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33화 (33/172)

◈ 33화. 급이 다르네 급이(2)

“방금 그거 뭐에요!?”

“저 헌터 뭐야!”

“느헤헤헤!”

어두운 동굴 속 화려한 불꽃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적들을 모두 태워버린 나법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 제발 좀 사고치지 마라고.”

“아니다! 사고!”

“그래, 사고는 아니다만! 마법사가 그렇게 앞으로 나가면 되겠냐?”

“너도! 궁수 주제에! 혼자 나간다!”

“난 나니까 가능한 거지.”

“나다운 게 뭐냐!”

“…. 그만하자.”

지성이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대화에 궁수는 한숨을 푹 쉬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직도 다른 헌터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죽은 마물들과 법사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궁수는 대수롭지 않게 법사의 머리에 주먹을 콩 쥐어박았다.

다른 이에게는 몰라도 궁수에게는 일상이 되어버린 광경이었다.

“바로바로 들어가죠. 이 녀석은 제가 자중시키겠습니다.”

“아…. 네.”

족히 B급은 될법한 고수준의 마법을 캐스팅도 없이 발사했다.

궁수는 마법에 별 관심이 없어 잘 몰랐지만 사정을 아는 다른 이에게는 법사가 어마어마한 거물로 보였다.

게다가 그걸 아무렇지 않게 다루는 궁수까지.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이야?’

척 보아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방송의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궁수의 평균 시청자 수는 약 3000명.

적지 않은 수였으나 여러 헌터들이 모인 합방의 규모에 비할 수준은 아니었다.

현재 시청자 수 12만 명. 궁수의 평균 시청자의 40배에 달하는 규모의 시청자들 사이에서 궁수라는 존재가 반짝 떠올랐다.

이유 없는 적막이 내려앉았다. 어색한 분위기 속 힐러인 차승아가 궁수에게 말을 걸었다.

“저…. 두 분은 헌터 등급이 어떻게 되시나요?”

“저희요? 저는 C급이고…. 어, 너는 등급 뭐냐?”

“헤에?”

코를 파던 나법사는 고개를 기울이며 궁수를 바라보았다. 다시 말해 모른다는 뜻이었다.

“모른답니다.”

“아 네….”

“자! 기합 넣고 가죠!”

보다 못한 근거리 딜러 이지혁이 다른 파티원들을 북돋아 주었다.

사기가 죽을 이유는 전혀 없었으나 괜시리 응원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앞에 여섯 마리 더 있습니다.”

탱커 완철벽이 대방패를 들고 전방을 주시했다.

“쾅쾅!”

“어허, 내 차례야. 너 방금 열 마리 먹었잖아.”

“쾅…. 알았다!”

‘도대체 저게 무슨 소리지?’

서둘러 몬스터를 처리해도 모자랄 판에 누구 거라며 마치 물건마냥 나누고 있다니.

이지혁에게 있어서는 당최 이해도지 않는 말이었다.

“컴파운드 보우.”

- 머리보다는 심장을 노려라. 두개골이 단단한 놈들이다.

“창세의 무기라는 놈이 설마 저것도 못 뚫어?”

- …. 우문이었다.

“꼴에 에고 웨폰이면 좀 이름값 좀 해라.”

- 크흠!

머리를 쏴서 죽지 않으면 그 구멍을 한 번 더 쏘면 된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할 수 있지만 궁수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제가 전위를….”

촤좌좌좍!

이지혁이 말을 다 마치기도 전 궁수의 화살이 적들을 향해 날아갔다.

날아간 네발의 화살은 하나하나 모두 적들의 머리에 박혔다.

“헐, 진짜 안 죽네.”

- 봐라! 순전히 네 능력 부족이다!

“세상에 활 든 나궁수 보고 능력 부족이라니. 태어나서 처음 듣는데.”

- 크흠! 크흠!

네 마리 중 두 마리는 죽었으나 다른 두 마리는 비틀거리며 아직 살아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머리를 맞았다. 놈들은 죽지만 않을 뿐 휘청거리고 있었다.

평소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피하기 힘든 궁수의 화살을 부상을 입은 놈들이 피하는 것은.

콰득!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정확히 화살이 박힌 그 자리에 한발 더 화살이 박혔다.

“크으! 오늘 폼 죽이네!”

탱커든 뭐든 다른 파티원들이 손 쓸 틈도 없이 적들이 쓰러져나갔다.

궁수는 가볍게 나법사와 하이파이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저런 사람들이 다 있지…?’

‘C급이라고 하지 않았나?’

‘전투 캥거루가 이렇게 쉬운 놈들이었나?’

다른 파티원들의 벙한 반응과는 달리 채팅창은 축제 분위기였다.

[아무 주저도 없이 박아버리네 ㅎㄷㄷ]

[??????????????????]

[아니 진짜로 쐐애액 콰직 하고 죽었다니까?]

[K - 심미켄ㄷㄷㄷ 빠꾸 없이 박네.]

[이제부터 노빠꾸 상남자 직업은 궁수다.]

[아니 얘 진짜 뭐하는 놈임?]

원래 궁수를 알던 사람들은 환호했으며 모르던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궁수의 활솜씨에 감탄했다.

궁수와 법사의 인지도가 미친 듯이 올라가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입소문을 탄 방송은 폭발적으로 시청자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오전 10:45 - 이 둘 뭐 하는 놈이냐?]

[영상]

둘 다 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 실력도 정상이 아닌데.

ㄴ 와 미친 뭐냐?

ㄴ 얘 걔 잖음 양궁 국대출신 헌터.

[오전 11:23 - 이연 방송 레전드 갱신.]

[오늘 방송 놓치면 ㄹㅇ 인절손이누 ㅋㅋㅋ]

ㄴ ㄹㅇㅋㅋ 아직도 방송 안보는 흑우 없제?

ㄴ 음머어어~저리 같이 아직도 방송 안보는 흑우 없제?

방송 시작 1시간 만에 시청자 수는 20만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다.

한국 시청자만이 아닌 외국에서 유입된 시청자들도 상당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궁수를 바라보며 로빈 후드의 재림이라느니 뭐라느니 소리쳤다.

[까고있네 뇌빈 후드를 어디 궁수에 비빔.]

[ㄹㅇ 고주몽 정도는 데려오라고 ㅇㅏㅋㅋ]

ㄴ 古 주몽?

ㄴ 니가 죽였냐?

ㄴ 이걸 들키네.

[뇌빈 후두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로도 공략은 별 다를 바 없었다.

수가 좀 되면 나법사가 마법으로 쓸어버리고 수가 애매하면 어김없이 궁수의 저격이 날아왔다.

“…. 원래 B급 게이트 공략이 이렇게 쉽나요?”

“아뇨….”

“역시 그렇죠?”

[힐러 눈나 어리둥절 ㅋㅋㅋㅋㅋㅋㅋ]

[정보 - 탱커 파업.]

[미천한 근거리 칼챔충 새끼덜 ㅋㅋㅋㅋㅋㅋ]

[근거리 딜러 : 이러려고 칼 들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시청자들의 조롱이 날아오는 와중에도 궁수는 법사와 티격태격 대고 있었다.

“아니 시발 저건 내 거라고!”

“내 거다! 내 거다!”

“너 방금 전 거 다 먹었잖아!”

“모른다! 기억 안 난다!”

“해보자 이거냐? 아앙!?”

“덤벼라!”

다른 사람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마물을 걸고 말이다.

“어…. 보스룸이네요?”

“네, 그렇네요.”

“던전을 산책한 건 태어나서 처음인데, 새롭네요.”

“보스! 보스!”

“꺼져 내 거야!”

“싫다! 싫다!”

[ㅋㅋㅋㅋㅋ아니 그게 왜 니 거야 ㅋㅋㅋ]

[보스가 불쌍해지는 파티는 처음이다…]

[아몰랑 아무튼 내 거임]

[속보 - 나궁수 보스에게 ‘넌 내거야 선언’ 보스 ‘심쿵!’]

ㄴ 마물 패티쉬 ㄷㄷ

ㄴ 왜 씹 머꼴인데

ㄴ ??????????????

보스룸 입구에는 근육질의 캥거루 얼굴과 권투 글러브 두 짝이 새겨져 있었다.

“자이언트 캥거루입니다. 일반 캥거루와는 급이 다르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탱커인 완철벽이 뒤의 동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넌지시 말했으나 파티원들은 알고 있었다.

그 말이 궁수와 법사를 보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거다 내거!”

“뭐래 내거다!”

다만 마물 경쟁이 붙은 둘은 그 말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하…. 그럼 들어가죠.”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철벽이 거대한 문을 열었다.

쾅쾅쾅!

문을 염과 동시에 내부에서 무언가 후려치는 듯한 소리가 울려왔다.

“헉….”

거의 6M에 달하는 거대한 캥거루가 통통 튀어오르며 샌드백을 후려치고 있었다.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궁수와 법사는 당장에도 딜을 쏟아 붓고 싶어 부들부들했으나 이내 꾹 참았다.

“후우….”

마치 무수한 전장을 넘어온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보스룸을 울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자이언트 캥거루의 것이었다.

“나를 죽이러 온 암살자는 네가 처음이 아니다.”

쾅! 거세게 샌드백을 후려친 캥거루가 눈을 떴다.

“그리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병신.”

“병신! 병신!”

궁수와 법사의 막말에 자이언트 캥거루가 할 말을 잃었다.

오히려 그것이 더욱 화를 돋운 듯 놈은 우두둑 우두둑 몸을 풀며 궁수를 향해 다가왔다.

“네놈….”

이마에 핏줄을 빡 세운 놈이 쿵 쿵 바닥을 울리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그렇게 궁수에게 도달하기 전.

“패닉!”

마력을 일으킨 완철벽이 빛나는 대방패로 놈을 쾅 들이밀었다.

“흐음!”

캥거루가 놀라운 듯 눈을 번뜩였다. 다만 그뿐이었다. 완철벽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소리쳤다.

“오.”

“전위는 앞으로! 전후는 지원 부탁드립니다!”

이제야 빛을 발하는 이지혁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라나이드!”

차승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초록빛 마력이 궁수와 파티원들에게 흡수되었다.

[차승아의 ‘그라나이드’를 받았습니다. 30분간 모든 능력치가 3 증가합니다.]

“야.”

- 뭔가 계약자여.

“저거 어떻게 죽이냐.”

- 뭘 고민하나, 쏘다보면 죽겠지.

“그렇겠지?”

어렵게 생각할 거 없다.

장궁을 꺼내든 궁수가 회색빛 마력을 발휘했다. 화살통 가득히 기다란 화살이 가득 찼다.

“일단은 눈이다.”

휘이잉!

바람의 힘을 머금은 화살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후우….”

캥거루는 이지혁과 완철벽의 탱킹에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서로 딱히 이렇다 할 대미지는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쐐애애애액!

바람을 타고 날아간 화살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놈의 눈을….

펑!

꿰뚫지 못했다.

“이걸 막아?”

놈은 난전 와중에서도 글러브로 날아오는 궁수의 화살을 쳐내었다.

그리고는 궁수를 바라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보통 던전 보스가 자신을 향해 미소 짓는 것이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다만.

“저 새끼가 웃어?”

여기 있는 사람은 그 ‘보통’과는 제법 거리가 멀었다.

“오냐 한번 해보자!”

궁수가 오기로 활을 걸고 있을 때 나법사는 순식간에 라이트닝 스피어를 여럿 소환했다.

“찌릿찌릿!”

그의 손끝을 떠나간 8개의 라이트닝 스피어는 정확히 캥거루를 향해 날아갔다.

“흥! 이깟 잔재주!”

놈은 바닥을 후려쳐 이지혁과 완철벽의 포위를 잠시 벗어났다.

그대로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아 날아오는 모든 창들을 꼬리로 처내었다.

“찌릿 없다?!”

나법사 역시 캥거루와 눈이 마주쳤다. 놈의 비릿한 미소가 나법사를 관통했다.

“쪼갠다? 뭘?”

하지만 법사도 궁수에 비해 더 미쳤으면 더 미쳤지 덜 하진 않았다.

“내가! 쪼갠다! 너 머리!”

화아아악!

나법사의 주변 공간이 일그러질 정도의 마력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 뒤져!”

“ᛊᛖᛗᛜᛝᛃ - ᛈᛉᛉᚺ ᚻ…”

왼쪽에선 궁수가 손이 보이지 않을 속도로 화살을 발사하고 있었고 오른쪽에서는 마력이 스파크가 튈 정도로 고도의 캐스팅이 이뤄지고 있었다.

‘무…. 무서워.’

그사이에 낀 차승아는 눈치를 보며 슬쩍 세 걸음 정도 뒤로 빠졌다.

“아오! 저 새끼! 얄미워 죽겠네!”

놈은 요리조리 궁수의 공격을 피하거나 처내며 여유롭게 전투를 이어나갔다.

아직 전위도 지친 기색은 보이지 않았으나 작은 생채기 몇 개만을 겨우 만들어 냈을 뿐 유효타를 만들지는 못했다.

“야 저거 안 죽는데?”

- 뭐 아무리 쏴도 제대로 들어 먹히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면 뭐 이대로 계속 마력만 낭비해?”

- 흐음…. 원거리가 안 먹히면 근거리로 가면 되지 않느냐?

“저거랑 싸우라고? 내가?”

- 왜? 무섭느냐?

“어…. 으니! 하나도 안 무서운데?”

- 그럼 결정됐군.

천궁이 듀얼보우건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궁수가 차분하게 호흡을 골랐다.

“짐승 주제에 날 꼴 받게 해?”

타앗!

“궁수씨 어디가요!?”

“저 새끼 조지러요!”

“네!?”

땅을 박차고 나간 궁수가 곧바로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것도 막아봐 이 새끼야!”

“흥! 겨우 그딴 잔재주로는 날 잡을 수 없다!”

아까 나법사의 라이트닝 스피어도 막아낸 놈이다. 고작 보우건으로는 위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컴파운드 보우!”

궁수도 이를 눈치 채고 컴파운드 보우로 모습을 바꾼 상태였다.

아직 캥거루는 궁수가 컴파운드 보우를 들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

놈도 저 정도는 막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완철벽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있는 상태였다.

화살을 겨눈 궁수가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놈의 등이 훤히 드러났다.

궁수의 마력의 절반이 순식간에 뭉텅이로 깎여 나가며 화려하게 몸집을 키웠다.

마치 거대한 불기둥이 활에서 타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불의 기운을 머금은 속성화살이 곧바로 놈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털부터 다 태워주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