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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병기 활-43화 (43/172)

◈ 43화. 대머리는 약하지 않다.(1)

카앙! 카아앙!

“아 좀 살살 하라고 살살!”

서큐버스 퀸의 알현실, 그 안에서는 궁수와 셈이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흥, 풍성충 따윈 모두 죽어야한다.”

“그렇게 따지면 쟤도 풍성충이거든?”

“주군은 다르다.”

“개뿔이!”

확실히 A급 헌터에서도 최상위 실력을 가진 셈이다. 궁수로서는 날아드는 셈의 공격을 버티기에도 버거웠다.

“자기~ 힘내! 이긴 쪽한테는 상을 줄게!”

“저 저저! 요망한 년!”

“내가 조금 요망해~”

“몇 백 살도 더 먹은 아줌마가 주는 상 필요 없거든?!”

“하하하 아줌마라니이~”

순간 서큐버스 퀸의 눈썹이 움찔했으나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화를 삭이며 왕좌에 앉았다.

“셈.”

“예, 주군.”

그녀의 말투는 이 전에 비해서 훨씬 사늘해져 있었다. 서큐버스 퀸의 붉은 눈이 반짝 빛났다.

“팔 한쪽은 잘라도 돼.”

“내 팔을 왜 니들 맘대로 잘라!”

“주군의 명대로.”

섬뜩한 칼날을 휘두르며 셈이 궁수를 향해 다가왔다. 그래도 동거동락하던 동료였는데 셈의 눈빛은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아주 대머리 아니랄까봐 좀 이쁜 여자가 말 좀 맞춰주니까 헤벌레해서는!”

“주군의 명이다, 죽어라.”

“죽이라고는 안 했거든?!”

콰앙!

“흐그으윽!”

방금 전보다 훨씬 묵직한 일격이 궁수의 손목을 타고 들어왔다.

평소에는 믿음직스럽던 셈의 대검은 궁수가 이를 악물고 견뎌야 할 정도였다.

애초에 궁수의 주공격 수단은 근접 공격이 아니다.

근거리 딜러, 그것도 상위 헌터인 셈을 상대로 버티는 것만으로 궁수가 얼마나 전투에 대한 재능이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쾅! 콰가각!

“제법 하는군, 팔 한쪽으로 봐주도록 하겠다.”

“근딜이 원딜보고 하는 말이냐 그게!?”

- 흠,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느냐.

“뭐 뾰족한 수라도 있어?”

- 아니 나도 새로운 주인을 찾을 시간은 있어야지.

“이 미친 무기가!”

“이제 놀이는 여기까지다!”

콰앙!

셈이 마력을 담아 땅을 발로 차듯 즈려 밟았다. 주변으로 마력이 파악 퍼지며 순간 궁수도 중심을 휘청거렸다.

“그냥 죽어라!”

뻐어억!

순식간에 천궁을 분쇄자로 바꿔 날아드는 셈의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셈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욱 강하게 검을 휘둘렀다.

“흐어어어?!”

궁수의 몸이 공중을 향해 확 떠올랐다.

갑자기 공중에 떠 당황하기 보다는 궁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감히 나한테 거리를 줘?’

곧바로 컴파운드 보우로 활을 바꾼 궁수가 화살을 겨누었다.

화아아아

적을 얼어 붙이는 서늘한 빙하의 기운이 궁수의 화살에 깃들었다.

‘왼쪽? 오른쪽? 위?’

적은 멍청한 마물이 아닌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게다가 일반적인 사람도 아닌 A급 헌터.

궁수의 시위가 평소보다 훨씬 신중해졌다.

궁수가 끙끙대며 고민하는 와중에도 셈은 무표정으로 궁수를 바라보고 있을 뿐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에라이 모르겠다!”

여러 방향 중 궁수가 고른 것은 왼쪽이었다. 화살이 궁수의 손을 떠난 것과 궁수가 땅을 밟은 것은 거의 동시였다.

쐐애액!

죽일 필요도 없다. 단순히 제압만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시위를 떠나 날아간 화살은.

“엥!?”

셈의 왼쪽 땅에 박혔다. 그와 동시에 화살이 박힌 곳이 얼어붙었다.

“가만히 있어도 맞추지 못하다니, 한심하군.”

“아니! 그! 아오 진짜!”

이미 빗나간 화살을 탓할 시간 따윈 없다. 바로 다음 화살을 겨눈 궁수는 이번에는 연달아 네 발의 화살을 발사했다.

서늘한 냉기를 잔뜩 머금은 속성화살이 이번에는 정확히 셈을 향해 날아갔다.

위, 아래, 옆, 정면.

피할 공간이 없는 완벽한 공격이었으나.

텅!

셈은 대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었다. 대검은 하얗게 얼어 서리가 낀 것처럼 빛났다.

“이걸 막아?”

“왜? 바보같이 맞아줄 줄 알았나?”

“허어?”

궁수의 이마에 핏줄이 빡 잡혔다. 방금 전까지 장난기 가득한 궁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말수가 현저히 적어진 궁수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꼴받네….”

궁수의 화살통 가득히 마력 화살이 차올랐다. 궁수는 한 손에 화살을 한 아름 들고 무작정 셈을 향해 화살을 연사했다.

겉보기에는 대충 날리는 것 같지만 화살 한발 한발이 하나같이 손목이나 발목, 어깨 등 급소를 제외한 곳을 노리고 있었다.

“이제 그냥 죽일게요?”

“흥, 죽인다는 것 치고는 노리는 위치가 하나같이 아쉽군.”

“흥, 포인트 어택.”

셈의 몸 위 노란 타겟이 표시되었다. 과연 셈, 보통 나오는 타겟이 다, 여섯 개지만 셈은 단 두 개였다.

머리와 심장.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약점 이외에는 거의 약점이 없는 수준이었다.

‘하, 이게 어딜 봐서 A급이야.’

궁수는 한 가지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먼저 셈은 S급 승격을 위한 지명의뢰를 일부러 받지 않았다.

그리고 셈의 게이트 처리 기록은 신생 S급 헌터의 기록을 가뿐히 찍어 누를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것이 협회가 셈을 S급 헌터로 분류하는 이유였다.

그가 어째서 지명의뢰를 거절했는가에 대한 일화는 거의 전설로 남겨져 있다.

셈의 S급 승격시험 당시, 협회 직원이 지명의뢰서를 셈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헌터님, S급 승격을 위한 지명의뢰입니다.”

“흐음…. 한 달이나 걸린다고?”

의뢰는 다름 아닌 일본 후쿠오카에 열린 대형 게이트 원정대에 참여하는 일이었다.

국내도 아니고 국외.

긴 공략 기간은 거의 확정된 일이었다.

당시 호주에 크게 데이고 나서 그런지 제법 많은 국가에서 상위 헌터들을 지원했다.

잘 생각해보면 게이트의 난이도에 비해 들어간 헌터의 수를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어려운 임무도 아니었다.

사실상 한 달만 하는 척하면 S급으로 등급을 올려준다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셈도 그리고 의뢰를 건네는 직원까지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른 헌터라면 좋다며 수락하였겠지만 셈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거절하며 한 말은 당시 헌터들의 입소문을 타고 아직까지도 헌터의 마음가짐으로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내가 한 달 간 자리를 비우면 이 나라는 누가 지키지?”

당시에는 상위 헌터의 수가 여의치 않았다.

지금이라면 별 상관없겠지만 그 당시에는 상위 헌터 한명 한명이 거의 중세시대 상위 귀족 취급을 받고는 했다.

그만큼 헌터들은 S급에 대한 열망이 높아진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셈이 사라진다면 한국 입장에서는 조금은 벅찰 수 있었다.

‘셈은 나라를 위해 본인의 사리사욕을 버린 것이다.’ 라고 대외적으로는 알려져 있었다.

그 실상은 사실 이랬다.

“최소 한 달? 그럼 운동은? 뭐? 못 한다고? 그럼 나 안 해! 아니 못해!”

근손실은 우려한 임무 거절.

그것이 진정한 일의 진실이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모든 사실은 셈의 이미지를 위해 협회에서 퍼트린 루머였다.

뭐 어찌되었건 셈의 실력은 A급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사실상 한없이 S급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궁수가 약한 헌터는 아니다.

헌터가 된 기간에 비해 대단히 강하고 매우 유능하다. 언젠가는 셈을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궁수에게 셈이란 무슨 짓을 해도 넘을 수 없는 벽에 가까웠다.

‘하다못해 몬스터라도 있었으면.’

현재 궁수의 레벨은 99.

경험치도 거의 다 차오른 상태였다. 궁수는 순간 입맛을 다시며 서큐버스 퀸을 바라보았으나 이내 고개를 휘저었다.

납치당할 때 수많은 헌터들의 칼에도 죽지 않았던 그녀다. 이제 와서 궁수가 화살 몇 발 쏜다고 죽을 리 만무했다.

‘그럼 뭐 어떡하지.’

그나마 바랄 수 있는 것은 다른 헌터들의 지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불확실했다.

‘나 하나 납치당했다고 과연 올까?’

확실히 궁수 한 명 끌려갔다고 구조대가 우르르 쏟아지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궁수씨! 여기 있습니까! 구하러 왔습니다.”

“말 되네.”

“네?”

“어머? 아까부터 거슬린다 했는데 너네들이었구나?”

“음? 거슬린다니?”

유강한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성큼 서큐버스 퀸을 향해 걸어 나왔다.

그는 마치 공주를 구하러 온 용사처럼 서큐버스 퀸에게 소리쳤다.

“네년의 라이프베슬을 전부 부쉈다!”

구조대가 부순 라이프베슬은 네 개중 세 개였다.

분명 서큐버스 퀸이 불리한 상황이었으나 그녀는 심드렁하게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어쩐지, 힘이 절반밖에 안 나오더라.”

“뭐, 절반?”

허풍이 아닌지 그녀는 손으로 붉은 혈기를 다스리며 손을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뭐, 괜찮아 그것들이야 예비용이었고.”

서큐버스 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혈기가 셈을 휘감았다.

“진짜는 여기 있거든~”

붉은 핏방울들이 셈의 몸을 칭칭 감고 있었다.

“셈! 셈! 괜찮아요?!”

“크흑! 궁수씨 일단 이쪽으로!”

S급 헌터들의 등 뒤로 몸을 숨긴 궁수는 계속해서 셈을 빤히 바라보았다.

고통스러운 비명도 희열에 찬 웃음소리도 어느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핏방울이 다 말라가고 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는.

“허어, 저걸 어떻게 이겨….”

셈의 전신에 붉은 갑주가 입혀진 상태였다.

마치 옛날 흑기사처럼 전신에 뾰족한 송곳이 박힌 붉은 갑주를 두르고 손에는 전과 다른 새빨간 대검을 들고 있었다.

언뜻 보아도 거의 던전의 최종보스같은 비주얼이었다.

마지막으로 붉은 갑주의 가슴팍에 큼지막한 붉은 보석이 박혔다.

날개를 퍼덕이며 셈의 품에 안긴 서큐버스 퀸이 사랑스럽게 보석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예쁘지?”

일순간 모든 헌터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들도 셈이라는 헌터를 잘 알고 있었다.

명예를 버리고 나라를 선택한 영웅.

세부적인 사실을 모르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적어도 그랬다.

슥 보더라도 강함이 넘치다 못해 강이 되어 흐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온 헌터중 도망가는 헌터는 단 한명도 없었다.

‘여기서 막지 못하면 몰살이다.’

이곳에 들어온 헌터들은 유강한 나름대로 최적의 조합을 맞춘 것이다.

그런데도 이 공략에 실패하여 전멸한다면 남은 헌터들의 결말은 뻔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헌터들은 어떻게든 적을 막아내야만 했다.

헌터들이 전투에 들어가기 전 궁수가 미리 외쳤다.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지능은 있습니다. 물론 매혹당해서 별 의미는 없지만 대인전을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칫…. 지성이 있다니, 골 아프겠군.”

“그래도 해야죠, 뭐 별 수 있습니까.”

“그치, 우리가 아니면 누가 막겠어?”

마치 전쟁을 준비하는 용병들처럼 헌터들은 각자 곧 벌어질 전투를 준비하며 셈을 노려보았다.

“자~ 네 힘을 보여주렴!”

절그럭 절그럭.

셈이 움직일 때마다 갑주가 물리며 섬뜩한 쇳소리가 헌터들을 더욱 긴장케 하였다.

“수호의 축복을!”

“성역선포!”

“홀리 프레이!”

모든 헌터들의 몸 위로 새하얀 보호막이 새겨졌다.

그리고는 동그란 영역이 생성되어 계속해서 헌터들에게 치유 마법을 걸어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프레이.

모든 헌터들의 무기에 황금빛 기운이 깃들었다. 버프 사용까지 마치고 나니 탱커 두 명이 성큼 앞으로 다가갔다.

“이제 옵니다! 준비하세요!”

“수호의 철벽!”

“라이트닝 쉴드!”

절그럭 절그럭

든든하게 보호 마법을 사용한 탱커를 상대로 혈기사, 셈이 다가왔다.

여유가 넘치는 걸음걸이에 궁수는 절로 침을 꼴깍 삼켰다.

“온다!”

탱커들의 근육에 힘이 빡 들어갔다. 그렇게 만반의 대비를 하고 혈기사를 상대하려는 순간.

푹! 촤아악!

“…뭐?”

셈이 대검으로 자신의 왼 팔을 잘라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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