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궁수도 쾅쾅 펑펑.
“거 구라가 뭡니까? 구라가.”
“뭐 어쩌라고요, 제가 잘난걸.”
“아무리 그래도 S급 헌터를 앞에 세워두고 그런 말을 합니까.”
S급 헌터의 파급력은 감히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S급 헌터의 말 한마디로 다 쓰러져가던 음식점이 빌딩 15층짜리 식당으로 변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하, 좋게 봐줘서 다행이지 정말.”
“괜찮아요, 내가 이겨.”
“못 이기거든요?”
다소 투닥거리긴 하였으나 파티의 전제적인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이동하겠습니다!”
가장 선두를 차지하던 유강한이 갑자기 차를 멈춰 세웠다.
“아직 한참 남은 것 같은데?”
“궁수씨, 위요 위.”
“위? 위가 왜…. 아.”
방금 전까지 지상을 비추던 해맑은 하늘은 어디가고 갑자기 먹구름이 낀 우중충한 날씨로 바뀌어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해야겠네요.”
“맞습니다. 게이트를 공략 할 때는 어떤 게 되었든 목숨을 위협할 수 있으니까요.”
마치 경계로 그은 듯 한쪽은 맑고 한쪽은 흐린 이 현상은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아무래도 게이트의 현상이라고 봐야죠.”
“날씨를 이렇게 만들 정도의 게이트라니.”
“흐음…. 뭐 이제 슬슬 다른 팀들과 합류를 할 예정이니, 차차 생각해 보도록 하죠.”
“하긴, 그래야겠네요.”
어차피 짐은 차 안에 넣어두었던 터라 조금 걷는다고 딱히 피곤하지는 않았다.
“모두 정지!”
“이제 슬슬 몬스터가 제법 나오나 봅니다.”
“좋네요!”
“쾅쾅! 펑펑!”
상대해야할 몬스터의 수가 많은데 절망은커녕 오히려 환호하는 또라이 두 명이 바로 여기 있었다.
“허어, 거참.”
하지만 가장 믿을 수 있는 실력을 가진 헌터들이기도 했다.
“캬, 빼곡하다 빼곡해.”
마치 호주의 푸른 초원을 검은색으로 칠해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괴물들의 모습은 모두 형형색색 달랐다.
어떤 놈은 발이 네 개 달린 짐승의 형태였고 또 어떤 놈은 팔이 네 개 달린 인간형의 모습이었다.
“징그럽다, 징그러워.”
하지만 하나같이 이빨이 온몸에 박혀있거나 눈알이 박혀있거나 하여 흉물스럽기 짝이 없었다.
“저게 다 몇 마리냐?”
“펑펑펑!”
“헌터님들 제발!”
“하! 이럴 때는 오히려 날뛰어야하지 않겠는가!”
“그건, 그렇지만요.”
궁수는 활대에 화살을 겨누고 법사는 마력을 끌어올려 캐스팅에 들어갔다.
‘레벨 두 개만 더 올리면 스킬이다!’
30 때 속성화살, 60 때 포인트 어택, 그리고 이제 곧 90.
분명 무언가 새로운 스킬을 얻을 것이다.
“자! 방송도 키고!”
궁수는 몰랐으나 이미 주변에 헌터들은 몇몇 방송을 켜둔 상태였다.
실제 기록이 남기도 하고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모든 관심이 지금 호주 구출대에 쏠려있었다.
그런 만큼 지금 호주 구출대의 방송 시청자 수는 평소의 배를 증가했다.
그리고 여기서 인기 스트리머인 궁수가 방송을 킨다면?
[궁하~]
[ㄱㅎ]
[와 진짜 호주갔네 ㅋㅋ]
[니가 가라 시드니.]
[길마가 시키드나!]
[나궁수!나궁수!나궁수!나궁수!나궁수!]
[(헬창이 덤벨 들고있는 이모티콘)]
“지금 바쁘니까 닥치고 봐요.”
[헤으으응 옵하….]
[오자마자 포상 뭐냐구;]
[위험한 곳 가셨네요ㅠㅠ 몸 조심하세요!]
적의 숫자는 어림잡아도 1000 마리는 가뿐히 넘어 보였다.
“쾅쾅쾅!”
“네가 먼저 한방 먹이게?”
“펑펑!”
[킹법사 출격.]
[ㅇㅏ 저렇게 이쁘게 모여 있는데 이건 못 참지ㄹㅇㅋㅋ]
[팝콘 ON]
[착—석]
[편—안]
“근접 헌터님들은 진입 전 준비 부탁드리고 후방지원은 각자 맡은 헌터님들 캐어 부탁드립니다!”
유강한이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며 전장을 지휘하고 있었다.
“어…? 저 사람도 근접 딜러야?”
“아닌 것 같은데, 폼부터 마법사잖아.”
“뭐야? 마법사가 왜 이런 곳을…. 허억!?”
화르륵!
법사는 왼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성큼 성큼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키야, 시작부터 화려하네.”
- 음, 백색의 불꽃이라니.
어두컴컴한 먹구름 속에서 찬란한 태양이 화르륵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도 법사의 손 위에서 말이다.
태양은 덩치를 키워 거의 지름이 8M에 달했으나 아직 법사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펑펑! 펑펑!”
“야! 너 혼자 다 먹으면 안 된다!?”
“펑펑! 독식! 개꿀!”
법사는 기어코 지름이 15M에 달하고 나서야 마법의 영창을 멈췄다.
현실의 태양에 비교하자만 먼지만큼이나 작은 크기였으나 그 영향은 현실의 태양에 비교될 정도였다.
“이런 미친….”
“도대체 이게 뭐야?!”
“저 파티는 하나같이 다 괴물들만 있는 건가?”
마치 우중충한 날씨 안에서 타오르는 태양이 떠오르는 듯했다.
“쾅쾅!”
타오르는 태양이 적들을 향해 낙하했다.
콰아아아앙!
화르르르륵!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덩치 큰 파이어볼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불꽃을 고밀도로 압축한 마법이었다.
꾹꾹 눌러 담았던 불꽃이 확 퍼지며 전장에 작렬했다.
키에에에엑!
캬아악! 카아악!
마를 먹어치우는 찬란한 불꽃은 순식간에 옮겨 붙어 전장의 검은 존재들을 집어삼켰다.
그렇게 약 30분.
“미쳤다.”
전장에 남아있는 괴물은 채 10마리가 되지 않았다.
“아니, 좀 남겨두라 했잖아!”
“꺼억! 잘 먹었다!”
남은 열 마리마저도 궁수의 화살의 먹잇감이 되어 사라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허!”
“말도 안 되네요.”
S급 헌터인 유강한과 한가은도 당황하여 멀찍이 법사를 바라볼 뿐 뭐라고 말하지 못했다.
“신궁에 현자라….”
말도 안 되잖아.
“이, 일단 계속 공략 진행하겠습니다!”
막상 말은 했지만 유강한의 목소리는 당황이 짙게 묻어나오고 있었다.
‘어차피 마물은 많다.’
이곳은 호주.
마물이 많다 못해 산을 이루는 곳이다.
마물이 제법 많기는 하였으나 이 정도 수라면 전체의 새발의 피도 못되는 수준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다시 이동하고 30분도 지나지 않아 마물의 때가 앞을 막아섰다.
“야 저거는 내거다.”
“쉰다! 나! 조금!”
방금 사용한 마법에 제법 많은 양의 마력을 사용했는지 차에 들어가 털썩 드러누웠다.
“이번에는 정말 전면전으로 들어갑니다! 후방지원 부탁드립니다!”
적의 수는 약 1500마리 정도.
방금 전 상대했던 마물보다 조금 더 많은 수준이었으나 겁먹은 헌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먼저 들어갑니다!”
“와아아아!”
“간다아아앗!”
유강한을 필두로 다수의 근접 딜러들이 달려 나갔다. 궁수는 심드렁하게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촤좌좍!
두 발의 화살은 두 마리의 적을 죽였으며 다섯 발의 화살은 다섯 마리의 머리를 관통했다.
‘좋긴 한데….’
분명 상황은 좋았다. 후방지원은 적절하다 못해 넘칠 지경이었고 근접 헌터들도 밀릴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그 유명한 경험치 농장인가요?]
[씹 풍년이네여.]
[진짜 호주 끝나면 2차전직 하겠는데?]
[엄마! 저는 커서 궁수가 될거에요!]
ㄴ 엄마 : 누구세요?
ㄴ 엄마 : 아 씨 망캐네.
ㄴ 아ㅋㅋ 그냥 판검사나 하라고ㅋㅋ
채팅창의 반응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궁수는 목말라 있었다.
전투의 환희를, 강한 적을 쓰러트렸을 때 느껴지는 벅차오름을,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장의 쫄깃한 위험에 말이다.
남들이 보면 이게 무슨 정신 나간 짓거리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궁수는 이미 판단을 내렸다.
“힐, 저 다녀올게요.”
“음! 그래! 남자라면 그래야지!”
이미 이은우는 전투에 참여한 상태였다.
다시 말해 궁수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었다.
“괴물 분쇄자.”
- 크흠, 그거 말고 다른 걸 쓰면 안되겠느냐.
“분쇄자.”
-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궁수인데 그건….
“분”
“쇄”
“자”
괴물 분쇄자.
궁수가 3대 7000을 찍었을 때 획득한 무기였다.
신궁에서 처음으로 활이 아닌 다른 무기로의 변환이 가능해진 것이었다.
- 하아, 쓰고 나서 깨끗이 닦아 주겠지?
“물논.”
- 쯧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응애, 나 아기 궁수. 빨리 분쇄자 내놔.”
궁수의 ‘분쇄자’라는 말에 이미 채팅창은 한층 난리가 났다.
[극]
[락]
[락]
[극]
[킹쇄자! 갓쇄자! 킹쇄자! 킹갓쇄자!]
[사도세자보다 킹쇄자!]
[꺄아아악! 나 죽어! 분쇄자!]
그들이 이렇게 열광하는 이유는 다 이 ‘괴물 분쇄자’ 때문이었다.
신궁에 마력을 불어넣자 그 모습이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시위는 사라지고 활이 더욱 뭉쳐져 조금은 둔탁한 형태를 띠었다.
“크흐! 이거지! 손맛 쥑이네!”
변화가 끝나고 궁수의 손에 잡혀있는 것은.
다름 아닌 야구 방망이였다.
그것도 수십 개의 못이 박힌 흉악한 모습의 야구 배트.
소위 네일 배트라고 불리는 무기였다.
궁수도 처음에는 당황하여 몇 번이고 신궁에게 물었으나 신궁은 혀를 차며 대답했다.
- 내 모든 형태는 계약자에게 맞게 설계되었다. 이 무기도 네 놈에게 맞게 설계된 결과겠지.
궁수도 무슨 몽둥이라며 당황했으나 코어형 던전을 몇 개 돈 이후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결국, 모든 건 분쇄자 앞에 무릎 꿇을 것이다!’
활도 분명 그 나름대로 쾌감이 있었지만 분쇄자가 가져다주는 손맛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거세게 휘둘러 적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뇌수를 으깨버릴 때의 쾌감이란!
“다녀올게요!”
“블레싱!”
“고마워요!”
“그래! 다 죽여버리고 오라고!”
마지막으로 뛰어나가기 전 힐이 궁수에게 버프를 걸어주었다.
새하얀 빛이 궁수의 몸에 깃들었다.
[LV - 88]
[직업 - 궁수]
[스테이터스]
[잔여 스테이터스 - 0]
힘 : 211+10
민첩 : 30 +3
마력 : 50 +3
체력 : 30 +3
[현재 ‘블래싱’이 걸려있는 상태입니다. 능력치가 증가합니다.]
“우랴!”
“뭐야!?”
“궁수가 여기 왜 있어!”
다른 헌터가 말릴 틈도 없이 궁수는 이미 적진을 향해 돌진했다.
탓!
땅을 박차고 도약한 궁수는 그대로 눈에 들어온 마물의 머리통을 후려 버렸다.
퍼엉!
마치 머리통이 폭죽과 같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화려한 등장에 전방에서 싸우던 헌터들의 시선이 일순간 궁수를 향했다.
대부분 힐끗 쳐다보다 다시 전투를 이어나갔으나 단 한 명의 헌터는 당황하여 궁수에게 다가왔다.
“지금 여기서 뭐하는 겁니까!?”
다름 아닌 이은우였다.
“누구도 날 막을순 없으셈!!!”
“궁수씨! 그건 또 어디서 났어요!”
“아핰핰핰핰! 내가 간다!”
이은우가 말릴 틈도 없이 궁수는 더더욱 거세게 분쇄자를 몰아쳤다.
다른 헌터들은 날카로운 날붙이로 적을 베고 찔렀으나 궁수는 달랐다.
둔탁하지만 지극히 강력한 몽둥이 하나로 적들을 깨 부숴버렸다.
궁수의 몽둥이가 지나간 자리는 살점이 뜯겨나가며 징그러운 고기 조각들이 남았다.
그것이 이 무기가 분쇄자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했다.
[아핰핰핰핰! 존나 다 비켜!]
[피를! 전투를! 적의 목을 내게 바쳐라!]
[씨이이빨 달려어어어엇!]
[기억할게!]
[달려어어어어!]
[엄마 여기 뭐야…. 무서워.]
쾅! 콰직! 펑!
눈앞의 괴물이 궁수를 노리고 주먹을 후려쳤다. 활을 들었다면 피했겠지만 궁수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활을 휘둘러 날아드는 적의 주먹을 후려쳤다.
몇 백 키로그램을 가뿐히 넘어가는 괴물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그에 반해 백 키로는 커녕 오십 키로그램도 안 되는 궁수의 몽둥이.
결과가 빤히 보이는 싸움은.
콰드득!
궁수의 몽둥이가 놈의 주먹을 부숴버리며 시시하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