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뭐여 내 마검 돌려줘요.
“우와아아악! 나법사! 바람! 바람 빨리!”
“휘잉휘잉!”
쏴아아아아!
법사의 마력을 재물로 만들어진 바람이 작렬하며 땅에 닿기 직전 급속도로 낙하 스피드를 줄였다.
“휴, 죽는 줄 알았네.”
하마터면 몬스터는 잡아놓고 낙사로 죽을 뻔한 궁수였다.
“마검은 어딨지?”
애초 궁수의 목적은 마검을 회수하는 것이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궁수는 저 멀리 박혀있는 마검을 발견하고는 잽싸게 뛰어나갔다.
“와, 그걸 맞고도 멀쩡해?”
마검이 괜히 마검이 아닌 듯 그 어마어마한 공격을 맞고도 검은 멀쩡했다.
방금의 전투로 인해 도시는 반쯤 폐허가 되어버렸는데 말이다.
“이거 손으로 쥐어도 되나?”
- 내가 있으니 문제없다.
“그래?”
안심한 궁수가 땅에 박힌 마검을 집어드려는 순간 갑자기 검이 둥실 떠오르더니 궁수의 왼쪽으로 날아갔다.
“뭐야!?”
“흐음, 기껏 마검을 줬더니만….”
마검은 어느새 궁수의 왼쪽에 있는 사내의 손에 들려 있었다.
‘내가 기척도 읽지 못했다고…?’
각성 전에도 궁수는 몹시 예민하여 주변의 인기척을 대부분 느낄 수 있었다.
각성 후에는 그 감각이 더욱 날카로워져 일반인은 물론이고 몬스터나 심지어는 헌터들의 기척마저도 읽어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 예민한 궁수가 기척조차도 느낄 수 없는 상대라니.
“하아…. 산 넘어 산이네.”
검은 복면에 붉은 후드.
그의 팔뚝에 새겨진 장미 모양 문신.
구미호를 세상에 푼 장본인 중 한명인 ‘가시’의 일원이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마검을 다루며 정신도 멀쩡하여 마치 침식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곧바로 시위에 화살을 당긴 궁수가 놈을 향해 말했다.
“너 뭐냐?”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바로 화살을 발사할 생각이었으나 그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구미호를 쓰러트린 사람인가요?”
궁수를 발견한 그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마치 보석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기뻐하는 그의 모습은 적어도 정상적인 사람의 행동은 아니었다.
“내 질문부터 대답해, 넌 누구지?”
“글쎄요? 전 뭘까요?”
그는 검을 몇 번 두드리더니 맘에 드는 듯 도신을 쓰다듬었다.
마치 연인을 다루듯 세심한 그 손놀림에 궁수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알려드릴까요?”
“글쎄, 싫으면 줘패서 알아내면 돼.”
“흐음, 그런 폭력적인 방법은 싫은데.”
‘빈틈이 없다.’
적은 스킬을 사용하지도 심지어는 마기를 두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전신에 약점이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인간의 기본적인 급소조차도 전혀 포인트가 뜨지 않았으니 말이다.
“흐음 그건 말이죠….”
그의 전신에서 마기와 마력이 들끓기 시작했다.
- 피해라!
“저한테 이기면 알려드리죠.”
“크흐윽!”
촤아악!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돌격한 남자는 궁수가 있었던 자리를 베었다.
이 마저도 바로 궁수가 몸을 굴러 피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궁수는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었을 것이다.
“아까워라.”
“이 미친놈이….”
보우건으로 형태를 바꾼 궁수가 한계까지 마력을 올렸다.
아무리 상대가 강력하다 한다고 한들 궁수는 도망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애초에 저 남자로부터 도망이 가능한지도 의문이었고 말이다.
“이 새끼가 비겁하게 기습을 해?”
“하하. 그런 찬사를, 감사.”
그의 나른한 말투는 궁수의 속을 살살 긁고 있었다.
콰아앙!
땅을 박차고 뛰어나간 궁수는 곧바로 보우건을 X자로 그었다.
보우건에 달린 날카로운 칼날은 아쉽게도 마검에 막히고 말았다.
‘벽?!’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힘으로 궁수를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근육도 없는 저 말라빠진 몸으로 어떻게 저런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 궁수는 의구심이 들 수준이었다.
캉! 카아앙!
보우건을 처 올린 궁수는 곧바로 화살통에서 화살을 한 개 꺼내어 놈의 미간을 노렸다.
상체를 가볍게 틀어 공격을 피한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궁수를 노리려 했으나 오히려 궁수는 그대로 땅을 짚고 발뒤꿈치로 놈의 턱을 후렸다.
터억!
물론 그것마저도 놈의 왼 팔에 막히고 말았다. 괴물 같은 전투 센스에 괴물 같은 피지컬.
적어도 지금의 궁수가 상대할 수 있는 적은 아니었다.
“이 새끼 봐라….”
궁수와 남자가 서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기도 잠시 복면남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갑자기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그래, 애프터까지 찐하게 한번 가보자.”
“글쎄요?”
화아아아악!
남자의 목걸이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빛이 궁수의 시야를 가렸다.
“당신과는 금방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 군요.”
“뭐야!?”
- 조심해라! 기습일지도 모른다!
“씨발 나와! 야 어디야!”
빛이 잦아들고 서서히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올 때 쯔음 그는 더 이상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디갔어!”
- 주변에서 마력은 느껴지지 않는다만.
혹시나 하여 주변을 찾아보기도 하였으나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복면을 쓴 남자는 찾을 수 없었다.
전투에서 이겼으나 마검도 그렇다고 적의 정보도 어느 하나 얻지 못했다.
“이런 씨발….”
무력함에 궁수가 낮에 욕을 읊조렸다. 그와 동시에 다음에 만나면 기필코 머리를 뚫어버리라 다짐하는 궁수였다.
***
“일본 인기 헌터 순위 2위 누구~!”
“그게 나야~!”
“1등이 일본인 헌터인 걸 감안하면 사실상 1위인 거 아시죠?”
“하, 이 놈의 인기란.”
한국에 도착하고 3주라는 시간이 지났다.
일본에서 있던 일을 정리한 이은우가 오랜만에 프로틴프로의 길드 하우스에 와있었다.
“승진이라도 했어요? 표정이 좋네.”
“당연히 했죠, 이제 팀장이 아니라 부장이라 불러 주십쇼.”
“네? 부장이요?!”
“크흐! 초고속 특진!”
사실 은우의 능력을 감안하자면 너무나도 당연한 직위였지만 말이다.
궁수는 잠시 은우의 승진을 축하해주며 서서히 본론으로 이야기를 돌렸다.
“그래서 제가 말한 건 어떻게 됐습니까.”
“아, 그거 말이죠, 흐음….”
마검을 들고 사라진 사내에 대해서 말이다. 그나마 이번에 추가한 점은 그의 세세한 인상착의였다.
검은 복면, 붉은 후드로는 너무나도 정보가 부족한 감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그 나름대로 세세한 정보들이 추가되어 있었다.
“흐음, 팔뚝에 가시 문신이 새겨진 남자 말이죠?”
“네, 혹시나 뭐 들어온 정보라도 있어요?”
이은우는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궁수에게 말했다.
“장미까진 모르겠으나 그 비슷한 인상착의가 발견된 곳이 있습니다.”
“오? 어딘데요?”
“에티오피아요.”
“…네?”
갑자기 튀어나온 에티오피아라는 말에 궁수는 당황하여 말을 절었다.
이은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커피를 마시며 인벤토리에서 타블렛을 꺼내들었다.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간 그의 갤러리는.
“육감적인 몸매 모음집?”
“네? 그게 무슨…. 아앗!?”
마치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갤러리를 바꾼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다시 브리핑을 이었다.
궁수는 같은 남자이니만큼 구태여 그 갤러리에 대해서 캐묻지 않았다.
‘나중에 공유해달라 해야지.’
그것도 잠시 갤러리에서는 궁수가 말했던 인상착의의 남자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오, 맞아요! 이 남자!”
“흐음….”
드디어 실마리를 잡아 기뻐하는 궁수와는 달리 그는 애매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었다.
“인상착의는 모두 일치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네? 뭔데요?”
그는 계속해서 갤러리를 넘기며 인상을 팍 쓰고 말했다.
“시차를 계산해보면 이 사진이 찍힌 날짜와 저희가 일본에 갔던 날짜가 일치한다는 겁니다.”
“…네?”
“저희가 일본에서 남자를 만난 시간은 약 오후 5시입니다.”
“그래서요?”
그는 골치 아픈 듯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제트기를 타고 간다고 해도 그 시간에 일본에서 에티오피아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
그제야 은우의 말을 이해한 궁수의 표정이 다시 심각해졌다.
어떻게 그 먼 거리를 순식간에 갔느냐도 있지만 신경 쓰이는 것은 따로 있었다.
왜 그가 굳이 에티오피아까지 갔냐는 것이다.
딱히 에티오피아가 선진국도 아닐뿐더러 헌터 등급이나 게이트 처리 속도도 한참 후진 수준이다.
뭐 자원이야 노릴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자원을 마석으로 대체하는 요즈음 굳이 화석연료가 필요할까 싶었다.
“왜 저 남자가 굳이 에티오피아까지 갔을까요?”
궁수의 질문에 난감한 표정을 지은 이은우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지금 에티오피아는 내전이 일어난 상태입니다.”
“내전이요?”
“예, 정부군 헌터와 반정부군 헌터들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죠.”
실제로 은우가 보여준 기사에서는 헌터들이 마법을 일으키며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전은 그 자체로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잔혹한 영상에 눈을 돌려버린 궁수는 은우에게 물었다.
“뭐 때문에 내전이 벌어졌는데요? 뭐 세금?”
“아닙니다.”
“그럼 뭔데요.”
“에티오피아가 왕국으로 바뀔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죠.”
“네?”
은우의 설명은 간단했다.
집과 토지를 조건으로 헌터들을 모은 대통령은 그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더더욱 많은 헌터들을 모았다.
결국 헌터로 군대를 이르기까지 몸집을 키운 에티오피아의 대통령 토라피는 그 군사력을 기반으로 하여 영구적인 집권을 노리고자 했다.
실제로 그는 정부 산하의 암살자 헌터들에게 웃돈을 주고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들을 암살하기 까지 하는 등 아주 권력에 미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에 반기를 든 사람들과 헌터들이 모여 집단을 이룬 것이 반정부군이다.
처음에는 정부군의 압도적인 우세로 순식간에 내전이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동료들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에 지친 정부군의 지속적인 이탈에 결국 전투의 양상은 수평을 이뤄버리고 말았다.
정부군에서 빠져나온 헌터들이 반정부군에 흡수되며 대통령도 이제는 반정부군을 무시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총이나 전차가 아닌, 천지를 뒤집는 마법이 매일같이 작렬했다.
오죽하면 하루같이 터지는 테러에 대통령은 매일 주거하는 곳을 바꿀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흠, 그래서 저 남자가 저기까지 가서 뭘 하냐는 겁니다.”
“그거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애초에 누가 옳고 그른지를 알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뭔가를 정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더군다나 궁수는 몰라도 은우는 한국 정부 산하의 헌터다.
그가 섣불리 개입했다간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 간의 분쟁까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에티오피아의 전투력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그 뒤로 묶인 여러 전쟁 조항들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은 에티오피아를 건들 수 없었다.
헌터 선진국인 한국이라 하더라도 아니, 오히려 선진국이기에 오히려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무엇보다 굳이 한국이 에티오피아에 간섭할 이유도 없었고 말이다.
“하…. 이걸 어쩐담.”
- 흐음, 아무래도 저걸 그대로 방치하면 더 귀찮은 일이 일어날 거다.
“그러겠지?”
- 뿌리를 뽑는 게 좋지 않겠느냐.
고민하는 모습과는 달리 이미 궁수는 저벅저벅 바깥으로 나가고 있었다.
“헌터님? 어디가십니까?”
“짐 챙기러요.”
“네?”
궁수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프로틴프로의 헬스장이었다.
셈과 힐은 물론이고 드물게 법사도 헬스장에서 다 같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대머리! 대머리!”
“어허 대머리 아니래도!”
“그럼?”
“…대머리 (진) 정도로 해줘.”
“진? 진짜 대머리!”
“야이씨.”
오늘도 길드원들은 소박한 하루를 보내며 정겨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셈! 힐! 우리 에티오피아로 휴가 가죠!”
적어도 에티오피아로 휴가를 가는 또라이는 없을 것이다. 말이 휴가지 사실상 다 같이 출장이나 가자는 말과 진배없었다.
“크흠 내가 그 날은 바쁠 예정이라.”
“날짜도 말 안했는데요.”
“미안하지만 그 날은 장례식이 있어서….”
“뭐요? 죽어버린 머리카락 장례식이요?”
“싫다!”
“넌 닥치고 따라와.”
그리고 출장이란 이름의 휴가는 언제나 즐거운 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