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급이 다르네 급이(1)
[이연 - 아… 저 모르세요?]
“네, 누구세요?”
흡사 연예인 병 초기라는 느낌이 들 수도 있으나 일반 거리도 아니고 인터넷 방송에서 그녀를 모른다니 어르신들 사이에서 가수 나후나를 모르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더군다나 그녀의 구독자 층은 대부분 20대에 포진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남자라면 이연을 보는 것만으로 호들갑을 떨었을 텐데.
‘그런데 이 남자는 도대체….’
“일단 십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그래서 누구신데요?”
놀리는 것이 아닌 정말로 모르는 듯 그는 별 감흥 없이 대답했다.
[ㅋㅋㅋㅋㅋ 듣보연 ㅎㅇ?]
[이연이 어떻게 사람 이름이냐 ㅋㅋㅋㅋ]
[이연으로 이행시 해봄.]
ㄴ 이
ㄴ 이 씨발련아
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ㄴ ㅋㅋㅋㅋㅋ 걍 욕하고 싶었네.
너튜브에 들어가 이연을 검색하니 제법 몸집이 있었다.
52만에 달하는 구독자를 가진 그녀는 평소 일상 브이로그를 찍는 너튜버였다.
“헌터도 아닌 것 같은데 저한테 무슨 일이신가요?”
헌터 관련 너튜버도 아니고 일반인인 그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띠링!
알람이 울리며 이연이 개인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녀는 예의바른 말투로 조심스럽게 궁수에게 제안했다.
[이연 - 다름이 아니라, 제가 새로운 컨텐츠를 하나 준비했는데요! 그 주인공이 딱 궁수님에 부합해서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나궁수 - 제가요?]
[이연 - 네! 그래서 그런데 합방 한번 가능하실까요!]
[나궁수 - 합방이요?]
[이연 - 네!]
궁수에게 있어서도 썩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유명한 너튜버인 그녀와 합방을 한다면 인지도는 물론이고 인맥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뭐 이연에 관련한 논란이라도 있다던가 그런 것도 아닌지라 궁수는 흔쾌히 수락했다.
[나궁수 - 좋습니다. 여기로 연락 주세요.]
[이연 - 네! 감사합니다 헌터님 >_
연락처를 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궁수의 메신저 알림음이 울렸다.
이연의 메시지였다.
따로 이쪽으로 이야기도 나눠야 할 것 같고 고수혁도 해체를 마쳤기 때문에 궁수는 슬슬 방종각을 잡았다.
“그럼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주인장 어디가! 쾅쾅쾅!]
[안가! 못가! 문 열어!]
[어딜 들어가! 못가!]
[궁바!]
ㄴ 이 새끼 쳐내!
“궁바!”
방송을 끈 궁수는 법사와 수혁과 함께 던전 밖으로 나왔다.
시간은 오후 2시.
이대로 집에 가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정산을 완료한 궁수는 다른 파티원들과 함께 길드 하우스로 북귀했다.
“수혁씨.”
“네?”
“이연이라고 알아요? 너튜버라던데.”
‘저 근육 돼지가 그런 것도 보나?’
“알죠. 유명하잖아요.”
“그렇구나….”
고수혁도 그녀의 브이로그를 보며 마음을 다스리곤 했다.
따뜻한 색감을 사용하여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그녀의 영상은 실제로 지친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녀의 주 시청자 층이 20, 30대인 이유이기도 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그냥 별건 아니고 합방하자 길래요.”
“네? 뭐요?”
“합방이요 합방, 합방 뭔지 몰라요?”
“아뇨 알고 있는데, 왜 그런 인기 너튜버가 궁수님 같은 사람을….”
궁수의 싸늘한 시선에 고수혁이 고개를 획 돌렸다. 잠시 침대에 누워 쉬기도 잠시 다시 궁수의 스마트 폰이 울렸다.
다름 아닌 이연에게 온 메시지였다.
[이연 - 저 궁수님! 다름이 아니라 언제쯤 이야기 가능한지 여쭤보려고요.]
[나궁수 - 아 합방이요?]
[이연 - 네, 아무래도 세부적인 부분도 조정해야 하니까요.]
[나궁수 - 음…. 그럼 지금 볼까요?]
[이연 - 네? 지금이요?]
[나궁수 - 네,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까요.]
[이연 - 음… 알겠습니다! 금천구에 잘 아는 식당 있는데 거기서 봐요!]
이연이 식당 위치를 찍어주었다. 검색해보니 평범한 레스토랑이었다.
[나궁수 - 네, 그럼 저녁에 뵙죠.]
[이연 - 네!]
***
“후우…. 언제 오는 거야.”
먼저 식당에 도착한 이연이 자리에 앉아 궁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조용한 룸으로 예약을 걸어두었기 때문에 눈치가 보인다거나 하진 않았다.
똑똑
“들어오세요.”
“이연씨 맞나요?”
“아 네! 나궁수씨 맞죠?”
“예, 맞습니다.”
서로 어색한 통성명을 마친 궁수와 이연이 어색하게 시선을 교환했다.
화려한 레스토랑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다름 아닌 궁수였다.
“바로 일정부터 잡죠?”
“네? 아 네!”
이연은 주워들은 정보로 궁수를 알고 있으나 궁수는 그녀를 잘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여자를 대하는 것이 익숙한 것도 아닌지라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아마 방송이 켜져 있었다면 모솔 궁수라며 놀림을 대차게 당했을 것이다.
휴대폰을 켜 일정을 확인한 그녀가 조심스레 궁수에게 물었다.
“내일부터 바로 가시는 건 조금 부담스러우신가요?”
“내일이요?”
“네, 이미 시청자분들도 알고 있으니까, 빨리빨리 가는 게 어떨까 해서요.”
“음, 뭐, 좋아요!”
질질 끄는 건 그녀의 성격에 맞지 않았다. 시원시원하게 용건을 말하기도 잠시 미리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꾸덕한 크림 파스타부터 육즙이 팡팡 터지는 스테이크에 차돌박이 필라프까지.
절로 침이 꼴깍 넘어가는 음식의 향연이었다.
‘닭가슴살이나 먹고 싶다.’
하지만 진성 헬창인 궁수에게는 모두 기름진 음식일 뿐이었다.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적당히 음식을 집어먹은 궁수가 넌지시 물었다.
“합방이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구체적으로 뭘 하신다는 건가요?”
“음, 다름이 아니고 제가 다른 헌터분들도 몇 분 모았거든요.”
“다른 헌터분들을 모으셨다고요?”
“네, B 등급 헌터분들 이세요.”
“흠, 네.”
그녀의 제안은 생각보다 시시했다. 자신이 모집한 헌터들과 함께 던전을 공략하라니.
던전 등급이 B급이긴 하지만 이 수준의 멤버라면 큰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헌터님은 등급이 뭐에요?”
“저요? 저 C급이요.”
“…네? C급이요?”
“네 C급입니다.”
물론 C급 헌터가 낮은 수준은 아니다. 다만 궁수의 전투력을 생각했을 때 어울리지 않는 등급임은 확실했다.
‘흐음…. C급이라.’
이연이 잠시 턱을 괴고 고민에 들어갔다.
적어도 B급 잘하면 A급 헌터인줄 알았는데 대뜸 C급이라니
‘오히려 힘숨찐 컨셉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
C급이라 약한 척 하다가 팍!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등급에 비해 대단하시네요!”
“그런 소리 자주 듣습니다.”
그녀는 티슈로 입을 닦으며 가방에서 꺼낸 종이 몇 장을 건네주었다.
“세부 일정입니다. 한번 살펴보세요.”
“네.”
헌터 게이트 공략 밀착 취재.
“…? 이거 촬영 가능한 거 맞아요?”
“네? 어떤 부분이죠?”
“게이트 공략이요, B급 던전형 게이트 공략인데 일반 촬영팀이 같이 가는 게 말이 되요?”
“아 그 부분은 따로 담당 촬영 헌터님을 구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흐음….”
규모가 규모이니만큼 그녀 개인지 진행하는 일은 아니었다. 종이 끝부분에는 회사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예, 뭐 좋습니다. 가시죠.”
“그럼 여기에 서명 좀 해주시겠어요?”
“아, 저 동료 한명만 데려가도 될까요?”
“네?”
“그 제 동료 중에 스펙 죽이는 마법사가 있어서요.”
‘스펙이 죽여주긴 하지.’
그 스펙으로 아군도 때려 죽일 만큼.
그녀도 궁수의 방송을 보아 누군지 아는 듯 흔쾌히 궁수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가 데려올 마법사가 얼마나 미친 사람인지도 모른 채.
***
합방 당일, 이지혁은 평소와 같이 몸을 풀고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다 거기서 거기네.’
헌터가 되고 고작 반년 만에 B급에 올랐다. 이것도 길드에서 자신을 밀어주기 위해 내건 방송일 것이다.
실제로 반년 만에 B급이면 대단한 재능인 것은 맞았다.
다만 그는 궁수와 달리 더도 덜도 아닌 딱 B급의 실력을 지녔을 뿐이었다.
“거저 먹는구만~”
심지어 이 방송의 진행자는 다름 아닌 이연이다. 실제로 이상형 월드컵에서도 꾸준히 3위권 내에서 거주하는 이연.
이번 기회를 통해 그녀와 가까워 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풀기도 잠시.
“느헤헿! 펑펑! 찌릿찌릿!”
“오늘은 제발 좀 가만히 있어!”
“으헤헤헤헿!”
“야! 야! 어디가! 이리 안와!?”
저 멀리서 남자 두 명이 티격대격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명은 건장한 체구에 반해 한쪽 어깨에 활을 끼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곱상하게 생겨서 침을 흘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뭐야 저것들은….”
그래도 나름 헌터인지 협회 직원들은 그들을 보고도 제제하지 않았다.
그리고 거의 30분이 다 지나고 나서야 파티가 무사히 모일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네, 잘 부탁드려요!”
궁수와 법사를 포함한 충 다섯 명의 헌터들이 게이트 앞에 모였다.
각자 마이크를 달고 장비를 정비하는 그 모습은 정말로 ‘헌터’ 다웠다.
“반짝반짝! 헤헤헤! 검은색! 반짝!”
…한명만 빼고.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며 반짝반짝을 연신 외쳐대는 나법사만 제외하면 말이다.
탱커 완철벽.
근거리 딜러 이지혁.
힐러 차승아
원거리 딜러 나궁수.
마법사 나법사까지.
‘뭐지 이 혼종인 듯 혼종 아닌 혼종 같은 느낌은.’
어찌되었든 방송은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몸에 캠을 달고 진행하는 것이 아닌 타인이 촬영하는 형식이라 궁수의 입장에서도 편하긴 했다.
“자~ 이렇게 해서! 저희가 던전형 게이트 클로징을 진행해 볼 건데요~!”
이연의 시원시원한 진행에 막힘없이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상큼한 듯 하면서도 살짝 매콤한 입담이 일품이었다.
“헌터님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면서! 그럼 게이트 클로징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ㅉㅉㅉㅉㅉㅉㅉ]
[나궁수!나궁수!나궁수!나궁수!나궁수!나궁수!]
[싸늘하다…. 찌찌에 화살이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마라. 손은 화살보다 빠르니까.]
[옵하 나 죽어!]
[전궁협에서 나왔습니다. 나궁수씨 힘내세요.]
ㄴ 전궁협?
ㄴ 전국 궁수 협회.
ㄴ 뭐야 그냥 찐따 모임이자너
ㄴ 니들 다 아이디 기억했다.
얘들아 제발 그러지마.
눈을 질끈 감고 채팅을 무시하는 나궁수였다. 제발 자신의 이름이 채팅창에 나오지 않길 빌었다.
“그럼, 바로 들어가죠.”
게이트 특성상 일반인인 이연은 들어올 수 없었다. 그래서 헌터 촬영팀이 함께 들어와 던전 내부를 촬영하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B급 헌터 이지혁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만 괜찮으시면 제가 오더를 내리려는데 어떠세요?”
딱히 불편한 사람은 없는 듯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궁수는 법사를 챙기느라 바빠 딱히 그런걸 신경 쓸 틈도 없었다.
조금 나법사가 삐걱이는 것만 제외하면 공략은 평소와 같았다.
쿵! 쿵!
“전투 캥거루군요.”
손에 철갑을 두른 캥거루가 통통 튀며 벽을 후려치고 있었다. 그 모습이 흡사 권투선수와 같았다.
하지만 벽을 때려 부수는 그 위력은 일반 권투선수와는 그 수준이 달랐다.
그런 놈들이 10마리가 통통 튀어오르고 있었다.
“통통! 통통통!”
“쉿, 조용히 해”
“통통통!”
“저! 저저! 저거 또 사고친다!”
궁수가 한눈을 판 사이 나법사가 앞으로 성큼 걸어 나갔다.
이미 흉흉한 마력을 일으켜 양손 가득 푸른 불꽃을 일으킨 상태였다.
[?????? 뭐야 저거??]
[푸른 불꽃???]
[쟤 갑자기 왜저럼???]
나법사를 모르는 사람은 갈고리를 던지며 그를 신기하게 바라보았으나.
[캬 법사좌 등판했다.ㅋㅋㅋㅋㅋ]
[쾅쾅! 찌릿찌릿! 펑펑!]
[펑펑파티이이이잇!]
[좌중간! 좌중간 꽉찬 파이어볼!]
[담장으으으으을!]
[넘어갑니드아아아악!]
“펑펑 쾅쾅!”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외친 나법사가 거대한 파이어볼을 발사했다.
지름만 거의 5m에 달하는 거대한 화염구가.
콰아아아앙!
화르르르륵!
캥거루 10마리를 모두 집어삼켰다.
“이런 미친!?”
“꺄아아아아악!”
“야 이 미친새끼야아아악!”
“쾅쾅쾅쾅!”
[이거지!!!!!]
[씨이빨 누구도 날 막을 순 없으셈!!!!]
[오늘부터 모든 언어는 ‘쾅쾅’과 ‘펑펑’으로 나뉜다.]
[나법사 하고싶은거 다해!!!]
방송의 채팅창이 미친 듯이 과열되었다.
나법사는 만족스러운 듯 왼팔에 고개를 파묻고 오른 팔은 쭉 뻗은 소위 ‘댑’이라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
궁수를 제외한 다른 헌터들은 입을 쩍 벌렸으며 궁수는 이마를 짚고 고개를 휘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