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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병기 활-53화 (53/172)

◈ 53화. 휴가라면서요(3)

“왜 피하는 거야?”

“그러면 가만히 당해주랴?”

“응.”

“뭐라는 거야 미친년이.”

상대가 마물이기 때문에 궁수의 육두문자도 거침이 없었다.

구미호는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여 궁수를 바라보았다.

“왜? 예쁜 내가 죽여주겠다는데 어째서?”

“와….”

그녀는 요염하게 옷깃을 조금 내리며 궁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너무나도 매혹적이어서 궁수가 아닌 다른 남자였다면 이미 매혹에 넘어갈 정도였다.

하지만 궁수는 덤벨과 프로틴에 미쳐서 사는 남자였다. 인간도 아니고 마물의 매혹에 홀려 넘어갈 리 없었다.

“너 대단한 미친년이구나.”

“입이 너무 험한 거 아니야?”

“하….”

궁수의 천궁이 컴파운드 보우로 모습을 바꿨다. 검은 화살통 가득히 마력 화살이 차올랐다.

싸늘한 표정을 지은 궁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구미호도 개과인가?”

“음? 글쎄?”

화살을 시위에 겨누며 차분히 눈을 가라앉히고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개통령 김형욱 나가신다, 이 새끼야.”

“흐응…. 그런 플레이라.”

콰앙!

“흥!”

바닥을 박차고 달려든 구미호의 손톱이 궁수의 천궁에 막혔다.

순간 구미호의 푸른 눈동자 속에는 여유로운 표정의 궁수가 담겨있었다.

“싫진 않아~”

“그러면 딱 대 이년아.”

카드득!

천궁을 크게 휘둘러 구미호를 밀어낸 궁수는 곧바로 빙결 화살 한 발을 발사했다.

쐐애애액!

찰나에 순간에 불과했으나 그 속도와 정확도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0.1초.

그것이 궁수가 화살을 넣고 시위를 당겨 조준을 하는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푹!

“꺄아아아악!”

“칫.”

미간을 노리고 쏜 화살이었으나 구미호가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버린 탓에 화살은 그녀의 어깨에 박혀 들어갔다.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그녀는 나무 위에 서서 궁수를 노려보았다.

“크흐으윽….”

빙결의 기운을 머금은 화살은 그녀의 왼쪽 어깨를 완전히 얼려버렸다.

치명타는 아니더라도 회복하는데 시간이 제법 필요할 것이다.

“어딜 도망가.”

땅을 박차고 오른 궁수가 그녀를 향해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분쇄자로 무기를 스위칭하여 거침없이 구미호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휘잉!

“쯧, 다리를 맞췄어야 했는데.”

“흐으윽…. 인간 주제에 어떻게!”

“뭐 인간이면 다 좆밥인 줄 알았냐?”

상대는 마물.

다시 말해서 머리통을 으깨버리든 상반신을 날려버리던 상관이 없다는 소리였다.

방금 전까지 함께 있었던 ‘인간’ 천미호를 완전히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궁수가 그녀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법사가 말한 구린내가 너였구나.”

“흐흐흐 글쎄? 과연 그게 날까?”

“좀 씻고 다녀라, 오죽하면 냄새가….”

콰앙!

“갑자기 뭐야!?”

잠시 그녀의 몸이 푸른빛으로 빛나더니 구미호의 손에 모인 푸른색 구슬이 궁수를 덮쳤다.

데미지를 입지는 않았으나 흙바람이 일어나며 순간적으로 궁수의 시야가 가려졌다.

‘위? 왼쪽? 오른쪽?’

그런 생각을 하기도 잠시 궁수는 분쇄자에 바람의 기운을 담아 휘둘렀다.

휘이이잉!

“없어…?”

아무리 주변을 둘러본들 이미 사라진 구미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낼 리 만무했다.

“젠장!”

궁수는 다시 발을 돌려 원래 왔던 길을 다급히 달렸다.

혹시나 그 빌어먹을 구미호가 일반 시민에게 손을 대기 전에 미리 저지해야만 했다.

“어디야!”

마력을 일으켜가면서 전속력으로 달렸는데도 숲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비슷한 모양의 그림이 계속 반복되듯 아무리 달려도 궁수는 숲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

“흐헤헤, 그래서 말이죠~”

이은우는 입이 귀에 걸릴 듯 해벌쭉 미소를 지으며 담력 시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은우의 상대는 25살의 여대생.

일 년 휴학을 했기 때문에 마지막 졸업여행 겸 친구들과 함께 추억을 쌓을 겸 왔다고 한다.

갈색 단발이 어울리는 그녀는 은우의 말에 빙긋빙긋 미소를 지어주며 나름대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면 헌터님은 길드 같은 거 들어가 있어요?”

“아뇨, 저는 공무원이라, 길드는 따로 없습니다.”

“아, 그래요?”

“굳이 따지면 대한민국이 길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하하!”

솜사탕처럼 달콤한 핑크빛 분위기 속에서 이은우는 지금 청춘을 구가하고 있었다.

청춘을 느낄 나이는 지났다만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예은씨는 이런 거 안 무서우세요? 놀란 적이 한 번도 없으시네요.”

“아, 딱히 귀신이라던가 그런 걸 믿지 않아서요.”

“대단하시네요, 전 매일 상대하는 게 괴물인데도 무서운데.”

그럭저럭 무미건조한 대화를 이어나가길 20분.

은우의 행복한 시간은 갑자기 일어난 괴현상과 함께 끊어지고 말았다.

마치 무빙워크에 있는 것처럼 숲이 움직이고 있었다.

한 걸음을 걸었을 뿐인데 마치 열 걸음을 걸은 듯 주변 환경이 밀려나듯 순식간에 획획 바뀌었다.

“이것도 설마 담력 시험 장치인가?”

“….”

옆의 예은은 겁에 질렸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딱히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숲을 걷기를 5분.

“어…?”

어느새 은우는 처음 담력시험을 시작했던 장소로 돌아와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시 처음 장소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궁수를 제외하고 담력시험에 참가했던 모든 사람들이 첫 시작점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뭐야 이게…?”

다만 혼란스러운 이은우와는 달리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여러분? 괜찮으세요?”

그것만으로 몹시 을씨년스러운 장면이었다. 이은우는 스윽 주변을 둘러보고 인상을 팍 썼다.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혼탁한 마력. 적어도 인간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인간을 제외하고 마력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씨발, 여기까지 놀러 와서 일해야 한다니.”

다름 아닌 마물을 뜻했다.

지금 은우의 무기는 모두 펜션에 두고 온 상태였다.

혹시나 하여 챙겨오긴 하였으나 설마 담력시험 때 무언가 일이 터질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최대한 조심히….’

그는 혹여나 사람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발을 돌렸으나.

툭.

‘어?’

마치 바위처럼 단단하고 거대한 무언가가 은우의 뒤를 막아서고 있었다.

“….”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린 은우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커다란 송곳니, 머리 위로 솟아난 뿔, 왼손에 든 가시가 잔뜩 돋아난 몽둥이와 너덜더덜한 복장까지.

도깨비라고 불리는 괴물이 은우의 뒤를 막아서고 있었다.

은우와 눈이 맞은 도깨비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아 씨발.’

은우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사람들 신경 쓰며 사릴 때가 아니라 전력으로 뛰어야 할 때라는 것을 말이다.

탓!

그래도 A급 헌터 이은우.

그 짧은 틈에 마력을 운용하여 바닥을 차고 뛰어올랐다. 그는 그대로 도깨비의 머리를 밟고 펜션을 향해 달려 나갔다.

쿵! 쿵! 쿵!

“히이이이익!”

등 뒤로 무시무시한 도깨비들이 땅을 울리며 은우를 추격했다.

은우는 젖 먹던 힘까지 써가며 전력으로 도깨비로부터 도망쳤다.

거의 한 마리 한 마리의 덩치가 4M에 달했기 때문에 무기 없이 놈들을 상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겨우겨우 펜션에 도착한 은우는 거칠게 문을 열었다.

안에서는 다른 멤버들이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다들 일어나요! 빨리! 빨리이이이익!”

“으헣!? 뭔가! 벌써 아침이야?”

“흐으음…. 뭐에요, 아직 한밤인데.”

다행히도 동료들의 상태는 멀쩡했다.

“그러니까….”

쾅! 콰앙!

“벌써 여기까지 왔어!?”

이은우가 지금 상황을 뭐라 설명하기도 전에 펜션 밖에서 도깨비들이 거세게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마물인가?”

“네, 실제 상황입니다.”

“제길, 여기까지 와서도 일이라니.”

과연 상위 헌터들다운 상황 파악이었다. 그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무기를 들고 전투를 준비했다.

쾅! 콰아앙! 쾅!

그러는 와중에도 도깨비들은 계속해서 문을 후려치고 있었다.

두꺼운 철문이 휘어 이대로 가다간 문이 완전히 찌그러질 지경이었다.

“내가 먼저 전방을 열겠네, 후방지원을 부탁하네!”

셈이 남은 한쪽 팔로 대방패를 들고 서서히 문 앞으로 다가갔다.

한쪽 팔로는 대검을 쓸 수 없어 그는 대방패로 무기를 바꿨다.

더 이상 전과 같은 호쾌한 전투는 볼 수 없었으나 오히려 방패를 사용하여 전보다 더 견고한 탱킹을 할 수 있었다.

쿵! 쿵!

“지금!”

콰아아앙!

도깨비들이 문을 다 부수기 전 셈이 먼저 방패를 앞세워 돌격했다.

두께만 5센치가 넘는 철문이 부숴 지며 앞에 있던 도깨비를 그대로 날려버렸다.

“자고 싶다! 더!”

파지지지직!

단잠을 방해받은 법사는 화가 난 듯 손을 들어 황금빛 전류를 일으켰다.

법사의 마력으로 빚어진 다섯 개의 라이트닝 스피어가 도깨비를 향해 날아갔다.

푸푸푸푸푹!

법사의 손을 떠난 라이트닝 스피어들은 모조리 도깨비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다행히도 머리통이 터진 도깨비들은 오래된 물건으로 되돌아갔다.

동전이나 짚신, 심지어는 가마솥 등 여러 가지 잡다한 물건이었다.

단순히 손짓 한번으로 다섯 마리의 도깨비를 죽인 법사는 눈을 비비며 계속해서 마법을 일으켰다.

촤좌좌좍!

착검을 마친 이은우는 든든한 후방지원에 힘입어 더욱 몸을 가속시켰다.

든든한 후방지원에 믿음직한 탱커까지 있으니 이은우는 더욱 거침없이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검이 있는 검사와 검이 없는 검사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법, 이은우는 그 대표적인 예를 보여주듯 호쾌한 검술로 도깨비들을 썰어버렸다.

“이거 하나씩 드세요!”

비전투원인 고수혁은 미리 챙겨온 음식에 스킬을 사용하여 헌터들의 스테이터스를 증가시켜 주었다.

거기에 셈의 블레싱이 더해지니 파티는 더욱 견고해졌다.

아쉬운 것은 궁수가 없어 장거리 공격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법사의 시원시원한 마력이 전방을 싸그리 쓸어버렸기 때문에 다행히도 지금은 궁수의 빈자리가 그리 크지 않았다.

펜션 주변에 몰려든 50마리의 도깨비들을 학살하고 나서야 멤버들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도대체 이 놈들은 뭐야?”

멤버들은 이은우에게 설명을 요구하였으나 딱히 그라고 알고 있는 것은 없었다.

자신도 숲에서 빠져나오니 갑자기 도깨비들이 등장해 정신이 없었다.

“아마 호주처럼 특수한 개체가 일을 벌인 게 아닐까 싶습니다.”

“뭐? 그 지긋지긋한 년이 또 온다고?”

“그 정도로 강한 개체는 아닐 겁니다. 아직 영향력이 그리 크지도 않구요.”

도깨비들은 그 수가 많긴 하였으나 그렇게까지 전투력이 높지는 않았다.

물론 이 파티가 특별히 강한 것도 있었으나 아직 이 정도로는 특정 상황을 확인할 수 없었다.

게이트 반응이 있었다면 관할 헌터들이 처리를 했을 텐데 말이다.

‘업무 태만은 아닐 테고…. 도대체 뭐지?’

업무 태만도 태만할 것이 따로 있지 당장 목숨과 직결되는 게이트를 대충 처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단은 보이는 대로 처리해 보죠. 아직 궁수씨는 저 숲 안에 있습니다.”

“음? 궁수가 왜?”

잠시 파티 멤버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은우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궁수가 갑자기 숲을 들어갈만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하하…. 화장실이 급했다던가….”

멤버들은 조용히 은우를 노려보았다.

결국, 압박에 못이긴 은우가 사실대로 일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혼자만 재미 보려고 우리는 쏙 버렸다?”

“면목 없습니다.”

“하, 대머리는 연애도, 연애….”

퉁명스럽게 말하던 셈이 서서히 말을 멈췄다.

그의 표정은 무언가 좋지 않은 것을 봤는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왜 말을 하다 말고…. 허억!?”

쿵! 쿵!

“미천한 것들이 내 자식들을 죽였구나!”

먼저 수많은 도깨비들과 그 뒤로는 머리에 감투를 쓴 거대한 덩치의 도깨비가 파티원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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