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그러게 왜 나댔어.
이진수.
이전 나름대로 유명한 2인조 그룹의 보컬이었다.
차트에 들어간 히트곡도 제법 내었으며 그를 지지하는 두터운 팬층도 존재했다.
그 나름대로 연예계에서는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온몸 뼈저리게 좆됐음을 느끼고 있었다.
26년 인생에서 거의 포경수술에 걸맞은 긴장감이었다.
“거 잘못 움직이면 뚫립니다~!”
“네? 뚜, 뚜뚜, 뚫린다고요?!”
“농담이에요, 농담~”
“그렇죠? 농담이죠?”
“아마도?”
‘아마도라니! 뚫려? 뭐가? 설마 머리?’
지금 자신의 머리에는 자그마한 방울토마토가 한 개 올라와 있었다.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알라님 살려주세요, 착하게 살게요. 기부도 하고 더 투명하게 살게요 제발.’
없던 종교도 생기게 만들어주는 헌터!
일반인을 득실한 신자로 만들어주는 바로 그 헌터!
모든 종교계에서 탐낼법한 헌터!
그 이름 바로 나궁수!
궁수는 싱글벙글 웃으며 화살에 시위를 겨누었다. 일부러 공포감을 주기 위해 장궁을 꺼내들었다.
거의 1미터에 육박하는 화살을 겨누자 이진수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자~ 움직이면 안돼요~”
“히그으으윽!?”
물론 움직여봤자 맞출 자신이 있었지만 괜히 이런 말 한마디 해주면 더욱 재밌지 않겠는가?
실제로 이진수의 안색이 보랗게 뜨기도 했고 말이다.
“자~ 첫발!”
쐐애애액!
“끄아아아악! 나 죽네! 나 죽어!”
기다란 화살은 그대로 직진하여
촥!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머리 위의 토마토를 관통했다.
“와우! 이걸 깔끔하게 맞추네요!?”
우재슥은 놀랍다는 듯 기립 박수를 치며 감탄사를 뱉었다.
궁수는 별거 아니라는 듯 큰 감흥 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고 이진수.
쉬이이이….
‘내가 좀 심했나.’
이진수의 방송 업적 최초로 ‘전국민 앞에서 지리기’ 업적이 추가된 순간이었다.
아직 다른 사람은 눈치 채지 못한 듯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침 타이밍 좋게 PD가 소리쳤다.
“1부는 여기에서 끊고 가겠습니다!”
이진수는 아직도 다리를 후덜덜 떨며 일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새끼 노루처럼 보였다.
‘완전 밤비가 따로 없네.’
물론 밤비보다는 못생겼지만.
법사와 함께 휴게실로 돌아간 궁수는 푹신한 소파에 몸을 맡겼다.
“후우, 잘하고 있는 건지 참….”
“재밌다! 반짝반짝!”
“그래, 그래.”
궁수는 무료한 마음에 휴게실의 TV를 틀었다.
원래도 딱히 TV를 즐겨보지 않는 터라 궁수는 별 감흥 없이 채널을 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10분쯤 의미 없이 버튼을 누르기만을 반복한 궁수는 고개를 젖혀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도 셈이나 따라갈 걸 그랬나, 더럽게 재미없네.”
그렇게 멍하니 있기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PD가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2부 방송 들어갑니다! 두 분 준비해 주세요!”
“지금 갑니다~”
궁수와 법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갔다.
MC인 우재슥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매끄럽게 방송을 이어갔다.
“크으으! 나궁수 헌터님 활솜씨에 정말 소름이 돋았다니까요! 다들 보셨지 않습니까?”
“그러니까요! 어우 제가 몬스터라고 생각하면 상상도 하기 싫다니까요!”
“아하하…. 예.”
일부러 과장된 리액션을 보이며 다시 원래의 훈훈한 분위기를 되찾았다.
“….”
한 명.
저기 바지를 갈아입은 이진수를 제외하면 말이다.
“자, 이번에는 또 다른 다크호스! 나법사 헌터님을 모셔보겠습니다!”
“반짝!”
나법사는 그 특유의 과즙미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척척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법사씨는 화려하고 강력한 한방이 유명한 마법사인데요!”
궁수와 마찬가지로 스튜디오에 설치된 스크린에서는 나법사의 화려한 마법의 향연이 이어지고 있었다.
메테오, 라이트닝 스피어로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최근에 사용했던 빔까지.
모두 궁수의 방송에서 따온 영상이었다. 확실히 궁수의 영상과는 달리 시원시원하고 통쾌한 맛이 있었다.
“나도 마법이나 배울걸.”
- 너는 배워도 저렇게 안 된다니까.
“후, 니들은 활 같은 거 쓰지 마라.”
궁수가 신세 한탄을 하던 사이 이번에는 법사의 마법 시연이 있었다.
스튜디오 내부인 만큼 위험한 마법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나법사 헌터님이 보여주실 마법은 공중 저격 마법입니다!”
“저격 마법이요?”
“예! 저희 스탭이 던져주는 사과를 간단한 마법으로 적중시켜주시면 되겠습니다!”
‘사과인가. 그 정도면 괜찮겠네.’
다행히도 생각보다 정상적인 범주에 들었기에 궁수는 안심하고 자리에 앉았다.
혹시나 나법사가 사고 칠 기색이 보이면 즉시 달려 나갈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법사를 바라보았으나 정작 본인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볼을 부풀렸다.
“토마토!”
“네?”
“토마토! 나도 토마토!”
“아~ 나도 자존심이 있다! 큰 사과가 아닌 작은 방울토마토로 던져달라~ 이 말씀이시죠?”
“맞다! 토마토!”
“알겠습니다~ PD님? 들으셨죠?”
담당 PD도 알았다는 듯 사과를 두고 방울토마토 몇 개를 집어 들었다.
“자~ 그럼 던집니다!”
휙!
나법사가 검지를 들고 왼손을 마치 총처럼 만들었다.
그대로 날아드는 방울토마토를 향해 마치 총탄을 발사하듯 손목을 탁 흔들었다.
푹!
“오우!”
나법사의 검지에서 발사된 번개가 정확히 토마토를 공중 분쇄시켰다.
“후~”
그리고는 검지를 후 불며 세레머니까지.
“자~ 한 개는 너무 쉽지 않습니까?”
“쉽다!”
“그러면 조금 난이도를 높여보겠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섯 개의 방울토마토가 휙 나법사를 향해 날아왔다.
“많다?!”
나법사는 필사적으로 손을 놀렸으나 날아드는 다섯 개의 토마토를 다 맞출 정도로 빠르진 못했다.
그 결과 2개의 멀쩡한 토마토가 바닥에 떨어졌다.
“우씨!”
“아하하! 아무리 헌터님이라도 다섯 개는 무리였나 봅니다!”
“아니다! 다시! 다시!”
“결과는 별 다를 거 없을 것 같은데요~?”
우재슥이 슬슬 웃으며 법사의 성격을 긁었다.
‘저러다 큰일 날 텐데.’
“아니다! 10개! 10개! 한 번에!”
“다섯 개도 못 하셨는데 열 개를요?”
“열 개! 열 개!”
“패기 좋네요! 알겠습니다! PD님!”
또 법사가 실패해도 그건 그것대로 나름 웃길 것 같았기에 PD도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자! 그럼 다시!”
PD가 열 개의 토마토를 양손으로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궁수는 나법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쟤가 저렇게 가만히 있을 애가 아닌데.’
괜히 사고라도 칠까 불안한 마음에 궁수는 유심히 나법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딱히 마력도 전개하지 않아 당장은 뭐라 하기도 좀 그랬다.
“자~ 그럼 던집니다!”
휙!
허공에 10개의 방울토마토가 뿌려졌다.
이를 유심히 바라본 나법사의 오른손에는 투명한 마력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놀랍도록 날카롭고 놀랍도록 얇은 마력이었다.
“야이, 씨ㅂ….”
궁수가 즉각 법사를 저지하기 위해 나섰으나 법사의 손보다 빠르진 못했다.
서걱!
토마토가 뿌려진 허공에 새하얀 선이 한 줄 그어졌다.
마치 공간을 베는 듯한 서늘한 소리와 함께 뿌려진 토마토들이 일제히 갈라졌다.
“괜…. 찮네?”
정확히 공중의 토마토만을 베었을 뿐 스튜디오는 멀쩡했다.
“휴, 다행이다.”
“잘랐다! 잘랐다! 컷컷!”
궁수는 안심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스튜디오도 멀쩡하고 토마토도 전부 잘랐다.
이걸로 별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컷! 잠시만요!”
하지만 갑자기 PD가 슬레이트를 치며 방송을 끊었다. 생방송 녹화중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우재슥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무슨 문제 있어요?”
“다름이 아니라 긴급 속보가 있어서 말입니다. 워낙에 긴급한 상황이라 잠시 송출을 바꿨습니다.”
“도대체 뭐길래….”
“직접 보시죠.”
스튜디오의 뒤의 스크린에 현재 화면에 송출되는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현재 호주의 상황입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성이 발견되었고 순식간에 원정대 다수가 행방불명에….]
‘아’
순간 궁수의 목이 서늘해졌다. 궁수는 다급히 법사를 데리고 나섰다.
“헌터님!? 어디가세요! 아직 방송 안 끝났습니다!”
“급한 일이 있습니다!”
“뭐냐! 놔라!”
“닥치고 따라와!”
법사를 둘러멘 궁수가 급히 길드 본부를 향해 이동했다.
“최대한 빨리 가주세요!”
워낙에 긴박한 궁수의 외침에 택시 기사도 액셀을 밟으며 도로를 질주했다.
그 덕분에 길드 본부까지는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허가연! 나만힐!”
거칠게 본부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둘 다 심각한 표정으로 TV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많이 심각해?”
“상황이 많이 안 좋아. 실종자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와있어.”
“하, 셈. 오랜만의 휴가라면서 좋아했는데….”
힐이 눈을 질끈 감고 이마를 짚었다. 이를 악물고 고통스러운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어떡해? 설마 저대로 두는건 아니지?”
“구조대가 꾸려지겠지.”
“구조대?”
“그래, 저 정도면 최상위 랭커들을 데려다가 붙여야 하는 수준이니까.”
“하아…”
영상에서 나오는 정체불명의 성은 위협적이기 짝이 없었다.
지붕은 검은색에 촘촘히 쌓인 빈틈없는 성벽은 보이는 자로 하여금 절로 침이 꼴깍 넘어가게 만들었다.
“도대체 저게 뭐야….”
“어차피 길드마다 공략 인원을 요구할거야. 천천히 기다려봐.”
“저거 나도 갈 수 있어?”
“글쎄….”
“왜, 나도 갈래, 아니 갈 거야.”
“너 C급이잖아.”
허가연은 애매한 표정으로 궁수에게 대답했다.
그녀도 궁수가 가면 좋겠으나 A, B급의 상위 헌터들도 납치당한 판에 C급 헌터가 구조대에 참가가 가능할 리 없었다.
“그러면 구조대는 언제 꾸려지는데.”
“글쎄, 넉넉하게 잡고 한 달은 걸릴 것 같은데, 상위 랭커가 쉽게 모을 수 있는 인원은 아니니까.”
“…그래 알겠어.”
“음? 어디가?”
“등급 올리러.”
“뭐? 야! 지금부터 해봐야 늦어!”
궁수는 활을 들고 본부 밖으로 나왔다.
- 손이 떨리는군.
“그래, 아주 파르르 떨린다, 인마.”
- 그래서, 이제 어쩔 셈이지.
“어쩌긴.”
궁수가 휴대폰을 들었다. 지긋지긋한 게이트들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죽어라 달려야지.”
***
“이봐, 그 소문 들었어?”
호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구조대원인 박준수가 입을 열었다. 대화의 종착지는 동료인 김민상이었다.
“뭔데, 또 시시한 거면 무시하고 잘 거다.”
“이번에는 진짜야. 너 최근에 서울에 B급 게이트 씨가 마른 건 알고 있냐?”
“뭐? B급이?”
“그래, 한 달 전부터 B급 게이트가 미친 듯이 사라졌다지 뭐냐.”
“그게 말이 되나? C, D급도 아니고 B급인데.”
민상은 고개를 비틀며 턱을 짚었다.
“그게 말이 되나?”
“말이 안 되니까 화제인거지.”
“허, 그래도 게이트가 빨리 처리된다는 건 좋은 일이니까, 다행이군.”
“그뿐만이 아니야.”
준수는 구석지에 있는 사람을 조심히 가리켰다.
근육질의 등빨에 움직이기 편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한쪽에는 활을 메고 있는 사내였다.
“저 남자도 같이 간다는군.”
“뭐? 저 사람이 누군데?”
남자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벽에 기대어 드르렁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민상은 궁수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다른 것은 알 수 없었다.
“나궁수랑 나법사잖아, 몰라?”
“뭐? 진짜?”
“그래, 자기 동료가 잡혀갔다고 아주 칼을 갈고 나왔더군.”
“허어, 매번 궁수만 나오면 성질부터 냈는데, 이번에는 어떨지 궁금하군.”
“그래도, 나는 조금 기대되는데.”
궁수는 그러던 말던 별 관심 없이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법사도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쿨쿨 꿈나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슬슬 출발하고 시간이 제법 지났다. 비행기에서 무전이 울리며 슬슬 착륙한다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일반 여객선이 아닌 군용 비행기 인지라 썩 잠자리가 편안하진 않았다.
- 일어나라, 계약자여.
“으음. 그래, 일어나야지. 너도 일어나.”
“하아암…. 아직 졸리다….”
“빨리 일어나기나 해.”
“하아암….”
이곳은 호주의 가장 바깥쪽 외곽이다.
중앙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다간 격추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부터는 함께 실어온 자동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흐! 이곳에 셈이 있는 건가!”
기어코 따라온 힐이 부들부들 몸을 떨며 전투 의지를 밝혔다.
도저히 힐러로는 보이지 않는 그의 근육이 햇빛을 받아 불끈불끈 빛났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따스한 태양이 궁수를 내리쬐었다.
선선하게 부는 바닷바람은 정말 이곳이 전장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시위를 몇 번 튕긴 궁수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컨디션 죽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