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57화 (57/172)

◈ 57화. 인벤토리형 헌터.

“휴가도 다녀왔으면서 왜 그렇게 죽상이야.”

“휴가? 휴가아아? 씨잇팔 도깨비에 구미호에 최소 A급 게이트를 처리하고 왔는데 휴가아?”

“아, 미안….”

씨익씨익 거친 숨을 몰아쉬며 궁수가 볼을 부풀리고 허가연을 노려보았다.

휴가…. 아니, 출장 이후 1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다행히 한국은 아직까지 별 다른 일 없이 평화로운 상태였다.

“으휴, 정말 다음에는 혼자 가던지 해야지.”

“혼자서 다 죽이게요?”

“마물 없는 곳으로 갈 겁니다.”

“요즘 세상에 마물 없는 곳이 어딨어요.”

“에잉 쯧.”

멤버들과 잡담을 나누던 궁수는 한숨을 푹 쉬며 바닥에 앉아 천궁을 손보기 시작했다.

최근 통 정비를 못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제대로 손봐줄 생각이었다.

물론 스스로 생각하는 에고웨폰인 만큼 크게 손볼 곳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저 먼지를 닦고 시위를 조율하는 간단한 일 뿐이었다.

- 오오 그래, 거기다. 흐으으 그렇지 흐어어어 극락이구나 극락이야.

“이상한 소리 내지마.”

- 시원한 걸 어쩌란 말이냐, 자, 잠깐! 흐으윽! 거긴 민감한 곳이다!

“씨발 이 더러운 무기 새끼가!?”

- 앗흥!

천궁과 노가리를 까기도 잠시 궁수의 스마트폰이 힘차게 비명을 질렀다.

발신지는 이은우였다.

“여보세요?”

“아, 헌터님, 전에 말씀하셨던 거 말인데요.”

“네, 뭐라도 알아내셨나요?”

이전 구미호가 말했던 검은 복면의 사내들.

궁수로서는 딱히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혹시나 정부 아래에서 일하는 이은우는 알까 물어보았다.

조금의 기대감을 가지고 궁수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으나 돌아온 것은 영양가 없는 답변이었다.

“고작 검은 복면 가지고는 별다른 신원을 찾을 수 없습니다.”

“흠….”

“애초에 사람이 게이트를 직접 열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졌는데 세간에 공개되어 있는 것이 더 이상하죠.”

“그렇긴 하죠.”

“일단 새로운 정보를 얻으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혹여나 다른 파티원들에게도 물어봤으나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궁수는 한숨을 푹 쉬며 이은우에게 뒷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궁수는 마저 천궁을 손보기 시작했다.

두꺼운 아저씨가 앗흥 앗흥 거리니 궁수 입장에서는 혐오스럽기 그지없었다.

“야.”

- 흐으, 뭔가 계약자여.

“너 말고도 다른 에고웨폰도 있을 거 아니야.”

- 그렇다만?

“걔네들도 계약해서 너처럼 주인을 고르냐?”

- 흠, 보통은 그렇다만, 왜 궁금한 거라도 있느냐?

궁수는 천궁에 사용한 물을 버리며 활을 어깨에 걸었다.

“그냥, 혹시나 성검이나 마검이란 것도 있나 해서.”

- 있다만.

“뭐? 진짜로?”

- 음, 성검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만 마검은 아마 이 근처에 떨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근처? 근처 어디?”

- 열도의 섬에 떨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일본에?”

- 내 마지막 기억으로는 그렇다.

잠시 궁수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까짓 거 일본에 가서 마검만 스윽 훔쳐와?’

궁수의 고뇌를 알아차린 듯 천궁이 한숨을 푹 수며 이를 말렸다.

- 아서라, 마검이 괜히 마검인 줄 아느냐.

“뭐, 침식이라도 당해?”

- 침식뿐이면 다행이지, 종막에는 영혼이 마검에 먹혀 마검을 휘두르는 살인귀가 되고 말지.

“오우….”

- 주인을 잡아먹는 무기, 그것이 마검이다. 너는 마검에 ㅁ자도 쳐다보지 말도록.

“흠, 영혼을 먹는다니 섬뜩하네.”

- 뭐, 애초에 정상적인 사람 앞에는 모습도 드러내지 않지만 말이다.

“왜? 정상적인 사람이 육체든 영혼이든 더 좋지 않나?”

휴대폰을 켜 게이트를 뒤져보던 궁수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천궁에게 말했다.

천궁은 마검을 썩 좋게 생각하진 않는 듯 혀를 차며 대답했다.

- 그런 건 상관없다. 놈들은 주인의 고통을 즐기니 말이다.

“무기 주제에 건방지네.”

- 뭐 애초에 생긴 거부터 새까만 게 영 불길하게 생겼으니, 정상적인 놈이라면 근처에 다가가지도 않겠지만!

“하긴 그런 정신 나간 무기를 누가 쓰겠어.”

- 그러게 말이다! 정신 나간 무기에 정신 나간 주인이면 쓰겠군! 푸하하하!

***

“아 씨발 존나 쓸모없네.”

뻐억!

“크허어억!”

일본의 오사카 시내 한복판.

그곳에서 D급 헌터 셋이 F급 헌터인 로쿠를 욕하고 있었다.

재능이 없어 고작 짐꾼이 전부였던 로쿠는 헌터의 주먹 한방에 나가 떨어졌다.

“그, 그렇지만 보수를 준다고 했잖아요!”

“보수? 고작 짐꾼이나 하는 놈이 뭘 잘했다고 보수를 달래?”

그들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로쿠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처음부터 로쿠의 보수는 생각지도 않은 듯 로쿠의 계좌번호 따위 물어보지도 않았다.

‘씨발련들, 내가 힘만 있었으면….’

주변의 협회 직원이나 경찰들은 괜히 불똥이 튈까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하, 내가 오늘 선심 쓴다!”

짤랑.

뻑!

“크흑….”

사내는 100엔짜리 동전을 로쿠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자그마한 조약돌도 흉기로 만들 수 있는 그들이었기에 로쿠의 머리통에 전해지는 감각은 제법 고통스러웠다.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자신을 괴롭히는 그들에 대한 증오심이 타올랐으나 로쿠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약자의 설움이었다.

그럼에도 로쿠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묵묵히 동전을 주웠다.

이에 신난 헌터들은 더욱 강하게 동전을 던지며 로쿠를 농락했다.

‘병원비를 벌려면 저거라도….’

몸져누운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병원비를 벌어야했다. 오늘은 똥 밟았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로쿠는 동전을 주웠다.

“병신, 그걸 또 다 줍고 있네.”

“잘 써먹었다, 호구 새끼야~”

“다음에 또 짐꾼 필요하면 연락할게~”

약 2000엔 정도를 던진 그들은 희희낙락거리며 로쿠로부터 멀어져갔다.

“씨발 던지려면 10000엔 정도는 던져주지. 퉤!”

뱉은 침에는 붉은 혈액이 묻어나왔다.

입술이 터져 너무나도 쓰라렸으나 약을 사 기에는 로쿠의 지갑 사정이 썩 좋지 않았다.

보통 짐꾼 한 번에 이만 엔에서 삼만엔 정도를 받지만 지금은 저 미친놈들한테 이천엔이라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할 상황이었다.

남들은 일반적으로 쓰는 약이 로쿠에게는 크나큰 사치로 느껴졌다.

“침 바르면 나아.”

이럴 시간이 없었다. 어서 다음 일을 뛰어 조금이라도 더 병원비를 마련해야만 했다.

항상 모든 헌터들이 지랄 맞은 것은 아니었으나 만일 오늘처럼 잘못 걸리기라도 하는 날엔 꼼짝없이 그들의 지랄을 모두 받아내야만 했다.

다른 헌터라면 힘을 키워 슬슬 게이트 공략에 나갈 시기지만 로쿠는 몇 년째 짐꾼만을 계속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이미 로쿠의 평판은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슈퍼 무능 헌터.’

‘짐꾼 헌터.’

‘세계 최초 인벤토리형 헌터.’

각종 놀림거리가 되어 헌터들의 입에 오르내릴 때는 ‘에이 내가 그래도 로쿠보단 낫지.’라는 말이 나올 때뿐이었다.

“씨발…. 법보단 힘이다 이거냐.”

그마저도 익숙해진 로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가끔은 친절하게 돈을 나눠주는 헌터도 있으니 이번에는 좋은 헌터가 걸리길 기대하며 로쿠는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

“로쿠 왔느냐?”

“네, 할머니 몸은 좀 어떠세요?”

낡은 문이 비명소리를 내며 거칠게 열렸다. 로쿠는 마스크를 껴 상처를 가리고 병상에 누워있는 할머니 옆에 앉았다.

병원의 시설은 너무나도 열악했다.

이마저도 낡은 병원이기에 입원이 가능했지 세련된 대학 병원이었다면 입원은커녕 진찰도 제대로 받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 손주 얼굴 보니 좀 낫구나.”

“그럼 하루 종일 있어야겠네요?”

“그래주랴? 홀홀홀.”

“그러고 싶네요….”

로쿠의 얼굴에 옅은 수심이 깔렸다. 다름 아닌 밖에서 의사와 나눴던 말 때문이었다.

“암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애초에 췌장암 자체가 워낙에 치료가 어려운 병이다 보니….”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요? 제발! 돈이라면 제가 벌어올게요! 제발요!”

의사는 고개를 돌려 로쿠의 시선을 피했다. 그는 눈을 감고 조용히 말했다.

“남아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시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워낙에 노쇠한 몸이라 수술을 버틸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그, 그런….”

털썩!

의사의 시한부 선언에 다리에 힘이 빠진 로쿠가 무릎을 꿇었다.

“정말…. 정말 방법이 없나요! 제발요! 뭐라도 할게요! 제발…. 제발!”

“….”

헌터가 되어 이제야 좀 할머니를 부양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얻었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나도 싸늘했다. 정부는 재능 없는 헌터의 말을 일일이 다 들어줄 정도로 친절하지 않았다.

이마저도 지원금을 몇 번 타먹었기에 버틸 수 있었지 그마저도 없었다면 할머니는 수술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로쿠는 자꾸만 말라가는 입술을 적시며 할머니의 주름진 손을 꼭 잡았다.

“할머니….”

“오냐.”

“할머니이….”

“다 큰놈이 징그럽게 뚝 그쳐 뚝!”

참아보려 했는데 자꾸만 눈치 없는 눈물샘이 물을 퍼올렸다.

코끝이 찡하게 울리며 로쿠는 마치 말라 비튼 장작처럼 변해버린 할머니의 손을 쥐었다.

“떽! 이 할미 안 죽는다. 우리 손주 참한 처자 데려오기 전까지는 안 죽어.”

“크흐흥, 할머니…. 할머니이! 죽으면 안돼요!”

한계까지 참아왔던 눈물이 펑 터졌다.

‘내가 더 유능했더라면 할머니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힘이 있었다면, 할머니를 이렇게 무색하게 보내진 않을 텐데.’

“허허…. 거참.”

할머니는 말없이 로쿠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로쿠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녀도 알고는 있었다. 더 이상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사자님…. 내 손주 결혼하는 것 까지만 보고 가면 안 될까?”

마치 언젠가 찾아올 저승사자에게 말하듯 할머니는 서글픈 표정으로 작게 되뇌었다.

***

“로쿠, 일 나가니?”

“네, 오늘도 열심히 해야죠.”

“그려, 몸 조심히 잘 다녀와라잉.”

“할머니도 편히 쉬고 계세요.”

그 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는 날이었다. 날이 밝았고 할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일을 나섰다.

병원 측에서는 거의 포기한 듯 했으나 로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혹시나, 일말의 작은 기적이 일어나 주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아니, 굳게 믿어야만 했다.

그의 정신적 지주이자 마지막 가족인 할머니조차 사라지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짐꾼합니다! 인벤토리 넉넉합니다! 요리, 해체 가능합니다.]

오늘도 헌터넷에 홍보 문구를 올린 로쿠는 잠시 벤치에 앉아 반응이 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쪽지가 하나 도착했다. 다름 아닌 함께 게이트를 가자는 쪽지였다.

‘나이스!’

아침부터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로쿠는 기운차게 발을 옮겼다.

게이트 등급은 D급 게이트.

짐꾼을 부른 헌터는 꽤나 강한 헌터인 듯 공략은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던전의 몬스터들은 순식간에 헌터의 검에 갈려나갔다. 그리하여 클로징이 끝나고 마지막 정산의 시간.

“자 여기요, 워낙에 잘 해주셔서 조금 더 담았어요.”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뭘요, 돕고 사는 거죠.”

“감사합니다. 헌터님!”

첫 계시가 좋다. 시작부터 오만엔 가까이 되는 돈을 번 로쿠는 콧노래를 부르며 바로 다음 일을 찾았다.

그리고 그 다음 일도.

“덕분에 훨씬 빠르게 진행했네요. 여기 보수입니다.”

그 다음도.

“솜씨 보니까 금방 성장하시겠던데요? 여기요!”

그리고 그 다음 마지막 일도.

“수고하셨습니다. 여기 보수입니다.”

오늘은 대박이구나!

당연히 받아야 할 보수를 받은 것에 불과하지만 로쿠는 이것이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일뿐.

연락처라고는 할머니와 병원밖에 등록되지 않은 로쿠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띠리리리링!

“….”

괜히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왔다. 제발 아니길, 스팸 전화이길 빌며 로쿠는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시노미야씨 보호자시죠? 지금 상태가 위독합니다. 빨리 병원으로 와주세요!”

“….”

“보호자님?”

“바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로쿠가 후다닥 택시를 잡기 위해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한시라도 빨리 할머니의 곁으로 가야만 했다.

“어? 저거 호구새끼 아니야?”

“맞는 거 같은데? 야 너 이리 와봐.”

운명은 아직 그를 보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바빠서!”

로쿠는 이를 무시하며 서둘러 골목을 빠져나가려 했으나 그의 연약한 몸으로는 일반 헌터의 달리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뻐억!

“크허어억!”

순식간에 로쿠의 앞을 잡은 헌터가 그의 배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씨발, 호구련이 뭐? 바빠?”

“케헤에엑…. 나, 가야 하는데…!”

한시가 급했다. 여기서 이런 놈들을 상대할 시간이 없었다.

“에헤이, 우리보다 급한 일이 어딨어?”

“할머니가 위독하셔, 제발! 돈이라면 줄 테니 제발!”

“허이구, 대단한 손자 나셨네.”

뻐억!

“아아악!”

“네 돈은 당연히 우리 거고.”

빠악!

“크허어억!”

“넌 그냥 존나 맞으면 돼.”

그들은 집요하게 로쿠를 괴롭혔다. 돈은 물론이고 폭행까지 서슴지 않았다.

“경찰…!”

골목길의 틈 사이에서 형광색 옷을 입은 경찰이 로쿠와 눈을 마주쳤다.

‘살았다!’

구원의 빛을 본 로쿠는 경찰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

“어…?”

경찰은 이를 보고도 모르는 척 등을 돌렸다. 생각해보면 경찰도 일반인이다.

헌터를 상대로 제압하는 것이 가능할리 만무했다.

“푸하하핳! 저딴 게 무슨 경찰이라고!”

“그냥 보고도 무시하는 거 봤어 크흐흐흐흐.”

“왜, 저게 뭐라도 도와줄 줄 알았냐?”

잠시 폭행이 멎었으나 이내 다시 그들의 발길질이 시작되었다.

그들이 괴롭힘을 끝냈을 때는 이미 2시간이 더 지나 있었다.

또각. 또각.

“저…. 괜찮으세요?”

힐을 신은 여성이 로쿠 앞으로 다가왔다. 로쿠는 전신이 만신창이였다.

“….”

그녀가 로쿠를 향해 손을 뻗었으나 로쿠는 메마른 눈으로 그녀의 손을 탁 처냈다.

‘위선자들….’

“어머…?”

“저리 꺼져.”

“아니…. 저기요! 당신 많이 다쳤어요! 저기요!”

자신보다 약자에게만 강하게 나갈 수 있다는 혐오감이 일순간 로쿠를 흔들었으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할머니의 곁으로 가야만 했다.

주머니가 텅 비어버렸기에 로쿠는 하는 수 없이 최대한 빠르게 병원으로 달렸다.

“제발, 제발 할머니 제발!”

그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는.

“너무…. 늦으셨습니다.”

이미 세상을 뜬 후였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할머니 위의 흰색 천을 내렸다.

할머니의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마치 목각 인형이 떠오를 정도로 깡마른 몸은 그녀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을지 짐작케 하였다.

“할머니…! 저 왔어요! 로쿠가 왔다고요!”

“….”

당연하지만 이미 죽은 사람이 대답을 할 리가 만무했다.

“할머니…. 할머니이! 흐허어어엉! 할머니! 손자 로쿠가 왔다고요! 할머니!”

할머니의 손을 꽉 쥔 로쿠가 이를 이마에 대며 처절하게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몹시 추했으나 병원에 있는 사람 중 아무도 이를 업신여기는 이는 없었다.

그동안 로쿠가 할머니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기 때문에, 그들은 오히려 함께 눈물을 흘렸다.

“흐허허어엉 할머니! 할머니이!”

간호사들이 로쿠의 어깨를 주무르며 그를 달래주었다.

“마지막으로 손자를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좋은 곳 가셨을 거에요…. 워낙에 선한 분이시잖아요.”

“흐어어어엉! 할머니이이!”

자신의 유일한 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가 사라졌다.

목이 쩍쩍 갈라져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눈물을 흘린 로쿠는 밤이 되고 나서야 할머니의 병실에 들어왔다.

“장례식 돈은 어떡하지….”

애초에 찾아올 사람이 있을지도 의문이었으나 적어도 할머니를 보내드리는 길은 똑바로 치르고 싶었다.

“할머니….”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할머니와 함께 대화를 나눴었는데.

불이 꺼진 병실 창으로 푸른 달빛이 들어왔다.

로쿠는 할머니의 흔적이 남아있는 베개를 끌어안았다.

부스럭

“응? 부스럭?”

베개의 안을 열어보니 웬 봉투 두 개가 들어있었다.

그곳에는 할머니의 글씨체로 ‘로쿠 결혼비용’과 ‘로쿠 집 값’이라는 글자가 적혀져 있었다.

그 안에는 다 합쳐서 5500엔이 들어있었다. 몇 푼 안 되는 돈에 로쿠는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이걸로는 원룸도 못산다고 할머니….”

어째서인지 웃음이 나왔다. 세상이 너무나도 미웠다.

어째서 나만 이렇게 고통 받아야 하는지.

저들은 수저 하나 잘 물고 태어나서 떵떵거리면서 사는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휘이이잉!

창문을 여니 시원한 밤바람이 로쿠를 맞이 해주었다.

건물의 높이는 8층.

머리부터 떨어진다면 바로 죽을 수 있는 좋은 위치였다.

“할머니…. 따라갈게요.”

천국에서는 할머니를 만나길 빌며 몸을 던지려는 찰나.

“복수도 하지 못하고 죽다니, 너무 안타깝지 않나요?”

두꺼운 남성의 목소리가 로쿠의 귓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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