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SSS급 환경파괴범.
“후퇴! 모두 후퇴해!”
“후방으로 빠져! 미리 준비한 대로 배치해!”
모든 헌터들이 뒤로 후퇴하고 있을 때 궁수가 에르다를 잡고 물었다.
“저 정도면 얼마나 많이 온거냐?”
“거의 총공세나 다름 없는 수준이다. 정부놈들…. 잔뜩 약이 올랐나 보군.”
“오 그러면 저것들도 다 죽이면 좀 타격이 크겠네?”
“뭣? 너 설마…”
“전부 다 숲 밖으로 빠져.”
“뭐야? 숲이 있어야 전투를 하지, 그게 무슨 소리냐!”
궁수는 인벤토리에서 마력 포션을 하나 꺼내 마시며 말했다.
“방해되니까 빠지라고.”
‘니들이 빠져야 내 맘대로 할 수 있지.’
궁수는 최대한 비장한척 하며 그녀와 반 정부군을 뒤로 물렸다.
사실은 저 숲을 통째로 날려버리기 위해서였으나 그건 별 중요치 않았다.
“그런! 그럴 수는 없다!”
“아니 꺼지라고.”
“외부인도 이렇게 노력해주는데 내가 빠질 수 없다!”
“개소리 말고 꺼지라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역대급 환경파괴를 꿈꾸던 궁수는 귀찮은 방해꾼의 등장에 표정을 굳혔다.
에르다의 어깨를 잡은 궁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네 수준으로는 도움이 안 되니까 빠지라는 거다. 알았어?”
“내 수준이 뭐 어때서!”
피식.
헛웃음을 지은 궁수는 당장에 법사를 턱으로 가리켰다. 이를 바라본 에르다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그, 그래도 나름 짐꾼으로는!”
“아니, 위험하니까 뒤로 빠져.”
“그런….”
그녀는 침울한 듯 횡설수설했으나 결국은 궁수의 말에 따라 뒤로 후퇴했다.
“야.”
“뭐.”
“다 죽여버려.”
“빨리 가기나 해 분위기 잡지 말고.”
“쯧, 무드 없는 남자로군.”
이로서 방해꾼은 모두 사라졌다. 그녀가 후퇴하자마자 궁수는 법사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거 숲에다 넣고 숲 채로 태워버리자.”
“와아아아아!”
법사의 표정이 마치 무지개처럼 밝게 피어났다. 이 정도면 폭발을 위해 인생을 사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수준이었다.
쿵쿵쿵!
서서히 적군이 숲에 다 달았다.
궁수와 멤버를 제외한 다른 반 정부군은 모두 숲을 넘어 그 뒤의 언덕까지 후퇴한 상태였다.
다시 말해서 숲을 태워버리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저거 다 태워버리는데 얼마나 걸리냐?”
“가능!”
“일단 가능은 하다 이거지?”
“가능가능!”
“그래.”
궁수의 손에 불꽃을 머금은 화살이 한아름 잡혔다.
동시에 폭발의 기운 또한 함께 가지고 있어 그 모습은 마치 폭발물을 한 가득 실은 트럭과 같았다.
‘가볍게 시작해 볼까.’
촤좌좌좌좍!
궁수의 손아귀를 떠나간 화살이 먼저 적들의 머리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적에게 꽂히는 종종 폭발하며 제법 선전한 시작을 보였다.
“뭐야, 왜 안 죽어.”
- 흠, 어둠이 짙군, 쉽게는 죽이기 힘들겠어.
“그러면 어떡하는데.”
- 어떡하긴 더 큰 충격으로 다 죽여야지, 그래도 전에 상대했던 놈들 보다는 약할 거다.
“옘병….”
궁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방패를 들고 멍하니 서있는 셈에게 다가갔다.
“셈.”
“뭔가.”
“셈이 해줘야 할 아주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궁수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셈의 어깨를 토닥였다.
마치 ‘네가 아니면 안돼!’라는 듯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웬만해선 볼 수 없는 궁수의 진지한 태도에 셈의 목울대가 꿀꺽 울렸다.
“말 해보게.”
“그게 말이죠….”
***
“끄아아아아악 나궁수 이 개새끼야아아아아아!”
“캬하! 어그로 죽이네!”
셈의 등 뒤로 엄청난 수의 적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있었다.
“달려! 더 열심히 달려!”
“끄아아아아악!”
궁수가 사용한 방법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셈을 적들 앞에 앞세우고 광역 도발 스킬을 시키게 명령한 것이다.
당연히 인간으로서의 이성을 잃고 본능밖에 남아있지 않은 적들을 셈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거다.
“셈! 내가 시킨 대로 해줘야 해요! 알죠?”
“이 개새끼야아아아아악!”
“알았다고요? 좋아요!”
셈은 궁수의 말대로 미친 듯이 숲을 향해 질주했다. 새까만 적들이 숲으로 몰려 들어가며 궁수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흐음, 그래도 조금 걱정이 되는군.”
“에이 뭐 죽기야 하겠어요.”
“하긴, 뭐 셈이야 바퀴벌레 같은 인간이니.”
“욕?”
“칭찬일세.”
궁수와 법사는 최대한 주변의 높은 언덕 위로 올라갔다.
“흠 잘 하고 있네요.”
“저게 보인다고?”
“일단은 궁수니까요?”
다른 사람이라면 혀를 내두를 정도의 시력이었으나 궁수는 당연한 듯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흠, 이 정도면 되려나.”
남은 마력을 체크한 궁수는 대수롭지 않게 천궁의 형태를 변환시켰다.
언덕 위에 거대한 발리스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궁수는 만족스러운 듯 발리스타를 쓰다듬으며 거대한 화살을 장전했다.
철컥!
“끄으응! 한발 쏘기도 힘드네.”
[오빠ㅏㅏㅏㅏㅏㅏ 날려어어어어엇!]
[TAG:BIG]
ㄴ 야토미 꺼라.
ㄴ 이걸 알아보다니 너도?
[그… 그렇게 큰건 무리에요오옷!]
ㄴ 무친놈… 무친놈…
얼마나 적의 수가 많은지 푸른 숲이 까맣게 칙칙해질 지경이었다.
“키이야! 경치 조오타!”
“조타! 조타!”
왼쪽에서는 법사가 마력을 피워 올리며 초록빛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으며 반대쪽에서는 당장에라도 폭발할 듯 붉은 화살이 발리스타에 걸려있었다.
“내가 먼저 간다!”
법사의 캐스팅 시간이 끝나갈 즈음 궁수가 먼저 발리스타를 조준했다.
셈은 미리 말한 대로 요새화를 탄탄하게 진행시킨 듯 이미 적들의 공격을 거뜬하게 버텨내고 있었다.
화르르륵!
창대한 불꽃이 붙은 궁수의 화살이 정확히 적진 한가운데를 향해 작렬했다.
“폭발은!”
[예술이다!]
[아트다!]
[펑펑!]
[쾅쾅!]
“테러지 병신들아.”
[어엌ㅋㅋㅋ]
[그걸 몰랐넼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친놈… 무친놈…]
퍼어어어어엉!
화르르륵!
붉은색 진홍의 버섯구름이 일어나며 숲 일대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70…. 아니 60%쯤?”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제법 많은 수의 적들이 타들어갔다.
적들은 타오르는 숲과 함께 대미지를 입으며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음 준비된 후속타는 더욱 매콤했다.
“에어럴 토네이도!”
“오 신기술!”
[법사좌 신기술 쓰신다.]
[얼굴 - 귀여움, 포즈 - 귀여움, 결과 - 안 귀여움]
[포브스 선정 얼굴값 못하는 헌터 1위.]
ㄴ 헌터가 얼굴이 뭐가 중요함ㅡㅡ.
ㄴ 이 새끼 못생김.
ㄴ 존나 너무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타격감 묵직한거 보소 ㅋㅋㅋㅋ
ㄴ 팩트 벤이요.
거대한 토네이도가 마법진에서 내려와 숲 한가운대에 닿아 적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궁수가 피워 올린 불꽃이 휘감아 올라가며 거대한 파이어 토네이도가 형성되었다.
“휘잉! 화르륵! 꺄하하핳!”
“캬! 성능 확실하구만!”
그러나 채팅창은 어느새 셈의 장례식이 열렸다.
[古 조나셈 ~2020)]
[왜 죽이냐고ㅋㅋㅋㅋㅋㅋㅋ]
[그는 좋은 고기방패 였습니다.]
[키야 이 집 닭가슴살 잘하네.]
[주모! 프로틴 한잔 거하게 말아줘!]
[아니 그런데 ㄹㅇ 죽은거 아님?]
[에이 설마 살았겠짘ㅋㅋㅋ]
ㄴ 죽으면?
ㄴ 개꿀잼 몰카지.
ㄴ 지구상 최고의 SSS급 탈모헌터였다….
ㄴ 장례식인가요?
ㄴ 아뇨 축제입니다.
동료가 있는 곳에 마법을 때려 박았으니 걱정 할법도 하지만 궁수는 일말의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귀에 꽂힌 통신기에서 셈의 쌍욕이 한 무더기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 이 개 X같은 X발롬아 X발 나도 처자식은 봐야할거 아냐 이 X같은 X발X끼들아아악!’
무호흡 쌍욕을 뱉어낸 셈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묵묵히 적들의 공격을 버텨내고 있었다.
사실은 적이 아니라 아군의 공격을 버티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이 마저도 옆으로 빗겨나갔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 정말로 셈의 장례식을 열었을지도 모른다.
마법이 완전히 잦아들고 궁수는 숲을 바라보았다.
“음, 셈 머리처럼 시원하게 밀렸네.”
불꽃이 잦아든 자리에는 새하얗게 탄 재만이 있을 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조금 깊숙하게 들어가니 셈의 요새화로 추정되는 흙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셈! 이제 밖으로 나….”
“이 개자식이이이이!”
“크헤에에엑!”
요새를 풀고 나온 셈의 격렬한 몸통박치기에 궁수는 일순간 비명을 토해내었다.
“아 왜 때려요!”
“날 죽일 뻔 해놓고 뭐가 어째?”
“아 다 잡았잖아요, 그 정도도 못 버텨요?”
“후우우, 참자…. 참자.”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참는다고 셈은 필사적으로 숨을 고르며 화를 식혔다.
그러길 잠시 뒤로 후퇴해있던 반 정부군들이 우르르 내려왔다.
“아아아악! 숲이! 숲이이이이!”
“왜 탁 트이고 좋구만.”
에르다는 사라진 나무에 울부짖으며 소리쳤으나 이미 타들어간 나무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리 만무했다.
“아이고오오! 이런 외부인들을 믿는 게 아니었어! 어쩐지 자꾸 보내려고 하더니!”
“아이고 너무 눈치 채는 게 느리시네.”
“내 숲! 내 나무! 어머님과 함께한 내 추억이!”
“누가 보면 네 건 줄 알겠다? 땅문서 있어? 있냐고 앙?”
잠시 궁수와 에르다의 한바탕 전투가 일어날 뻔했으나 힐과 그녀의 여동생인 에르갈의 필사적인 중재로 다행히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다.
에르갈, 에르다의 여동생인 그녀는 잠시 타버린 숲을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슬퍼하고 있을 때 아니다.”
“하, 알고 있다만….”
“적도 이번에는 무리해서 부딪혀 왔을 것, 그런데 소득 없음. 제법 피해가 클 것.”
“그래서?”
“반격, 지금이 적기.”
그녀의 말에 헌터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적들도 공세가 먹히지 않아 크게 당황했을 것이다.
“그럼 정해졌네.”
천궁을 어깨에 걸친 궁수가 고개를 까딱였다.
“뭐해? 안 움직이고.”
“지금 바로 가자는 거냐?”
“그럼 멍청하게 정비할 시간이라도 주자는 거냐?”
“그건….”
“싸우지도 않아서 멀쩡하잖아? 빨리 따라오기나 해.”
실제로 궁수와 법사가 모든 적들을 날려버렸으니 말이다.
숲이 날아간 것은 아쉬운 일이나 실제로는 손 하나도 대지 않고 코푼 격이니 그녀에게 있어서 손해는 없었다.
“흐음…. 알겠다, 필요한 장비만 챙겨서 바로 가지.”
“알아서 해.”
***
에티오피아 정부 대통령실.
그 안에서는 주름진 남성이 얼마 없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앓고 있었다.
“도대체 저것들은 또 어디서 나타난 괴물이야!”
이번에는 무조건 저 빌어먹을 반란군 놈들을 쓸어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동양인들이 일을 망쳐버렸다.
기껏 ‘가시’의 도움을 받아 보낸 아군은 허무하다 못해 바보같이 쓸려나갔다.
“씨발, 씨발, 씨바아아알! 저런 괴물을 어떻게 상대하라는 거야!”
쾅! 쾅! 쾅!
거세게 책상을 후려친 그의 타블렛에서는 궁수와 법사의 마법이 작렬하는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먼저 보낸 선발대로 마력을 미리 소모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저들은 그렇긴 커녕 오히려 더욱 압도적인 마력으로 아군을 쓸어버렸다.
그것도 파이어볼이나 에너지볼트 같은 귀여운 마법이 아닌 너무나도 압도적인 마법이었다.
그것은 인간이 일으킨 마법 보다는 차라리 천재지변이라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렇게 머리를 쥐어뜯는 사이에 어느새 대통령실에 들어온 가시가 그 뒤에서 턱을 괴고 이를 바라보았다.
“흐으음, 이건 확실히 좋지 않군요.”
“그러면 빨리 뭐라도 해보라고! 놈들 때문에 내! 짐의 국가가 전복될 위기에 처해있지 않는가!”
“아하하~ 폐하? 너무 급할 것 없습니다. 폐하의 곁에는 제가 있지 않습니까?”
가시의 눈이 붉게 번뜩였다. 그는 대통령의 어깨를 주무르며 눈은 화면에 나온 궁수를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 한번 부딪혀보자꾸나.’
어느새 가시, 아니 반호의 입가에는 옅은 호선이 그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