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세계 최고의 마법사의 제자의 제자.(2)
“스승님! 여기 초코우유 가져왔습니다!”
“음음!”
법사의 제자로 들어간 푸린은 여실히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늘 달콤한 간식류를 바쳤고 급식에 나오는 디저트는 모두 법사의 것이었다.
보다 못한 궁수가 측은한 눈빛으로 법사에게 한소리하고 난 다음에야 푸린은 셔틀을 멈출 수 있었다.
그렇다고 푸린이 법사의 시중을 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법사는 최대한 푸린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했다.
법사 나름대로 설명을 이어가며 푸린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 성과는 미미했다.
푸린의 마법적 재능은 부족하다 못해 처참한 수준이었다.
일반적인 마법사들은 마법을 사용하는데 드는 연산과 캐스팅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로 파이어볼을 사용하기 위해 쓰이는 연산이 있다면 마법사들은 그 연산을 푸는 것이 아니라 연산 자체를 통째로 외워버린다.
식이 어렵기도 하고 분초를 다투는 긴박한 상황에서 미주알고주알 연산을 할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연산을 외우기도 버거워하는 푸린에게 법사의 부족한 어휘로 연산을 이해시키려고 하다 보니 가르침이 원활하게 이뤄질리 없었다.
“죄송해요…. 전혀 모르겠어요.”
“모른다!? 어떻게!?”
법사에게 있어서는 숨 쉬듯이 간편한 연산이 푸린에게는 기초인 마력 운용조차도 어려운 마법이었으니 말이다.
정형화된 교육에 맞춘 푸린에게 법사의 자유분방한 마법을 가르치기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력 운용에 관해서는 법사가 손수 푸린의 마력을 이끌어주며 제법 성과가 있었다.
“허억! 허억! 감사합니다!”
“후아! 끝!”
훈련이 끝난 푸린의 전신은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법사의 극에 달한 마력 운용을 따라가다 보니 고작 마력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으음?”
젖은 그의 셔츠 안으로 오밀조밀 잘 박힌 근육이 궁수의 눈에 들어왔다.
근육과 사랑에 빠진 헬창 나궁수가 이를 보고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마법사라고는 하지만 아름답게 박힌 그의 복근은 궁수가 보기에도 제법 잠재성이 높아 보였다.
“푸린!”
“네?”
궁수는 손에 든 탄산수를 건네며 푸린에게 말했다.
“잠깐 말해줄게 있으니 따라와봐.”
“저, 저 돈 없어요.”
“나는 많은데.”
“….”
궁수의 농담에 푸린은 어이없는 듯 실소를 지으며 그 앞에 섰다.
“피곤한데….”
“흐음, 호오오, 그렇군. 이건 상당히….”
조심스럽게 푸린의 근육들을 살핀 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화악!
순간적으로 휘둘러진 궁수의 주먹이 푸린의 안면을 향해 날아갔다.
마력은 전혀 담기지 않은 주먹이었으나 그것만으로 가련한 마법사를 때려눕히기에는 충분한 위력을 담고 있었다.
휘이익!
“흐에에엑!?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캬, 역시.”
원래라면 궁수의 주먹에 맞아 저 멀리 날아가야 할 푸린은 고개를 비틀어 공격을 가뿐히 피했다.
적잖게 놀란 듯 보였으나 그는 궁수의 주먹에 놀란 것이지 자신이 공격을 피했다는 것에는 큰 놀람이 없었다.
재능을 확인한 궁수의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구, 궁수님? 왜 그런 사악한 표정을….”
“여기 보건실은 24시간이지?”
“네? 네, 아마 상시 대기하고 계시긴 할 거…. 자, 잠시만!”
“오케이! 땡큐!”
휘이익!
“흐에에에엑!?”
“캬 이걸 피하네!”
“궁수님 지금 뭐하는 히이이익!”
궁수의 주먹이 정확히 푸린의 머리통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살의는 담기지 않은 물렁한 주먹이었지만 그 속도까지 물렁하진 않았다.
“허억! 허억! 그, 그만!”
궁수의 주먹 서른 번이 휘둘러졌으나 그 중 단 한 번도 푸린의 얼굴을 맞추지 못했다.
물론 궁수가 봐준 것도 있었지만 다른 마법사들과 비교하면 푸린의 신체 능력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S급 헌터인 궁수의 주먹을 모두 피했다.
이것만으로 푸린이 마법사를 버리고 근거리 딜러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재능만 따져보자면 저번에 강당에서 보았던 근거리 딜러들보다 훨씬 앞서는 수준이었다.
“아깝네.”
“아깝긴 뭐가요! 사람을 죽이려 해놓고!”
“안 죽었잖아, 그러면 됐지.”
“살인미수 몰라요!?”
“그럼 죽여주랴?”
“….”
살며시 꼬리를 내린 푸린은 궁수의 시선을 피하며 눈치를 살폈다. 자신도 아차 했는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여기 앉아, 얘기 좀 하자.”
“으윽….”
“이제 안 때려.”
“정말이죠?”
“아마도.”
“하아….”
한숨을 푹 내쉰 푸린은 얼마나 싫은 입술을 툭 내밀고 궁수의 옆에 앉았다.
“내가 무슨 말 할지 알지?”
“예.”
“그래서, 굳이 마법사를 고집하는 이유라도 있냐?”
이 정도의 재능이라면 적어도 A급까지는 무난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궁수는 쓸모에 따라서는 그를 프로틴프로에 넣을 생각도 있었다.
“저는 딱히 다룰 줄 아는 무기도 없고….”
“주먹은 폼이냐? 몸을 무기로 만들면 되지.”
“그, 그러면, 어…”
이리저리 핑계를 대는 푸린은 부끄러운 듯 볼을 붉히며 말하기를 꺼려했다.
“뭐 부모님이 마법사라거나 아니면 누구랑 약속을 했다거나 그런 거냐?”
“그런 거창한 건 아닌데요….”
“그럼 뭔데.”
우물쭈물거리던 푸린은 궁수의 집요한 물음에 결국 얼굴을 가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포, 폼나잖아요….”
“…뭐?”
“멋있잖아요! 왜 그런 거에 로망 없어요? 찬란한 오색빛 공격마법! 하늘을 수놓는 마법진! 마법사 여럿이 모여 쓰는 대마법!”
“그런 거 없는데.”
“하…. 마법에 로망이 없다니, 지금 인생의 90프로 손해 보고 계신 거예요.”
푸린은 고삐가 풀린 말처럼 마법에 대한 지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좋게 말하면 마법도에 대한 열렬한 탐구였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마법 오타쿠의 ‘자기만 아는 이야기’였다.
“여튼 전 법사님 같은 대마법사가 되기 전까지 저는 마법을 놓지 않을 겁니다!”
“그러냐.”
‘아무리 봐도 가망 없는데.’
- 잘하면 다음 생에는 가능하겠군.
푸린은 나법사는 커녕 일반 마법사에게도 따라붙지 못하고 있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차라리 궁수가 마법사가 되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준이었다.
“그래서 근접 딜러는 조금도 관심 없다?”
“예! 이만 저는 갑니다!”
푸린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후다닥 D급 기숙사로 뛰어갔다.
혹여나 궁수가 공격할까 무서웠는지 자꾸만 뒤를 살폈다.
“흐으음. 뭐 나는 모르겠다~”
- 멍청하군, 고작 고집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버리다니.
“법사 제자지 내 제자냐? 뭐 어때.”
이렇게까지 말해줬음에도 바뀌지 않는다면 궁수는 딱히 해 줄 말이 없었다.
재능이 아깝긴 하지만 본인이 좋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쩝…. 그래도 조금 아깝긴 하네.”
궁수는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며 A동 기숙사로 돌아갔다.
***
다음날도 푸린은 열심히 법사의 지도를 받으며 열심히 수련하고 있었다.
푸린의 마력 운용은 아직 궁수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지만 그럼에도 확실히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화아악! 화아아악!”
“화아악이요! 알겠습니다!”
뭐 모자라 보이긴 하지만 실제로 마력이 흐르는 길을 터주고 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다른 학생들도 법사의 가르침에 흥미를 보였으나 며칠간 법사의 교육 방식을 보고는 모두 고개를 저으며 떨어져나갔다.
애초에 쾅쾅이니 화아악이니 슈웅이니 하는 말로 복잡한 마법을 설명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런 두 사람은 줄곧 주변 학생들은 비웃음을 사기 일쑤였다.
“푸흐흡 콰앙이란다 콰앙.”
“화아아악 이라잖아 화아악!”
“마법 이전에 국어부터 배워야 할 거 같은데 키킥!”
법사의 마법을 보고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학생들은 둘을 잔뜩 비웃었다.
실제로 궁수가 보기에도 다소 웃긴 장면이긴 하였으니 말이다.
이 정도의 비웃음은 평소에도 있었고 그 둘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기에 별 상관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뭔가 그 분위기가 달랐다. 평소 푸린을 괴롭히던 학생들 여럿이 법사와 그 주변을 감쌌다.
“호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것이 싸움 구경이라고 궁수는 곧바로 구령대에 앉아 관람을 시작했다.
“진짜 못 봐주겠네, 고작 한다는 게 외부인한테 빌붙는 거냐?”
“너딴 놈 때문에 아카데미의 긍지가 깎이잖아, 차라리 나가는 게 어때?”
“애초에 저런 거한테 뭘 배워보겠다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냐고~”
“푸흐흐흡! 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한테 뭘!”
여덟 명의 학생이 법사와 푸린에게 비아냥이 섞인 말을 뱉었다.
푸린은 갑작스럽게 몰려온 학생들에 당황하여 이리저리 눈치를 살폈다.
“어떻게 행동하려나.”
지금 푸린을 둘러싸고 있는 일행은 D급이 일곱 그리고 C급 학생이 한명이다.
C급 아카데미 생이 대장 격인 듯 노골적으로 푸린을 무시하며 비아냥거리고 있었다.
- 저러다 큰일 나겠군.
“뭐 어때, 법사 있잖아.”
- 그러니까 큰일 난다는 거다.
“아, 그건 그렇네.”
브레이크 따위는 없는 법사였기에 큰일 나기 전 궁수는 자리를 털고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궁수의 소문은 법사와 함께 널리 아카데미에 퍼져있는 상태였다.
에티오피아 내전 종결, 호주 사태 해결과 같은 일부터 최단 시간에 S급 헌터에 오른 것까지 말이다.
이는 법사도 비슷했으나 워낙에 평소 행실이 가볍다 보니 법사는 비교적 무시당하는 경향이 있었다.
“워워, 좆밥들끼리 너무 싸우지 마.”
“뭐, 뭣! 좆밥!?”
“뭐, 내 말 틀려?”
궁수는 넘실넘실 마력을 피워 올리며 학생들을 압박했다.
말로 해서 들을 놈들도 아닌 것 같아 조금은 무력행사를 펼쳤다.
궁수의 묵직한 마력에 사색이 된 학생들은 조심스럽게 자리를 피했다.
한명 C 클래스인 대장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너는 왜 안빼냐?”
“외, 외부인의 말을, 내가 왜 들어야하지!”
“허허.”
당당한 말과는 달리 그는 긴장감에 다리를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궁수는 꼬꼬마 학생의 어깨를 두드리며 어른의 대처를 보여주었다.
“내가 너보다 쌔니까 좆밥아, 뒤질래?”
보여주려곤 했다. 다만 궁수의 성미와는 어울리지 않았을 뿐.
‘응애 나 아기 궁수, 어른의 대처 몰라.’
- 쯧, 말이나 못하면.
물론 S급이나 돼서 아카데미 학생에게 손을 댈 생각은 조금도 없었기에 궁수는 이쯤 저 학생이 돌아가 주길 바랐다.
“가라, 다친다.”
그도 원래라면 이쯤하고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뒤에서 바라보는 D 클래스 학생들의 시선에 그는 돌아갈 수 없었다.
결국, 놈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뭐야.”
놈이 궁수를 향해 손수건을 던진 것이다. 다름 아닌 결투를 신청하는 의미였다.
“허어어억!? 호이든! 너 뭐하는 거야 미쳤어!?”
“닥쳐! 어딜 낙제생 주제에 날 가르치려 들어!”
“상대는 S급 헌터라고?! 잘못하면 죽을 거야!”
푸린은 궁수의 안색을 살피며 호이든을 말리려고 했으나 이미 일은 벌어진 상태였다.
궁수도 이를 흥미롭게 바라보며 천궁을 꺼냈다.
푸욱!
분쇄자로 형태를 바꾼 궁수는 이를 땅에 처박으며 호이든을 바라보았다.
“법사야, 죽일까?”
“주, 죽인다니?!”
“뭐, 그러려고 덤빈 거 아니었어?”
궁수에게서 배어나오는 진득한 살기가 그를 감싸기 시작했다.
절로 숨이 턱 막혀오는 기운에 정신이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흠!”
호이든의 시선이 나법사를 향했다. 마치 재판에 선 범죄자처럼 나법사 판사의 판결을 기다렸다.
그 결과는.
“응!”
사형이었다. 법사의 허락에 궁수는 분쇄자를 어깨에 이고 호이든을 향해 다가갔다.
“히, 히이이익!”
“응은 뭔 응이야 이놈아.”
얼굴이 누렇다 못해 보랗게 뜰 정도로 겁에 질린 호이든을 바라본 궁수는 피식 웃었다.
“뭐, 내가 싸우기는 좀 그렇고.”
궁수는 옆에서 안절부절 눈치를 살피던 푸린의 어깨에 손을 올려두었다.
“푸린보고 대신 싸우라 하지 뭐.”
“…네?”
당황한 표정의 푸린을 바라본 궁수는 한 치의 어두움 없는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 미소의 의미는 이러했다.
“미안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