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쟤가 꼴받게 하잖아.
“아으으…. 머리야, 어제 너무 달렸나.”
다음 날 아침 광란의 치킨 파티를 보낸 궁수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으으 뻐근해.”
평소 근육에 좋지 않아 알콜을 자제하는 궁수에게 있어서는 오랜만의 음주였다.
신나는 분위기, 맛있는 치킨 속에서 궁수는 도저히 술을 마시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과음을 해서 그럴까 궁수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벌컥벌컥.
“크흐으으!”
냉장고에는 어머니가 만들어준 유부초밥이 궁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콤달콤한 유부초밥, 심지어 안에는 참치마요나 스팸 등 궁수가 좋아하는 것들이 푸짐하게 들어가 있었다.
초딩 입맛인 궁수에게 있어서는 더 할 나위 없는 특별식이었다.
라면까지 끓여 끼니를 때우던 궁수의 휴대폰에서 메신저 알림음을 울렸다.
차톡!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라고 생각하며 궁수는 대차게 알림음을 무시했다.
그러나.
차톡!차톡!차톡!차톡!차톡!차톡!차톡!차톡!차톡!차톡!차톡!차톡!차톡!차톡!차톡!
“시팔 뭐여 무서워.”
무수히 울려대는 알림음에 결국 궁수는 식사를 하다 말고 휴대폰을 들었다.
메신저의 원인은 다름 아닌 빌어먹을 프로틴 프로의 사장, 허가연이었다.
[허가연 - 야야야야]
[허가연 - 야야]
[허가연 - 야야야야야야]
[허가연 - 야야야야야야야]
[허가연 - 야야야야]
“이건 뭐 초딩도 아니고….”
아무리 봐도 매너는 내다버린 행동이었으나 궁수는 참고 그녀에게 답장했다.
[나궁수 - ㅇ]
[허가연 - ㅎㅇ?]
[나궁수 - ㅇ]
[허가연 - 이거 봄?]
[허가연 - 링크]
허가연이 보낸 링크는 다름 아닌 인터넷 기사 링크였다.
‘보나마나 그런 기사겠지.’
어제 각종 신문사에서는 쉴 틈도 없이 궁수와 법사의 활약을 홍보했다.
[괴물 듀오 탄생!]
[쾅쾅! 펑펑! 대검보다 시원한 마법사! 나법사!]
[아아, 이것이 ‘궁수’라는 것이다!]
[호주 구조대 영웅 나궁수 등장에 세계가 ‘들썩’]
[활이 제일 쉬웠어요 - 나궁수 단독 인터뷰.]
“단독 인터뷰는 개뿔이 인터뷰 하지도 않았구만.”
수많은 방송사, 신문사에서 인터뷰를 제안했으나 궁수는 모조리 씹어버리고 당장 집으로 들어왔다.
당장의 인기와 명예보다는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궁수는 어차피 그런 내용의 기사이리라 생각하며 허가연이 보내준 링크를 들어갔다.
로딩이 끝나며 마치 프린터가 종이를 뽑아내듯 기사의 헤드라인부터 서서히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영국의 라스트 로빈 후드 나궁수 실력 모두 거품이야.]
‘활은 쏠 줄도 모르는 애송이, 적어도 쥐는 법부터 배우고 쏴라 발언!’
“음?”
보통 기사의 제목이 자극적인데 내용은 제목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다.
궁수도 그런 종류로 생각하며 별 감흥 없이 기사를 읽었으나 그 내용은 제법 충격적이었다.
“뭐가 어쩌고 저째?”
하지만 제목과 일치하는 기사의 내용에 궁수의 표정을 와락 구기기 충분했다.
다시 말해서 타국의 랭커급 궁수가 자신을 저격했다 이거다.
“이 빌어먹을 놈이?”
성격 지랄 맞은 사람을 뽑는 대회가 열린다면 단연코 3등 안에 들어가는 나궁수다. 그런 궁수의 지랄 맞은 성격에 불이 붙었다.
“이 새끼가 이제 좀 발 뻗고 살아보려는데 시비를 걸어?”
아무리 궁수라도 알 수 있었다. 랭커급이나 되는 궁수가 자신을 저격하는 의미를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 수가 적은 궁수 헌터에게 있어 돕고 살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견제를 한다니.
그것도 자신의 활 솜씨를 무시하다니!
다른 놈을 무시하는 건 참을 수 있어, 하지만 날 무시하는 건 참지 못해!
그렇다.
한국 최고의 지랄견 나궁수가 각성하고 만 것이다.
괜히 병먹금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니거늘.
궁수는 다짜고짜 허가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이 양놈에게 한국의 알싸한 마늘 맛을 보여주리라.’
잠시 통화 연결음이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가연이 전화를 받아들었다.
“여보세요?”
“어, 기사 봤어.”
“설마 그거 때문에 아침부터 전화한 거야?”
궁수는 잠시 목을 가다듬고 허가연에게 말을 이었다.
“그래, 금방 처리하고 올게.”
“뭐? 뭘 처리해.”
“날 건들고 목 한 개면 싼 편이지.”
“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허가연은 아침부터 시작된 궁수의 개소리에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궁수의 연속된 개소리였다.
“내 친구를 건드는 건 이해할 수 있어.”
“…”
“하지만 날 건드는 건 용서하지 못해!”
“어휴.”
뚝.
“마포동 피바라기로 돌아갈 때…. 끊었네.”
계속되는 짖음에 지친 허가연은 결국 궁수의 전화를 끊어버렸다.
기사 자체는 별로 파급력이 없었다. 마치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다른 기사들에 순식간에 쓸려나갔다.
심지어 반응도 모두 궁수를 감싸는 쪽으로 댓글이 달려 그다지 큰 의미는 없었다.
그러나 궁수는 은혜는 작게 복수는 크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는 주의였기에 궁수는 다짜고짜 이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궁수님 어쩐 일로 아침부터 전화 주셨습니까.”
“아는 기자 있어요? 최대한 이름 있는 사람으로.”
“네? 기자요?”
“있어요, 없어요, 그것만 말해요.”
“있기야 하지만…. 또 무슨 지랄을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궁수의 통화를 받은 은우는 이마를 짚으며 턱을 괴고 통화를 이었다.
뭐가 되었든 정상적인 일은 아닐 것 같았기에 그는 벌써부터 뒤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있으면 연락처 좀 줘요.”
“하… 뭐 이상한 거 아니죠?”
“특보임, 씹특보.”
“뭔데요.”
“안알랴줌, 빨리 주기나해요.”
“아니, 그러니까 그게 뭔…. 아오, 끊었어 이 인간!”
그 뒤로 5분쯤 지나자 궁수의 메신저로 연락 한 개가 날아들었다.
[인기자 - 안녕하세요, 이은우 헌터님 통해 연락드립니다.]
[나궁수 - 안녕하세요, 좀 내용이 기니 만나서 이야기하시죠.]
그날 또 다시 궁수의 발언이 신문의 제1 면은 물론 인터넷 기사도 거의 궁수의 발언으로 도배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다건너 사는 영국 활쟁이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허, 뭐가 어쩌고 저째?”
[단독 취재 - 나궁수 ‘라스트 로빈 후드’에게 네 모친 멱살은 쥘 수 있어 발언.]
“아니, 이게 무슨! 아, 허어! 어이가 없군!”
한국의 알싸한 김치맛 패드립을 맞은 로이드는 당황하여 뭐라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꽈아악.
다이아몬드도 부숴버릴 듯 강하게 주먹을 쥔 로이드가 버튼을 눌러 개인 매니저를 호출했다.
유명 헌터답게 매니저가 빠릿빠릿한 움직임으로 로이드 앞에 다가왔다.
로이드는 이를 악물고 최대한 화를 누그러트리며 매니저에게 말했다.
“한국행 비행기 하나 예약해. 기자들한테 나 한국 간다고 기사도 좀 띄우고.”
“예?”
로이드의 갑작스러운 변덕에 당황한 매니저는 잠시 횡설수설하며 주변을 살폈으나 이내 포기하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시간은 어떤 걸로 잡아드리면 될까요.”
“제일 빠른 걸로.”
“그럼 기사를 쓸 시간까지 생각해서 내일 쯤 잡겠습니다.”
“그래.”
끼이이이익. 철컥.
“어딜 이제 막 일어난 햇병아리 같은 놈이….”
자리에서 일어난 로이드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평화로운 런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와 다른 헌터들이 노력하여 일구어낸 작은 평화였다.
“누가 위인지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려주마.”
팔짱을 낀 그의 손에 확 힘이 들어갔다.
***
“야, 궁수야 얘 한국 온다는데?”
“누구요?”
“로이드.”
“얼씨구?”
궁수는 쇠질을 하다 말고 가연의 스마트 폰을 건네받았다.
그곳에는 정말로 로이드의 방한 관련 기사가 떡하니 올라와 있었다.
[로이드 첫 방한 한국의 거물 유망주 나궁수를 만나고 싶어….]
쭉 기사를 내려 보았으나 결국은 그거였다. 내일 오후 한국에 로이드가 온다는 것이다.
기사를 다 읽은 궁수는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키보드 싸움 처발리더니 현피 뜨러 오나보네.”
“S급이 A급 상대로 정말 추하다 추해.”
호주에 다녀온 직후 궁수와 법사의 헌터 등급은 A급으로 격상된 상태였다.
원래라면 정부 측의 지명 의뢰를 받아야 하지만 워낙에 처리한 일이 거대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 둘의 승격을 말리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어째서 S급이 아니냐며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등장할 수준이었으니 당장에 A급은 아무 문제도 없었다.
어쨌든 A급 헌터 나궁수.
그 나름대로 상위 헌터에 진출한 것이다.
물론 S급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그 무시무시한 성장 속도를 생각 했을 때 궁수의 S급을 의심하는 헌터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는 그 위를 노린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 로빈후드가 직접 만나러 온다니! 성공했군!”
“뭘 성공해요, 당장에 S급 헌터랑 현피 뜨게 생겼구만.”
“강자와의 대결에서는 늘 배울 점이 많지!”
“제가 더 쌔니 배울 건 없겠네요.”
궁수는 한 개에 200KG가 넘는 특제 아령을 한손으로 들어 올리며 멍하니 생각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놈을 엿 먹일 수 있을까.’
물론 당장에 화력이나 공격력 자체는 S급 헌터인 로이드가 더 높다.
레벨이 만든 스테이터스와 스킬의 압도적인 차이는 아무리 궁수가 날고기는 헌터라고 하더라도 무리가 있었다.
지금 궁수가 들이밀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순수한 활 솜씨였다.
뭐 중량이나 그런 것도 자신이 있었으나 궁수 두 명이서 하는 것이 중량 대결이라니, 그건 좀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마중 나갈 거야?”
“마중은 얼어 죽을, 내가 왜 가? 지가 찾아와야지.”
“찾아 온건 로이드인데.”
“내 앞까지 안 왔잖아.”
“무슨 초딩도 아니고….”
아무리 궁수라고 하더라도 로이드도 이름 있는 S급 헌터다.
궁수라는 직업이 답도 없던 어둠기 시절부터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활을 들어, 오죽하면 라스트 로빈 후드라는 별명마저 얻은 사내다.
궁수계에 있어 마지막 희망과도 같은 그가 직접 한국에 온다니.
직업이 궁수인 헌터는 물론이고 일반 헌터들도 관심을 가질 큰일이다.
더군다나 그가 직접 특정 인물을 언급하면서 까지 한국에 방한한다니.
궁수가 너무 태평해서 그렇지 적어도 이렇게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그 시간에 쇠질 한번을 더하고 말지.”
“푸하하하! 그렇지! 좋은 마음가짐이다!”
그리하여 대망의 다음날 오후 5시.
로이드가 몸을 실은 비행기가 인천 국제공항에 착지했다.
그가 기품 넘치는 걸음으로 게이트에서 나옴과 동시에 수많은 기자들이 셔터를 터트렸다.
찰칵!찰칵!찰칵!
“이놈의 인기란….”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로이드는 싱긋 가짜 웃음을 지으며 기자들을 응대했다.
그의 첫 방한이다.
다 쓰러져가는 나라라면 몰라도 상대는 게이트 처리율이 5위 안으로 들어가는 한국이다.
적어도 로이드가 쉽게 무시할 수 있는 나라는 아니었다.
그렇게 카메라 셔터소리가 공항을 울리기도 잠시 서서히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로이드를 향해 쏟아졌다.
“로이드씨! 갑작스럽게 방한 계획을 세우셨는데요! 정말로 나궁수 헌터를 보기 위해 찾아온 것이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떠오르는 궁수계의 초신성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아하하!”
“오오오오오!”
S급 헌터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특종이 될 수 있었기에 기자들은 녹음기, 카메라 등 전력으로 그의 발언을 기록했다.
몇 개인가 영양가 없는 질문이 지나가고 다음 질문이 들어왔다.
“혹시 나궁수 헌터를 ‘레인저스’에 영입하고자 직접 찾아오신 겁니까?”
레인저스.
다름 아닌 로이드가 직접 운영하는 헌터 길드였다.
정규 길드는 아닌 주로 용병 형식으로 길드를 꾸려나가고 있으며 그 수준은 영국에서도 직접 의뢰를 넣을 정도로 상당히 높다.
그런 레인저스 길드에 나궁수 헌터라니.
‘뭐, 무릎 꿇고 빌면 넣어주지 못할 것도 없지.’
아무리 로이드가 궁수를 업신여긴다 하더라도 궁수의 재능마저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자신 또한 활을 사용하기에 알 수 있었다. 궁수의 수준을 말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밉보였다고 한들 궁수의 재능이 탐나는 것은 그로서도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기에 로이드는 적당히 돌려서 표현했다.
“본인이 들어오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있다면 고려해보지 못할 것도 없죠.”
“안 갈 건데, 혼자 뇌내망상 오지네.”
“뭣!?”
“나궁수 헌터!?”
“뭐야! 찍어! 일단 찍어!”
“특종이다! 빨리 방송국 연락해!”
궁수가 질겅질겅 껌을 씹으며 인파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후드티에 검정 슬랙스에 사선 슬리퍼, 로이드가 갖춰 입은 정장에 비하면 몹시 가볍기 그지없었다.
“하이? 아니면 헬로우?”
그것도 S급 헌터인 로이드를 만날 때 입을 복장이라고는 볼 수 없는 매우 프리한 차림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