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성채로 날려버려(2)
남은 마력 포션을 전부 들이킨 궁수가 이를 악물고 시위를 당겼다.
법사는 쉬고 있었기 때문에 마력은 차고 넘치는 상태였다. 법사의 마법 문자와 궁수의 마력이 고고하게 울려 퍼졌다.
쿠콰콰콰쾅!
“끼에에에에엑!”
소름 돋는 고깃덩이의 비명이 전장을 흔들었다. 괜찮은 척 하였으나 천궁을 쥔 궁수의 손에는 땀이 맺혀있었다.
“뭐야, 저 둘은 왜 저기 있는 거지?”
다급히 후퇴하던 유강한의 눈에 궁수와 법사가 들어갔다.
다들 도망가기 바쁠 때 저 둘은 도망은커녕 마력을 일으키고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걸 바라본 유강한의 가슴 속이 마치 불이 붙은 듯 화악 타올랐다. 순간 적을 피해 도망치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도망치다 말고 멈춰선 유강한이 푹 고개를 숙였다.
“사람을 지킨다는 사람이…”
유강한이 도망치다 말고 마력을 담아 소리쳤다.
그렇지 않아도 목청이 좋은 유강한이 마력을 담아 소리치자 전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전부 멈춰어엇!”
가장 먼저 발을 멈춘 것은 S급 헌터들이었다. 자신들의 수장격인 S급 헌터들이 멈추자 그 산하의 헌터들도 발을 멈췄다.
“우리는! 나라를 지키고 지구를 지키는 헌터입니다!”
유강한의 처절한 목소리가 헌터들의 귓가를 울렸다.
“저 둘을 보십시오! 모두 도망갈 때 저 헌터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헌터들은 잠시 멈춰서 궁수와 법사를 바라보았다.
뭔지는 몰라도 그들에게 느껴지는 저릿한 마력은 적어도 도망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저들도 이렇게 공격을 준비하는데 우리가 이렇게 도망쳐서야 되겠습니까!”
“….”
“이곳에서 우리가 후퇴하면 이곳은 누가 지키라는 겁니까!”
도망만 생각하던 헌터들이 부끄러움에 고개를 속였다. 물론 모든 헌터들이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제법 많은 수의 헌터는 물론이요 S급의 헌터들이 유강한의 말에 찬동하는 모습을 보이니 그들로서는 선택지가 단 하나밖에 없었다.
“갑시다! 저 고깃덩이에게 헌터의 무서움을 보여줍시다.”
유강한의 처절한 연설에 헌터들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그것도 잠시.
“시팔, 혼자 멋있는 척 하고 말이야!”
카른이 창을 꼬나 쥐고 강한의 옆에 섰다.
“허, 이러면 내가 뭐가 된다는 거야.”
역시 구조대를 자처했던 S급 헌터들, 의리와 용기로 똘똘 뭉친 그들이 모두 유강한의 옆에 섰다.
그 산하의 헌터들 또한 그들 옆을 지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저 둘을 지켜라!”
“최대한 버텨! 있는 대로 쏟아 부어!”
“마법사들은 와서 마력 포션 다 받아가요!”
“버프도 있는 대로 걸어! 여기서 밀리면 다 끝이야!”
헌터들의 눈에는 더 이상 공포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강렬한 전투에 대한 열광과 희망만이 그들의 가슴을 울렸다.
“와아아아아!”
“가자! 우리 땅을 지키는 거다!”
“들어가자아악!”
아래에서 한창 신파극이 일어날 동안 궁수와 법사는.
“저거 터트리면 쾌감 개쩔겠다.”
“쾅쾅!”
“크흐, 경험치는 얼마나 주려나.”
“펑펑!”
“야, 그냥 나 혼자 터트리면 안 되냐?”
“싫다! 내거다!”
“뭐래, 내건데.”
군침을 다시며 서로 누가 먼저 터트릴지 경쟁하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
근접 헌터들은 짐을 옮기고 폭탄 등 여러 가지 전투 병기를 준비했다.
여러 상위 마법사들은 마력을 일으켜 캐스팅에 들어갔다.
“전군 발포!”
“마법 전개!”
콰아아아앙!
헌터들이 먼저 선공을 날렸다. 그들 나름의 강력한 결전기가 고깃덩이를 타격했다.
이를 지켜본 궁수와 법사는 발등에 발이 떨어졌다.
“아씨, 이러면 경험치가 딸리잖아!”
나법사는 더욱 빠르게 캐스팅 속도를 끌어올렸다. 궁수는 마력 화살을 만들 마력도 전부 화살 한발에 끌어올렸다.
휘이이잉.
한차례 헌터들의 공격이 잦아들었다.
법사의 머리 위에는 거대한 마법진이 빛을 발하고 있었고 궁수의 앞에는 빛나는 붉은 조준선이 적을 저격하고 있었다.
“마관광살포오오!”
먼저 법사의 마법이 작렬했다. 거의 두께 1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광선이 전장을 수놓았다.
화아아아아악!
먼저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온 광선이 고깃덩이의 절반을 날려버렸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아직 괴물은 죽지 않았다. 놈은 고통스러운 듯 고깃덩이를 비틀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뉴클리어 런치 디택티브 이 새꺄!”
뒤이어 궁수의 붉은 조준선이 새빨간 화살을 발사했다. 전장에 붉은 선이 그어졌다.
그리고는.
삐이이이이.
“어어?”
얼마나 그 소리가 거대한지 귀에 이명이 울릴 정도였다. 새하얀 섬광이 고깃덩이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고요한 폭발이란 게 이런 걸까.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고깃덩이가 완전히 궁수의 폭발에 휩쓸리자.
퍼어어어엉!
“흐어어어?!”
그제서야 엄청난 굉음이 궁수는 물론 헌터들의 귓가를 후려쳤다.
[레벨업! - LV. 101]
[레벨업! - LV. 102]
[레벨업! - LV. 103]
[레벨업! - LV. 104]
[레벨업! - LV. 105]
무려 다섯 개의 레벨이 증가하며 전투의 끝을 알렸다.
“어…?”
너무나도 압도적인 화력에 일순간 다른 헌터들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을 아는 데는 제법 시간이 필요했다.
연기가 가라앉고 초토화된 마물의 모습이 드러났을 때.
“죽…. 었나?”
싸늘하게 식은 고깃덩어리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겼어…!”
“이겼어! 이겼다고!”
“와아아아! 이겼다! 이겼어!”
“와아아아아아아아!”
기쁨에 찬 헌터들이 목이 터져라 소리 질렀다. 모두 승리의 기쁨을 전력으로 만끽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썩 나쁘진 않네.”
언덕에 털썩 주저앉은 궁수가 전장을 둘러보았다.
기쁨에 얼싸안고 소리 지르는 헌터부터 감격한 듯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 등 여러 헌터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기쁨을 허용하고 있었다.
“…. 음? 저게 뭐야?”
주변을 둘러보던 와중 궁수의 시야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들어왔다.
하얗게 타버린 살점 속 붉게 빛나는 무언가는 궁수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나 잠깐만 다녀올게.”
“으헤헤헤…. 펑펑….”
“…어휴.”
한계까지 마력을 사용한 나법사는 만족한 듯 순식간에 곯아떨어졌다.
전투의 승패 따위는 관심도 없는 듯 세상 평온한 표정이었다.
헌터들을 뒤로한 궁수는 가까이서 보석을 바라보았다.
손 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보석은 마치 루비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다.
“이게 뭐지?”
분명 일반적인 보석은 아닐 것이다. 흔들어도 보고 두드려도 봤지만 보석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거 뭔지 알아?”
- 흠, 나라고 모든 걸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온갖 아는 척은 다 하더니.”
- 크흠.
궁수가 빤히 바라보기도 잠시 갑자기 보석이 밝게 빛나며 두꺼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휴, 이제야 받네, 레이나, 그쪽은 어때?]
‘뭐야? 레이나? 설마 서큐버스 퀸의 본명인가?’
[오랜만의 통신인데 왜 말이 없어, 그쪽 땅에 들어온 놈들은 다 죽였지?]
“…”
[곧 한 번에 인간 놈들을 깡그리 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아, 뭐 잘 교육시켜서 노예로 쓰면 되겠지.]
남자는 인간을 마치 짐승으로 생각하는 듯 마치 가축을 가리키는 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짐승은 짐승 중에서도 미친개로 평가되는 나궁수였다.
“난 네가 누군지 모른다, 뭘 원하는지도 모른다.”
궁수의 대답을 들은 보석 너머의 남자가 목소리를 깔고 으르렁거렸다.
[…누구냐 넌.]
“노예를 원하는 거라면 안됐지만 노예는 없다.”
[….]
“다만 남다른 재주는 있다.”
궁수가 잠시 목을 가라앉히고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밥 먹고 해온 짓이 헬스 뿐이라.”
[…]
“너 같은 놈에게 PT를 해줄 수 있지.”
[뭐라…. 는 거냐.]
궁수는 차분한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지금 바로 네놈의 정체를 말한다면, 여기서 끝내겠다. 널 찾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정체를 말하라 함은 사실상 찾아서 죽이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
“허나, 아니라면, 널 찾아내서 네 주둥이에 닭가슴살을 마구 쑤셔 넣어주겠다.”
[….]
“그것도 물 없이.”
[굿 럭.]
콰직!
그 말을 끝으로 보석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궁수가 부순 것이 아닌 보석 자체가 혼자서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쯧, 자비를 베풀어 머스타드 정도는 주려 했는데.”
- 흠, 닭가슴살을 물 없이 먹인다니, 차라리 신문지를 씹어 먹는 게 낫겠군.
아쉽게도 그 이외에는 다른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흐음, 뭔지 알겠어?”
- 글쎄다. 아무튼 뭔가 또 거대한 놈이 올 거라는 건 알 수 있겠군.
“역시 그렇겠지….”
***
호주에서의 귀환은 퍽 편안했다. 오죽하면 각 국가에서 먼저 전용기를 보내 자국의 헌터들을 모셔오고자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궁수 또한 대안항공의 비즈니스 석에 몸을 실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악! 팔! 팔이!”
“왜 그래요 셈!? 또 어디 아파요!?”
“팔 한쪽이면 중량이 떨어지지 않는가!”
“와! 그런 존나 참신한 이유라니! 셈 맞을래요?”
“으윽, 그건 싫으니 조용히 있겠네.”
질주하는 비행기는 그 이후로 꼬박 3시간을 더 달려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한국의 정겨운 매연 향기. 김치의 알싸한 냄새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출입문 열립니다.
입국 게이트가 열리고 한국 국적의 헌터들이 당당히 안으로 들어왔다.
찰칵!
셔터 소리가 한번.
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
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
“눈부셔!”
거의 이 정도면 한국의 모든 기자들을 데려온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공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다른 헌터들도 최소 기자가 열 댓명 씩 달라붙는데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 궁수와 법사에게는 말 할 것도 없었다.
“나궁수 헌터님 인터뷰 한번 부탁드립니다!”
“법사님! 이쪽 한번만 봐주세요!”
“헌터님! 아직 B급인데 그렇게 강한 비결이 있나요!”
“헌터님!”
“헌터님!”
거의 전체의 90%에 달하는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다른 유강한이나 한가은 같은 S급 헌터를 가볍게 누르는 인기였다.
“하, 이놈의 인기란.”
몰려드는 인파 속 궁수는 마치 기자회견이라도 하는 듯한 기자의 마이크를 쥐었다.
“보았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
“노라!”
매우 장난스럽기 짝이 없는 인터뷰였으나 공항에 있는 사람 중 아무도 이를 나무라는 자는 없었다.
적어도 헌터가 아닌 그들에게 있어서 궁수는 자국의 헌터를 구한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모든 인터넷 기사는 물론이고 각종 뉴스, 매체에서도 궁수와 법사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전 호주의 원정대에 대한 일로 인해 침울해있던 국내 정서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었다.
“와 엄마 내가 티비에 나와!”
“어머머머! 뭐야! 우리 아들 잘생겼네!”
“키야 조명 없어도 얼굴 죽이네!”
“뭐야, 이제 아들 연예계까지 진출하는 거냐?!”
“하, 여배우님 이러시면 곤란하다니까요.”
“여배우는 옘병!”
그날 저녁 궁수의 집에서는 맥주와 치킨이 함께하는 활기찬 파티가 열렸다.
***
영국의 한 빌딩.
그곳에서는 초록 모자를 쓴 남성이 다리를 꼬고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쯧, 궁수 영웅은 무슨 빌어먹을 궁수 영웅.”
유창한 영어를 줄줄 뱉어내는 그는 다름 아닌 영국의 유명 궁수 로이드였다.
라스트 로빈 후드라고 불리는 그는 궁수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불리 울 정도로 궁수계에 있어서는 단연 독보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최근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헌터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나궁수였다.
헌터가 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자기보다 상위 등급 게이트를 쓸어버리고 심지어는 최근 호주에서 크게 활약하며 자꾸만 로이드의 입지를 흔들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이제 궁밑로.
궁수 밑 로이드 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자존심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에게 있어서는 궁수란 매우 껄끄러운 존재임에 틀림없었다.
“보나마나 뒷돈 좀 써서 올라온 애송이겠지.”
말이 안 된다. 궁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혼자서 게이트 클로징? 그것도 호주에서는 성을 통째로 폭파시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보다 못한 그는 휴대폰을 들어 헌터에 대한 정보로는 유명한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사를 하나 내려는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