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59화 (59/172)

◈ 59화. 휴가라며.

헌터들을 실은 비행기들은 한국을 떠 바다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흠, 평일이라 그런가? 비행기에 사람이 너무 없군.”

“아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구름! 솜사탕!”

“안돼, 나가면 죽어.”

“솜사탕!”

재빠른 궁수의 휴대폰 통제에 다들 아직까지 일본에 무슨 일이 터졌는지는 모르는 듯했다.

평일이라서 비행기에 사람이 없다니, 무슨 오지행 비행기도 아니고 그럴 리가 없지.

“이번에는 제대로 쉴 수 있겠죠! 기대가 되는군요!”

“아하하하, 그러게요.”

“궁수님…?”

“아하하, 그러게요.”

“크흠…. 믿습니다?”

“아하하!”

창밖을 바라보던 궁수가 고개를 돌려 이은우를 바라보았다.

싱긋.

“그”

“러”

“게”

“요”

‘아 씨발.’

이은우는 뭔가 잘못됨을 깨달았으나 이미 한참 날아가고 있는 비행기에서 도망갈 방도는 없었다.

“궁수님! 사실대로 말하세요! 도대체 뭡니까!”

“아하하하하하! 즐겁다! 행복하다! 다즐겁다!”

“안돼애애애애애애!”

“돼!”

비행기는 순항을 걸쳐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역시나 직원들 몇 명이 있을 뿐 거의 텅 비어있었다.

“이거 하나씩 받으세요.”

“뭡니까.”

“빨리 받기나 해요.”

궁수가 전해준 것은 다름 아닌 블루투스 이어폰 한 쪽이었다.

“마석 통역기입니다. 전 일본어 할 줄 모르니까 끼고 계세요.”

파티원들 모두 찝찝한 표정으로 궁수의 통역기를 받아들었다.

그것도 잠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표정을 와락 구긴 이은우가 궁수에게 물었다.

“궁수님.”

“왜요?”

“저거요.”

이은우가 가리킨 곳에는 벽걸이 TV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곳에서는 현재 이곳 오사카에서 벌어지는 일이 생생하게 중계되고 있었다.

“키야, 쩌네요, 그쵸?”

“….”

궁수의 가벼운 어투에 이은우는 절망한 눈빛으로 이를 바라보았다.

다른 헌터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TV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 더 강해졌군.

영상 속에서는 검은 갑주를 둘러싼 흑기사가 헌터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일본 자위대의 탱크나 미사일 같은 화기조차도 그의 손에 간단히 찢겨나가고 말았다.

“막 민간인들도 학살하고 그러네요? 더 피해가 커지기 전에 정의의 편인 우리가 출동해야겠죠?”

“어디보자 한국행 비행기가….”

“자 그럼 갑시다!”

“아아악! 놔! 이거 놓으라고!”

“소방차는 멈추지 않아, BOY↗”

“끄아아아악!”

공항 밖을 나가니 상황은 더 처참했다.

다행히도 일반 시민들은 대피를 한 듯 보였으나 거리의 모습은 거의 폐허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오….”

“심각하군.”

“그러게요.”

“심각하니 우리 한국으로 돌아갈까요?”

마침 그때 걸맞게 공항에서 안내음이 울려왔다.

[아, 아 안내말씀 드립니다.]

“아, 제발요 설마.”

[본 공항은 이번 한국 - 일본 편 비행기를 마지막으로 잠정적으로 운행을 중단할 예정입니다.]

그 방송이 끝남과 동시에 궁수는 은우의 어깨에 팔을 척 올려두었다.

“도망 칠 길은 없어 BOY↗”

“씨브아아아아아알!”

드넓은 공항에 은우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

‘즐거워!’

현재 로쿠, 아니 쿠로는 시내 한복판에서 적들의 공격을 모두 받아내고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진즉에 가루가 될 수준의 포화가 이어졌으나 쿠로는 광소를 지으며 모든 공격을 받아내었다.

검이 아닌 몸으로 말이다.

“부족해! 부족하다고!”

모든 포화를 받아낸 쿠로는 칠흑의 검을 치켜들었다. 이내 그의 검에 어둠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전신에 검은 갑주를 입은 그는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흑기사 그 자체였다.

“이 정도는 돼야지!”

콰아아앙!

검에 물들어있던 어둠이 적들을 향해 쏘아져나갔다. 새까만 초승달이 수많은 헌터들을 집어삼켰다.

촤아아아악!

“끄아아아악!”

“쉴드가?!”

“피해! 피하라고!”

“제길! 뭐 저런 괴물이 다 있어?!”

고작 검을 한번 휘둘렀을 뿐인데 전력의 절반이 쓸려나갔다.

부상이나 빈사도 아닌 완전히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어 즉사하고 말았다.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수십의 헌터가 죽어나갔다.

과연 저것이 인간의 범주에 들어가는지 의문이 들 수준이었다.

“생포가 아니다! 사살이야! 있는 대로 쏟아 부어!”

“마력이 모자라요! 이대로는 화력에서 밀립니다!”

“아니 무슨 한명한테 밀려!?”

“저건 이미 사람이 아니라고요!”

이미 전장은 아수라장이 펼쳐져 있었다.

헌터들의 공격은 A급 게이트 보스 정도는 간단히 지워버릴 정도로 압도적이었으나 아쉽게도 상대가 흑기사였다.

- 흠, 기대했더니만 영 실속이 없군.

“크흐흐흐! 누구도 날 이길 수 없다! 칠흑의 기사 앞에 모두 무릎 꿇을 것이다!”

마기에 취한 쿠로는 성격마저 뒤틀린 상태였다.

물론 그에 걸맞은 힘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헌터들의 입장에선 정말 곤혹스럽기 그지없었다.

공항에서 이 곳까지 달려온 궁수와 일행들이 일본 헌터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다들 무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일본 헌터들도 지원이라 생각하며 딱히 막아서진 않았다.

“아아! 이 피의 향기! 혈의 향연! 참을 수 없어!”

“혹시 마검을 들면 다 저러냐?”

- 마기에 취한 것이겠지, 마검을 선택할 녀석이니 원래 성격도 보통이 아닐 거다.

“좀 역겹네.”

“크하하! 어둠의 인도자인 내가! 직접 너희들을 정화해주지!”

“어우 쒯.”

- 크흠….

이미 주변에는 그에게 당한 헌터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보통 이 정도면 겁먹을 만도 하지만 시체는 이미 숱하게 봐왔기 때문에 썩 두려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

“새까맣다!”

“그러게, 확실히 단단해 보이긴 하네.”

화르륵!

마를 먹어치우는 불꽃이 궁수의 화살에 깃들었다. 포인트 어택을 사용하여 약점을 살펴보았다.

“에반데.”

- 약점이 없군.

서큐버스 퀸에게도 약점은 존재했는데 지금 녀석에게는 약점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저거 완전히 침식된 거 아니지?”

- 아니다. 약점도 갑주에 가려진 것일 뿐, 어둠을 거두면 포인트가 드러날 거다.

“그렇다 이거지….”

시위를 내린 궁수는 법사에게 먼저 공격을 양보했다.

그렇지 않아도 비행기에서 근질근질했던 법사는 이미 마력 영창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화아아아악!

“호오?”

흑기사의 발아래에 초록빛 마법진이 생겨났다. 쿠로는 어디 한번 해보라는 듯 검을 쥐고 법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흥! 너! 후회한다!”

쿠콰콰콰쾅!

법사의 마력으로 빚어진 토네이도가 흑기사를 집어삼켰다.

일반적인 바람이 아닌 푸른 칼바람은 다가가기만 해도 사지가 찢길 정도로 강렬했다.

“화력 죽이는데?”

“한 번 더!”

화르르륵!

이번에는 법사의 전매특허인 불꽃 계열 마법이 일어났다.

별다른 영창 없이 법사는 토네이도를 향해 불꽃을 내뿜었다.

바람은 불꽃을 빨아들이며 거대한 불기둥이 만들어졌다.

“키야, 죽여주네.”

“말했다! 후회!”

적을 찢어발기는 바람에 진홍의 화염이 섞이니 말 그대로 결전기 같은 느낌이었다.

“도대체 저게 뭐야…”

“어느 소속 헌터길래 저런 위력이 나오지?”

“가능하다! 이길 수 있어!”

일본 측 헌터 사이에서도 서서히 승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서서히 불길이 잦아들고 흑기사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법사도 살짝 지칠 정도로 강렬한 마법은.

“흐음, 미적지근하군, 궁극의 마법사여.”

“뭐여 저거 왜 안 죽어”

그러나 흑기사는 상처는커녕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한 듯 굳건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흠, 어둠이 제법 깎이긴 했다만, 아직은 모자라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정도의 마법을 직격으로 맞았는데 타격이 없다니?

궁수의 눈빛이 변하며 주변 동료들을 향해 소리쳤다.

“최대한 수비적으로 갑니다! 법사는 큰 거 한방 더 준비해!”

“알았다!”

“새로 산 방패를 쓸 때로군!”

쿵!

셈의 인벤토리에서 거대한 대방패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파티원을 완전히 가리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한 방패에는 용머리의 문양이 새겨져있었다.

“와, 뭐에요.”

“큰맘 먹고 하나 질렀지!”

실제로 방패에서는 붉은 열기가 뿜어져 나오며 심상치 않은 기세를 내고 있었다.

녹화를 위해 방송을 킨 궁수는 재차 포인트 어택을 사용하였다.

약점이 미세하게 보이긴 하였으나 인간의 미간이나 심장 등 사실상 노리는 것이 불가능한 부위였다.

- 놈에게 약점은 의미 없다. 그저 어둠을 완전히 깎아 내거나 혹은 마검을 부수거나 둘 중 하나다.

“저걸 깎으란 말이지….”

“가소롭구나 필멸자들이여! 진정한 어둠의 힘이 뭔지 보여주마!”

쿠콰콰콰콰!

[왘ㅋㅋㅋㅋㅋㅋㅋㅋ]

[뭐여? 지금 일본 와있음?]

[사람 다 죽어나가고 있던데 이시국에?]

ㄴ 이 시국이니까 왔지.

흑기사에게서 뿜어져 나온 어둠이 솟구치며 하늘을 뚫었다.

먹구름이 낀 하늘에 뻥 구멍이 뚫리며 강렬한 포스를 내뿜었다.

‘저걸 어떻게 이기지.’

일반적이면 후퇴하여 놈을 분석한 후에 전투를 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다크 오브 제너레이터!”

“아오 씨발 진짜 기술 이름 한번 좆같네.”

당장에라도 침식이 심해지기 전에 놈을 제압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선 궁수가 먼저 저 중2병에 손가락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뭐 복잡하게 생각할거 있나.”

- 그래, 늘 하던대로만 하면 된다.

“그래, 줘 패면 뭐라도 되겠지.”

“프로텍트 아머!”

“블래싱!”

셈과 힐이 버프를 걸어줌과 동시에 전투는 시작되었다.

어둠을 방출한 흑기사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셈에게 달려들었다.

콰앙!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마검으로 셈의 방패를 내리찍었다.

“꼬맹아!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크하하하! 그래! 이 정도는 돼야 부술 맛이 나지!”

“흐읍!”

흑기사의 사각을 노린 이은우가 검을 치켜세우고 놈에게 돌진했다.

그의 특징인 초고속 검술이 빛을 발할 시간이었다.

채앵!

“어어!?”

“실패하면 바로 빼요!”

“알겠습니다!”

완벽하게 사각을 노린 공격이었으나 은우의 검은 놈의 어둠에 가로막혀 작은 생채기 하나 조차도 만들지 못했다.

“크하하하! 나를 더 즐겁게 해다오! 필멸자 들이여!”

쾅쾅쾅콰아앙!

흑기사는 계속해서 셈의 방패를 후려쳤다.

검으로 벤다기보다는 그 위에 덧씌운 어둠으로 셈을 위협하고 있었다.

“흐음….”

궁수가 장궁용 화살을 한 개 집었다.

놈의 방어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마력을 듬뿍 담은 마법도 제대로 먹히지 않은데 일반적인 화살이 먹힐 리 없었다.

궁수의 화살통에 빙결 화살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끝부분이 마치 드릴처럼 뾰족하게 얼린 얼음 화살이었다.

천궁의 말에 따르면 한번 침식당한 인간은 더 이상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니 이 이상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제압용 화살을 쓸 여유 따윈 없었다.

“일단 쏘기나 해 볼까.”

“크하하하! 즐겁구나! 즐거워! 지상에 내 어둠을 받아낼 수 있는 자가 아직 남아있다니!”

“아오, 씨발 진짜.”

[혼란하다 혼란해!]

[아아, 이것이 바로 진정한 『어둠』이라는 것이다.]

[다크엠페러제네럴충무공마제스티블라디미르매게슬레시비라제이스타리기모찌]

[ㅋㅋㅋㅋㅋ진짜 지랄났네.]

날카롭게 깎인 얼음 위로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뾰족한 얼음의 위로 돌아가는 바람은 그 자체로 드릴처럼 보였다.

“어디 한번 볼까.”

쐐애애액!

“호오!”

콰드드드득!

흑기사의 손을 궁수의 화살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순간 효과를 보이는 듯했으나 화살은 얼마 가지 못해 툭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흠, 역시나.”

공격이 먹혀 들어가진 않았으나 그 나름대로 효과를 확인했다.

궁수는 은우에게 눈치를 주며 말했다.

“제가 엄호합니다. 방어는 신경 쓰지 말고 공격에만 치중하세요.”

“저 죽으라고요?”

“제 실력 못 믿어요?”

“그건 아니지만….”

“알면 빨리 가요.”

저런 괴물을 상대로 방어를 신경 쓰지 마라니, 그냥 죽으라는 소리와 다름없었다.

애초에 방어가 무색할 정도로 공격이 위협적이기에 방어보다는 회피가 맞는 판단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은우는 궁수의 실력을 믿고 흑기사를 향해 뛰어나갔다.

얼마나 마력을 실었는지 그가 딛고 있던 아스팔트에 금이 갈 정도였다.

“흐으읍!”

왼발로 땅을 디딘 은우는 그대로 한 바퀴 돌아 흑기사의 머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당연히 은우의 검은 흑기사에 검에 막혀 제대로 된 검로를 뻗지 못했다.

검을 밀어낸 흑기사가 그대로 은우를 향해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쐐애애애액!

펑!

뒤에서 날아온 화살이 흑기사의 손목을 후려쳐 은우를 보호해주었다.

“뭐?!”

그 찰나의 순간을 노리다니.

순간 동료인 은우마저도 멍하니 궁수를 바라 볼 뻔 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계속해서 흑기사를 몰아붙였다.

“조금 어렵긴 한데, 그래도 할만 하네.”

지금 궁수는 바람의 속성을 입힌 익스플로전 애로우에 아주 약간의 마력만을 실어 그를 견제하고 있었다.

폭발의 위력은 미약했으나 바람과 함께 효과를 받은 화살은 충분히 흑기사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었다.

일순간이나마 흑기사, 쿠로의 얼굴에 잠깐 인상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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