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34화 (34/172)

◈ 34화. 캥거루 사냥.

화르르륵!

타오르는 불길이 캥거루의 등을 뒤덮었다. 다행히도 마력으로 붙인 불길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끄아아아악!”

쾅! 콰아앙!

“뒤로 빼요!”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캥거루가 쿵쿵 바닥에 몸을 굴렀다.

그 몸부림이 너무나도 격렬해 감히 다가갈 수 없었다.

거의 10분 동안 바닥을 구르고 나서야 놈을 좀먹던 불꽃이 완전히 사그라 들었다.

“흐으윽…. 흐으….”

“와, 징글징글하다. 이래도 안 죽어?”

털을 새까맣게 태운 캥거루가 비틀거리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흐흐…. 흐흐흐하하하하!”

“저게 갑자기 왜 저래? 미쳤나?”

흐음…. 글쎄다.

쫘아아악!

놈은 넝마가 되어버린 글러브를 벗었다. 그대로 앞주머니를 뒤지더니 무기를 두 개 꺼내들었다.

“너클?”

가시가 촘촘히 박힌 너클이었다. 가시 하나하나가 30센치는 족히 되어 보여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었다.

“나, 캥거루 킹. 그분의 명을 받아 내려왔다. 겨우 이 곳에서 죽으면 그분의 명예에 금이 갈지니!”

화아아악!

캥거루의 몸에서 초록빛 기운이 화악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 흐음…. 혈기로군.

“혈기? 저건 초록색인데?”

- 혈기는 본인에게 맞는 색을 뿜어내는 거다. 꼭 붉은색일 필요는 없지.

“하…. 딱 봐도 개빡친 것 같은데.”

- 뭐 그래봐야 혈기가 떨어질 시간만 버티면 된다. 그 이후로는 알아서 혈기가 역류해 죽을 거다.

혈기를 각성한 캥거루는 정말 노골적으로 궁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음….”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저 놈은 어떻게 해든 자신을 노릴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직 놈은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어지러운 듯 이마를 짚고 궁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궁수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 여유 부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흘깃 나법사를 바라본 궁수가 침을 꼴깍 삼켰다.

나법사는 제법 연산이 복잡한 듯 미간에 주름을 팍 쓰고 캐스팅을 하고 있었다.

“그래.”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법사가 저렇게까지 영창을 준비하는 마법이다. 저거면 충분히 놈을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이다.

- 피해라!

콰앙!

“흐그윽!”

“궁수씨!”

땅을 박차고 달려든 캥거루가 궁수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기습적인 공격이었으나 미리 천궁이 알려줘 막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장궁을 양손으로 쥐고 주먹을 막았다. 분명 막았음에도 몸이 붕 뜨며 뒤로 밀려났다.

분명 힘이라고는 전혀 실릴 거 같지 않은 엉성한 자세로 날아오는 주먹이었으나 그 주먹에 실린 위력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급히 궁수를 지키기 위해 지훈과 철벽이 뛰어왔으나 놈의 저항이 워낙 거세 허무하게 방어가 무너졌다.

“순순히 내 손에 죽어라!”

쾅쾅!

캥거루 킹의 흉측한 너클이 바닥을 후려쳤다. 딱딱한 돌바닥에 훤히 구멍이 뚫렸다.

저런 걸 한 대라도 맞았다간….

끝이다.

공격 자체는 막을 수 있다. 최대한 공격을 흘리며 틈틈이 화살을 날리면 못할 것도 없다.

‘충분히 가능하다.’

듀얼보우건으로 무기를 바꾼 궁수가 캥거루로부터 도망 다니는 동료들에게 뒤로 빠지라며 턱짓을 했다.

“안됩니다! 그런 무모한! 우리는 다 같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버텨보죠! 희생이라니 방송 사고에요!”

‘이 새끼들은 또 뭐라는 거야.’

거추장스러우니 뒤로 빠지라는 소리였는데 아주 지들끼리 삼류 신파극을 찍고 앉았다.

“죽을 생각 없으니까 빨리 빠져요!”

“혼자서 뭘 하겠다고요!”

“쯧.”

짧게 혀를 찬 궁수가 캥거루를 향해 확 방향을 틀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돌발적인 행동인지라 다른 헌터들은 반응하지 못했다.

타앗!

땅을 박차고 뛰어나간 궁수가 캥거루의 다리 사이를 통과했다.

“장궁!”

몸을 틀어 놈의 등을 향해 화살을 발사했다.

쐐애애애액!

바람의 기운이 닮긴 화살이 거친 파공음을 내며 놈을 향해 날아갔다.

콱!

“…이건 좀 너무한데.”

캥거루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꼬리로 날아오는 화살을 잡아 부러트렸다.

“한번 당한 수에 또 걸릴 정도로 내가 바보 같으냐?”

“치잇!”

공격이 먹히지 않자 궁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뛰었다.

“놓치지 않는다!”

콰앙!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캥거루가 거칠게 주먹을 휘둘렀다.

아슬아슬하게 주먹을 피한궁수가 듀얼 보우건으로 놈의 눈을 집요하게 노렸으나 딱히 먹혀 들어가진 않았다.

팡! 팡!

파찰음이 섞인 주먹은 당장에라도 궁수의 몸을 도륙낼 것만 같았다.

“궁수씨 기다려요!”

“네!?”

탓!

“하아아압!”

이지혁이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그의 검에는 미세한 푸른 마력이 깃들어있었다.

“흥! 다 보인다!”

“어딜!”

거칠게 날아드는 꼬리를 완철벽이 거대한 대방패로 막았다. 기습적인 공격에 놈의 등이 훤히 드러났다.

푸욱!

궁수가 놈의 시선을 끄는 사이 이지혁이 놈의 등을 향해 칼을 꽂아 넣었다.

“오 그렇지!”

“크흐흐흐…. 이게 뭐 어쩐다는 거냐!”

“흐어어!?”

등에 꽂힌 칼 따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캥거루는 더욱 난폭하게 미쳐 날뛰었다.

- 앞에 벽이다!

“뭐! 이번에는 종유석도 없다고!”

평소에는 울퉁불퉁한 천장이 오늘따라 지독하게 평평했다.

- 벽은 좋은 소재다. 알아서 생각해 보도록.

“사지를 찢어 죽여주마!”

“히이이익!?”

캥거루는 현란한 뎀프시롤과 함께 궁수의 숨통을 조여왔다. 저 육중한 덩치와 달리 움직임은 너무나도 가벼웠다.

“흐으읍!”

궁수는 일단 벽을 향해 달렸다.

‘할 수 있을까.’

생각해둔 작전은 있지만 막상 가능할지는 의문이었다.

탓!

힐끗 고개를 돌려 무서운 기세로 쫓아오는 캥거루를 바라보았다.

‘아니, 해야만 한다.’

자신이 아니면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다. 이렇게 된 거 전력으로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

“흐으으읍!”

벽에 거의 도달한 궁수가 힘껏 벽을 향해 도약했다. 그대로 있는 힘껏 벽을 박차고 허공을 한 바퀴 돌았다.

캥거루의 정수리가 훤히 드러났다. 땅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초.

2.00

궁수가 장궁에 화살을 겨누었다.

1.86

화살에 물의 힘이 깃들었다.

1.5

발사하기 직전. 궁수의 시야에 새하얀 글자가 들어왔다.

[스킬 - 속성화살의 숙련도가 최대입니다. 스킬이 진화합니다.]

[염 - 炎]

[빙 - 氷]

[대지 - 大地]

[태풍 - 颱風]

스킬이 진화했으나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궁수의 화살에는 물이 아닌 차디찬 냉기를 내뿜는 혹한의 기운이 깃들어져 있었다.

0.3

그렇게 궁수의 손에 머물던 화살이 놈의 왼쪽 다리를 향해 날아갔다.

쐐애애액!

콰직!

“그렇지!”

정확히 캥거루의 허벅지에 박힌 화살이 쩌억 얼어붙기 시작했다.

“흥! 이딴 것 얼마든…. 흐읍!?”

캥거루의 근육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놈은 낑낑대며 몸을 비틀 뿐 얼음을 깨지는 못했다.

“그거 방탄 얼음이야 이 개새끼야!”

“흐그으으윽!”

“나법사!”

놈이 아직 묶여있는 사이 끝을 내야만 했다. 나법사는 온몸에 땀을 흠뻑 흘리며 아직 캐스팅을 외우고 있었다.

“법사 빨리!”

쩌억!

“흐흐흐흐! 곧! 곧이다!”

놈의 다리에 얼어붙은 얼음에 점차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직은 그리 큰 균열은 아니었으나 놈이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야 나법사! 그쯤 하고 빨리 날려!”

법사는 궁수의 말을 들은 채도 않고 계속해서 고독한 싸움을 이어갈 뿐이었다.

“씨발 아무튼 도움이 안돼!”

돌아가면 꿀밤을 먹여주리라 다짐한 궁수는 다시 시위에 화살을 겨누었다.

‘마력도 얼마 없는데, 가능할까?’

쩌어억!

“흐아아아아아!”

캥거루가 다리의 얼음을 계속해서 거칠게 후려쳤다.

단단했던 얼음은 점차 균열이 커지며 당장에라도 깨질 것만 같았다.

이윽고.

쨍그랑!

단단히 얼었던 얼음이 결국 깨지고 말았다. 놈은 기다렸다는 듯 궁수를 향해 돌진했다.

“제발…! 제발 조금만 더!”

있는 힘껏 화살에 불꽃을 피우려 했으나 픽 픽 힘없는 소리를 내며 사그라들 뿐이었다.

그렇게 캥거루가 궁수의 바로 앞까지 도달한 순간.

“빔!”

궁수의 뒤에서 나법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나법사의 목소리를 들은 궁수는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저게…. 뭐야?”

나법사의 손에는 새하얀 빛의 구가 한 개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 구에서는

쿠과과과과쾅!

“흐어어어억!?”

새하얀 레이저가 쏘아지며 그대로 달려오던 캥거루를 두 동강 내버렸다.

카가가가가각!

캥거루는 물론이고 그 뒤의 던전에 벽에도 깊은 자국을 남기며 흰색 구는 완전히 사그라졌다.

“이런 미친….”

[레벨업! - LV 59]

캥거루는 당하는 순간에도 자신이 죽을지 몰랐는지 살아생전의 표정 그대로였다.

“어, 음….”

“비이이임! 비이…. 이….”

나법사는 그 말을 끝으로 퍽 기절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무리한 마력 사용으로 인해 무리가 온 듯했다.

“끝, 났네요?”

“그러게요….”

[ㅋㅋㅋㅋㅋㅋ왘ㅋㅋㅋㅋㅋㅋㅋㅋ]

[칼 쓰지마!!! 활도 쏘지마!!! 그냥 마법이나 쏴!!! 어차피 결국은 마법이야! 끼에에에에엑!]

[귀여운건 얼굴 뿐이었구연ㅋㅋㅋㅋㅋ]

[진짜 존나 얼탱이없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날 헌터넷의 게시판에는 ‘어최마 - 어차피 최고는 마법사’라는 게시물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마탑이나 다른 랭커급 마법사가 아닌 하급 헌터인 나법사에 의해 만들어진 일이었다.

궁수의 화려한 어시스트와 나법사의 깔끔한 마무리까지.

해당 영상은 수많은 클립을 따여 수출되었다.

국내는 물론이요. 해외에서도 궁수와 법사의 이름이 자주 언급될 수준이었다.

“야, 이제 좀 일어나!”

“흠냐…. 빔, 비임….”

“아오 진짜!”

법사를 등에 맨 궁수가 구시렁구시렁 불만을 토로했다.

방송은 그 뒤로 스피드하게 진행되었다.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궁수와 법사에게 집중되었단 점을 제외하면 성공적인 방송이었다.

이지혁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가벼운 인사 한마디만을 남긴 채 돌아갔다.

탱커와 힐러도 형식적인 인사만을 남기고 되돌아갔다.

화려하게 시작한 방송은 궁수와 법사의 깽판으로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진짜 내가 애 하나 키운다. 키워.”

나법사를 길드 휴게실 침대에 던져둔 나궁수는 땀을 삐질 흘리며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는 다른 길드원들이 모여 방송의 다시보기를 보고 있었다.

“거 그만 봐요, 쪽팔리니까.”

“왜, 재밌는데, 푸흐흐흡!”

영상에는 헐레벌떡 도망 다니는 궁수의 모습이 생생하게 찍혀있었다.

“크흠…. 이런 거 보지 마요 좀.”

“싫은뒈에~”

“애휴…. 여기 애가 하나 더 있네.”

궁수는 온몸으로 느껴지는 피로감에 당장에라도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기절하고 싶었다.

탱커나 근거리 딜러가 해야 할 역할을 자신이 맡았으니 그만한 피로도도 고스란히 자신이 떠맡게 된 것이다.

“아무튼 전 퇴근합니다. 피곤해서 좀 쉬어야겠어요.”

“응, 잘가 도망왕~”

“저게 진짜….”

끝까지 허가연이 궁수를 놀려먹었으나 이제는 답할 기운도 없었다.

아직 시간은 일렀지만 이대로 돌아가 내일까지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흐으…. 형님 이 놈들 평소보다 쌔지 않아요?”

“확실히, 평소보다 조금 강하긴 하군.”

해봐야 최대 B급인 몬스터 들이다.

하지만 지금 헌터들이 상대하는 몬스터의 수준은 B급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일반적인 파티였다면 진작 쓰러지고도 남았지만 지금 이곳에 온 것은 날고 긴다는 베테랑 들이다.

다소 몬스터들이 강하더라도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헌터들이다.

다만 편하길 기대하고 왔던 헌터에게 있어서 어중간한 수준의 몬스터란 휴가를 방해하는 골칫거리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전력 차이는 워낙에 압도적이라 오죽하면 부상을 입은 헌터는 다른 헌터들의 놀림거리가 될 수준이었다.

“거 조금 쉬어갈 줄 알았더니…. 이러면 진짜 출장이 되어버렸군.”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낸 셈이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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