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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병기 활-52화 (52/172)

◈ 52화. 휴가라면서요(2)

한옥 마을은 그 모습과는 달리 놀 거리로 넘쳐났다.

각종 미니 게임과 뽑기, 곳곳에서 풍겨오는 먹음직스러운 음식 냄새는 지친 헌터들을 미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마이따! 마이따!”

“어이구 잘 먹네, 여기 더 먹어!”

“와! 맛있는 게 둘!”

냄새가 난다고 할 때는 언제고 법사는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잡채를 흡입하며 한옥 마을을 만끽하고 있었다.

빌려입은 한복을 입고 머리에는 도깨비 뿔이 달린 머리띠를 차고 해맑게 노는 것이 정말 어디 양반집 자제라도 되는 것 같았다.

다른 일행들은 귀찮아 입지 않았으나 나법사는 한복이 신기한지 결국에는 파란색 한복을 한 벌 대여했다.

머리가 이상해서 그렇지 외모나 몸매는 어디가서 꿀리지 않는 나법사다.

그 꼴만 본다면 정말 순수한 미소년이 따로 없었다.

그만큼 놀러온 다른 여성들이 힐끗힐끗 법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옆에 있는 궁수도 마찬가지였다.

우락부락한 팔뚝을 드러낸 궁수는 지금 망나니 옷을 입고 있었다.

기껏 여기까지 놀러왔는데 기분이라도 내고 싶어 한복을 대여했는데 추천받은 것이 이 망나니 옷이었다.

새하얀 계량 한복에 시원하게 깐 민소매에 추가로 머리에 둘러맨 새하얀 머리띠까지.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기본 스펙이 훌륭한 궁수가 입으니 제법 그 모양새가 살았다.

오죽하면 중간에 여고생 두 명이 한옥 마을 직원인줄 알고 사진을 같이 찍어 달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순식간에 잡채 두 그릇을 비운 법사는 배가 부른 듯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배를 두드렸다.

“다 먹었냐?”

“배부르다!”

“그럼 이제 일어나,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아니다! 간다!”

계산을 마친 궁수는 법사와 함께 한옥 마을을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다 같이 다니려고 했으나 굳이 서로 취향이 달라 오래가지 않아 각자 가보고 싶은 곳으로 갔다.

궁수는 법사가 언제 어떻게 튈지 모르니 보호자 겸 옆에 남아있는 것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궁수는 저기 기념품 상점이 보였기에 법사를 데리고 그곳에 들어갔다.

한옥 마을이라 그런지 각종 한옥 미니어처나 피규어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궁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커다란 몽둥이었다.

“오오오.”

마치 나무에 뾰족한 도깨비 뿔들이 박혀있는 듯한 모양이었다.

물론 진짜 몽둥이는 아니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모조품이었지만 말이다.

“이거 하나 사야지.”

기껏 망나니 복장도 입었겠다. 기분이라도 낼 겸 궁수는 몽둥이를 집어 들었다.

법사는 딱히 흥미가 없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 물건을 사거나 하진 않았다.

“너는 뭐 살 거 없어?”

“….”

“법사야?”

혹시나 주변이 시끄러워 듣지 못했나 싶어 궁수가 한 번 더 법사를 불렀으나 대답은 역시나 들려오지 않았다.

결국 보다 못한 궁수가 법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나서야 법사는 깜짝 놀라며 궁수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어디 몸이라도 안 좋아?”

법사의 안색은 나쁘지 않았다. 법사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팍 쓰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또 구린내 나?”

궁수의 추측에 대답하듯 법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장난인가 싶었으나 자꾸만 법사가 이렇게 잡고 넘어지니 궁수도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평소 냄새에 민감하게 군적이 없는 법사가 그러니 궁수로서는 더더욱 의아하게 느껴졌다.

“흐음…. 딱히 냄새가 날 만 한 건 없는데.”

궁수는 유심히 가게를 훑어보았으나 딱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그나마 바닥에 떨어진 흰색 털 몇 개정도?

누군가 애완동물을 데리고 들어왔겠거니 하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뭐 불편하면 어쩔 수 없지, 나가자.”

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궁수와 함께 가계 밖을 나섰다. 그제야 법사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편하게 숨을 내쉬었다.

“딱히 느껴지는 것도 없는데….”

게이트나 그런 것도 아니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특별한 힘이 느껴질 리도 만무했다.

한옥 마을은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밝은 모습뿐이었다.

불길하거나 사악한 기운은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흐음….”

결국, 의문만 깊어진 채 찝찝한 한옥마을 투어가 계속되었다.

그날 밤.

다른 동료들이 술판을 벌이며 곯아떨어진 사이 이은우가 조심히 궁수를 불렀다.

“궁수씨! 설마 자요?”

“아뇨, 깨있습니다.”

“빨리 나가죠, 어여쁜 여성분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고요!”

“흐음…. 뭐, 가죠, 갑시다.”

“못 이긴 척 하기는, 빨리 따라오세요.”

법사가 낮에 했던 말들이 생각난 궁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천궁을 집어 들었다.

“무기를 들고 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이게 있어야 마음이 편해서요.”

“천상 헌터시네요.”

“천상계 헌터기도 하죠.”

“빨리 나가기나 합시다.”

천궁을 어깨에 멘 궁수는 화살통까지 옆구리에 걸고 나서야 은우를 따라나섰다.

이은우의 말대로 한옥 마을 뒤편에는 제법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남녀 합쳐 약 50명 정도?

비율은 거의 5 대 5 정도로 썩 나쁘지 않았다.

일행끼리 온 사람도 있고 혼자 온 사람도 있었으나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기대감에 차 있었다.

혹시나 여기서 내 짝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

적어도 궁수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고 그것은 옆에 있는 은우의 표정도 별 다를 바 없었다.

“12시가 되었으니 이제 슬슬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로 보이는 여성 직원이 모인 사람들 앞에서 인원을 정리했다.

일부러 컨셉을 위해 소복을 입었는지 그녀는 처녀귀신 코스프레를 하며 진행을 계속했다.

“어쩌면 여러분들이 가장 기대하셨을 담력시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이미 여러 번 해본 듯 그녀의 진행은 놀랍도록 매끄러웠다.

출발지와 최종 목적지, 그리고 각 루트의 특징까지 완벽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뽑기를 해서 파트너를 정하여 함께 담력시험을 간다.

뽑기에서 어떤 상대가 나올지 모르니 누구와 짝이 될까 기대하게 만들었다.

‘21번인가.’

21번이 적힌 쪽지를 든 궁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던 와중 어떤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아까는 없던 사람이었는데, 그새 왔나?’

뭐 궁수가 모든 인원을 체크하고 있던 것도 아닌지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공교롭게도 그녀의 종이에는 21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궁수가 숫자가 적힌 종이를 보여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은우는 이미 짝을 찾았는지 작업에 돌입한 상태였다.

‘저쪽은 저기 알아서 하겠지.’

궁수가 이은우를 신경 쓰기도 잠시 눈앞의 여성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의 그녀는 부끄러운 듯 궁수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흑발의 생머리, 탱크탑에 돌핀, 그리고 얇은 가디건을 입고 있었다.

눈꼬리가 조금 올라가긴 하였으나 안경을 쓰고 있어 다소 순한 인상이었다.

절로 보호 본능이 솟아나는 그런 여성이었으나 궁수에게는 그저 여자사람일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궁수는 최대한 밝은 인상을 유지하며 그녀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고 아예 말을 다 무시하는 것은 또 예의가 아니었기에 궁수는 최대한 부드럽게 그녀를 대했다.

“준비가 되셨다면 각자 마음에 드는 길을 골라주세요!”

준비된 담력시험 루트는 총 5개.

제법 본격적으로 준비한 듯 모두 울창한 대나무로 가려져 있어 한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미 다른 커플들은 먼저 출발하고 있었다.

“그, 그럼 저희도 갈까요?”

“그러죠, 어디 가고 싶은 길 있으세요?”

“으음…. 4번이요.”

“네, 그럼 4번으로 가죠.”

그래봐야 사람이 준비한 가짜 귀신.

진짜 귀신보다 더한 걸 상대하는 궁수에게 있어서 담력시험이란 일반 산책과 별 다를 바 없었다.

다른 커플들이 모두 들어가고 나서야 궁수는 마지막으로 그녀와 함께 숲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스산하네요.”

“그러게요. 조금…. 무섭네요.”

그녀는 우물쭈물하며 궁수의 옷가지를 조금 잡았다.

일반적인 남자였다면 보호본능에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겠지만 아쉽게도 궁수는 여자의 손보다 헬스장의 철봉을 더 쥐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궁수는 조용히 주변을 탐색하며 담력시험을 이었다.

한 중간쯤 왔을까, 긴장이 풀렸는지 그녀는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통성명도 못했네요.”

“아, 그러네요. 나궁수라고 합니다.”

“네?”

“나 궁수요 나 궁수, 제 이름입니다.”

그래도 언론을 타고 제법 알려진 궁수였는데 그녀는 그런 궁수를 처음 들어보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름을 곱씹고 있었다.

“나궁수, 나 궁수…. 헤헤.”

그러길 잠시 그녀 또한 배시시 미소를 짓더니 궁수에게 말했다.

“저는 천미호, 이름이 좀 특이하죠?”

“저보다는 낫네요.”

“에헤헤, 특이한 사람끼리 만났네요.”

“그러게요, 미호씨는 혼자 오셨어요?”

궁수는 그녀에게 적당히 대꾸해주며 말상대를 해주었다.

궁수도 모르는 새 둘 사이에는 묘한 핑크빛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천미호, 대학생, 22살.

어느새 말까지 튼 천미호가 궁수의 어깨에 멘 활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거 진짜야?”

“뭐? 이거?”

“응, 무슨 활을 가지고 왔길래.”

“아아.”

궁수는 조심스럽게 천궁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 밥줄이야.”

“밥줄? 뭐야? 국가대표 그런 거야?”

“아니, 헌터인데.”

“헌터?!”

실제로 길가에서 궁수를 알아본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음은 물론, 앙케이트에서도 궁수의 인기는 현재 5등 안에 들 정도로 절찬리에 상승 중이었다.

그런 궁수를 모른다니.

‘SNS를 안하나보지.’

그녀는 궁수가 신기한 듯 눈을 빛내며 부드럽게 궁수에게 팔짱을 꼈다.

“그러면 막 마력이나 그런 것도 다루고 그래?”

“마력? 그렇지.”

미호의 부드러운 살결이 궁수의 근육에 닿았다.

갑자기 친근한 척 다가오는 그녀가 궁수는 조금 당황스러웠으나 굳이 그녀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어차피 담력시험은 찰나일 뿐이고 이후로 미호와 궁수가 엮을 일은 없을 것이다.

찰나의 여흥이라 생각하며 궁수는 그녀를 부드럽게 에스코트했다.

“와아아, 대단하다!”

“대단하긴, 매일 죽네 사네 하는데.”

“응? 그래?”

“이 직업이 그렇지 뭘.”

다른 남자였다면 여기서 허세를 부리며 그녀를 꼬셨겠으나 궁수는 진심으로 고개를 휘저었다.

“뭐 난 그렇게 강한 것도 아니고, 다른 멤버들한테 끼워서 버스 타는 거지.”

“버스라니….”

참고로 버스 기사도 버스에는 탄다.

계속해서 친밀감을 드러내는 그녀가 부담스러웠는지 궁수는 조금씩 벽을 세웠다.

그러길 잠시, 계속 되서 막히는 벽에 침묵이 이어졌다.

‘이제 슬슬 다 왔나.’

거의 1시간 가까이 걸었는데 도저히 도착지가 보이지 않았다.

- 흐음….

“왜 그래?”

- 너무 이질적이어서 말이다.

“뭐가?”

- 흐음, 아직은 잘 모르겠군.

궁수는 이상함을 느끼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새 팔짱을 푼 천미호는 비척비척 궁수의 옆에서 함께 걸어 나섰다.

“…이상하다.”

“….”

아무리 길이 길어도 1시간동안 걸었는데 도착지가 나오지 않을 리 없다.

무슨 등산도 아니고 고작 담력시험이 1시간이나 걸릴 리 없지 않는가.

“뭐지?”

“뭐긴 뭐야.”

“음?”

콰악!

“크흑!?”

“어머?”

활을 거세게 휘둘러 궁수가 그녀와의 거리를 벌렸다.

그곳에는 검은 머리 천미호는 어디가고 새하얀 머리칼을 가진 여성이 궁수를 노리고 있었다.

새하얀 머리털에 머리 위로 솟아난 여우 귀, 옷도 가디건이 아닌 야릇한 한복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새하얀 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육감적인 한복이었다.

“뭐냐 너?”

쓰고 있던 안경을 버린 그녀는 아쉬운 듯 손가락을 핥으며 궁수를 바라보았다.

“나? 천미호.”

그 말과 동시에 그녀의 등 뒤로 9개의 꼬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달빛을 받아 빛나는 꼬리.

숨이 멎어버릴 정도로 매혹적인 얼굴.

마지막으로 모델 뺨치는 육감적이 몸매.

- 구미호로군.

남자를 꼬셔 간을 빼 먹는다는 동양 버전 서큐버스, 구미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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