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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병기 활-56화 (56/172)

◈ 56화. 휴가라면서요(6)

달빛을 받아 푸르게 빛나는 구미호가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몸 전체를 뒤덮은 순백의 털에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이빨에 붉은 눈동자.

날아갔던 한쪽 팔은 어떻게 되었는지 다시 멀쩡하게 새로 자라나 있었다.

마지막으로 거의 크기만 1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구미호가 궁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 안돼.

“뭐가 안돼.”

분명 전과 비교해서 확실히 압도적인 수준의 성장이었으나 그것이 궁수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호주에서 봤던 놈보다는 약하잖아?”

그 전의 개고생을 생각하면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궁수는 오히려 포인트를 활성화 시켰다.

“꼬리랑 눈, 그리고 가슴 정중앙.”

눈이야 워낙에 급소라 당연히 여길 수 있으나 구미호의 가슴팍에서는 푸른빛이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었다.

“내가 전위를 맡겠네!”

“몸은 괜찮아요?”

“이 정도는 거뜬하지!”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한 듯 한손에는 대방패를 든 셈이 구미호의 앞을 막아섰다.

“이렇게 싸우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상황이 조금 바뀌긴 했다만.”

“그러게요, 한명이 퇴물이 돼버렸네.”

“어허, 퇴물이라니! 아직 현역에 밀리지 않는다!”

“네, 네, 그런 걸로 하죠.”

탱커의 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 궁수는 힐끗 은우를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상처는 거의 치유가 되어가고 있었다.

“상태는 어때요?”

“음, 일단 급한 불은 껐다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당장에 도움이 되지는 못하겠군.”

“그런가요.”

이은우의 안전도 확인했겠다, 궁수는 법사 옆에 서 구미호를 바라보았다.

놈은 온몸의 털을 바짝 세우고 낮게 으르렁거리며 궁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살기가 다분히 배어나오는 눈빛이었으나 궁수는 오히려 그녀를 바라보며 싱긋 웃어주었다.

“귀.여.워.”

“네놈…. 네놈만큼은 기필코 물어 뜯어주겠다!”

“어허, 입마개라도 채워주랴?”

적이 아닌 마치 애완동물을 상대하는 궁수의 태도에 구미호는 열이 바짝 올랐다.

으드득.

이를 악문 구미호의 전신에서 푸른 불꽃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불꽃이 아닌 마치 살아있는 듯 신기하게 일렁이는 불꽃이었다.

- 여우 불이로군.

“아주 불여시가 따로 없네.”

“모두 죽여주마!”

콰아아앙!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구미호가 궁수를 향해 달려들었으나 이내 셈의 방패를 넘지 못하고 저지당하고 말았다.

셈은 방어는 걱정하지 마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구미호의 모든 공격을 받아내었다.

쾅! 콰앙!

“감히 반푼어치가!”

“흐흐흐! 반푼어치도 뚫지 못하면서 말도 많군!”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으나 셈의 대방패에는 구미호의 발톱이 만들어낸 깊은 상처가 하나 둘 생겨나고 있었다.

그 상처는 푸른 불꽃이 붙어 계속해서 방패를 좀먹고 있었다.

셈도 이를 아는지 손짓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있었다.

‘10분 정도인가.’

셈의 사인을 확인한 궁수는 곧바로 장궁에 기다란 화살을 장전했다.

잠시 마력을 끌어올려 화살에 속성을 깃드는 순간 법사가 먼저 앞으로 성큼 걸어 나갔다.

“먼저 하게?”

“구린내, 싫다!”

“저거 불꽃은 안 먹힐 것 같은데.”

구미호의 전신에는 푸른 불꽃이 넘실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화염속성 계열 마법을 날린다 하더라도 딱히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나! 있다! 새로운 기술!”

“오, 뭐라도 배웠어?”

“그렇다!”

궁수가 알기로는 현재 법사가 사용할 수 있는 속성은 번개와 화염이다.

그나마 사용 가능한 스킬은 번개속성 마법인데 과연 법사가 유의미한 데미지를 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휘잉!”

“뭐? 휘잉??”

펑펑이나 찌리릿도 아닌 휘잉이라니, 궁수는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고 법사를 바라보았다.

발끝에서 시작되는 법사의 최상위 마력 운용은 마력에 문외한인 궁수마저도 절로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다.

화아아악!

“으음?”

법사의 몸 주변으로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선선한 바람이 아닌 마력으로 일으킨 사나운 바람이었다.

그 기운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주변에 다가가기만 해도 얇게 베일 수준이었다.

“호오?”

“나도! 쓴다! 휘이이잉!”

“오오오! 보여줘. 보여줘!”

법사의 몸 주변에서 몰아치는 작은 태풍은 당장에라도 적을 찢어발길 듯 흉흉한 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궁수! 아직인가!”

“아차! 지금갑니다! 후방지원 부탁해!”

“알았다!”

원래는 이은우와 함께 근접 라인을 지켜야 하지만 지금의 이은우는 빈사상태에 빠져있다.

모자란 자리를 채워야하기 때문에 궁수는 어쩔 수 없이 분쇄자를 들고 전위로 뛰어나갔다.

“퇴물 다됐네, 저런 거 하나 못 버텨요?”

“크흠! 자네도 팔 한쪽 잘려보게!”

“쓰흡, 섬뜩한 이야기 하지 마요.”

절찬리에 푸른 불꽃을 일으키는 구미호는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으르렁거리며 궁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똥개 주제에 어딜 으르렁거려?”

“커허엉! 네놈의 사지를 찢어주마!”

푸른 불꽃을 전신에 두르고 달려드는 구미호는 단연 압도적이라 절로 분쇄자를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피하게!”

체급 차이만 수십 배가 났기 때문에 셈이 궁수에게 소리쳤으나 궁수는 조금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든든한 후방지원도 있겠다. 옆에는 바로 어그로를 바꿔줄 셈도 있다.

싸우면 싸웠지 어째서 피해야 하는지 궁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쇄자를 거세게 쥔 궁수는 왼발을 앞에 처박고 달려드는 한 바퀴 몸을 틀어 달려드는 구미호를 향해 분쇄자를 휘둘렀다.

“퇴물은 닥치고 있어!”

파각!

“꺄아아악!”

강하게 휘둘러진 구미호의 앞발과 궁수의 분쇄자가 격돌했다.

결과는 구미호의 날카로운 발톱 중 한 개를 날려버리며 궁수의 승리로 돌아갔다.

땅에 처박은 궁수의 허벅지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한쪽 발톱이 통째로 깨진 구미호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궁수를 노려보았다.

“어딜 쉬려고?”

탓!

땅을 박차고 도약한 궁수가 공중에서 자세를 바꿔 컴파운드 보우로 활을 스위칭했다.

“중성화부터 시켜주마!”

중성화라는 말과는 달리 구미호의 눈을 노리고 화살을 발사했다.

그러나.

화르르륵!

“으잉!?”

여태껏 나온 가스레인지 같은 여우불이 아닌 격렬한 화염방사기 같은 여우불이 궁수를 향해 날아왔다.

다름 아닌 브레스 마냥 구미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불꽃이었다.

“이 새끼가!?”

“타 죽어라!”

쐐애애애액!

태풍을 담아 불꽃을 쳐내려는 생각이었으나 그럴 틈도 없이 옆에서 날아온 바람이 구미호의 불꽃을 모두 찢어버렸다.

그대로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하여 땅에 착지한 궁수는 법사를 바라보며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나이스!’

구미호도 기습적으로 발사한 불꽃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당황한 듯 움찔거리며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안 놓친다!”

분쇄자에 거센 바람을 담은 궁수가 땅을 후려쳐 구미호를 향해 돌격했다.

‘일단은 가슴부터 노린다.’

포인트 어택이 점지해준 약점 중 가장 밝게 빛나는 곳은 다름 아닌 가슴 정중앙이었다.

“크허엉! 꺼져라!”

“싫어 이 새끼야!”

겁에 질린 구미호가 궁수를 쳐내기 위해 넝마가 된 앞발을 휘둘렀으나 궁수는 땅을 즈려밟고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해내었다.

그리고 한 번 더 이어지는 궁수의 분쇄자 바람 콤보.

어느새 궁수는 구미호의 품속 깊숙이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어딜 인간을 물어!”

궁수의 화살통에 기다란 화살이 한 개 생성되었다.

차라리 창이라고 불리는 것이 더 어울릴 정도로 길다란 화살은 순식간에 바람과 빙결의 기운을 머금었다.

거기에 만약을 대비한 타임 익스플로전 까지.

마치 토네이도처럼 휘몰아치는 붉은 바람에 얼음 조각들이 함께 회전하여 매우 흉흉한 모습이 연출되었다.

“뒤져라!”

쿵!

양 발을 땅에 처박아 단단히 고정시킨 궁수는 그대로 그 창을 구미호의 가슴팍에 쑤셔 박았다.

푸우욱!

“끄아아아악!”

아직 궁수는 만족하지 않은 듯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더욱 깊숙하게 화살을 처박았다.

“그만! 그만해! 뭐든지 할 테니까 제발!”

“이미 늦었어. 이 새끼야!”

궁수의 창이 절반쯤 틀어박혔을 때 궁수가 한 번 더 마력을 일으켰다.

다름 아닌 타임 익스플로전을 사용하기 위한 준비였다.

“뒤져라!”

“안ㄷ….”

퍼어어엉!

구미호의 몸이 한번 크게 움찔거렸다. 그녀는 비틀거리더니 결국 내상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야.”

아직 경험치는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말해 구미호는 아직 살아있다는 말이었다.

구미호의 목을 밟은 궁수가 놈의 머리통에 장궁을 겨누며 말했다.

“지금부터 대답 여부에 따라서 널 살릴지 죽일지 결정할거야.”

화르륵!

궁수의 마력을 재료로 삼아 장궁에 걸린 화살에 불꽃이 붙었다.

일부러 압박감을 주기 위해 궁수는 화살을 가져다대며 말했다.

선택지가 없는 구미호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가 처음 열렸을 때 분명 인간들이 왔을 텐데, 그 놈들을 어떻게 했지?”

“인간? 아…. ‘문’을 열어준 녀석들 말인가.”

“뭐? 문을 열어?”

궁수는 게이트 처리를 위해 나온 헌터들을 말했는데 구미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와는 정 반대되는 말이었다.

“그래, 붉은 복면을 쓴 사람이었다.”

‘문을 열었다니…? 설마.’

궁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구미호에게 말을 이었다.

“문을 열었다는 건 게이트를 열었다는 거냐? 네가 아닌 그 사람들이 직접?”

“그렇다만.”

‘시발 이게 무슨 개소리지?’

상상도 못한 정보들이 갑자기 몰려오는 탓에 궁수의 머릿속은 지금 혼잡 그 자체였다.

최대한 정보를 정리하며 궁수가 마지막으로 구미호에게 물었다.

“이것만 잘 대답하면 살려주지.”

구미호의 눈동자에 일순간 희망이 감돌았다.

물론 궁수는 필요한 정보를 얻으면 그 순간 바로 놈을 쏴 죽일 생각이었다.

궁수는 그동안 계속해서 의문을 품고 있던 질문을 그녀에게 물었다.

“너희들이 말하는 ‘그분’이라는 놈은 대체 누구지?”

“….”

여태까지 잘 말하던 구미호가 갑자기 입을 꾹 다물었다.

“대답해.”

“그분은…. 그, 그 분은 그 분은 그 분은….”

“뭐야 왜 이래?”

갑자기 구미호의 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리기 시작했다.

연기가 아닌 듯 그녀는 정말로 두려움에 떨며 몸을 움츠렸다.

당장에라도 무언가가 자신을 죽일 듯 다리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파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제, 제제제, 제가 제가 어찌 감히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발 제발…!”

“야 정신차려! 야!”

콰드득!

“어?”

구미호의 몸에 떨림이 잦아들며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구미호의 입이 서서히 벌어지며 잘린 혓바닥이 바깥으로 툭 떨어졌다.

전신에서 피가 터져 나오며 서서히 구미호의 순백의 털이 붉게 물들었다.

“씨발 뭐야…?”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듯 구미호는 싸늘한 시체로 식어갈 뿐이었다.

***

어두운 색상의 원목이 깔린 회의실에서 10명의 사람이 모여 원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검은색 복면을 쓰고 붉은 로브를 걸친 상태였다.

“첫 번째 가시여, 구미호가 죽었습니다.”

이들은 각자 팔뚝에 장미 문신을 새기고 있었는데 각자 가시의 수가 달랐다.

한 개, 두 개로 시작해서 ‘첫 번째 가시’라고 불리는 남자의 문신에는 온통 가시가 가득했다.

그는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잔에 담긴 붉은 액체를 음미하며 말했다.

“어차피 놈은 더미였습니다. 오히려 처분할 수고를 줄였으니, 나쁘지 않군요.”

그는 별다른 행동 없이 말을 할 뿐이었지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혈기가 어느새 회의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유 있고도 느릿한 걸음걸이로 원탁을 한 바퀴 돈 그는 벽에 걸린 세계 지도를 바라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

“다음은 여기가 좋겠군요.”

그가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에티오피아.

최근 내전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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