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그는 좋은 비행기였습니다.
워낙에 강렬한 일격에 그녀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무슨 이런 괴물 같은 녀석이 다 있어?!’
분명 비행기를 격추시킨 건 본인들이 한 일이다.
척 보아도 날아가는 방향이 정부 쪽 방향이었기 때문에 정부의 보급품이라고 생각하여 격추시켰다.
“니들 때문에!”
쾅!
“나는!”
“크흐으윽!”
쾅!
“죽을뻔 했다고!”
콰과과과광!
궁수는 물론 다른 멤버들도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적대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반 정부군의 수장이다. 궁수가 강력하긴 하지만 적어도 쉽게 당해줄 그녀는 아니었다.
“흐으읍!”
카가가각!
창을 비스듬이 기울여 궁수의 공격을 흘려낸 그녀는 마력을 일으켜 신체를 강화했다.
그녀의 특기인 신체 강화술이었다. 오밀조밀 모인 근육이 더욱 세밀해지며 육체의 수준이 한층 더 높아졌다.
“내 이름은 에르다, 전사여 네 이름은 무엇인가.”
“저승사자 이 새끼야!”
콰아앙!
“으드득!”
적잖게 분노한 궁수는 지금 차분하게 대화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당장에 저 빌어먹을 년에게 주먹이라도 한발 꽂아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승이랑 굳바이 키스나 나눠라!”
캉! 카가가각!
제법 잘 싸우긴 하였으나 아무리 그녀라도 진심으로 분노한 궁수를 막지는 못했다.
궁수의 분쇄자가 그녀의 왼 팔을 날리기 직전.
“그만.”
에르다의 옆에서 멍하니 바라보던 활을 든 여자가 궁수를 향해 활을 겨누었다.
그 방향은 정확히 궁수의 관자놀이를 향하고 있었다.
- 이건 못 피하겠군.
“괜찮아.”
“펑펑?”
단숨에 마력을 끌어올린 법사의 뒤로 스무 개가 넘는 창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불꽃이 붙어 이글이글 타오르는 창에 바람이 더해지자 마치 폭풍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죽인다? 다?”
“어, 다 죽여버려.”
법사의 화염이 작렬하기 직전 당황한 적 궁수가 먼저 화살을 거두었다.
“그…. 그만!”
“내가 왜?”
하지만 아직 법사의 불꽃은 절찬리에 타오르고 있었다.
신경쓰지 않고 숲 채로 태워버리려고 했던 궁수는 곧바로 법사에게 눈치를 주려 했으나.
“쯧…. 내 불찰이군, 미안하네, 힘을 거두어주게, 부탁이네.”
에르다는 창을 버리고 양손을 들어 항복의 의사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사과하고 끝날 일이면 경찰이 왜 있어!? 앙?!”
“이 나라에 경찰은 없다.”
“헐.”
그들은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전투 의사를 버렸다.
설사 궁수를 쓰러트린다 하더라도 그 옆에 있는 법사가 숲을 통째로 날려버릴 테니 그들 입장에서는 고작 궁수 한 명을 잡는 것 치고는 너무나도 지출이 뼈아팠다.
“진작 그래야지, 왜 기어올라?”
콧방귀를 뀐 궁수는 무기를 거두고 성큼 동료들 옆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수많은 적들에게 둘러싸였음에도 동료들은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셈은 지루함에 하품까지 할 지경이었다. 무기를 거둔 궁수는 살기를 풀고 대화를 시도했다.
“그래서, 너네가 반 정부군이지?”
“그렇다, 난 에르다, 내 옆은 동생 에르갈이다.”
딱딱한 말투로 자신을 소개한 그녀들의 무기는 생각보다 더 단촐했다.
무슨 원시 부족 같은 복장에 반해 그들이 들고 있는 무기는 제법 잘 구비되어 있었다.
에르다는 미안하긴 한 듯 눈을 깔고 궁수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날이 저무는군…. 일단 여기서 머물면서 이야기하지 않겠는가.”
“그러게요, 씨팔 누가 비행기만 내버려뒀어도 우린 호텔에서 편히 잤을 텐데.”
“크흠…. 이 나라에 편안한 호텔 따위 없다.”
“말투부터 좀 풀지, 존나 안 어울리는데.”
“이, 이건 대장으로서 품위를 지키기 위한 말이다!”
“나도 못 이기면서 대장은 얼어 죽을 대장.”
“….”
궁수는 저 빌어먹을 여자와 친하게 지낼 마음이 단 1그램도 없었다.
비행기를 폭파시킨 것도 모자라 다짜고짜 위협이나 해대고 처 발리고 나서야 꼬리를 내리는 꼴이라니.
“쯧.”
궁수의 표정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들은 최대한 일행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나름대로 많은 양보를 했다.
그래봐야 천막이나 간이 침낭 같은 것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
궁수는 투덜거리며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아우 진짜 더럽게 시끄럽네.”
셈과 힐의 완벽한 코골이 더블 크로스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던 궁수는 잠시 천막 밖으로 나왔다.
“뭐야, 왜 안자냐?”
“혹여나 적군이 올까 잠이 오질 않는군, 네놈은?”
“누가 또 천막채로 날려버릴까 무서워서 나왔다.”
“흠, 할 말이 없군.”
“없어야지 있으면 개새끼지.”
밖에서는 에르다가 모닥불을 지피며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 옆에서는 방금 전 에르갈이라고 소개했던 활을 든 소녀가 어깨를 기대고 잠들어있었다.
“야.”
“뭐냐.”
궁수는 혹시나 하여 품을 뒤적였다. 구겨진 사진 한 장이 궁수의 품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궁수가 이곳에 온 이유인 ‘가시’의 사진이었다.
별 기대는 하지 않지만 혹시나 반 정부군의 대장인 그녀라면 알고 있을까 하여 물어본 것이었다.
“혹시 이 남자에 대해 알고 있는 거 있어?”
“남자?”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뒤적이던 에르다가 궁수의 사진을 받아들었다.
“뭣….”
그녀는 순간 정말로 놀랐는지 눈을 부라렸다.
“왜, 뭐라도 알아?”
“네놈, 어떻게 이 남자를 알고 있지?”
“뭐?”
그녀는 철천지원수라도 본 것처럼 인상을 마구 구겼다. 실제로 에르다에게서는 베일 듯 날카로운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쫄 궁수가 아니었다.
“내가 먼저 물어봤다.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
“거절한다. 내가 뭘 믿고 답하지?”
“그럼 씨발, 처 맞고 말하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궁수의 손에는 어느새 천궁이 쥐어져 있었다.
화르륵!
순식간에 장궁에 시위를 건 궁수는 바로 불꽃을 붙여 그녀를 노렸다.
한층 강력해진 불꽃은 이글이글 타오르며 당장에 그녀를 위협하고 있었다.
“네놈 궁수였나?”
“닥치고, 말 할래 안할래?”
“…쯧.”
그녀는 양손을 들어 항복의 의사를 보였다.
궁수는 그녀의 항복에 다시 시위를 풀었다. 불이 붙은 화살은 그대로 모닥불에 꽂아 넣었다.
“말하기 전에 물어볼 것이 하나 있다.”
“뭔데.”
“너는…. 그 남자와 한패인가?”
어이가 나가다 못해 소멸할 정도로 바보 같은 말에 궁수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털썩 자리에 앉았다.
“원수다 원수, 아주 빌어먹을 원수.”
실제로 그 정도는 아니었으나 어쨌든 지금 궁수가 잡아야 할 상대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잡든 죽이든.
먼저 마검을 빼앗거나 혹은 그대로 놈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거나.
“원수라…. 그렇다면 너도 저 남자를 노리고 있다는 건가?”
“그렇지, 아주 일을 거나하게 벌려주고 가셔서 말이야.”
“그렇군….”
그녀는 사진을 다시 궁수에게 넘겨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썩 좋은 기억은 아닌 듯 그녀는 입을 여는 그 순간도 표정이 굳어있었다.
“그 남자 때문에 에티오피아에서 내전이 일어났다.”
“…뭐?”
그녀는 한숨을 푹 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불꽃이 일렁이며 더욱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가브, 그게 현 대통령의 이름이다.”
“음.”
“원래는 그리 욕망이 큰 남자도 아니었어, 그렇다고 좋은 대통령도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에티오피아의 성장을 위해 힘쓰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왜?”
“다 그 남자 때문이다.”
“빠드드드득!”
이를 악문 그녀의 몸이 분노로 파르르 떨렸다. 얼마나 사이가 안 좋은지 몰라도 그 남자에게 적잖게 응어리를 둔 모양이었다.
“어디선가 나타나서는 감언이설로 가브를 서서히 침식하기 시작했다.”
“침식이라니?”
“손대면 안 되는 방법에 손대게 하고 계속해서 옳지 않은 방향으로 나라를 끌고 가려 했지, 마약이라거나 무기 밀수라거나.”
“아.”
얼마나 억울한지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일 지경이었다. 그녀는 다급히 눈물을 닦아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그 남자가 에티오피아 헌터계에 손을 대기 시작한 거다.”
“헌터계에?”
“그래, 그가 나타난 이후 에티오피아의 유명 길드 대표들이 행방불명 ‘당하기’ 시작했다.”
“흐음.”
척 보아도 그 가시가 다 죽였다는 것이리라. 대놓고 사람을 암살해도 아무 문제없는 나라라니.
궁수는 낮게 혀를 차며 계속해서 그녀의 말을 이었다.
“계속해서 하나 둘 헌터들을 정부의 아래로 모은 그는 이번에는 대통령에게 또 다른 욕망을 불어넣었다.”
“욕망? 뭔데?”
“침략, 언제까지 에티오피아를 약소국으로 둘 생각이냐며 대통령을 살살 꼬드겼지.”
‘전쟁인가….’
“뭐 사실 그때부터는 대통령의 자리가 무의미했지, 꼭두각시처럼 그 남자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옳다며 선동하기 바빴으니.”
“그래서?”
“아직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어, 다만 전쟁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지금 일어나고 있다.”
“뭔데, 뭐 테러라도 하냐?”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정말로 세상의 서러운 감정은 모두 담긴 한숨이었다.
잠시 하늘을 보며 눈을 깜빡이던 그녀는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인신공양.”
“…쓰흡.”
인신공양이니!
영화에나 나올법한 일이 지금 이 국가에서는 태연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도 이런 나라에서 태어난 게 부끄러운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대답했다.
“어째서 인신공양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그때 본 것은 똑똑히 인신공양이었어.”
“어떻게 하고 있었는데.”
“….”
“야.”
“굳이 말해야겠는가.”
“혹시나 내게 필요한 정보일 수도 있으니까.”
궁수는 천궁을 옆에 두고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혹시나 천궁이 뭐라도 알고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때 본 것은 붉은 마법진이었다.”
“마법진?”
“그래, 그 마법진 위에 사람이 올라가니….”
“올라가니?”
“우우욱!”
“야! 뭐야?!”
그녀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역겨운지 연신 헛구역질을 해대며 기침을 해댔다.
정말로 끔찍한 기억인지 그녀의 표정은 보랗게 변해있었다.
“일순간 사람의 피가 쫙 빠지더니 그대로 미라처럼 변해버렸다.”
“피라….”
“그리고 어디선가 몰려든 벌레들이 남은 살점을 뜯어먹기 시작하더군, 눈알, 내장은 물론 완전히 해골이 될 때까지 말이야.”
“그건, 확실히 좀 그렇네.”
이야기를 들은 궁수는 천궁에게 눈을 돌렸다. 천궁도 뭔가 짐작하는 바가 있는지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뭔지 알 것 같아?”
- 음, 짐작 가는 것이 있다만.
“뭔데.”
- 게이트를 소환할 확률이 높다.
“게이트?”
- 그래 어중간한 것도 아니고 최소 S급 게이트로.
“…씨발.”
최소 S급 게이트라니.
S급 게이트라 함은 그 국가 자체가 위험에 빠질 스케일의 게이트가 아닌가.
표정이 삽시간에 굳은 궁수는 입술을 물고 생각에 잠겼다.
“막을 방법은 없나?”
- 술사를 죽이던, 혹은 마법진을 파괴하던가 해야지.
“흐음, 술사는 아무래도 그 남자겠지?”
- 그렇지.
“그럼 마법진은?”
- 글쎄다. 그것도 일반적인 마법진도 아니고 금지된 마법이라 쉽지는 않을 거다.
“쯧….”
궁수의 표정을 살피던 에르다는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에는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혹시 우리와 협력하지 않겠는가.”
“뭐? 내가 왜?”
“목적도 일치하는 것 같으니 협력하면 좋지 않겠는가.”
“우리는 그 남자만 죽이면 되는데?”
“이 나라가 곧 그 남자 그 자체다. 지금 정부를 쓰러트리기 전까지는 쉽지 않을 거다.”
하긴, 이 정도로 깊게 관여되어 있다면 적어도 그녀의 말을 따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었다.
게다가 천궁도 옆에서 한수 거드니 궁수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 마법진이 완성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게 좋을 거다.
“허어, 그 정도라고?”
- 그래, 아무래도 뭐가 나올지 모르니 말이다.
사실상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기에 궁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