 이기면 되잖아.”
완벽히 다리가 90도로 굽혀지며 가볍게 500개의 풀 스쿼트를 마친 궁수는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있었다.
“C급이라구요 C급! 여기서야 낮아 보이지만 밖에서는 일반 마법사나 다름없다고요!”
“뭐여 좆밥 맞잖아.”
“적어도 1인분은 하는 마법사라니까요!”
“1인분?”
궁수는 스윽 고개를 돌려 법사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궁수에게 있어 마법사의 기준점은 나법사가 되어있었다.
“고작 1인분밖에 못하면 좆밥 맞지?”
“1인분! 부족하다! 배고프다!”
“봐, 아직 배가 고프다잖아.”
간단한 단련을 마친 궁수는 별 걱정 말라는 듯 푸린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걱정마, 네가 무조건 이겨.”
“이기긴 어떻게 이겨요! 당장에 파이어볼 하나도 못쓰는구만!”
“아니, 이건 내가 장담컨대 무조건 이겨.”
궁수는 그러면서 인벤토리를 뒤져 기다란 고목나무 막대 한 개를 꺼냈다.
딱히 특수한 기운도, 그렇다고 강렬한 마법석이 박히지도 않은 평범한 막대였다.
“나뭇가지?”
물론 이게 뭔지 알 리 없는 푸린은 갑자기 꺼낸 막대를 갸웃거리며 궁수를 바라보았다.
호기심에 찬 눈빛에 궁수는 기대하라는 듯 한껏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해주었다.
“여기 학원장이 전에 쓰던 스태프다.”
“…네헼?!”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사실에 사례가 들린 푸린은 연신 마른기침을 뱉으며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물은 한 컵 마시고 나서야 진정한 푸린은 눈을 부라리며 궁수의 스태프를 받아들었다.
“이게 지구 최고 마법사의 지팡이…!”
“그래, 진품이다. 뭣하면 직접 가서 물어보던가.”
전날 궁수는 학원장실에 찾아갔었다. 다름 아니라 학원장에게 쓸만한 스태프를 뺏어오기 위해서였다.
“똑똑~ 들어갑니다~”
“허, 자네인가.”
학원장은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는지 콧잔등에 안경을 쓰고 있었다.
잠시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마치 초면인 이웃과 엘레베이터에서 단 둘이 남겨지는 기분이랄까.
그 어색함을 버털 자신이 없었던 궁수는 곧바로 용건을 말했다.
“갖고 계신 스태프 중에 쓸만한 거 하나만 주세요.”
“…뭐?”
대뜸 찾아와놓고 하는 말이 스태프를 달라니, 그것도 마탑주가 소유한 스태프를!
워낙에 당당한 태도에 순간 마탑주는 화는커녕 어이없는 얼굴로 궁수를 바라보았다.
“자네 지금 내 스태프들이 얼마인지 알….”
“법사가 필요하데요.”
“가져가게.”
“네.”
‘거 잘 쓰지도 않으면서 더럽게 비싼 척 해요.’
법사가 사용한다는 말에 학원장은 군말 없이 자신의 메인 스태프를 주려 했으나 궁수의 만류에 결국 지금의 거의 쓰지 않는 스태프를 하나 건네준 것이다.
그것도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 몹시 아쉬운 듯한 표정과 함께 말이다.
‘참 단순하단 말이지, 법사 하나면 간도 내어줄 기세야.’
원래 박혀있던 마법석은 학원장이 사용하기 위해 떼어버린 상태였다.
사실상 지금은 마력 전도율이 뛰어난 몽둥이에 불과했다.
마법을 사용하기에는 연산을 해결할 중추인 마력석이 없으니 스태프로서 기능을 할 리 없었다.
“하악, 하아악, 이게 바로 하아아악, 스태프!”
거친 숨을 몰아쉰 푸린은 흥분한 듯 몇 번이고 스태프를 볼에 비비며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
“좋아해서 다행이네.”
나법사 핑계를 대며 받아왔지만 처음부터 궁수는 푸린에게 스태프를 줄 생각이었다.
‘후, 어디 한번 시작해볼까.’
궁수는 만족스러워하는 그 앞에서 서서히 입을 열었다.
숱한 수라장을 건너온 궁수가 순진한 아카데미 학생을 타락시키는 것은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었다.
“사용법을 알려주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알아야 할 것이라뇨?”
궁수의 진지한 태도에 꼴깍 침을 삼킨 푸린이 긴장한 모습으로 다소곳하게 양손을 모았다.
“배틀메이지라고 알고 있냐?”
“배틀메이지요?”
“그래, 배틀메이지.”
“그런 직업은 들어본 적 없는데요.”
처음 들어보는 말에 의심하는 듯했으나 웃음기를 완전히 버린 궁수의 태도는 몹시 진지했다.
“들어본 적 없겠지, 학원장에서 대가 끊어진 직업이니.”
“학원장에서 대가 끊어졌다고요!?”
“그래, 배틀메이지의 미친 듯한 위력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크흑!”
어느새 법사도 흥미를 느꼈는지 푸린 옆에 앉아 궁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베틀메이지는 단순히 마력을 담아 싸우는 게 아니야, 극한으로 육체를 갈고 닦아 마법의 가장 원초적인 가능성을 보여주는 직업이지.”
“오오, 오오오 그런!”
‘물론 씹 구라다. 마법사가 지팡이를 들고 적을 팬다니,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어디의 궁수씨가 떠오르긴 하지만 아무 연관이 없을 것이다.
그러든 말든 궁수는 열렬하게 새로운 직업 ‘배틀메이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었다.
궁수의 화려한 언변과 법사의 고개 끄덕임과 함께라면 누구든 속일 수 있었다.
열렬한 설명을 마친 궁수는 마지막으로 푸린에게 말했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해선 안돼, 이건 학원장 몰래 가르쳐주는 거니까.”
“학원장님 몰래요!?”
“그래, 최대한 조용히 해야 해.”
“그런…. 그런 엄청난!”
보통 조금만 생각하면 의심할 구멍이 얼마든지 있었지만 이미 푸린은 궁수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상태였다.
‘특별하다니! 나만 특별해!’
이미 ‘나는 남들과 달라!’ 같은 중 2병에 걸린 푸린은 결심한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곧바로 90도로 몸을 꺾으며 궁수에게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따라와라!”
그 이후로 오전에는 법사의 마법 강의가 오후에는 궁수의 육체 단련이 이어졌다.
남들은 둘 중 한 개만 따라와도 지쳐버릴 수준의 강도 높은 훈련이었으나 푸린은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고된 일정을 소화해내었다.
그 시각 호이든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며 불안에 떨고 있었다.
“D급 주제에…. 고작 D급 주제에 내게 시비를 걸어? 죽여 버릴 거야….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존재감이 희미하다 못해 사라질 정도로 투박한 녀석이 갑자기 외부인에게 빌빌 기어 마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줄곧 놀려먹기 좋은 놈이었기 때문에 죄악감은 없었다.
궁수와 시비가 붙었던 그때도 평소처럼 놀려먹을 생각이었다.
“감히, 감히 어디서 나타난 개잡놈이!”
쾅!
책상을 거칠게 내려친 호이든이 이를 갈고 있자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푸하하핳! 화가 잔뜩 났네!”
“!?”
복도는 물론 방에서는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C급 마법사의 빈약한 마력으로는 기척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 더 맞겠지만.
“누구야!”
“나? 나 몰라?”
그의 가슴팍에는 금빛 육망성과 함께 A라는 글자가 적혀져 있었다.
머리에는 우스꽝스러운 광대 모자를 쓴 그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A클래스의 조커가 무슨 일로.”
자신보다 높은 클래스의 마법사에 바로 꼬리를 내린 호이든이 언짢은 기색을 비추었다.
조커.
몇몇 교수들의 보조역을 맡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지닌 마법사였다.
매 학력평가에서도 1등은 아니지만 적어도 5위권 밖으로 그의 이름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푸하핳! 나라고 항상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을 필요는 없잖아?”
“A급 클래스는 이곳을 쓰레기통으로 여긴다고 들었는데.”
“으응? 뭐 가끔 쓰레기 중에서도 재활용 할만한 놈들이 나오긴 하지.”
새빨간 코에 얼굴에는 새하얀 광대 분장이 새겨져 있었다.
입가에는 양쪽으로 길게 늘어진 꿰맨 자국이 섬뜩한 남자였다.
그가 서서히 호이든에게 다가갔다.
조커의 눈은 흰자가 없이 모두 새까만 칠흑이었다.
“바로오오오 너처럼!”
어두운 방에서 조커가 홀로 오색빛 종이 가루를 휘날리며 뭔가 대단한 것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자축했다.
광기에 가까운 행동이었으나 호이든은 개의치 않았다.
‘A급은 다 또라이밖에 없는 건가.’
그의 자축이 끝날 때까지 잠자코 기다린 호이든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만 나가….”
“짠!”
정신없는 그의 태도에 피곤함을 느끼던 호이든 앞에 조커가 흑수정이 박힌 검은 반지를 들이 밀었다.
“반지?”
“아뇨↘아뇨↗아뇨↘아뇨↗아뇨↘ 이건 평범한 반지가 아니라고~!”
“평범한 반지가 아니면 뭡니까.”
반지에서는 어떤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평범해 보이지도 않는 것이 썩 오싹하게 생겨먹었다.
“일단 껴보고 생각하자고! 핰핰핰핰!”
“싫습니다, 제가 왜요.”
“뭐 어때~! 까짓 거 잘못되면 손가락 하나 자르면 되지!”
화악!
‘무슨 힘이!?’
허구한 날 연구실에 틀어박힌 마법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압도적인 완력이었다.
우드득!
“아아악! 아파! 아프다고!”
“핰핰핰 반지 입장~!”
마치 어른이 아이를 상대하듯 가뿐히 호이든의 팔을 제압한 조커는 그대로 그의 약지에 반지를 끼웠다.
마치 호이든 전용으로 준비한 것처럼 사이즈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 들어맞았다.
반지를 완전히 끼운 조커는 만족한 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다만 그 입꼬리가 일반인의 배는 될 정도로 높게 솟아올랐지만 말이다.
고통스러운 듯 너덜너덜해진 왼팔을 쥔 호이든이 비틀거리며 소리쳤다.
“끄흐으으윽! 교수님들께 다 말할 거야!”
“푸핰핰! 얼마든지 말하시죠!”
“당연하지! 바로 지금 말하러, 말 하…. 어라…?”
반지에서 나온 새빨간 기운이 호이든을 잠식해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번데기가 된 것처럼 붉은 혈기가 그를 완전히 휘감았다.
마지막으로 그의 머리카락 한올까지 완전히 가려졌을 때 조커는 양 손으로 입꼬리를 한껏 끌어내리며 말했다.
“할 수 있다면 말이죠!”
그는 즐거운 듯 섬뜩한 콧노래를 남기며 호이든의 방을 나갔다.
***
“흐으으으 제가 이길 수 있겠죠?”
“저것도 못 이기면 나가 죽어야지.”
“그 정도에요!?”
“그럼 누가 가르쳤는데, 당연하지.”
결투장을 가득 채운 관중석에서 성대한 환영음이 들려왔다.
“으으으으! 도대체 C급 D급 싸움에 왜 이렇게 많이 몰린 거야!”
“왜 몰리긴 누구 때문인지 다 알잖아?”
푸린이 법사의 제자라는 사실이 퍼지면서 점차 학생들이 이 결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소식은 입소문을 타고 교수는 물론이고 학원장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학원장님까지 오실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요!?”
“아 몰라, 빨리 나가기나 해.”
“끄으으응….”
푸린은 자신 없는 듯 터덜터덜 준비실 밖으로 발을 옮겼다.
어느새 헬창스러운 몸이 된 푸린의 등은 그 누구도 마법사로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탄탄했다.
추가로 그의 왼손에는 궁수가 얻어온 스태프가 쥐어져 있었다.
“짜식 이기고 와!”
“팬다! 이긴다!”
“나는 잘 모르지만 존나 패고 이기는 거셈!”
어느새 합류한 베로니카까지 푸린의 응원을 해주었다.
“하, 난 싸울 생각도 없었는데….”
투덜거리는 말과 달리 푸린의 걸음은 일말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아~! 말씀드린 순간 D 클래스 대표 푸린 생도가 나왔습니다!]
마치 콜로세움이 연상되는 거대한 경기장, 그 안에서 푸린과 호이든이 대립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푸린이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할 상황이었으나 지금 푸린은 오히려 호이든을 압박하고 있었다.
전투에 들어가기 전 푸린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항복해.”
“….”
“허, 대답도 안하겠다?”
“….”
호이든은 대답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뭐, 괜찮아, 내가 최근에 아주 좋은걸 하나 배웠거든.”
휘리리릭!
궁수에게 받은 스태프를 휘두르며 손을 푼 푸린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마법으로는 적을 제압하는데 5분이 걸려, 그런데 스태프로 적을 제압하면 5초밖에 안 걸리더라고?”
계속해서 대답 없는 호이든을 바라보며 푸린은 그가 겁먹었다 생각했는지 피식 웃었다.
“이게 마법이 아니면 뭐야?”
“크르르릉….”
“그래, 크르르…. 뭐?”
별다른 마법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호이든의 전신에서 붉은 오라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크르르르르….”
콰앙!
“크흐읍?!”
땅을 박찬 호이든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푸린을 향해 돌진했다.
원거리 마법사라고 생각했던 호이든이 갑자기 저돌적으로 맹진하자 순간적으로 당황한 푸린이 스태프를 땅에 처박고 뛰어올랐다.
마치 장대를 활용하듯 푸린의 몸이 순간적으로 공중에 높게 떠올랐다.
붉은 혈기를 앞세워 돌진한 호이든이 푸린이 있었던 곳을 스쳐 지나가며 미끄러졌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예상하지 못한 돌진에 조금 당황하긴 하였지만 큰 상관은 없었다.
오히려 그동안 근접 전투를 더 많이 연습해 왔기에 푸린에게 있어서도 바라던 바였다.
말 그대로 분노한 미친 개 그 자체. 궁수가 종종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떠올랐다.
“미친개는 매가 약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