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49화 (49/172)

◈ 49화. 왜 꼴 받게 했어?

“….”

할 말을 잃은 로이드는 입만 뻐끔거리며 궁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S급 헌터인 자신이 직접 한국에 방문하여 일개 A급 헌터를 보러 온다는데, 어찌 저리 당당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저런 복장 차림으로!

적잖게 당황한 로이드를 조롱하듯 궁수는 벅벅 머리를 긁으며 설렁설렁 로이드 앞에 다가갔다.

“뭐, 헬창 처음 봐?”

주머니에서 꺼낸 칼로리 바를 통째로 입 안 가득 으적으적 씹은 궁수는 이내 프로틴을 한 병 마셨다.

“크흐! 맛 죽이네!”

노골적으로 상대를 무시하는 행동이었으나 이는 동시에 S급 헌터를 상대로 전혀 주눅 들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뭐 어쩔 건데?’라는 듯한 포스에 정신을 차린 로이드는 유심히 궁수를 노려보았다.

‘무장이라 해봐야 활이 전부, 그렇다고 특별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로 궁수는 맨몸에 천궁을 가지고 온 것이 전부였다.

적어도 라스트 로빈 후드라고 평가받는 로이드를 상대로는 다소 빈약한 무장이라고 보일 수 있었다.

‘도대체 뭘 믿고 나대는 거지?’

그래도 일인 포대라고 불리는 로이드다.

궁수도 물론 화력 면에서는 밀리지 않지만 로이드가 보유한 스킬이 워낙 화려한 탓에 아직 화력만 따지면 궁수는 로이드에 비해 부족한 것이 실정이었다.

잠시 드넓은 인천 공항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쯧.’

로이드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의 마력이 화악 퍼지며 궁수를 노리며 압박해왔다.

그러나.

‘뭐야?’

로이드의 마력은 궁수를 노리기는커녕 주변에 닿지도 못하고 완전히 와해되고 말았다.

“간지럽다!”

궁수의 옆에서는 가소로운 표정으로 로이드의 마력을 받아낸 나법사는 로이드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무리 로이드가 레벨이 높은 궁수라 하더라도 마법에 천부적 아니 세계를 통틀어 미친 재능을 가진 법사를 상대로는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법사의 마력이 로이드를 압박하며 서서히 그의 주변을 조여 왔다.

“흐읍!”

화아악!

“더! 나대면! 콱!”

로이드는 잔뜩 인상을 쓰고 나서야 겨우 법사의 마력을 물리칠 수 있었다.

물리치긴 하였으나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말없이 법사를 노려볼 뿐이었다.

“뭘 봐?”

추가로 칼로리 바를 하나 더 와작와작 씹어 먹던 궁수의 뒤로 셈과 힐 심지어는 이은우까지 함께 등장했다.

파지지직!

화아아악!

왼쪽에서는 나법사가 금빛 전류를 일으키고 있었고 그 반대쪽에서는 궁수가 마력을 끌어올려 로이드를 노려보고 있었다.

“거 분위기 그만 잡고 내려오지?”

초반 분위기는 완전히 궁수에게 넘어와 있었다.

당황한 이은우가 분위기를 중재하고자 하였으나 셈과 힐이 눈치를 주자 입을 쓱 닫고 뒤로 물러났다.

“칫….”

결국 그는 수행원 몇을 데리고 궁수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 사이에도 마력을 일으켜 팽팽한 기싸움이 있었으나 이쪽에는 마력에 관해서는 끝판왕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존재했다.

“흥! 귀여운! 마력!”

로이드가 궁수 코앞에 오는 순간까지도 그는 법사의 견고한 마력을 조금도 뚫지 못했다.

마력의 양도 양이지만 질과 마력의 운용 수준이 너무나도 현저하게 차이나기 때문이었다.

“뭘 바라는 겁니까.”

“바라긴 뭘 바래, 내가 불렀냐?”

한쪽은 영어로 다른 한쪽은 한국어로 대화를 하는 상황.

다행히도 이은우와 로이드 측 비서의 매끄러운 진행 덕분에 대화는 별 탈 없이 이어졌다.

“하찮은 애송이가…”

“애송이한테 줫발리는 늙은이가 요기 있네?”

로이드의 고요한 눈빛이 궁수를 마주했다. 마치 서로 불꽃이 튈 듯 서늘한 눈싸움이 이어졌다.

기자들은 눈에 불을 키고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으르렁거리기도 잠시 먼저 굽히고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로이드였다.

“선배로서 알려주마, 궁수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왜 네가 선배냐? 내가 쏴도 너보다 만 발은 더 쐈다.”

“내가 5년은 먼저 헌터의 길에 들어왔다.”

“1년도 안 되서 따라잡힌 소감은?”

으드득.

콰드드득.

“자아! 자자! 이쯤 하시고!”

보다 못한 이은우가 상황을 중재하고 나서야 분위기가 조금 풀렸다.

“두 분 모두 궁수인데 양궁장이라도 가셔서 활이라도 좀 쏘시는 게 어떨까요?”

“양궁장이요?”

‘궁수 = 양궁장’이라는 편협하기 짝이 없는 사고방식이었으나 지금 상황에서는 썩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콜, 어디 로빈 후드 활 솜씨나 좀 봅시다.”

“흥, 가짜 궁수의 실력 따위 불 것도 없지.”

“그러면 이렇게 하죠, 더 잘 쏘는 쪽이 이기는 걸로, 치고받고 싸울 수도 없잖습니까.”

그리하여 순식간에 궁수와 로이드의 활 대결이 성사되었다.

물론 이 먹음직스러운 소재를 각종 매체들이 놓칠 리 없었고 순식간에 입소문을 탄 방송국들이 떼거지로 몰려 둘의 활 대결을 촬영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거의 국제 대회나 다름없을 정도로 일이 커져버리고 만 것이다.

“후, 오늘도 상태 죽이네.”

- 물론, 저 놈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도록.

“당연한 소리 하고 있어.”

궁수는 현역시절 느끼던 감정이 향수로 몰려왔다.

다시는 느끼지 못 할 거라 생각했던 이 기분을 다시 느낄 줄은 몰랐기에 궁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수없이 모여든 인파, 각종 유명 방송국의 카메라 장비는 마치 실제로 궁수의 현역시절을 회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궁수의 현역시절 성적은.

국내 모든 대회 우승.

압도적이다 못해 폭력적인 궁수의 실력은 당시 양궁 메달리스트들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런 재능을 가진 궁수가 헌터까지 되었으니,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채팅창에서는 로이드 VS 나궁수로 한창 실랑이가 일어나고 있었다.

[아무리 국뽕이 심해도 이건 로이드지;]

ㄴ 로이드 부캐냐?

ㄴ 이 새끼 쳐내.

ㄴ 감히 궁수님을 의심해? 감히 궁수님을 의심해? 감히 궁수님을 의심해?

[S급 헌터면 뭐함 화력이나 데미지는 몰라도 활 솜씨는 궁수한테 안되지ㅋ]

ㄴ 그걸 네가 어찌 아누?

ㄴ 방구석 전문가인 내 견해로 봤을 때 이게 맞음

[한국인이면 궁수 빱시다.한국인이면 궁수 빱시다.한국인이면 궁수 빱시다.한국인이면 궁수 빱시다.한국인이면 궁수 빱시다.]

가히 광기에 가까운 궁수의 신도들이 채팅창읠 점거하듯 로이드 파를 숙청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나궁수 대 로이드의 저격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

언제 왔는지 관중석을 가득채운 사람들이 힘찬 함성을 질렀다.

궁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순식간에 국내 최정상급 대회가 만들어지고 만 것이다.

짤막한 소개가 끝나고 바로 대회가 시작되었다.

먼저 저격.

1km 밖에서 지름 30cm 짜리 원판을 저격하여 얼마나 높은 정확도를 보여줄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양궁 선수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이곳에 있는 두 사람은 헌터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실력자 들이었다.

그들이 지금 느끼는 감정은 ‘어렵네’나 ‘저걸 어떻게 맞춰’도 아닌.

“재밌겠네.”

“흠, 흥미롭군.”

이었다.

먼저 로이드가 활을 들고 성큼 앞으로 나섰다.

궁수 입장에서는 먼저 하던 나중에 하던 저 양놈은 가볍게 찍어 눌러줄 수 있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잠시 저 멀리 있는 콩알만 한 과녁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내 서서히 시위를 당겼다.

마력이나 스킬은 사용하지 않는 순수한 활 실력.

숨을 들이쉬고 내뱉길 반복한 그가 눈을 빛내며 화살을 발사했다.

쐐애액!

시위를 떠난 화살은 포물선을 그리며 쭉 과녁을 향해 날아갔다. 약간의 바람까지 계산한 완벽한 화살은.

콰직!

정확히 과녁의 정중앙을 적중시켰다.

와아아아아!

관중석의 일반인들 에게는 거의 신기나 다름없는 행위였기에 당연히 그에 걸맞은 찬사가 터져 나왔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로이드가 ‘봐라, 이게 나야~’라는 표정으로 궁수를 힐끗 살펴봤다.

그러나 열광하는 관중들과는 달리 궁수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별 거 없네.”

그렇게 온갖 폼은 다잡더니 고작 한발이라니.

콧방귀를 뀐 궁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이드는 다른걸 보여줄 마음은 없었는지 순순히 궁수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어디 한번 할 수 있으면 해봐라.’

여유로운척하고 있지만 그에게 있어서도 이번 저격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스킬이나 마력의 도움 없이 이 거리를 저격하라니.

그나마 변수가 많은 전장이 아니라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라도 적중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흥, 끝까지 쌘척하기는.’

팔짱을 낀 로이드가 뒤에서 궁수를 노려보았다. 혹시나 마력이나 스킬을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정도면 되겠네.’

궁수의 과녁은 로이드의 과녁으로부터 약 1미터정도 떨어져 있었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살짝 거슬리긴 하였으나 궁수는 여의치 않았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극복하는 것이다.”

- 오 멋진 대사로군.

“응, 바람 때문에 놓치면 네 탓 하려고.”

- 뭣!? 그게 왜 내 탓이란 말이냐!

“천궁이 태풍도 아니고 고작 바람 하나를 못 뚫는 게 말이 되냐?”

- 그건…! 끄응!

궁수가 잠시 눈을 감고 주변의 소리들을 음미했다.

관중들의 함성소리, 시끄러운 호루라기 소리 심지어는 각종 노래 소리까지.

현역 시절 고도의 집중력 훈련을 받아온 궁수에게 있어서 시끄러운 소리는 큰 의미가 없었다.

궁수가 잠깐 겨눈 화살촉을 바라본 것만으로 주변의 소리가 마치 끊어지듯 사라졌다.

그야 말로 어마어마한 집중력!

눈을 깜빡이며 영점을 맞춘 궁수는 별 고민도 없이 세 발의 화살을 발사했다.

바람을 뚫고 날아간 첫 번째 화살이 먼저 궁수의 과녁 정중앙을 적중시켰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두 번째 화살이 먼저 박혀있던 궁수의 화살을 꿰뚫고 또 다시 정중앙을 관통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궁수의 세 번째 화살.

“저건 조금 왼쪽으로 빠지는데?”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쭉 날아간 세 번째 화살은.

콰직!

그대로 꽂혀있던 로이드의 화살을 부러트리며 정중앙을 차지했다.

“뭐야…?”

“허어어, 아니 허어….”

이전 로이드 때 들려왔던 함성 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로이드가 사람들을 열광시키게 했다면 궁수는 화살 세발로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고도의 묘기에 관중은 물론 로이드조차도 눈을 껌뻑이며 방금 일어난 일을 곱씹고 있었다.

그리고 곧.

와아아아아아아악!

정말 경기장이 떠나갈 정도로 커다란 함성이 궁수를 치켜세웠다.

가히 월드컵에서 한국이 독일을 2대 0으로 이겼을 때의 느낌이랄까?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싸움을 이겨버렸다.

내심 궁수가 이기길 바랬던 관중들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오프라인의 관중들도 이 정도인데 온라인인 채팅창은 오죽하랴?

[나궁수!나궁수!나궁수!나궁수!나궁수!나궁수!]

[이게 국산이드아아아아악!]

[나궁수 신은 그인가?나궁수 신은 그인가?나궁수 신은 그인가?나궁수 신은 그인가?]

[거… 로이드는 뭐 없나?]

[씨팔 S급인데 줫밥일 수도 있지 왜 꼽을 주고 그러냐.]

ㄴ 영국 품질 딸리는거 보소 ㅋㅋㅋ

인간의 진정한 광기가 드러나는 인터넷 채팅은 이미 광란의 도가니였다.

카메라를 향해 브이를 그리며 살짝 웃어준 후 궁수는 단상에서 내려왔다.

궁수는 로이드와 눈을 마주치며 작게 입모양으로 말했다.

‘큐’

‘트’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귀엽네ㅋ. 정도가 되리라.

다시 말해서 궁수가 보기에 로이드의 활 솜씨는 너무나도 귀여운 수준이다 이 말이었다.

당장에 뭐라고 하고 싶은 로이드였으나 그럴 수도 없는 게 궁수가 보여준 활 솜씨가 워낙에 압도적이라 뭐라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그 묘기를 성공시켰을 때 그는 벽이 느껴진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데미지는 몰라도 궁수로서의 재능은 압도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재능은 얼마 지나지 않아 궁수와 로이드의 헌터로서의 차이를 확 좁혀버릴 것이다.

하지만 압도적인 재능의 차이를 느끼는 것은 이제 시작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일을 알지 못한 로이드는 찝찝한 표정으로 대회를 이어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