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스승으로 받아주세요!
[속보 - 마탑의 주인이 갑작스레 방한 계획을 발표하여….]
[속보 - 마탑주 방한에 한국 ‘들썩!’]
[속보 - 마탑주 ‘한국에 보석이 있어’ 선언!]
프로틴프로 본부의 TV가 시끄럽게 마탑주의 소식을 떠들고 있었다.
“엉덩이 무겁기로 소문난 저 양반이 웬일이람.”
“왜요, 저게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에요?”
마탑주.
마법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로 알려진 길드 마탑.
아카데미에 입학해 극악의 난이도를 가진 교육을 마친 마탑의 마법사들은 그것만으로 천재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을 정도였다.
아카데미의 입학 조건 자체부터 천재 이외에는 들어올 수 없게 만들다 보니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천재 중의 천재를 뽑아 육성하고 마법을 연구하는 기관 그것이 바로 마탑이었다.
그리고 마탑주.
마탑의 주인인 그는 현재 100살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헌터 세계랭킹 3위권 바깥으로는 나간 적이 없었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숫자만 해도 도서관의 책만큼이나 많았기에 종종 마법 도서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저 양반이 얼마나 엉덩이가 무겁냐면 말이다. 이전 각 국가의 대통령들이 한 대 모인 자리가 있었지.”
“그런데요?”
셈은 남은 한 손으로 벤치를 하며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거의 모든 국가의 대표들이 저 놈한테 참석 요청을 했는데 들은 채도 안하지 뭐냐.”
“네? 대통령들이 모인 자리에 저 헌터가 왜요?”
“뭐더라, 자기 나라에도 아카데미를 놔달라 그거였나?”
“아하….”
대통령이 불러도 오지 않는다는 사람이 뭣하러 한국에 들리는지 잠깐 궁금했으나 크게 관심은 두지 않았다.
어차피 궁수인 자신과는 별 접점도 없으니 당분간 좀 시끄럽겠구나 할 뿐이었다.
“그래서 오늘 계획은 어떻게 되죠?”
S급 헌터의 자리에 오르고 4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베로니카는 어찌어찌 허가연과 합의를 봐 무사히 프로틴프로에 입단할 수 있었다.
“흠, 슬슬 다시 일을 해야죠.”
“나는 좀 쉬고 싶다만.”
“당분간은 쉬어도 돼요. 수혁이랑 법사랑 베로니카 좀 데리고 다니죠 뭐.”
“흠, 그럼 부탁하네.”
“들었지? 다 일어나!”
법사와 베로니카는 제법 쿵짝이 맞는 듯 연신 수다를 떨고 있었다.
다만 수다 내용이 도통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간다! 펑펑!”
“느헤헿! 다 조지러 가는거셈!”
“아 저는 왜요.”
“뭐긴 해체해야죠, 베로니카 너는 후방 지원이니까 사려, 괜히 나대다 다치지 말고.”
“알았셈! 나만 믿는거셈!”
휴대폰을 킨 궁수는 어플을 조작하며 주변 게이트의 위치를 찾았다.
B나 C등급이 아닌 처리하기 어려운 A급 게이트가 궁수의 주 먹잇감이었다.
“흐음, 뭐 괜찮은 거 없나.”
A급 게이트가 자주 등장하는 게이트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한 개는 꼭 등장하는 것이 A급 게이트였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A급 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방출형에 보스형인가, 후딱 처리해야겠네.”
괜히 다른 곳으로 튀기 전에 후다닥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에 궁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
“크하하하! 이 세상에 종말이 도래했노라!”
귀가 찢어질 듯 광대한 포효가 빌딩으로 뒤덮인 서울에 메아리쳤다.
단단한 외갑에 날카로운 손톱, 한 개 한 개가 성인 남성의 몸만한 놈의 이빨은 가히 위협적이라 헌터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아 새끼 더럽게 시끄럽네, 고성방가는 범죄인거 몰라?”
“맞셈, 아가리 좀 여무셈.”
“느헤헤헿!”
“어우 귀 아파라.”
현장에 와있는 네 명의 헌터를 제외하고 말이다.
상대는 A급 마물 트롤 티라노.
일반 티라노사우루스라면 강대한 치악력에 위협적인 꼬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티라노사우루스의 팔은 몹시 짧아 일명 숏팔이로 알려져 있는데 반해 트롤 티라노의 팔은 몹시 우람하여 근육이 꿈틀거리는 게 보일 정도였다.
“종족의 한계를 넘어선 내게 더 이상의 한계란 없다!”
실제로 놈은 위협적인 팔을 휭휭 휘두르며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빨에 꼬리에 팔까지 다른 헌터라면 겁먹고 으레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지금 이 네 명은 겁대가리를 상실한 헌터들이었다.
“야, 신입.”
“뭐셈!”
“저거 가둘 수 있겠냐?”
“가능하셈!”
A급 마물 앞에서도 시종일관 느긋한 태도를 취하는 궁수는 휴대폰을 조작해 먼저 방송을 켰다.
[궁하~]
[점심시간 나궁수 방송? 이건 못참지 ㄹㅇㅋㅋ]
[ㄱㅎ~]
[앙 평일 낮방송 기뭐링~]
ㄴ 선생님 직업이?
ㄴ 취준생입니다.
궁수의 팬덤, 자칭 ‘헬수’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말은 이렇게 해도 헬창이 아닌 사람들도 쉽게 가입할 수 있어 그 수는 여실히 증가하고 있었다.
“법사야 저거 먼저 묶어라.”
“바로 쾅쾅!”
“건물들 개 박살 낼 일 있냐, 참아.”
“그럼 찌릿찌릿?”
“그래, 그 정도면 되겠다.”
베로니카는 다른 헌터들과 달리 신체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법사가 먼저 놈을 묶어둘 필요가 있었다.
“크하하하! 미개한 생물들이 내 포효에 벌벌 떠는구나!”
도망치지 않는 것을 겁에 질렸다고 생각한 티라노는 묵직한 광소를 지으며 혀를 낼름 거렸다.
놈의 웅장한 포효가 다시 한 번 서울을 울렸다.
“더럽게 시끄럽네.”
촤악!
놈의 발이 땅을 떼기도 전에 먼저 궁수의 화살 여섯 발이 날아들었다.
왼발에 세 발 오른발에 세 발씩 빙결의 기운을 머금은 화살이 놈의 발을 얼어붙였다.
하지만 B, C급도 아니고 A급 마물을 속박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시원하고 좋구나 인간이여! 종말의 때가 떠오르는군!”
실제로 놈의 발을 묶은 얼음은 쩌억쩌억 금이 가며 위태롭게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어, 그래서 한발 더 준비했어.”
궁수는 귀찮은 듯 코를 후비며 스윽 옆으로 자리를 비켰다.
궁수의 뒤에서는 캐스팅을 마친 법사가 씨익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법사에게서 피어나는 창백한 전류는 티라노라 하더라도 순간 덜컥 겁이 날 지경이었다.
“자…. 잠깐!”
“찌리릿!”
법사의 눈이 황금빛으로 차올랐다. 그와 동시에 법사가 왼손을 땅에 짚었다.
티라노의 위로 찬란한 금빛 마법진이 생성되더니 그대로 큼지막한 번개가 놈 주위로 박혔다.
마치 놈을 둘러싼 번개의 감옥이 생성된 것처럼 번개는 저릿저릿 적을 감싸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놈이 밖을 나가기 위해 몸을 부딪히면 몇 백만 볼트가 넘는 전류에 감전되어 다시 감옥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기하던 베로니카가 눈을 빛내며 달려들었다.
“너님은 이제 좆된 거셈!”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놈 주변으로 세 개의 벽이 솟아났다. 높고 두꺼운 투박한 벽이 티라노를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놈의 앞을 막기 전.
“간다!”
“으잉?! 뭐하는 거셈?!”
“그대로 올려!”
궁수가 힘껏 달려 벽이 올라올 위치에 자리 잡았다.
“에라 모르겠셈!”
순간 당황한 베로니카였으나 궁수의 말에 눈을 질끈 감고 그대로 벽을 올려버렸다.
휘이이잉!
벽을 밟은 궁수의 몸이 떠오르며 벽안에 갇혀있는 티라노의 모습이 보였다.
“쩝, 법사 마법 한방이면 끝날 거 같은데.”
오히려 힘을 조절하며 싸워야 한다는 사실에 한탄한 궁수는 무덤덤하게 발리스타로 천궁의 형태를 바꾸었다.
거의 30미터가 넘는 높이었으나 궁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화살을 장전했다.
“트루 스나이핑.”
법사의 발리스타 앞으로 금빛 십자 모양이 표시되며 적을 조준했다.
회색빛 마력을 머금은 익스플로전 애로우는 한시라도 빨리 쏴달라는 듯 이글이글 붉게 빛나고 있었다.
“크와아아아! 내가 네놈 따위에게 죽을 것 같으냐!”
속에 갇힌 티라노가 포효를 지르며 궁수를 노려보았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위엄 넘치는 공룡이었으나 궁수가 보기에는 징그러운 파충류에 지나지 않았다.
놈과의 거리가 약 5미터쯤 남았을 때 궁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발리스타의 방아쇠를 당겼다.
“어 존나.”
상대는 움직일 수 없고 저격은 완벽하다. 거기에 궁수의 재능이 더해지면….
퍼어어어엉!
“끄아아아아악!”
뚫린 천장으로 화려한 폭발이 터져 나오며 티라노의 처절한 단말마가 울려퍼졌다.
다행히도 벽은 쩌억 금이 가며 궁수의 폭발을 잘 버텨주었다.
천궁의 형태를 바꾼 궁수는 평범하게 땅에 착지하였다.
[캬]
[나궁수!나궁수!나궁수!나궁수!나궁수!나궁수!]
[엄마 저는 커서 나궁수가 될래요! 엄마 저는 커서 나궁수가 될래요!]
[나궁수 그는 신인가?나궁수 그는 신인가?나궁수 그는 신인가?나궁수 그는 신인가?]
[봐라 이것이 K - 테러범이다!]
[펑궁수! 쾅궁수!펑궁수! 쾅궁수!펑궁수! 쾅궁수!]
채팅창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찬사에 궁수는 별 일 아니라는 듯 하품을 하며 뚜벅뚜벅 협회 직원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하나같이 당황한 듯 주변 눈치를 살피며 궁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A급 게이트를 쉽게 처리했다는 점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다만 A급 게이트는 처리 과정에서 주변이 개판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그들은 이후 처리까지 생각하고 게이트를 맡은 것이다.
그러나 궁수는 개판은커녕 고작 벽 4개를 세운 것이 전부였다.
티라노에 의해 금이 간 도로나 자동차 몇 대는 귀여운 수준이었다.
“일 안해요?”
궁수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 그들은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혀를 내둘렀다.
“아, 예 죄송합니다.”
그제야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한 협회 직원들은 서둘러 주변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A급도 별거 없구만.”
“쉽다! 쉽다!”
“끄응! 더럽게 단단하네!”
법사의 마법으로 벽을 무너트린 후에야 고수혁은 해체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고수혁은 언제 샀는지 모를 특수한 도구들을 사용하며 능숙하게 해체를 이어가고 있었다.
궁수의 일격에 머리통은 거의 깨부숴진 수준이었으나 다행히도 다른 곳은 그렇게까지 훼손이 심하지 않았다.
“흠 뭐 할만한 게이트 없나.”
다음 게이트를 찾으며 해체가 끝날 때까지 시간을 보내려던 궁수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방청객에게 방해받고 말았다.
“여긴 들어오시면 안됩니다!”
“비키게나! 저곳에 내 보석이 있단 말일세!”
갑작스러운 소란에 궁수는 고개를 기울여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저건 또 뭐야?”
덥수룩한 수염에 얼굴 전체에 퍼져있는 주름, 바닥에 질질 끌려오는 로브의 가슴팍에는 금색 별이 10개나 박혀있었다.
계속해서 막아대는 협회 직원들에게 짜증을 느낀 듯 그는 얼굴을 가리던 로브를 확 벗어버렸다.
“썩 비키게! 내가 누군 줄 알고!”
“누구…. 허어어어어억!? 마탑주!?”
“알면 썩 비켜!”
게이트 담당자들은 그의 접근을 막아야 했으나 아쉽게도 협회 직원 중 세계 제일의 마법사를 막아설 배짱이 있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야, 법사야.”
“뭐냐!”
“저거 네 손님인거 같지 않냐.”
“모른다!”
“그래?”
지구 최고의 마법사를 보고도 태도는커녕 표정 하나도 변화가 없는 궁수는 법사를 데리고 그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협회 직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씨익씨익 성을 내며 옷을 다듬고 있었다.
“저기요.”
“어! 오오오! 그래! 자네로군!”
그는 앞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듬과 동시에 법사를 바라보았다.
마치 보석이라도 발견한 듯 오죽하면 그의 눈이 찬란하게 빛날 지경이었다.
그는 자기소개 따위는 가볍게 던져버리고 다짜고짜 법사의 손을 양손으로 쥐었다.
“느헤헿?”
법사는 처음 보는 할아버지가 손을 잡았음에도 여전히 바보 같은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마탑주는 잠시 법사의 손을 몇 번 쓰다듬더니 이내 확신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 내 아카데미에 오지 않겠나!”
아카데미가 세워진 이후 사상 처음으로 마탑주가 직접 학생을 초청했다.
마법에 조예가 옅은 사람이라도 이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최고의 마법사의 눈에 들었다는 것이니 말이다.
잘만 풀린다면 부와 명예는 물론이고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세계 최고의 마법사의 제안에 나법사는.
“시름!”
상큼한 목소리로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