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76화 (76/172)

◈ 76화. 세계 최고의 마법사의 제자의 제자.(1)

아름답게 갈라진 탑을 바라보며 법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 점!”

“무, 무슨? 으어어어?!”

주변 학생들은 물론이고 선생들도 당황하여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궁수만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법사의 하이파이브를 받아주었다.

“잘했어!”

“상쾌! 통쾌!”

화려하게 건물을 날려버린 법사는 만족한 듯 연신 콧노래를 부르며 이번에는 강당으로 들어갔다.

“여긴 또 다르네.”

강당에서는 마법사가 아닌 근거리 딜러들이 수련을 펼치고 있었다.

다만 그 무기의 형태는 마력으로 만들어진 무기였다. 마치 투명한 무기의 틀에 마력만 채워놓은 듯한 특이한 모양이었다.

캉! 카아앙!

서로 대련중인 듯 격렬한 파찰음을 내며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재밌어 보이는데.”

“쾅쾅?”

“실내잖아, 참아.”

마침 궁수도 근질근질하던 차였기 때문에 서스름 없이 훈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서로 무기를 맞부딪히던 학생들의 시선이 갑작스레 쏠렸다.

“뭘 봐.”

당연히 곱지 않은 시선이었기 때문에 궁수는 인상을 쓰며 퉁명스럽게 툭 말했다.

“흠, 손님이 오셨네요?”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사가 궁수 앞을 막아섰다. 금발의 머리칼을 가진 여성이었다.

궁수의 귀에 달린 통역기로 그녀의 말이 흘러들어왔다.

머리를 묶어 올린 그녀는 스윽 궁수를 훑어보더니 작게 조소했다.

“이쪽은 마법사는 아닌 것 같은데~”

“당연하지, 이거 안 보이냐?”

궁수는 어깨에 걸친 활을 툭툭 치며 그녀처럼 작은 비웃음을 지었다.

휘이잉.

바람이 없는 실내일 텐데 어째서인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는 아나요?”

“알지, 아카데미잖아.”

“이곳은 아카데미의 마법사 학생들과 콤비를 맺기 위해 만들어진 근접 전투관입니다.”

“무슨 콤비? 밖에 나가면 널린 게 헌터인데.”

아카데미를 졸업한 마법사라면 어떤 파티에서도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궁수를 비웃으며 어이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우리 우수한 아카데미 학생들을 아무런 헌터한테나 줄 것 같나요?”

“좀 나누고 살아, 위 아 더 월드 몰라?”

“하아…. 이래서 외부인은.”

“거 실력도 없으면서 더럽게 까칠하네.”

“뭐요?”

궁수의 투덜거림에 빠드득 이를 악문 그녀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어느새 검을 뽑은 그녀는 성큼성큼 궁수 앞으로 다가가 검 끝을 궁수에게 향했다.

“실력 한번 볼까요?”

“흐음, 후회할 텐데.”

“하! 당신이요?”

“아니.”

궁수는 그러면서도 어느새 듀얼 보우건으로 천궁을 변화시켰다.

“내가 여길 날려버릴 거거든.”

그녀는 어이없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요.?”

탓!

카카캉!

발사된 궁수의 듀얼보우건이 그녀의 낫을 정확히 타격했다.

그녀의 무기에는 진홍의 마력이 한가득 담겨 흉흉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저돌적이군요.”

“시말서 쓸 준비나 하라고!”

“학원장의 시말서라니, 그건 그것대로 즐겁겠네요.”

타앗!

땅을 박차고 달려든 그녀가 궁수를 향해 낫을 그었다.

곧바로 장궁으로 형태를 바꾼 궁수가 활대를 잡고 그녀의 낫을 후려쳤다.

카아앙!

잠시 거리가 벌려지며 궁수는 곧바로 컴파운드 보우를 집어 들었다.

‘먼저 바람.’

그녀도 원거리 딜러에게 거리를 주고 싶지 않았는지 곧바로 궁수를 향해 도약했으나 궁수의 태풍은 이미 그녀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흥!”

단순한 견제라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낫을 휘둘러 궁수의 화살을 쳐내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바람이 터져 나오며 그녀의 몸이 공중에 붕 뜨고 말았다.

“흐으윽?!”

순식간에 벌어진 수준 높은 공방에 학생들은 벙찐 상태로 결투를 구경하고 있었다.

“난! 다! 요!”

법사만이 신나서 손을 붕붕 휘두르며 전투를 관람하고 있었다.

가냘픈 그녀의 몸이 공중에 떠오르며 곧바로 궁수가 거대한 발리스타를 땅에 처박았다.

“뭣?!”

공중에서 균형을 잡던 그녀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며 기함을 토해내었다.

궁수는 양 입꼬리를 가득 끌어올리고 한 것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정말로 죽여 버릴 것처럼 말이다.

그녀의 표정에 여유가 사라지고 다급함이 자리 잡았다.

평소라면 마력을 이용하여 여유롭게 피했겠지만 지금은 궁수에 의해 중심이 무너진 상태였다.

“김치 맛 좀 봐라!”

“꺄아아아악!”

화살촉에서 환한 불꽃이 타오르며 적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궁수는 일부러 시위의 장력을 낮춰서 화살을 발사했다.

날아가는 화살의 속도는 느릿하기 그지없었으나 화살에 붙은 불은 그녀에게 끝없는 공포를 선사했다.

“흐끼이이익!?”

“풉.”

궁수는 곧바로 장궁으로 활을 바꾸어 날아가는 화살을 쏘았다.

촤좌좍!

세발의 화살이 날아가며 발리스타의 화살을 쳐내었다.

힘없이 날아가던 화살이 픽 꺾이며 그대로 바닥에 꽂혔다.

보통 배짱으로는 감히 시도조차도 하지 못할 행동이었으나 궁수의 활 솜씨로는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쿵!

“꺄악!”

그녀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쿵 바닥에 떨어졌다. 궁수는 장궁에 화살을 메기고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일부러 그녀의 코앞에 화살을 겨누며 말했다.

“죽입니다?”

“자, 잠깐만요!”

“잠깐 못해요~”

“꺄아아아악!”

죽일 거였다면 처음부터 발리스타를 맞게 두었을 것이다. 궁수는 그녀의 바로 머리 옆에 화살을 발사하였다.

“아…. 안 아파…?”

“왜, 그럼 아프게 해줄까?”

그녀는 얼굴이 보랗게 질려 도리도리 고개를 휘저었다.

궁수라면 정말로 그러고도 남을 놈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진심으로 겁에 질려있었다.

“아카데미도 별 거 없네.”

궁수가 화살을 겨누자 그녀는 자신의 어깨를 끌어안고 혹여나 다친 곳은 없는지 몸을 겨누었다.

그날 아카데미는 두 미친놈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졌다.

***

어두운 원탁의 방에 또 다시 가시들이 한 대 모였다. 거대한 원탁의 끝에 앉은 첫 번째 가시가 근엄하게 입을 열었다.

“침공의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슬레이브들의 힘을 90프로까지 끌어올렸습니다.”

“90프로라….”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 듯 첫 번째 가시의 말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첫 가시의 눈치를 살핀 그는 다급하게 부가설명을 붙였다.

“평상시에는 90프로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지만 광폭화를 사용하면 200프로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부작용은?”

“예, 아무래도 2배가 넘는 힘을 무리하게 사용하다 보니 2시간이 지나면 회로가 망가져 죽습니다.”

그제야 뭔가 만족스러운 듯 그는 다리를 꼬고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그는 뒤에 있는 누군가에게 다가오라는 듯 손가락질 하며 물었다.

“두 시간이면 되겠지?”

가시의 뒤에서 대기하던 누군가가 어둠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대답했다.

“충분합니다.”

칠흑의 갑주 사이로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믿음직한 그 태도에 첫 가시는 만족한 듯 입술을 쓸었다.

칠흑이 깔린 방에 그의 혈기가 가득 퍼졌다.

마치 검은 뱀이 먹이를 휘감듯 부드럽고도 압도적인 힘을 가진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부디 이번에는 날 실망시키지 말아다오.”

“위대한 첫 가시의 뜻대로.”

***

“야이씨! 내 것까지 다 먹으면 어떡해!”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인 거셈!”

“이이이익! 내놔!”

“싫셈!”

“뉴클리….”

“미쳤셈!?”

아카데미의 A동 식당, 그곳에서는 궁수와 일원들이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만찬이라 해봐야 아카데미 자체에서 나오는 급식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급식으로 랍스터가 나온다니!”

한손 가득 탱탱한 랍스터를 잡아 뜯는 궁수는 지금 죽어도 좋다는 듯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다소 야만적인 광경이었기에 궁수의 주변에는 일행을 제외한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이전의 사건으로 궁수와 일행들의 실력은 확실히 입증되었다.

특히 법사는 학원장실을 날려버려 학생은 물론 강사들도 감히 건들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다.

“여, 여기 앉아도 될까요?”

“맘돼로 훼!”

아홉 번째 랍스터를 입이 터져라 밀어 넣는 궁수의 옆으로 한 학생이 조용히 앉았다.

왼쪽에는 법사 오른쪽에는 궁수 앞에는 베로니카 정상인은 감히 앉을 수 없는 자리였으나 그는 얼굴이 새빨개지는 걸 참으며 묵묵히 자리를 차지했다.

그의 이름은 푸린, 아카데미 꼴등을 차지하는 학생이었다.

내향적인 성격에 말을 더듬는 그는 줄곧 같은 반 학생들의 놀림감이 되기 일쑤였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는 날이었다. 마법 시연에서 미미한 결과를 보이고 비웃음을 사고 있던 그 날.

“쟤는 어떻게 들어 온 거야?”

“운이겠지 운.”

“시험관한테 돈이라도 찔러줬나보지!”

“에이, 시골 촌놈한테 돈이 어딨냐!”

“푸하하하! 그렇네!”

여실히 쏟아지는 비아냥에 푸린은 얼굴을 붉히고 후다닥 뒤로 돌아갔다.

대놓고 들려오는 비웃음을 참아내며 조용히 기척을 지우길 잠시 아카데미 학사 건물에서 두 명의 남자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다름 아닌 법사와 궁수였다.

“외부인이 여길 왜…?”

그렇지 않아도 부정 입학이니 뭐니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부정 입학 주제에 A동의 방을 통째로 차지하여 학생들에게 있어서도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펑펑! 쾅쾅!”

모자라 보이는 말투에 그가 마법 시연을 하는 순간까지도 푸린은 별 감흥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어?”

그리고 그가 보여준 마법은 그간 쌓아온 온갖 헛소문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소름이 끼치는 마력 운용에 어떻게 되먹었는지 알 수 없는 연산 능력, 게다가 그에 걸맞은 어마어마한 위력까지.

만년 꼴등인 푸린에게 있어서는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겉멋과 각종 허세를 부리는 마법사들과 달리 그는 별다른 꾸밈없이 멋이 철철 넘쳐흘렀다.

그 순간 그는 정한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저분과 친해져야 한다.

친분까진 무리더라도 최소한 대화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까지는 관계를 진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 지금, 그는 인생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타인에게 다가간 것이다.

법사는 받아온 아이스크림을 입에 다 묻히고 먹으며 게걸스럽게 음식을 입에 쑤셔 넣고 있었다.

‘외관이 전부가 아니야, 이 네츄럴함, 이게 진짜다.’

어느덧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법사는 푸린의 아이스크림을 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 강렬한 눈빛에 푸린은 식판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스윽 법사에게 건네며 물었다.

“드실래요?”

“후아아아…!”

법사는 크게 놀란 듯 눈을 부라리며 푸린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쉽게 아이스크림을 받을 줄은 몰랐는지 연신 아이스크림과 푸린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좋은 사람!”

“겨우 아이스크림 하나인데요.”

“아이스크림! 주는 사람! 좋은 사람!”

“여기요, 드세요.”

아이스크림을 받은 법사는 행복한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스푼으로 한 입, 한 입 맛을 음미하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이런 사람이 그런 마법을 쓰다니….’

순둥순둥한 외관에는 어울리지 않는 어마어마한 마법의 소유자 나법사를 바라보며 푸린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저 혹시 이름이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흠냠냠! 나! 나법사!”

“아, 저는 푸린이에요.”

나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적으로 아이스크림을 공략하고 있었다.

푸린은 법사의 눈치를 살피며 배식대에서 아이스크림을 한 개 더 받아왔다.

“저 나법사님.”

“음?”

푸린은 입술이 바짝 말라감을 느끼며 아주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할 수 있어, 언제까지 이렇게 바보같이 살 거야? 빨리 말해!’

몇 번이고 입술을 핥은 푸린은 겨우겨우 법사에게 입을 열었다.

“제, 제자로 받아주세요!”

고개를 푹 숙인 푸린은 양손으로 아이스크림을 건네며 법사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아이스크림을 먹다 만 법사는 제자로 받아달라는 푸린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제자?”

“네!”

“왜?”

“저 사실 그때 법사님의 마법을 보고 크게 감복해서…. 어떻게든 법사님 제자로 들어가 마법을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법사는 숟가락을 핥짝이며 푸린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고민하는 법사에게 푸린은 간곡한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건네며 말했다.

“시켜만 주시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이해를 했는지 못했는지 법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푸린을 바라보았다.

현재 법사의 머릿속은 이러했다.

‘아이스크림 맛있겠다.’

그리하여 나온 답변은 이러했다.

“제자! 하면 나준다? 아이스크림?”

“네!”

“알았다! 한다! 너! 내 제자!”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아카데미 꼴등과 아카데미친놈의 화려한 콜라보가 성립된 순간이었다.

이를 옆에서 바라보던 궁수는.

“랍스터 마이쩡! 너무 마이쩡!”

역시나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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