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SSS급 마라토너.
붉은 빛을 띤 살결에 둥그런 빨판이 달린 다섯 개의 발.
“불가사리…?”
성벽이 작아 보일 정도로 거대한 불가사리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쌰아아아아악!
“크흐윽!”
듣기 거북한 쇳소리를 낸 괴물은 그대로 빨판을 이용하여 움직였다.
“저걸 어떻게 잡으라는 거야….”
불가사리는 그대로 질주하여 궁수…가 아닌 성벽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어어어!? 뭐야 저거!”
불가사리는 성벽에 붙더니 이내.
와그작!
“와그작?”
기껏 세워둔 성벽을 야금야금 갉아먹기 시작했다. 정부를 둘러싼 건물을 모두 먹을 때까지 약 오분도 걸리지 않았다.
불가사리는 점차 크기를 키우더니 이내 그렇지 않아도 거대한 몸을 두 배에 가깝게 불리고 말았다.
“잠깐 저거….”
성벽을 모두 먹은 불가사리는 잠시 움찔거리더니.
쿠콰콰콰콰!
“우와아아악 도망가!”
불가사리는 성벽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는지 이쪽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악 씨발 왜 나만 쫓아오는 거야!”
중간에 궁수가 공격을 위해 방향을 틀자 불가사리는 기다렸다는 듯 궁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
“와아아아아악!”
샤아아아아악! 쌰아아아악!
“흠, 저대로 조금만 더 둘까요?”
“좋지, 너도 한번 당해봐라 낄낄낄.”
다른 헌터들의 놀림거리로 전락해버린 궁수였다.
“익스플로전? 아 아니 뉴클리어? 히이이익!”
달리는 와중에서도 궁수는 화살을 교체하며 견제를 날렸다.
그러나 대부분은 놈의 표피에 막혀 뚫지 못했기에 궁수는 부지런히 발품을 놀렸다.
“저거 어떻게 죽여!”
- 못 죽여.
“닥치고 어떻게 죽이냐고!”
- 놈이 받아내지 못할 수준의 화력이 되야 하는데 지금의 너로서는 무리다.
“뉴클리어도 안된다고!?”
- 흠, 애매하군.
“씨이이브아아알!”
하다못해 저 외부 표피가 아니라 비교적 덜 단단해 보이는 내부로 화살을 쑤셔 박을 수만 있다면 죽이지는 못해도 잠깐 녀석을 늦출 수는 있을 것이다.
마지막 하나 남은 마력 포션을 마신 궁수는 끊임없이 달리며 소리쳤다.
“나법사아아악! 펑펑으로! 제일 큰 거!”
“펑! 펑!”
“그래! 큰 걸로! 내가 소리치면 던져!”
“알았다아아아!”
궁수는 최소한의 마력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를 화살에 때려 박았다. 거대한 화살에 폭발의 기운이 자리 잡았다.
“흐으으으읍 지그으음!”
“간다!”
메테오 까지는 아니었으나 그 나름대로 화려한 유성우가 작렬했다.
쌰아아아아악! 쌰악 샤아악!
불가사리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는 사이 이때라는 듯 뒤를 돈 궁수가 천궁을 발리스타로 변경했다.
“뉴클리어어어!”
거진 궁수의 90%에 달하는 마력이 담긴 거대한 화살이 발리스타를 떠나 놈에게 날아갔다.
그렇지 않아도 강력한 스킬에 궁수의 마력을 몽땅 때려 넣자 정말 핵폭탄이라도 사용한 듯한 수준의 폭발이 일어났다.
“크흐으윽!”
컴파운드 보우로 형태를 바꾼 궁수는 폭발과 함께 일어난 바람에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콰드드득!
혼신의 힘을 담은 위력의 뉴클리어였으나 그 결과는 퍽 화려하진 못했다.
불가사리의 다섯 개의 다리 중 하나를 통째로 찢어버리는 성과를 보였으나 아쉽게도 놈을 죽이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것이 더욱 놈을 분노하게 했는지 더욱 크게 날뛰며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이 씨발 저거 왜 저래!”
쾅! 콰아아앙!
주변을 가뿐하게 쓸어버리며 다가오는 그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한번 크게 데여 분노한 불가사리는 촉수를 꿈틀거리며 궁수를 향해 질주했다.
‘어떡하지? 어쩌지? 이대로 계속 도망이라도 쳐야하나?’
워낙에 폭력적인 비주얼에 궁수도 뭐라 할 말을 잃었다.
호주에서는 든든한 아군이라도 있었지 지금은 아군이라 하기에는 그 수준이 너무나도 조잡했다.
이를 악문 궁수는 어떻게는 놈으로부터 거리를 벌리며 공격을 시도했으나 마력이 거의 바닥나버렸기에 별다른 공격을 시도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법사와 다른 헌터들도 별 차이가 없었다.
간간히 놈을 견제하기 위한 마법을 날리긴 했으나 위력 자체가 미비하여 큰 효과는 없었다.
이마저도 쥐어짜듯이 겨우 사용한 마법이기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기에는 위력이 부족했다.
다시 말해서 아무런 의미 없는 체력 소모만이 있을 뿐이었다.
“왜 씨발 나만 쫓아오는데에에엑!”
마력이 바닥난 궁수는 이를 악물고 놈으로부터 도망쳤다.
쿠콰콰콰쾅!
“끄아아아악!”
촉수 하나 하나가 성인 남성만한 놈의 모습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제발, 뭐라도 없나, 제발!’
주변을 둘러보며 혹시나 쓸만한 지형지물을 탐색했으나 폐허가 되어버린 국가에서 엄폐물이 있을 리 만무했다.
거즘 2시간 동안 전력질주를 한 궁수의 머리에서는 땀이 소나기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마저도 궁수였기에 다행이지 다른 헌터였다면 이미 쓰러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추가로 다른 헌터들이 궁수에게 계속해서 버프와 치료를 걸어주니 이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궁수는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버틴다고 하여 적이 쓰러지는 것도 아닌지라 궁수의 속은 타들어가기만 했다.
서서히 숨이 가빠오기 시작하며 궁수의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다.
으드드득!
“아직…. 아직 이렇게는 못 죽어!”
궁수가 자신과의 싸움에 서서히 지쳐가는 사이 궁수의 휴대폰에서 후원이 터지며 전자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거의 도착했습니다, 지금 구하러 갑니다. 죄송하지만 방송을 좀 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헉! 헉! 끄으으으아아아!”
무아지경이 되어 달리는 궁수도 구하러 온다는 말에 반응하여 다급히 방송을 껐다.
고작 후원 하나에 방송이 꺼지자 종료된 방에서 시청자들의 채팅이 폭주했다.
[네가 뭔데!!!!!!!!!!!]
[네 놈에겐 우리 궁수를 줄 수 없네!]
[내 아들과 결투를 허락하네! 내 아들과 결투를 허락하네! 내 아들과 결투를 허락하네!]
[그런데 댁이 누구신데요.]
[아니 스트리머 죽겠으니까 빨리 도와주기나 하라고.]
ㄴ 이게 맞다.
ㄴ 게이 맞다.
ㄴ 게이 맛있다.
ㄴ 뭐라는 거야 미친놈들이.
그러나 이미 꺼진 방송에 다시 불이 붙을 리 없었다.
계속해서 앞을 보고 달려가기도 잠시 궁수의 머리 위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두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며 궁수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허억! 허억! 아아아! 살았드아아아악!”
궁수도 별 기대는 하지 않았으나 이렇게 지원을 왔지 않는가.
질주하는 불가사리에 속도를 맞춘 헬기에서 거대한 대검을 든 여성이 떨어졌다.
아무런 안전장비도 없이 낙하한 그녀는 검을 치켜세우고 불가사리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전신에 황금빛의 마력을 두른 그녀는 허공을 박차고 낙하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전신을 빛내는 황금의 마력은 마치 악을 심판하는 찬란한 유성우와도 같았다.
그러나 과연 그녀가 저 거대한 불가사리를 죽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하아아아압!”
빛나는 유성이 그대로 불가사리의 정중앙에 작렬했다. 여성의 날카로운 기합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쿠콰콰콰쾅!
불가사리의 단단한 표피와 여성의 황금빛 대검이 부딪히며 귓가를 후려치는 굉음이 일어났다.
쌰아아아아악!
불가사리는 진심으로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지르며 그녀를 때어내기 위해 몸부림을 쳤으나 이미 단단하게 박힌 대검은 놈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죽어라.”
푸화아아악!
그녀에게서 황금빛 기운이 터져 나오며 한 번 더 불가사리의 중앙부를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이내.
콰드드득!
불가사리의 중심을 완전히 뚫어버리고 말았다.
다리가 잘려도 움직이던 녀석은 중앙에 거대한 구멍이 뚫리자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레벨업! LV - 112]
[레벨업! LV - 113]
궁수의 레벨이 오르며 기나긴 전투가 마무리 되었다.
“징그러워….”
징그럽단 말과는 달리 그녀는 거침없이 놈의 시체를 가르며 궁수에게 다가왔다.
어깨를 이어 등까지 길게 내려온 금발의 머리칼, 시크한 눈매에 베일 듯 날카로운 턱 선은 마치 전설 속의 발키리를 보는 듯했다.
게다가 은빛의 전신갑주를 입고 있어 더욱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보통의 남자가 본다면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이었으나 아쉽게도 연애고자 궁수에게 있어서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었다.
‘예쁘네.’
찬란하게 빛나는 그녀의 외모를 단 세 글자로 압축시켜버린 궁수는 땀에 흠뻑 젖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데 감사 인사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감사합니다.”
궁수는 고개를 숙이고, 감사한 마음에 그녀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러나 그녀는 궁수의 악수를 무시하고 시크하게 한마디 툭 던졌다.
“그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름 아닌 한국어였다.
외모는 전혀 한국인이 아니었기에 궁수는 적당히 한국어를 배웠거니 추측할 뿐이었다.
‘헌터라는 족속은 존댓말이란 걸 팔아먹은 새끼들인가?’
궁수는 툴툴거리며 머쓱하게 악수를 청했던 손을 다시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이윽고 헬기에서 다른 사람들이 내리며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궁수 뒤에서 대기하던 헌터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으나 이내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궁수에게 다가오며 그 분위기는 다소 풀어졌다.
정장 차림의 그는 안경을 쓰고 턱에는 수염이 자란 중년 남성이었다.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비율에 정장까지 입히니 중년간지가 이런 걸까 싶을 정도였다.
담배를 문 그는 얼큰하게 연기를 빨아들이며 궁수에게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담배꽁초를 던지며 궁수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행히도 반말을 찍찍 뱉던 여자와는 달리 그는 예의를 아는 인간인 듯했다.
궁수는 그의 악수를 받아주며 말을 이었다.
“한국어 잘 하시네요? 한국인으로는 안 보이는데.”
“오십개국어 정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 예.”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궁수에게 있어선 다소 패배감이 들었으나 그는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할 말을 이었다.
“반호와의 전투는 인상 깊게 봤습니다.”
“반호요?”
“네, 당신이 상대한 그 남자의 이름입니다, 동시에 저희가 쫓고 있던 놈이기도 하죠.”
“흐음….”
어느새 싸가지…. 가 아닌 금발의 여성도 그 옆에 서서 궁수를 마주보고 있었다.
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품에서 명함을 꺼내며 궁수에게 건네주었다.
“국제 협력 기구 세이비어의 호르테라고 합니다.”
“…나궁숩니다.”
“티아라.”
짧은 소개를 마친 그는 잠시 궁수를 빤히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턱에 난 수염을 쓰다듬는 그는 마치 궁수를 채점하는 듯 보였다.
‘흥 이 새낀 또 뭐야?’
남자의 노골적인 시선에 궁수 또한 옆의 티아라를 빤히 바라보았다.
괜히 더럽게 남자를 빤히 보긴 싫으니 차라리 옆의 여자를 보자는 마음이었다.
“뭘 봐?”
“얼굴.”
“왜봐?”
“그런 쟤는 왜 날 보는데?”
“특이취향?”
“….”
순간 진심인가 싶어 궁수는 화들짝 놀라 자신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호르테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손사래를 치며 궁수에게 말했다.
“아, 근육이 대단해서 그만, 눈을 뺏기고 말았군요.”
“저, 저는 여자 좋아하거든요?”
“예?”
“저는 아저씨는 취향이 아니라서요.”
궁수의 헛소리에 순간 당황한 그는 어버버 말을 절었으나 이내 피식 웃고는 다시 유연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저도 여자가 좋습니다. 이미 결혼하기도 했고요.”
“그런 대 저를 왜…!”
“크흠, 저희 쪽에서 준비한 비행기로 헌터님들을 한국까지 모셔다 드리려고 합니다만.”
그는 대놓고 궁수의 개소리를 씹으며 서글서글 좋은 미소를 지었다.
마침 타고 왔던 비행기도 격추당했던 터라 궁수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제안이었다.
‘이게 웬 떡이냐!’
“다만, 반호에게서 빼앗은 마검은 이쪽에 맡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뭐요?”
너무나도 노골적인 그의 표현에 궁수의 눈이 가늘게 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