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SSS급 학살자.
바로 다음날 궁수와 일행은 그들의 본거지로 자리를 옮겼다.
이해관계가 일치한 이상 주절거리며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남자는 무언가 음침한 일을 꾸미고 있을 것이다.
당장에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서라도 빨리빨리 일을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흐음….”
건물은 터조차도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 원시 천막 같은 것들을 쳐둔 상태였다.
오히려 이런 빈약한 장비로 어떻게 정부와 대립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쪽으로 들어오게.”
궁수와 일행은 중앙에 배치된 가장 큰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오오.”
“생각보다 본격적인데?”
“이 정도면 이해가 가지.”
내부는 외부와는 차원이 달랐다.
각종 무기들이 즐비하게 걸려있음은 물론 내부에는 이 주변의 지리가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과연, 게릴라 전인가.”
“어마어마하네요.”
숲의 각종 은신처, 땅굴, 심지어는 숲에 설치된 함정까지.
어째서 그녀들이 숲을 파괴하려 했을 때 그렇게 기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 정도로 정교하게 함정과 시설들이 설치된 숲을 하마터면 궁수와 법사가 날려버릴 뻔 했으니 말이다.
그녀로서는 간담이 서늘해졌을 것이다. 에르다는 자랑스러운 듯 가슴을 피고 ‘엣헴’하며 뒷짐을 지었다.
지도를 확인한 궁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그녀는 붉은색 팬을 들고 지도에 표시하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적은 분명 다시 이곳을 공격할 것이다.”
“왜?”
“놈들에겐 우리만큼 먹음직스러운 먹이가 없으니까, 어떻게든 사로잡아 제물로 쓰려고 하겠지.”
“흐음….”
이곳에 있는 것은 대부분이 마력을 보유한 헌터다. 다시 말해서 제물로 사용하기 딱 좋은 먹이감이란 말이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지도를 가리키며 설명을 이었다.
무슨 굴을 이용해서 게릴라전을 펼친다느니 어떻게 적을 몰아서 무슨 함정에 넣는다느니 복잡한 이야기가 많았다.
셈과 힐은 이해가 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을 경청했으나 궁수와 법사는 아니었다.
법사는 이미 골아 떨어졌고 궁수도 머리에 쥐가 나기 직전이었다.
“잠깐만.”
결국, 보다 못한 궁수가 손을 들어 그녀에게 물었다.
“굳이 그렇게 복잡하게 가야해?”
“뭐?”
“아니, 그냥 다 패 죽이면 되는 거 아니야?”
궁수의 너무나도 간단명료한 답에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왜 안돼?”
궁수는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반박했다. 궁수가 알기로 에티오피아 헌터들의 수준은 높지 않다.
은우에게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S급은 고사하고 A급 헌터도 가뭄에 콩 나듯 하는 곳이 에티오피아의 실정이었다.
아마 궁수의 파티원들만 하더라도 충분히 일당백이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상대는 정부군이다, 각종 무기로 치장하고 오는 B~C급 헌터들이 1천 명이 넘는단 말이다.”
“음, 그런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되는데?”
궁수는 턱을 쓰다듬으며 법사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잠에서 깨어난 법사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궁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가능할까?”
“가능!”
“역시 그렇지?”
궁수와 법사의 의미를 알 수 없는 헛소리를 에르다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표정을 구기고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말에 쐐기를 박듯 셈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흐음,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만?”
“역시 그렇죠?”
허세인지, 혹은 정말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실력자인지 당장에는 알 수 없었다.
이상한 분위기가 천막을 감돌았다. 궁수는 별거 아니라는 듯 휴대폰을 뒤져보며 낄낄 웃고 있었다.
“요즘 세상에 전파가 안 터지는 곳이 있네!”
“없다! 디지털!”
“아핰핰핰핰! 개 웃겨!”
이런 둘을 바라보는 아르델과 아르갈은 이 혼란한 상황에 혼이 빠져나갈 지경이었다.
다행히도 둘의 혼이 빠져나가기 전 마을 밖에서 보초를 서던 헌터가 급히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적습입니다!”
“뭐라고, 하필이면 지금?!”
“왜, 아까 말한 그 잘난 함정 쓰면 되잖아.”
그녀는 인상을 팍 구기며 엄지손톱을 깨물었다.
“아직 설치가 덜 끝났다, 워낙에 정교한 작업이라….”
“호오, 그렇다는 건.”
궁수와 법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자신의 차례가 찾아옴에 둘 다 기분이 약간 상기된 상태였다.
“플랜 B로 갈 수밖에 없겠구만!”
“플랜 B라니? 회의에는 없었다만?”
“펑펑 쾅쾅!”
“그래! 펑펑이다!”
분명 이 정신 나간 남자들이 비범한 힘을 지닌 것은 맞다.
그러나 과연 저 둘이, 몰려오는 정부의 병사들을 물리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몇 명이냐?”
“네?”
“적, 몇 명이냐고.”
씨익 입가를 끌어올린 궁수의 화살통에는 어느새 만들어진 익스플로전 애로우가 한아름 들어있었다.
“천 정도입니다….”
“천? 에잉 너무 적은데.”
“아! 그래도 뭔가 다릅니다. 전신에 무슨 새까만 걸 두르고 있습니다.”
“뭐? 새까만 거?”
“네, 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두르고 있었습니다.”
궁수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일본에서의 악몽이 다시 재현될까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 침식은 아닐 거다. 그저 마기를 씌운 거겠지.
“그런 게 돼?”
- 마기가 소멸하면 몸도 개판이 되겠지만, 뭐 마기가 있는 동안은 확실히 강하겠지.
“호오….”
툭툭.
“응?”
궁수의 옷깃을 잡아당긴 법사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펑펑? 가능?”
궁수는 잠시 에르다를 스윽 바라보며 고민하는 척 하더니.
“응! 까짓 거 다 날려버리자!”
“안돼!”
“아 몰라! 난 간다!”
“안된다고 이 미친놈들아!”
궁수는 법사를 데리고 후다닥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숲의 위기를 느낀 아이델이과 다른 파티 멤버들이 우르르 함께 나왔으나 이미 궁수는 법사와 함께 후다닥 마을 바깥으로 도망친 후였다.
“같이 가게!”
“느려 고기방패!”
“뭣!? 누가 고기방패라는 거냐!”
“외팔 대머리!”
“이이이이익!”
화아아악!
숲을 빠져나오니 저 멀리서 마기를 두른 적들이 척척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저 정도면 귀여운 수준이네.”
피부의 위로 살짝 어둡게 깔린 수준이기에 궁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들은 사람이라기 보단 인형에 더 가까운 수준이었다.
절그럭절그럭 검을 바닥에 질질 끌며 다가오는 적들에게는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저게 사람이냐, 인형이지.”
- 마기에 중독되면 저리 되는 법이지.
방송을 킨 궁수는 우드득 우드득 몸을 풀며 먼저 법사에게 말했다.
“난전 시작되면 마법쓰기 빡셀 테니까, 먼저 큰 거 한방 쏴.”
“알았다!”
법사의 눈이 번뜩였다. 최근 광역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 탓에 법사는 조금 쌓여있는 상태였다.
캐스팅 속도도 이 전에 비해서 배는 빨라져 순식간에 적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푸른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 처음 보는 마법이네?”
붉은 마법진에 메테오를 생각했던 궁수는 새로운 법사의 마법에 눈을 밝혔다.
화려한 마법학 기호가 새겨진 마법진에 마지막으로 번개의 모습이 그려졌다.
“라이트닝 샤워!”
콰콰콰콰콰콰쾅!
“오오오오오오오오!”
적들의 위로 푸른 번개가 미친 듯이 작렬하기 시작했다.
번개를 맞은 적은 순식간에 어둠을 잃고 까맣게 타버리고 말았다.
어차피 적은 인간도 괴물도 아닌 어중간한 것이기에 이질감은 전혀 없었다.
번쩍!
마지막으로 법사의 번개가 작렬하고 남아있는 적은 채 200명이 되지 않았다.
“아이씨 니 혼자 다 먹으면 어떡해!”
“꺼어어어어억!”
[들어오자 마자 지려버렸다…]
[헤으으응 오빠 나 죽어(덜렁).]
[캬ㅑㅑㅑ 법카콜라 지렸다.]
[?법-시지 뭔 법카콜라냐 맛알못이네.]
ㄴ 이 새끼 죽여.
ㄴ 2222222
ㄴ 법시파는 손을 들어라! 나를 따르라!
ㄴ 응 니 혼자.
남은 적은 약 200, 궁수도 이에 질세라 바로 화살을 겨누었다.
촤좌좌좌좍!
“키야하!”
적들의 위로 30발이 넘는 붉은 빛의 포화가 떨어졌다. 화살은 별것 아닌 듯 후두두둑 떨어졌다.
어떤 것은 적의 몸에 박히기도, 또 어떤 것은 땅에 떨어지기도 했다.
궁수는 엄지를 척 들고 벙쪄있는 에르다에게 다가갔다.
“에르다.”
“어, …어 아, 음 뭔가.”
“이거 눌러봐.”
“이거라니? 엄지?”
“응.”
에르다는 궁수의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에 고개를 갸웃하며 그의 엄지를 꾹 눌렀다.
그리고.
퍼퍼퍼퍼퍼펑!
“흐거어어어억!? 이…. 이게 뭐냐!?”
“너가 다 죽였어! 내가 봤어! 이 잔인한 학살자!”
“하, 학살자라니 나는, 나는 그저 엄지를 눌렀을 뿐이다!”
패닉이 온 아르델을 어버버 말을 절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궁수는 이에 피식 웃으며 분쇄자를 들었다.
“다녀온다.”
“다녀온다니? 어딜?”
“청소하러.”
“뭐?”
그 말을 끝으로 궁수는 전장을 향해 뛰어나갔다.
남은 적은 채 열 명도 되지 않았기에 궁수의 입장에선 그저 가볍게 몸을 풀 수 있을 정도였다.
휘이이잉!
“아찔하네!”
가장 앞에 있던 적의 칼날이 궁수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곧바로 뒤로 몸을 젖혀 칼날을 피한 궁수는 그대로 손으로 땅을 짚고 물구나무를 서 남자의 칼날을 발로 찼다.
그리고는 다시 손으로 땅을 밀어내며 그대로 다리 사이에 적의 머리를 넣었다.
그리고는 바로.
우드득.
툭.
“흐음, 역시 본체는 사람이라서 목이 꺾으면 죽네.”
남은 적은 도합 아홉.
모두 궁수의 실험 기구에 지나지 않았다.
콰직!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적의 머리통이 날아가며 궁수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경험치는 안주네.”
- 근본은 인간이니 말이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 궁수는 천궁을 어깨에 걸치고 저벅저벅 동료들을 향해 되돌아갔다.
원래 궁수의 멤버들은 그러려니 하며 자연스럽게 궁수의 하이파이브를 받아주었다.
그러나 아르델과 그 뒤의 반 정부군들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것처럼 입을 떡 벌리고 궁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두려움, 공포, 혼돈 등 여러 가지 감정이 깃들어 있었으나 가장 짙은 감정은 따로 있었다.
바로 선망.
파죽지세로 밀리기만 하던 헌터들이 처음으로 정부의 공격을 완벽히 막아낸 것이다.
물론 자신들이 막아낸 것은 아니고 외국인 남자 두 명이 해낸 일이었지만 말이다.
“뭐, 환호라도 하던가 왜 반응이 없어.”
궁수는 어색한 듯 볼을 긁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숲이 떠나갈 듯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이겼어! 이겼다고! 그것도 한명도 죽지 않고!”
“이겼드아아아아아아악!”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헌터들은 무언이 그리도 기쁜지 연신 환호를 지르며 온몸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저 안에서 멍하니 궁수를 바라보던 에르다가 궁수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주먹으로 궁수의 가슴을 툭 치며 말했다.
“제법이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는 궁수를 향해 씨익 웃어주었다. 그러나 궁수는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비웃으며 대답했다.
“줴봘 말이 되는 또리를 해~”
“으으으윽!”
“아뉘이~ 현실적으로 불가눙 하돠뉘까아~?”
“이이이이익! 실언이다 실언! 그래 너 잘났다!”
“맞아 난 존나 잘났어 아핰핰핰!”
그녀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게 물들고 이를 악물었으나 궁수에게 뭘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승리의 여운을 만끽하기도 전에 셈이 그 산통을 깨버리고 말았다.
“아직 좋아할 때는 아닌 거 같군.”
“응? 왜요?”
셈의 말에 뒤를 돌아본 궁수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 뒤로는 방금 전의 배가 많은 적들이 땅을 울리며 이쪽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법사야.”
“뭐냐!”
“한발 더 가능하냐?”
법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외쳤다.
“가능!”
“그러냐.”
어느새 궁수의 옆에는 거대한 발리스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궁수는 싱긋 웃으며 발리스타에 화살을 장전했다. 그 화살은 마력을 가득 머금어 새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면 할만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