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45화 (45/172)

◈ 45화. 피지컬 아처, 두두둥장.

2차 전직.

상위 헌터들이 경험한 가장 강력한 성장.

단지 전직하는 것만으로 비약적으로 전투력이 상승할뿐더러, 오죽하면 전직 전과 후는 완전히 다른 헌터로 분류될 정도였다.

헌터판 로또라고 불릴 정도로 헌터간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것이 바로 2차 전직의 상태였다.

이전 저조한 성적을 내던 A급 헌터가 2차 전직을 하자마자 A급 게이트 다섯 개를 썰어버린 일은 너무나도 유명한 사건이다.

[당신의 새로운 직업을 고를 수 있습니다.]

궁수의 시야에 찬란한 백색의 문자가 떠올랐다. 총 떠오른 선택지는 역시나 세 가지였다.

[저격수- 더 이상 당신에게 거리라는 족쇄는 의미가 없습니다. 백 리, 천 리, 심지어는 만 리 밖에서도 적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습니다.]

- 흠, 굳이 네게 필요한 직업은 아니군.

“흠, 역시 그렇지?”

- 잘난 것도 괴롭군.

“누가 보면 네가 잘난 줄 알겠어.”

궁수는 지금도 타고난 재능과 헌터의 능력으로 장거리 정밀 타격이 가능한 궁수다.

그리고 이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정확도가 올라갈 것이다.

지금도 미친 재능으로 씹어 먹다시피 하는데 굳이 급하게 저격을 챙길 필요는 없었다.

“다음은 뭐지?”

[스니처 - 독, 넝쿨, 연막, 섬광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사용하여 전투하는 직업입니다. 각종 군중 제어기를 사용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추가대미지를 넣을 수 있습니다.]

- 흠, 나쁘지 않군.

“난 별로인데.”

- 어째서?

“진정한 남자는 저런 시답잖은 거 안 써.”

- 남자는 개뿔이….

“뭐, 내 타입이 아니기도 하고.”

나름대로 매력적인 직업이긴 하였으나 궁수의 취향과는 그닥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었다.

결국에는 마지막 직업.

[Physical Archer]

“왜 이거만 영어야.”

- 빨리 보기나 해라.

[피지컬 아처 - 근접전이 취약한 궁수의 한계를 뛰어넘은 직업입니다. 적이 접근하면 후퇴하는 궁수의 시대는 이제 끝입니다. 각종 스킬을 사용하여 다가오는 적들을 공격하세요.]

“오?”

- 흠, 쓸모없군, 차라리 궁수로서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스니처가….

“피지컬 아처!”

- 뭣!? 아… 안돼!

“돼!”

- 젠자아아앙!

직업을 고름과 동시에 궁수의 전신이 새하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뭐야?!”

- 전직의 한 과정이다. 네 신체를 보다 강하게 만들어 주는 과정이니 걱정마라.

“아 그래?”

마치 온몸에 석고를 바른 듯 단단하게 굳어 궁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어, 큰일 난 것 같은데.”

평소라면 별 상관이 없겠으나 지금 궁수의 상황은 보스 몬스터 앞에서 당당히 서 있었다.

“2차 전직이다!”

“제길! 빨리 데려와!”

“하필 이럴 때 전직이라니, 저 녀석 뭐하는 놈이야!”

다행히도 서큐버스 퀸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궁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공중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다리를 꼰 그녀는 이 상황이 퍽 재밌는 듯 턱을 괴고 찬찬히 궁수를 감상하고 있었다.

파앙!

“어머?”

순간적으로 날아든 연막이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

잽싸게 달려 나간 도적이 궁수를 등에 매고 전속력으로 후방으로 이동했다.

“허억! 허억! 진짜 죽는 줄 알았네.”

도적은 땀을 닦아내며 연신 숨을 몰아쉬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서큐버스 퀸의 압박을 잠깐이나마 코앞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저런 걸 도대체 어떻게 상대하라는 거야.’

하급 헌터였다면 전투 시작도 전에 몸이 얼어버렸을 것이다. 그녀는 입맛을 다시더니 사뿐사뿐 바닥으로 내려왔다.

“직접 싸우는 건 취향이 아닌데~”

분명 라이프베슬은 모두 파괴되었을 터인데 그녀의 태도는 여유가 넘치다 못해 흐를 수준이었다.

또각. 또각.

서큐버스 퀸의 구두 소리가 알현실 내부를 울렸다.

걷는 모습마저 매혹적이기 그지없었으나 헌터 중 그 누구도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지금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크흐으윽….”

S급 헌터를 절로 악물게 만드는 미친 듯한 살기에 정신이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헌터 중 뒤로 빼거나 도망가고자 하는 헌터는 단 한명도 없었다.

어차피 여기서 자신들이 막아내지 못한다면 결과는 개죽음이다.

최고의 병력인 이 헌터들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저 마물을 막을 것인가.

“일단, 최대한 수비적으로 하면서 나궁수 헌터가 깨어날 때까지만 버텨보죠.”

현재 궁수는 전신을 찬란하게 빛내며 본격적으로 각성에 들어간 상태였다.

일반적인 2차 전직에 나오는 빛이 1 정도라면 궁수는 거의 10에 가까웠다.

빛은 갈수록 밝아져 나중에는 거의 궁수를 제대로 바라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마치 나비가 새로운 삶을 위해 고치에 들어가듯 궁수 또한 부지런히 고치 속에서 전직을 진행하고 있었다.

“옵니다!”

“꺄하하하하!”

날카로운 손톱을 세운 그녀가 거침없이 탱커의 방어벽을 긁었다.

참고로 서큐버스 퀸은 근접 딜러가 아닌 원거리 마법사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일부러 손톱을 세워 근거리에서 적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그녀는 지금 헌터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고 있다는 뜻이었다.

계속 당하고 있기도 잠시 그녀가 탱커의 방벽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유강한이 서큐버스 퀸의 목을 향해 검을 들이밀었다.

카앙!

하지만 그녀의 손톱에 막혀 유강한의 검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유강한이 충격파를 받아 몸이 붕 떠오를 지경이었다.

“카른!”

그녀의 시선이 유강한에게 쏠린 사이 카른이 창을 휘두르며 용맹하게 돌진했다.

“이런 막대로 날 죽일 수 있겠어?”

“흥!”

카른의 공격이 들어가기 직전 뒤에서는 그녀의 목을 노리고 단검 세 자루가 날아왔다.

라이프베슬이 부숴진 그녀로서는 이대로 공격을 허용한다면 제법 큰 피해를 감수하게 될 것이다.

“제법 귀여운 장기를 가지고 있네?”

서큐버스 퀸은 갑자기 땅을 짚더니 날아오는 단검 두 자루를 발로 차 무력화시켰다.

덩달아 그녀의 옆구리를 노리고 달려들던 카른의 창도 갈 곳을 잃었다.

“치잇! 한 번 더 간다!”

왼쪽에서는 카른의 창이, 뒤에서는 도적의 단검이, 그리고 오른쪽에서는 유강한의 검이 그녀의 목숨을 노리고 끈질기게 달려들었다.

‘이대로만 가면 버틸만하다.’

워낙에 그녀의 방어가 견고한 탓에 죽일 수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히 이대로 그녀를 잡아둘 수 있겠다는 자신감은 들었다.

“광폭화!”

“백화검!”

마력을 각성시킨 카른이 더욱 속도를 높여 서큐버스 퀸을 노렸다.

마치 창대가 뱀처럼 휘며 쉽사리 공격로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들었다.

반대쪽에서는 유강한의 검에 찬란한 백염이 옮겨 붙었다.

“큼지막한 구멍을 뚫어주마!”

“크흐윽!”

전투 중 처음으로 서큐버스 퀸이 미약한 신음을 흘렸다.

왼 발을 앞으로 짚은 카른이 손이 부숴져라 창을 쥐고 미친 듯이 그녀를 향해 찌르기를 반복했다.

그의 손목이 움직일 때마다 창도 함께 돌아가며 끊임없이 서큐버스 퀸을 공격해왔다.

카른이 그녀의 관심을 끄는 사이 유강한이 도적에게 사인을 주었다.

고개를 끄덕인 도적이 큼지막한 표창을 꺼내 들었다.

그녀가 눈치 채기 전 재빠르게 표창을 회전시켜 서큐버스의 뒤를 노렸다.

그러나 도적이 표창을 꺼낼 때부터 이미 그녀는 도적을 예의주시 하고 있던 찰나였다.

그녀의 날개가 펄럭거리며 거세게 한 바퀴를 회전했다. 표창은 결국 그녀에게 닿지도 못하고 푹 땅에 박히고 말았다.

“질척이는 남자는 싫은데….”

“흐으읍!”

카른의 왼팔이 미칠 듯 부풀어 올랐다. 그의 마창이 공기를 찢고 그녀를 향해 날아갔다.

“어머나?”

그녀는 손톱을 휘둘러 날아드는 창을 처내려 했으나.

쨍그랑!

“어?”

오히려 그녀의 손톱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오직 일점을 노린 카른의 신기에 가까운 찌르기가 만들어낸 쾌거였다.

“내 손톱이 깨지다니 이게 무슨…?”

“하앗!”

그녀가 당황할 틈도 없이 땅을 박차고 도약한 유강한이 그녀의 왼팔을 베었다.

“꺄아아아아악!”

드넓은 알현실에 여성의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퍼졌다.

‘할 수 있다.’

‘이 정도면 가능하다.’

‘충분히 해볼 만해.’

순간 모든 헌터들이 무기를 바로잡았다. 그녀는 한쪽 팔을 잃고 약해진 상태다.

“나를…! 감히 그분이 내려주신 옥체에!”

“뭐, 뭐야, 저거 왜 저래?”

화아아악!

“크흐윽!?”

“허억!”

“끄으윽!?”

알현실 내부에 서큐버스 퀸의 붉은 마력이 가득 찼다.

감히 거역할 수 없는 폭력적이고도 매혹적인 마력이 헌터들을 옭아매었다.

“이제…. 재미없어.”

그녀는 잘린 자신의 팔을 집어 들더니 그대로.

와작!

자신의 팔을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살점, 근육 심지어는 뼈까지도 와그작와그작 남김없이.

“하.”

그녀의 형태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붉은 빛에 휩싸여 인간의 형태가 아닌 다른 마물의 형태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동안 터져 나오는 마력은 더욱 많아져 숨을 쉬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실제로 마력이 실체화되어 붉은 아지랑이가 필 정도였으니 말이다.

“몸을 움직일 수가 끄으으윽!”

마치 거미줄에 묶인 먹잇감처럼 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하아. 그래, 이 기분이지, 이게 맞는 거야.”

그녀가 붉은 막을 찢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인간의 형태가 아닌 거대한 거미의 모습이었다.

상체는 전과 같은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었으나 하체는 그러지 못했다.

거의 높이 10미터 길이 7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 8개가 아닌 12개의 다리는 하나같이 칼날을 달아둔 것처럼 날카로웠고 그녀의 손은 마치 사마귀처럼 낫이 달려있었다.

“저, 저걸 어떻게 이겨!”

보는 것만으로 중압감이 느껴지는 모습에 유강한은 침을 꼴깍 삼켰다.

‘오늘 여기서 죽겠구나.’

오랫동안 강자로 군림해온 그에게 있어서는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죽음의 공포였다.

쩌적, 쩌적 몸을 푼 거대한 거미가 먼저 유강한을 향해 다가왔다.

그의 검은 아직 찬란한 백염으로 불타오르고 있었으나 거대화한 거미 앞에서는 조금 뜨거운 촛불과 다름없었다.

“감히…. 감히! 감히! 감히! 미천한 하등 종족주제에 내 팔을 잘라?!”

그녀의 눈은 시뻘겋게 부어 핏줄이 팍 터질 지경이었다. 거미의 눈동자에 유강한 자신의 모습이 비추었다.

“씨발….”

도대체 이걸 어떻게 죽이란 말인가.

어떤 방법을 사용 하더라도 그녀를 죽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결국, 여기서 끝인가.”

그녀의 날카로운 낫이 유강한의 목을 노리고 날아왔다. S급 헌터에는 어울리지 않는 최후라고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

하지만 아무리 눈을 감고 있어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유강한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아름다운 근육이 박힌 등, 터질 듯 부풀어 오른 팔, 마지막으로 그의 손에 들린 못이 박힌 몽둥이까지.

“궁수씨!”

전직을 완료한 나궁수가 거미의 공격을 거뜬하게 받아내고 있었다.

“후, 늦을 뻔했네.”

거미를 눈앞에 둔 궁수가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내가 처음으로 죽인 마물이 뭔지 알아?”

이전 이은우와 함께 던전에 들어간 시절을 회상한 궁수가 여유 넘치는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서큐버스 퀸도 밀리지 않는 듯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가만히 있었으면 노예로 삼았을 텐데, 네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는구나.”

“하아아압!”

분쇄자를 거세게 휘둘러 낫을 후려쳤다. 마치 무언가에 튕겨져 나간 것처럼 그녀의 낫이 확 궁수로부터 멀어졌다.

분쇄자를 들어 그녀를 가리킨 궁수가 소리쳤다.

“벌레싹싹 세수코 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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