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61화 (61/172)

◈ 61화. 머리통, 머리통을 보자.

“저는 조금 뒤로 빠지겠습니다.”

“네? 갑자기요?”

“저 궁수입니다.”

“네? 그건 또 무슨…. 아아.”

궁수의 손에 들린 활을 보고 나서야 무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방금까지 궁수가 보여주던 전투는 어딜 보더라도 원거리 딜러로 생각되진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버텨주시면 됩니다. 제가 빼라고 하면 전속력으로 도망가세요.”

“네? 도망이라뇨?”

“폭사하기는 싫잖아요?”

“흐음…. 뭔진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나법사 너는 따라와.”

“알았다!”

궁수는 혹여나 마력이 부족할까 법사를 챙겨 후방으로 빠졌다.

일본 측 헌터들도 궁수의 말에 따라 후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단순히 저격을 위한 것도 있었지만 새로운 형태의 천궁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높은 위치를 고수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궁수가 선택한 곳은 다름 아닌 드높게 솟은 빌딩이었다.

흑기사의 피해를 입어 성한 창문이 없었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꽉 잡아.”

“알았다!”

법사를 들고 궁수가 발에 마력을 담았다.

쿵쿵쿵쿵!

“오오오오! 빠르다!”

“우오오오오오!”

궁수는 건물의 벽을 밟으며 옥상을 향해 뛰어올라갔다.

[이분은 계단이란게 뭔지 모르는 듯?]

[계단이 뭔데 ㅋㅋㅋㅋㅋㅋ]

[아 유산소 하면 근손실 온다고 ㅋㅋ]

[뭔 또 개소리야 그건 ㅋㅋㅋㅋ]

***

나시키.

그는 일본 전역에서 최고라고 평가받는 닌자 헌터였다.

다른 헌터는 수행하지도 못할 극비 임무는 물론이요, 게이트 처리 수준은 말할 것도 없는 일급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도쿄의 A급 게이트 셋을 처리하고 왔으나 그의 표정에는 일말의 피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가문을 위해.

나아가 자신의 국가를 위해서라도 그는 모든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마쳐야만 했다.

명을 받았으니 성공시킨다. 그것이 그의 사고방식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처음으로 불가능이라는 벽에 부딪히고 있었다.

‘불가능이라….’

S급 헌터에 오르고 그가 처리해온 게이트는 모두 자신의 수준에 한참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얼마 만에 느껴보는 공포인지 오죽하면 온몸에 전율이 올 정도였다.

“재밌겠군.”

그의 입가에 광기어린 미소가 자리 잡았다.

스르륵.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그림자 술이 발현하며 서서히 자신의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었다.

상대는 어둠을 사용하는 적.

일반적인 그림자를 이용한 공격은 효과가 미미할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적에게 혼란을 주며 물리적인 대미지를 줄 필요가 있었다.

“파마계술!”

무녀의 외침과 동시에 듀라한 주변에 5명의 식신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주변으로 푸른 오라가 생기며 흑기사를 가두었다.

조건에 따라서 S급 헌터마저도 가둬버린다는 기술인 그녀의 결계술이었다.

그녀는 여기서 마다하지 않고 계속해서 마법을 사용했다.

마력을 양분으로 삼은 식신들이 등장하여 서서히 흑기사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흐음, 신기한 기술을 사용하는구나.”

듀라한은 간지럽지도 않은 듯 무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히려 흥미가 있는 듯 무녀의 마법을 관찰하기까지 했다.

“애들 장난이군.”

서걱!

“이런 미친!?”

듀라한은 별거 아니라는 듯 너무나도 쉽게 그녀의 결계를 베어버렸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장난은 여기서 끝인가?”

압도적인 강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허세 아닌 허세였다.

“무슨 저런 괴물이?!”

하다못해 5분 정도는 버텨줄줄 알았던 결계는 마치 케이크를 자르듯 너무나도 쉽게 파괴되고 말았다.

온갖 난관을 넘어온 그녀였으나, 아니 온갖 난관을 넘어온 그녀였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낄 때가 아니다.’

결국, 그녀는 시작부터 크게 마력을 소모하며 아껴두었던 비장의 수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스사노오!”

“호오?”

그녀의 등 뒤로 벰을 물리친 신의 모습이 드러났다.

식신이라기엔 너무나도 강대한 기운을 내뿜는 그는 칼을 한 자루 꺼내들었다.

“크흐으윽….”

소모가 심한 마법인 듯 이를 악문 그녀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삐질 흘러내렸다.

“아아, 이건.”

여태껏 감고 있던 듀라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사람의 눈은 어디가고 푸른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즐겁군.”

끓어오르는 피를 주체하지 못했는지 듀라한이 기습적으로 땅을 박차고 그녀에게 돌진했다.

“흐읍! 어딜! 어 어어!?”

“크하하하! 한낮 인간 주제에 날 막아서다니! 즐겁구나! 즐거워!”

셈이 방패를 치켜들고 놈을 막고자 했으나 막기는커녕 질질질 그로부터 밀려나고 말았다.

땅이 발에 박히며 어떻게든 버텨보고자 하였으나 어림도 없다는 듯 셈은 가볍게 밀려나고 말았다.

그나마 셈이 막아서 이 정도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그녀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아아압!”

쿠우웅!

스사노오의 칼날과 듀라한의 마검이 격돌했다.

무형의 ‘기’로 만들어진 칼날은 마검의 어둠을 견디며 치열한 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흐으아아아!”

방패를 밀어 약간의 틈을 만든 셈이 소리쳤다.

“지금이네!”

정면에서는 셈, 뒤에서는 무녀, 듀라한의 행동을 제약한 지금이 유일하게 공격을 할 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흑멸참!”

“흐아아압!”

왼쪽에서는 그림자를 빗어 기다란 칼날을 만들어낸 나시키가 오른쪽에서는 극한까지 속도를 높인 이은우가 칼날을 세우고 달려들었다.

푸우욱!

촤아아악!

그 둘의 공격은 제법 먹혀들어갔다. 직접적인 피해를 주진 못했으나 그의 갑주에 깊은 상처를 만들 수 있었다.

“크흐흐흐 그래, 즐겁구나, 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고통인지!”

“이런! 피해요!”

듀라한의 눈이 번뜩이며 그는 자신의 머리통을 하늘 위로 집어던졌다.

그와 동시에 듀라한의 전신에서 어둠이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 전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어마어마한 마기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듀라한의 어둠이 검에 담겼다. 놈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헌터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거대한 검은 초승달이 헌터들을 집어삼키기 위해 달려들었다.

“즐거움의 보답이다!”

“이런 젠장!”

쿠콰콰콰쾅!

“크흐으윽…!”

무녀의 스사노오가 날아드는 검은 검기를 몸으로 막아내었다.

“으드드득!”

이를 악문 그녀의 입에서는 붉은 피가 한줄기 흘러내렸다.

공격을 막아낸 스사노오는 더 이상 원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흩어지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전장에 정적이 일었다. 듀라한이 보여준 압도적인 수준의 폭력은 다른 헌터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 충분했다.

광기에 휩싸인 듀라한은 떨어지는 자신의 머리를 받기 위해 멈춰 머리가 떨어지길 기다렸다.

얼마나 높게 던졌는지 머리는 아직도 듀라한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서서히 떨어지는 그의 머리는

쐐애애애액!

콰드드득!

어디선가 날아온 거대한 화살에 머리통이 터지고 말았다.

길이만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화살, 사실 화살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창에 가까운 형태였지만 말이다.

“적중!”

“그렇지!”

옥상에 발리스타를 설치한 궁수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전 공성전에서 사용했다는 무기 발리스타.

그것이 천궁의 새로운 형태였다.

[1궁수 10저격수 안 부럽다.]

[이 거리에서 저걸 맞춘다고ㅋㅋㅋㅋㅋ?]

[대가리 박☆살]

[10점… 10점이요.]

ㄴ 정보 - 100점 만점이다.

ㄴ 어캐 알았누;

“바로 다음 화살 장전해!”

화살 한 발 한발 드는 마력이 상당했으나 그 위력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어둠으로 감싸진 머리통을 터트려버릴 정도니 말이다.

듀라한의 본체라면 몰라도 인간의 나약한 머리통은 궁수의 발리스타를 버티지 못했다.

“!?”

머리가 사라진 듀라한은 당황하여 뒤로 물러섰다.

그는 몇 번이고 머리통을 찾았으나 이미 터진 머리가 다시 돌아올 리 만무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대로 문제인 것이 위협을 느낀 듀라한이 뒤로 물러서 어둠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눈은 보이지 않아도 헌터들이 지닌 마력으로 위치를 파악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미친 듯이 칠흑의 검기를 쏘아내기 시작했다.

“이런! 내 뒤로 모이게!”

물론 정확한 위치가 아닌 마력으로 어림잡았기 때문에 정확도는 썩 높지 않았다.

위력도 처음 사용했던 검기보다는 현저히 낮았으나 그렇다고 헌터들이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쿠콰콰쾅! 콰아앙!

헌터들의 마력을 이용하여 몇 겹이고 방패에 마력을 둘러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헌터들은 잘게 썰린 고깃덩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것도 잠시 나시키가 수인을 맺더니 인술을 사용하였다.

그림자 분신술.

완전한 분신술은 아니었으나 마력으로만 위치를 파악하는 듀라한에게 있어서는 꽤나 혼란을 줄 수 있는 기술이었다.

나시키는 그림자에 숨어 요리조리 최대한 넓게 배치하였다.

그와 동시에 헌터들도 서서히 위치를 옮기기 시작하니 듀라한에게 있어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놈들의 수가 늘었다…? 설마 지원군인가?’

검을 쥔 그의 손이 분노로 파르르 떨렸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세를 쥐고 있는 것은 자신이었는데, 고작 저 빌어먹을 화살 한발에 머리통이 터져버렸다.

‘이래서 인간의 육체는!’

이제 와서 탓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렇게 된 이상, 모두 한 번에 쓸어주마!’

검기를 멈춘 그의 검에 다시 어둠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검을 역수로 쥔 그는 그대로 검을 바닥에 처박았다.

쿠콰콰콰콰쾅!

그의 주변으로부터 어둠이 퍼져나가며 서서히 그림자들이 하나 둘 지워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검기처럼 빠른 속도는 아니었기에 헌터들은 무사히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곧 듀라한의 노림수였다.

주변의 그림자 분신들이 모두 사라지며 공격을 견디기 위해 헌터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그런데 저 멀리 있는 두 개의 마력만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저놈들이군.’

날아온 화살의 형태를 보아하니 적어도 거대한 병기를 사용했음이 틀림없다.

그런 육중한 장비라면 도망치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계산한 듀라한이 땅을 박차고 궁수와 법사가 있는 곳을 향해 도약했다.

콰아아앙!

자기 딴에는 허점을 노린 공격이라고 생각했으나, 입가에 미소가 걸린 것은 다름 아닌 궁수였다.

“어서와.”

휘이이이이잉!

‘이, 이런!?’

궁수의 속성화살에 법사의 태풍, 거기에 발리스타의 무시무시한 위력이 더해진 화살은 듀라한을 밀어내기 충분했다.

듀라한이 건물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아무리 이 건물이 고층 빌딩이라 하더라도 놈은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보내줄 궁수가 아니었다.

“전부 도망쳐어어어엇!”

궁수의 외침에 헌터들이 순식간에 궁수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나법사!”

“알았다!”

최후의 보루로 준비해둔 화살을 발리스타에 장전했다.

법사와 궁수의 마법이 담긴 최후의 한발.

장비에 마법을 인첸트 하는 행위는 상위 마법사들도 진땀을 빼야하는 일이었으나 법사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일이었다.

“전부 다 담았어?”

“담았다!”

“그럼 가자!”

궁수의 팔이 부풀어 오르며 거대한 발리스타가 들렸다.

궁수는 그대로 발리스타를 들더니,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쐐애애애액!

“크흐으으윽!”

미친 듯이 바람이 불며 궁수의 시야를 자꾸만 가렸다. 땅에 닿기 전 어떻게든 저 놈을 박살내야만 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억지로 눈을 뜨고 정신을 집중하자 정신이 아늑해지며 소음이 잦아들었다.

무의식 속 궁수의 집중력이 한계까지 높아졌다.

“지금이다!”

쐐애애애액!

푸우우욱!

‘크헤에에엑!?’

궁수의 뉴클리어와 법사의 황금빛 뇌속성 마법이 담긴 화살이 듀라한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화살이 박힌 듀라한은 땅에 닿음과 동시에.

콰아아아아앙!

법사의 번개가 함께 황금빛 폭발을 일으키며 폭사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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