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31화 (31/172)

◈ 31화. 관종이 될 준비.

“일은 잘 보고 왔어?”

“말도 마요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다른 멤버들과 함께 길드 본부로 돌아온 나궁수가 너스레를 떨었다.

실제로 궁수는 공략이 끝남과 동시에 긴장이 풀린 나머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자신이 탱커도 아니고 궁수로서 몬스터의 어그로를 직접 끌자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본부 내부를 돌아본 궁수가 힐에게 물었다.

“셈은 아직 안 왔네요?”

“아, 셈? 출장 갔어.”

“네? 갑자기 웬 출장이요?”

셈은 대답하다 말고 휴대폰을 들었다.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니 ‘호주 원정대’라는 기사가 쓰여 있었다.

“웬 원정대?”

“말이 원정대지 사실상 청소하러 가는 거지.”

커피를 따르던 허가연이 슬쩍 옆에 앉았다. 그녀는 커피를 홀짝이며 말을 이었다.

“이전에 호주가 한번 싹 쓸린 건 알지?”

“알지, 파도형 게이트였나.”

“그래, 그것 때문에 더 이상 사람이 살 곳은 아니게 됐지.”

실제로 흡사 체르노빌 같은 모습의 호주의 모습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사람도 살지 않고 텅 비어있으니, 어떻겠어? 게이트가 바글바글하겠지.”

“응, 그렇겠지.”

“그래서 정기적으로 원정대를 보내는 거야. 한 번씩 싹 쓸어버리려고. 마침 이번 차례가 한국, 일본이었던 거지.”

“흠…. 그렇구나.”

가연은 그리 큰일은 아닌 듯 태연하게 커피를 마셨다. 힐도 익숙한 듯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태평해도 되는 거야?”

“뭐가?”

“아니 그래도 한번 큰일 났던 곳이잖아.”

“풋….”

커피잔을 쥐고 있던 허가연이 피식 궁수를 비웃었다.

풋…. 이래서 초짜는.

작게 조소한 허가연이 머리를 쓸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파도야 몇 년도 더 된 일이고 거긴 해봐야 B급 게이트까지 밖에 안 나와.”

“아, 그래?”

“어, 그런데 데려가는 건 상위 헌터들이니까, 거의 반 휴가나 다름없지.”

“와, 셈 아저씨 개꿀 빠네.”

“너도 A급이 되면 되잖아?”

언젠가는 자신도 분명 A급, 아니 그 위를 넘어 S급을 노려볼 수 있다.

하지만 당장에 지금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간만 넉넉하면 못 할 건 없지.”

“그러셔?”

“물론이지.”

조소하며 대답한 허가연이 휙 연구실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가기 전 그녀가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대할게?”

“뭐, 싸인이라도 해주랴?”

“됐네요.”

자연스럽게 농담으로 받은 궁수는 방을 둘러보았다.

나법사는 지쳤는지 이미 쓰러져 쿨쿨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힐은 익숙하게 법사를 들어 침대에 눕혔다.

“그럼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음, 자네도 수고했네!”

궁수도 몸 이곳저곳이 쑤셔왔기에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었다.

“네, 수고하세요.”

바깥으로 나오니 슬슬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타오르는 노을을 보니 퇴근 후 집에 들어가는 샐러리맨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집 가서 맥주나 한 캔 깔까.”

***

이연은 모니터를 보며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하…. 진짜 그놈의 헌터! 걔들 때문에 되는 게 없어!”

연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름 잘나가는 너튜버였다.

이연 특유의 털털한 성격에 호쾌한 입담 그리고 살짝 강한 인상이지만 생각보다 귀여운 점이 있다는 점 등등.

거리를 돌아다니면 하루 열댓 명은 알아보는 나름 50만의 인기 너튜버였다.

하지만 평온하고 일상적인 분위기를 지향하는 그녀에게 있어 헌터라는 자극적인 소재에 점차 밀리고 있었다.

대중들은 헌터로부터 느낄 수 있는 신선한 자극에 환호했고 다른 일반인 유튜버들의 자극은 더 이상 이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우결이라도 확 꽂아봐?”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이연 특유의 노란 숏컷 머리가 찰랑거렸다.

너튜브가 뜨기 시작하며 직장도 접고 너튜브에 올인 했는데 이런 꼴이라니.

당장은 조회수가 큰 차이는 없었다. 해봐야 달에 10만, 20만 정도?

하지만 흐름에 민감한 신가영은 알고 있었다. 차츰 이 간격이 훨씬 커질 것을 말이다.

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신박한 소재를 가져와야만 했다.

그런 그녀가 먹음직스러운 소재를 찾기 위해 헌터넷에 접속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뭐 괜찮은 거 없으려나….”

논란이 없으면서도 대중들의 관심을 확 사로잡을만한 그런 아이템이 필요했다.

하염없이 스크롤을 내리던 찰나 이연의 눈에 신기한 제목의 게시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K - 궁수다!]

“뭐야 이건?”

이미 수천 개의 추천을 받고 베스트 글로 올라간 상태였다.

[이게 K - 궁수다!]

[영상]

세상 궁수들이 핍박과 역경을 지낸 것이 안타까워 신이 궁수를 보내었으니 그것이 나궁수다.

신 : 나 강림.

ㄴ 신궁수 ㄷㄷㄷㄷ

세상 궁수들이 힘들다면 고개를 들어 나궁수를 보게 하라.

ㄴ 왜?

ㄴ 상대적 박탈감 느끼고 포기하라고.

ㄴ 씹 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뭐지…?”

댓글은 거의 그를 신성시하는 수준이었다. 마치 극성 광신도처럼 말이다.

이연은 게시글에 달려있는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에서는 튼실한 근육의 남자가 나왔다. 손에는 기다란 활을 들고 게이트 공략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몸에 궁수라고?”

궁수라면 샤프하고 기동성이 뛰어난 것이 그녀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지금 영상에 나오는 남자의 모습은 샤프와는 이미지가 제법 멀었다.

게이트로 뚜벅뚜벅 들어가니 여러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거대한 개미의 형상을 한 마물이었다. 절로 표정이 찡그려지는 징그러운 모습이었다.

거의 한 마리 한 마리가 성인 남성의 크기에 비례했다.

작을 때야 귀여운 개미지만 이렇게까지 거대하니 절로 거부감이 들었다.

“으으…. 개 징그러.”

이연이 벌레에 기겁하기도 잠시 영상 속의 남자는 조용히 화살에 시위를 감았다.

촤좌좍!

“어?”

이연은 분명 한 발을 쐈다고 생각했는데 날아간 화살은 세 발이었다.

모두 정확히 개미들의 머리통을 관통하여 뚫어버렸다. 깔끔한 원샷 쓰리 킬.

“뭐야 이 남자…?”

이전 그녀가 아는 궁수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녀에게 있어 궁수라는 직업은 그냥 숟가락이었다.

숟가락으로 때린 듯한 딜량, 거의 파티에서 깍두기나 다름없는 신세, 결정적으로 화살이 떨어지면 짐꾼으로 전략하는 직업.

그것이 그녀가 알고 있던 궁수였다. 실제로도 그런 경우가 다반사였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영상에 비춰진 남자는 어떤가?

촤악!

키에에에엑!

궁수는 고사하고 오히려 다른 직업들을 압도할 수준의 딜량, 지치지 않는 체력까지.

그는 여유롭게 솔로로 게이트를 클로징하고 있었다.

영상에서 비춰지는 압도적인 궁수의 모습은 이연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궁수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뛰어난 전투 능력은 물론이요,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시원시원한 전투 스타일까지.

영상 후반부 새까맣게 몰려 들어오는 개미들을 상대로 펼치는 궁수의 미친 전면전은 혀를 내두를 수준이었다.

그녀는 혹시나 궁수의 다른 정보를 찾을 수 있나 헌터넷을 더 뒤져보았다.

아무리 스크롤을 내려도 그를 찬양하는 게시글만 무성할 뿐 딱히 별다른 게시글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말은 곧 컨텐츠로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뜻했다.

“이거다.”

몇 년간 너튜버를 해왔던 그녀의 감이 곤두섰다.

‘이건 무조건 잡아야 한다.’

그녀의 눈에는 마치 나궁수가 당첨이 보장된 로또 종이로 보였다.

“이 사람 지금 방송 켰나?”

***

“쿵쿵! 궁수! 쿵쿵쿵!”

“닥쳐! 정신 사나우니까!”

“구른다! 구른다!”

던전 속 거대한 아르마딜로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궁수를 향해 굴러오고 있었다.

- 빨리! 더 빠르게 달려라!

“끄아아아아악!”

나법사는 저 멀리서 이를 구경하며 이를 깔깔 비웃고 있었다.

[오빠 달려ㅕㅕㅕ]

[ㅋ앜ㅋ닠ㅋㅋㅋㅋ ㅈㄴ 위험한데 개 웃기네.]

[존나 구경ㅋㅋ 도와주라고 좀ㅋㅋㅋㅋ]

[어림도 없지 관음 on]

[이걸 도와주라고? 이건 잘 참지 ㅋㅋㅋ]

채팅창은 당장에라도 터질 듯 미친 듯이 올라갔다.

“아오 저 개만도 못한 놈들!”

C급 보스형 던전.

다른 아르마딜로들은 평범하게 등딱지를 관통시킬 수 있었다.

컴파운드 보우의 강력한 위력에 속성 화살 중 바람의 기운을 불어넣으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너무나도 쉬운 공략이었기에 보스를 상대로도 바보 같은 판단을 하고 말았다.

나름 보스라고 장궁을 사용해서 공격했는데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놈의 갑주는 일반 아르마딜로와는 그 차원이 달랐다.

놈의 온몸에 박힌 날카로운 가시는 당장에라도 궁수를 꿰뚫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다.

콰콰콰콰콰!

“끄아아아악!”

오죽하면 바닥에 아르마딜로의 가시가 박혀 땅에 구멍이 송송 뚫릴 지경이었다.

“야! 나법사! 뭐라도 해봐아아악!”

“아하하! 구른다! 구른다!”

“개새끼야아아아!”

“궁수씨! 벽이요 벽!”

“뭐요!?”

고수혁이 가리킨 벽은 일반 벽이었다. 딱히 울퉁불퉁 하지도 않고 그냥 평범한 벽.

무슨 말인지는 알아먹었지만 딱히 놈이 벽에 부딪힌다고 큰 타격을 입을 것 같지는 않았다.

“위요! 위!”

“위? 아!”

궁수가 조심스럽게 방향을 틀어 고수혁이 말한 벽을 향해 급히 달려 나갔다.

[???? 뭐함?]

[?? 갑자기 왜 벽으로 달려??]

[다 꼴아박아 범퍼 카ㅏㅏㅏ]

[난 핸들이 고장난 에잇 톤 트러어어어억]

“안 죽어 이 새끼들아!”

벽에 부딪히기 직전 궁수가 땅을 박차고 점프했다. 아르마딜로는 멈추지 못하고 그대로 벽을 들이받았다.

콰아앙!

그대로 벽을 박차고 뛰어오른 궁수는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아 아르마딜로의 뒤에 착지했다.

“나법사! 저거 빨리 맞춰!”

“저거?”

“빨리! 펑펑하라고 펑펑!”

“알았다! 펑펑!”

아르마딜로의 가시가 벽에 제대로 꽂혔다. 당장은 움직이지 못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자유를 찾을 것이다.

그 전에 최대한 빠르게 놈을 죽여야만 했다.

화아아악!

나법사의 푸른 마력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손 위로 지름이 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파이어볼이 형성되었다.

“펑펑!”

화력 하나는 단연 독보적인 나법사의 마법이 화려하게 작렬했다.

콰아앙!

“그렇지! 잘했어!”

법사의 마법이 적중한 것은 아르마딜로가 아닌 그 위의 거대한 종유석이었다.

쿠과과광!

종유석의 뿌리에 쩌억 금이 가더니 이내 귓가를 가득 채우는 소음과 함께 서서히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 아직 안 끝났다! 빨리 제압시켜! 저거 움직이면 빗맞는다!

“그건 안돼!”

급히 장궁을 꺼내든 궁수가 바로 화살을 겨누었다.

바람의 기운을 양껏 머금은 화살이 지체 없이 바로 놈을 향해 발사되었다.

적을 관통하는 힘이 아닌 넓게 펴 밀어내는 둔탁한 바람이었다.

휘이이이잉!

“그렇지!”

날아간 바람의 화살은 아르마딜로를 밀어내기엔 턱없이 부족했으나 놈을 잠시 멈추게 만드는 데에는 충분했다.

발이 묶여버린 아르마딜로는 결국.

콰아아아앙!

[레벨업! - LV 57]

“그렇지이이이!”

거대한 종유석이 등을 뚫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멸하고 말았다.

“허억! 허억!”

“펑펑!”

다리에 힘이 빠진 궁수가 털썩 주저앉았다.

[ㅊㅊㅊㅊㅊㅊㅊㅊ]

[이걸 깨네 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마법사 개 사기네 ㅋㅋㅋㅋ]

[궁수 똥꼬쇼 = 마법사 스킬 한 개]

“닥쳐요, 이겼으면 된 거지.”

궁수가 땀을 닦아내며 숨을 골랐다. 고수혁이 해체를 하는 동안 궁수는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빰빠바밤!

화려한 후원 소리가 궁수의 스마트 폰에서 터져 나왔다.

[이연 (님)이 100,000 원을 후원하였습니다.]

ㄴ 안녕하세요, 나궁수님! 방송 잘 보고 있어요! 어떻게 그 힘든 게이트를 ㅠㅠ 너무 대단하세요!

[??????이연???]

[눈나가 왜 여기서 나와?]

[안된다! 우리 궁수는 못준다!]

[아이고 나으리! 이것까지 가져가시면 저흰 도대체 뭘 먹고 살라는 겁니까!]

제법 유명한 사람인 듯 채팅창의 태반이 그녀를 알아보고 있었다.

실제로 인터넷 방송에서 50만 인기 너튜버의 영향력은 제법 대단했다.

하지만.

“누구세요?”

건강 관련 방송만 찾아보는 궁수가 이를 알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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