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휴가라면서요(4)
거의 크기만 10미터에 달하는 거구가 파티원들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은 단연 압권이었다.
오죽하면 은우도 그 기세에 놀라 몸을 위축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 도깨비 왕 두비령이 친히 네놈들을 죽여 자식들의 넋을 기리겠다!”
더군다나 그 괴물의 손에 들린 방망이에는 새빨간 피가 묻어있었다.
‘설마….’
순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람들이 떠올랐으나 이내 고개를 흔들며 이를 부정했다.
‘아니겠지, 제발.’
그러기도 잠시.
“펑펑!”
겁이라고는 벽을 짓고 사는 나법사의 마법이 먼저 작렬했다.
새하얗게 빛나는 백염이 도깨비의 심장부를 꿰뚫었다.
“그렇지!”
“잠자는! 코털의 사자! 건들었다! 죽인다!”
역시나 장난기가 가득했으나 법사의 마법은 가히 어마어마하였다.
“흐음?”
심장부에 구멍이 뻥 뚫린 도깨비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심장이 뚫렸는데 움직인다고?”
도깨비 왕은 그대로 주변에 있던 도깨비 두 마리를 주워 들더니.
와작!
“헐.”
그대로 머리통부터 발끝까지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었다.
“지는 자식을 씹어 먹으면서!”
“흥, 자식들은 나를 위해 존재하지! 놈들도 나와 하나가 되어 기쁠 것이다!”
“미친놈!”
다른 도깨비들은 동족이 먹히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해서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아직 놀랄 일은 더 남아있었다.
도깨비 왕에 뚫린 구멍이 순식간에 다시 매꿔진 것이다.
뼈와 살이 아닌 마치 찰흙으로 몸이 이뤄진 것처럼 왕의 몸에서는 피 한방울도 흘러내리지 않았다.
“일단 주변의 자잘한 놈들을 먼저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놈의 관심은 나와 힐이 끌지.”
“법사님은 되는대로 적들을 쓸어버리시면 됩니다.”
“펑펑!”
상황 파악을 끝낸 은우는 셈과 힐이 뛰어나감과 동시에 함께 도깨비들을 향해 돌진했다.
이은우.
정부 측 A급 헌터.
2년 내로 S급에 도달할 것으로 보이는 재능 있는 헌터.
지금이야 궁수나 법사에 밀려 다소 약해보일 수 있으나 그도 제대로 된 A급 헌터다.
그간 마물들을 죽이며 몸에 배인 노하우들은 악착같이 그를 살아남을 수 있게 보조했다.
“더, 더 빠르게!”
이은우의 주 스킬인 가속화 스킬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전투를 지속하면 지속할수록 속도가 빨라지는 이 스킬은 어느 부분에 도달하면 너무 속도가 빨라 사람이 제어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선에 도달하면 한번 몸을 식히고 다시 전투를 이어나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그런 일반적인 전투 방식을 고집해서는 일류가 될 수 없다.
더 빠른 전투, 끊어지지 않는 전투.
그것이 은우가 A급을 넘어 S급을 넘볼 수 있는 이유였다.
촤악! 촤좌좍!
은우가 지나간 자리에 도깨비는 남아있지 않았다.
머리가 사라지거나 몸이 양단된 도깨비들은 단말마조차도 남기지 못하고 원래의 물건으로 되돌아갔다.
쾅! 콰앙!
“오만한 인간이여! 어딜 고작 한쪽 팔로 나의 공격을 막으려 드는가!”
쿵!
도깨비 왕의 거대한 몽둥이가 셈의 방패를 후려쳤다. 셈은 이를 악물고 땅에 발을 처박았다.
셈은 오히려 도깨비 왕을 향해 소리쳤다.
“그럼 네놈은 어째서 내 한쪽 팔도 뚫지 못하는가!”
적들을 쓸어버리던 대검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이제는 더욱 단단해진 거석 같은 셈이 적들의 공격을 정면에서 막아내고 있었다.
보통 이 정도면 포기할 만도 한데 셈의 계속된 도발에 눈이 돌아간 도깨비 왕은 계속해서 몽둥이를 후려치고 있었다.
그리고 법사.
“법사님 이것 좀 드세요.”
고수혁의 특제 초콜릿 쿠키를 한아름 집어먹은 법사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로봇에 연료를 넣은 것처럼 법사의 마력이 강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
도깨비들의 위로 붉은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모습만으로 적들의 사기가 꺾일 듯 강렬한 모양이었다.
한번 들어봤던 캐스팅이 이어졌다. 이전 골렘을 상대했을 때 법사가 사용했던 마법.
다름 아닌 메테오였다.
“메테오!”
쿠콰콰콰쾅!
“아이 미친 새끼야!”
마법진을 봄과 동시에 헐레벌떡 도망친 근접 딜러들이 법사를 향해 욕지거리를 뱉었다.
대뜸 싸우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머리 위에서 위협적인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내니, 도망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근접 딜러들이 도망쳐 나옴과 동시에 마법진이 일렁이더니 이내 타오르는 거대한 운석이 적들을 향해 떨어졌다.
“뭐, 뭣!?”
콰아아아앙!
도깨비 왕이 채 도망갈 틈도 없이 법사의 마법이 시원하게 마물들을 모두 쓸어버렸다.
살짝 범위가 넘어가긴 하였으나 워낙에 광장이 넓었기 때문에 별 상관은 없었다.
“끝인가…?”
쓰러진 도깨비들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모두 원래의 오래된 물건으로 돌아갔다.
“저거는 그대로 있네요.”
다만 저 도깨비 왕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뭐 그렇다고 이미 상반신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기에 딱히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였지만 말이다.
“다른 시민들은 무사한가?”
셈의 말에 순간 얼굴이 파랗게 질린 이은우가 대답도 없이 뛰어 나갔다.
“같이가게!”
은우의 표정이 좋지 않았기에 다른 헌터들도 다급히 그 뒤를 따라나섰다.
“여러분! 괜찮으십니까!”
다행히 사람들은 다치진 않은 듯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이고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사람이지?”
“사람 맞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아까 괴물이 등장한 이후로 쭉 저 상태더군요.”
“흐음….”
턱을 쓰다듬으며 앞으로 다가간 힐이 마력을 모아 해주 스킬을 사용했다.
“디스펠!”
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찬란한 마력이 사람들의 몸에 깃들었다.
“흠? 딱히 걸린 건 없는데?”
“네? 없다고요?”
“그래, 아무것도 풀리는 게 없지 않나, 풀리지 않으면 스펠 자체가 파괴되는데 스펠은 잘 먹혀들어갔어.”
“그러면 저 사람들이 자의로 저렇게 있다는 거에요?”
“뭐, 그렇지.”
은우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사람들을 향해 다가갔다.
바로 옆을 지나가도 손을 흔들어도 심지어는 살짝 몸을 건드려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저주가 아니라면 대체…?’
사람들의 유일한 공통점이라 함은 무감정한 눈빛이었다.
마치 삶을 포기한 것처럼 멍한 눈빛으로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람들을 옮길 수는 있었으나 마치 조각상처럼 똑같은 자세일 뿐 딱히 자세를 바꾸지는 않았다.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었는데 말이다.
“흐음…. 도대체 이건….”
한밤중 서늘한 바람이 불며 더욱 주변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사람들은 살아있는 듯 동맥이 잡히긴 하였으나 달빛에 비추어진 그들의 모습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궁수씨도 찾아야 하는데.”
궁수야 워낙에 날고 기는 사람이니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호주에서도 적진 한 가운데에 떨어졌다가 살아나오지 않았는가.
지금 중요한 것은 이 사람들이었다.
혹여나 여기 있는 사람 이외에도 다른 투숙객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흠, 그럼 일단 다른 투숙객들은 어떤지…”
휘이잉!
고개를 돌려 동려들에게 돌아가려는 순간 목이 서늘해지는 바람이 불어왔다.
그래봐야 바람이겠지 만은 그 바람이 너무나도 서늘하고 불쾌하여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린 그곳에서는.
“흐으윽…. 팔이!”
그곳에는 아까 궁수와 함께 들어갔던 여성이 절뚝거리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검은 머리칼에 가디건을 걸친 천미호의 어깨는 단단하게 얼음이 얼어붙어 있었다.
“이런! 괜찮습니까!”
멀쩡한 사람을 확인한 이은우가 다급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다소 위급한 상황인 듯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흐으윽, 하아, 하아,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그녀는 당장에라도 울음보를 터트릴 듯한 표정으로 이은우를 향해 처절하게 소리쳤다.
워낙에 긴급한 상황인지라 은우는 동료를 부를 틈도 없이 다급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런!”
쓰러지려는 천미호를 가까스로 받아낸 이은우가 먼저 그녀의 동맥을 살폈다.
“정신을 차ㄹ…. 어?”
“안녕?”
동맥이 전혀 뛰지 않았다. 당황한 이은우가 급히 그녀를 떼어내려 하였으나.
촤아악!
그 찰나의 순간에 천미호, 아니 구미호의 손톱이 이은우의 가슴팍을 긁었다.
“크허어억!”
은우의 가슴팍에 20센치가 넘는 깊은 자상이 생겼다.
이 마저도 바로 그녀를 급히 밀쳐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대로 간을 빼앗겼을 것이다.
“무슨 일인가!”
“쿨럭, 마, 마물이….”
빈사 상태에 몰려 쓰러지기 직전인 은우를 뒤에서 다급히 달려온 힐이 바로 은우를 받아 내었다.
은우의 가슴팍에 새겨진 상처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역류하고 있었다.
“내가 치료하겠네!”
“알겠습니다!”
다급히 마력을 일으킨 힐이 은우를 향해 치유 마법을 미친 듯이 시전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동안 그 둘은 무방비 상태였기에 다른 헌터들이 이를 보조해야했다.
“더러운 마물이….”
이미 호주에서 한번 여성형 마물에게 데인 기억이 있는 셈은 으르렁거리며 구미호를 노려보았다.
어느새 모습을 바꾼 그녀는 아쉬운 듯 손에 묻은 은우의 피를 핥고 있었다.
달빛을 받아 빛나는 그녀의 은발은 더욱 길이를 늘려 이제는 그녀의 허벅지까지 길이를 길렀다.
“하아, 달콤해….”
은우의 피를 음미하는 그녀를 앞에 둔 셈이 방패를 거세게 쥐었다.
“내가 저년의 공격을 막겠네.”
“알았다!”
‘지금 궁수가 있어야 했는데…. 칫.’
물론 법사의 마법이 상당한 위력을 자랑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런 보스형 전투에서는 정밀타격을 요구하는 궁수가 더욱 적합한 것이 사실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뒤에서 날아온 공격에 근거리 딜러들이 맞는 경우도 있었는데, 궁수는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알아서 아군을 피해 저격을 해주었다.
“저것 하나라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셈은 손잡이를 쥐고 당장에 구미호를 향해 돌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쿵!”
절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을 울리는 소리가 주변을 채웠다.
다름 아닌 도깨비 왕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소리였다.
“저게 뭐야!”
상반신이 날아간 도깨비 왕이 셈과 일행들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달려들고 있었다.
그의 몸은 서서히 다른 도깨비들의 물건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어느새 헌터들의 앞에 도착했을 때 도깨비는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하! 도깨비 왕 부활이다!”
“어머, 죽었었어?”
“흠, 잠시 방심했을 뿐이다. 두 번은 없다!”
도깨비 왕의 눈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놈은 자신이 들고 있던 몽둥이를 와작 그대로 씹어 먹기 시작했다.
“무슨…?!”
몽둥이를 완전히 씹어 먹은 도깨비 왕의 몸집이 훨씬 거대해졌다.
앞에는 구미호 뒤에는 거대한 도깨비.
말 그대로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 맹렬하게 주변을 탐색했다.
“법사! 도깨비를 부탁하네!”
“알았다!”
탓!
뒤를 맡긴 셈은 방패를 앞세워 구미호를 향해 돌격했다.
철문 몇 개는 가볍게 뚫어버릴 맹렬한 돌격이었으나 아쉽게도 그 돌격이 구미호를 맞추는 일은 없었다.
“지금은 바빠서~”
“이런!”
셈을 가볍게 무시한 구미호가 빠른 속도로 도약하며 뒤의 헌터들을 향해 뛰어갔다.
“힐! 법사! 피하…. 뭣!?”
구미호는 헌터들을 지나 그대로 도깨비 왕을 향해 도약했다.
“오! 그렇지! 저 쪼끄만 놈이 너무 거슬려서 말이야.”
거의 도깨비 왕에게 다다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속도를 높이더니.
푸욱!
“크허어억!?”
그대로 도깨비 왕의 가슴팍을 뚫고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뭐야? 내부 분열인가?”
“방금 전까지 동료인척 굴더니 왜?”
힐과 셈이 불안한 눈빛으로 이를 바라보았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기괴한 시간이 흘렀다.
그러길 잠시.
쿵!
“진짜 죽였어!?”
도깨비는 결국 눈을 회까닥 뒤집고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