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스틸 자제 좀.
찍찍!
“진짜 더럽게 크네.”
저 멀리 메탈 렛트 다섯 마리가 모여 털을 다듬고 있었다. 철갑이 쌓인 꼬리가 빛을 받아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성인 남성의 몸통만한 크기의 쥐들이 찍찍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포동포동한 햄스터 같은 모습이 아닌 징그러운 쥐의 모습은 나궁수의 표정을 찡그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으으…. 징그러워.”
- 사내놈이 뭘 저런 거 가지고, 빨리 움직이기나 해라!
“너 그거 성차별인거 아냐?”
- 난 성별이 없다.
“옘병. 목소리는 40대 아저씨면서.”
자연스럽게 시위에 화살을 겨눈 궁수가 적들을 노려보았다.
숨을 고르길 잠시.
“찌릿찌릿 파티!”
“음? 뭐해?”
“찌릿찌릿 통구이!”
“무슨…. 허억?!”
나법사가 오른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 위에는 흉흉한 스파크를 튀기는 새하얀 창 한 개가 붕 떠 있었다.
“찌리리릿!”
나법사가 저 멀리 있는 쥐새끼들을 가리켰다. 그와 동시에 손 위에 있던 창이 쥐들을 향해 날아갔다.
어두운 동굴 속 새하얀 선이 한 개 그어졌다.
“찌릿찌릿!”
콰앙!
새하얀 스파크를 튀기던 창이 그대로 쥐들을 쓸어버렸다.
“미친!?”
[왘ㅋㅋㅋㅋㅋㅋㅋㅋ]
[궁수<<<<<<<<마법사]
[엄마! 전 커서 마법사가 될래요!]
ㄴ 넌 머리가 멍청해서 안 된단다.
ㄴ 엄마 닮음.
ㄴ 너 같은 자식 낳은 적 없다.
단 한 번의 마법으로 적들 전부를 쓸어버린 나법사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한 번 더 강렬한 현자타임을 느끼는 궁수였다.
“야! 쟤들 내꺼라고!”
“찌릿찌릿!”
빨리 100레벨을 찍고 2차 전직을 하기도 모자랄 판에 마법사한테 스틸이나 당하고 있다니.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나궁수가 입술을 팍 내밀고 불편한 티를 내었지만 법사는 이를 깔끔하게 무시했다.
연신 찌릿찌릿거리며 싱글벙글 웃을 뿐이었다.
“어휴….”
앞에서 뭘 하던 고수혁은 신경 쓰지 않고 메탈 렛트의 해체를 하고 있었다.
해체를 하는 고수혁의 손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메탈 렛트는 마석 빼고 뭐 없어요?”
혹시나 짭짤한 부수입이라도 있을까 나궁수가 물었다.
“떠오르는 건 두 개 정도 있네요.”
“뭔데요?”
“가죽이 부드러워 인기가 좀 있고 꼬리도 일반 강철보다 배는 강하지만 가공하기 용이해 인기가 좋습니다.”
“오호….”
“그런데 가죽은 다 태워 먹어서 못쓰겠네요.”
“아.”
궁수가 일순간 나법사를 확 째려보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태도가 바뀔 놈도 아닌지라 나궁수는 한숨을 푹 쉬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마침 고수혁도 해체를 끝마쳐 나궁수를 따라나섰다.
해체는 꼬리 이외에는 얻을 것도 없어서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쭉쭉 밀고 들어가죠.”
“예.”
“찌릿!”
이번에는 기필코 뺏기지 않으리라.
저 비열한 개사기 마법사를 이기라라 다짐한 궁수는 속도감 있게 클로징을 진행했다.
- 전방에 여섯 마리.
대답할 틈도 없이 궁수는 컴파운드 보우에 화살을 걸고 있었다.
촤좌좍!
순식간에 궁수의 손을 떠나간 네 발의 화살이 메탈 렛트의 머리를 꿰뚫었다.
두개골이 제법 단단한 듯 머리에 화살이 꽂히고도 버텼으나 곧바로 날아온 화살을 한 대 더 맞고 나서야 렛트가 털썩 쓰러졌다.
남은 마릿수는 4마리.
“ᚠᚺ ᚻᛉ….”
궁수의 뒤에서 나법사의 캐스팅 소리가 들려왔다.
“흥! 어림도 없지!”
이번에는 나법사의 캐스팅보다 궁수의 화살이 더 빨랐다.
일반 활에 비해 훨씬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컴파운드 보우는 보기 좋게 렛트들을 꿰뚫었다.
화살통에서 화살 다발을 꺼내든 궁수가 빠르게 손을 놀렸다.
마치 화살을 발사하는 기계마냥 빠르게 날아간 화살들은 한발의 오차도 없이 모두 렛트를 적중시켰다.
콰직!
마지막으로 날아간 궁수의 화살이 렛트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아아! 못했다! 찌릿찌릿!”
“이겼드아아아아!”
“비겁하다! 비겁하다!”
아무리 위력이 강하다 한들 결국 나법사는 마법사다.
위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에 비례하는 캐스팅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마저도 마법에 필요한 복잡한 다중 연산을 거치며 캐스팅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법사의 캐스팅 속도는 일반 법사보다 배는 빨랐다.
다만 궁수의 연사력이 이룰 웃돌았을 뿐. 거기에 쏘는 족족 박히는 미친 명중률까지.
나법사의 캐스팅 속도가 빠르다 한들 래퍼도 아니고 궁수의 연사력을 따라 갈수는 없었다.
“무슨 마법이야 활이 짱이지!”
“비겁하다!”
“그럼 너도 지팡이로 패던가!”
“부우우우!”
스무 살 넘은 성인 둘이 하는 대화라기엔 믿기 힘들 정도로 수준이 떨어졌다.
- 쯧… 애가 둘이군.
[빼애액! 니가 잘못 해짜나!]
[응애! 응애애!]
[얘! 나가 죽어버리렴!]
“꼬우면 너도 빨리빨리 쓰던가!”
“흥! 흥!”
“저, 해체 다 끝났으니 빨리 가기나 하죠.”
보다 못한 고수혁이 상황을 중재하고 나서야 클로징은 마저 이어질 수 있었다.
울퉁불퉁한 바닥, 어두컴컴한 동굴에 긴장감이 흘렀다.
언제 어디서 몬스터가 나올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아닌 누가 먼저 몬스터를 죽일지에 대한 것이었다.
진한 살기가 주변에 흐를 지경이었다.
적막한 긴장감 속 천재 마법사와 천재 궁수의 치열한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 전방에 일곱.
화악!
“ᚾᛁᛃᛇ….”
나법사의 캐스팅과 궁수의 활시위가 당겨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쐐애액!
“라이트닝 스피어!”
“속성화살!”
불길을 머금은 여덟 발의 화살이 정확히 렛트를 노리고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찬란한 번개의 창 또한 공기를 찢으며 날아갔다.
콰아앙!
C급 몬스터를 잡는다고 보기에는 어딜 보더라도 명백한 오버 파워였다.
물론 궁수에게 그런 것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한 마리 더 죽였다!”
“아니다! 죽였다! 내가 더!”
“여기 화살 박힌 거 안 보이냐?! 내가 죽였잖아!”
“여기! 가죽 탔다! 내가 죽였다!”
“응 아니야 내가 죽였어~”
“붸에에! 붸에에에!”
고수혁은 이제는 신경도 쓰지 않고 능숙하게 해체를 해 나갔다.
그 이후의 공략은 꽤나 치열했다.
몬스터가 나오면 1초도 되지 않아 모조리 몰살시키고 누가 더 많이 죽였는지 열렬한 토론이 열렸다.
유치하다고 놀리던 채팅창도 어느새 이에 동화되어 심판마냥 상황을 관전하고 있었다.
[내가 봤을 때 이번에는 궁수가 빨랐음.]
[? 개솔 ㄴㄴ 아무리 봐도 법사가 먼저였음.]
[하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ㄴ 이 새낀 또 뭐야.
뒤로 갈수록 강력한 렛트들이 등장했으나 이미 C급의 수준이 아닌 헌터들의 맹공을 버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어느새 보스룸 앞에 도달했다.
“야!”
“뭐냐!”
“이렇게 된 거 보스 먼저 잡은 놈이 이기는 걸로 하자.”
“좋다! 내가 이긴다!”
“개소리 마 내가 죽일 거거든?”
장궁을 꺼내든 궁수가 화살통에 마력을 때려 박았다. 평소보다 배는 길고 굵은 화살 한 자루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 자, 잠깐! 그렇게 큰 건 들어가지 않는단 말이다!
“개같은 대사치지 말고 닥쳐 도구 놈아!”
“ᛈᛊᛋᛋᛒᛗ….”
궁수의 화살이 불길을 머금어 창대하게 빛났다. 붉은 불꽃이 아닌 파란 색의 불꽃이 화르륵 타올랐다.
바람을 섞으니 푸른 불꽃이 엄청난 속도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나법사도 지지 않겠다는 듯 엄청난 마력을 발휘하며 마법식을 구상하고 있었다.
“허…. 바보가 힘을 가지면 무섭다더니.”
뒤에서 한탄을 고수혁은 멀찍이 뒤로 물러나 둘을 구경했다.
쾅!
“문 열어 이 새끼야!”
궁수가 거칠게 보스룸의 문을 걷어찼다. 방 안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거대한 쥐였다.
더러운 가죽으로 만들어진 왕좌에 앉아 툭 튀어나온 뻐드랑니를 과시하고 있었다.
크기도 제법 되어 거즘 5M에 달했다. 놈의 몸에 난 초록색 털에 더러운 악취가 진동했다.
“인간이여! 알현실에 온 것을 환영….”
화아아악!
쿠구구구구
“어?”
미친 듯이 타오르는 푸른 불꽃과 적을 찢어발기는 거대한 창이 쥐를 향해 날아갔다.
콰아아앙!
콰가가가각!
제대로 된 환영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괴물의 몸이 산산조각 흩어지고 말았다.
괴물은 물론이요, 놈이 앉아있던 왕좌까지 모두 두 헌터의 공격에 가루가 되고 말았다.
[레벨업! - LV 54]
“이겼드아아아아악!”
“아니다! 내가 이겼다!”
“닥쳐 내 레벨 올랐거든? 이 패배자 새끼야!”
“나도 올랐다 나도!”
“뭐?!”
[아니 NPC 대사 안 끝났는데;;]
[대사 스킵 국룰이지 ㅋㅋㅋ]
[아아…. 그는 좋은 엑스트라였습니다.]
두 헌터의 지랄을 관람하던 고수혁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다가왔다.
“둘이 같이 죽였나보죠, 뭐.”
툭툭 건드려 괴물의 시체를 확인한 고수혁은 아쉬운 듯 입맛을 쩝 다셨다.
마석은 애초에 뜨지도 않았을뿐더러 시체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딱히 챙길만한 것도 없었다.
고수혁이 시체를 살펴보기도 잠시 궁수가 소리쳤다.
“빨리 나와요! 바로 다음 게이트 가야하니까!”
“네?”
“오늘 얘랑 끝을 볼 겁니다.”
말을 하는 나궁수의 눈이 화르륵 타들어 갈 지경이었다. 몬스터야 누가 죽이던 별 상관없지 않는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죽이기 꺼려하는 게 보통인데 이 미친 인간들은 서로 자기가 죽이겠다 난리다.
“뭐야? 남은 게이트가 왜 이거밖에 없어?”
E, F급 같은 하급 게이트가 몇 개 있었으나 C등급 게이트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고수혁은 다행이라 생각하며 이 미친 짓을 끝내기 위해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두 분도 피곤하실 텐데.”
“아이씨 모르겠다! 묻고 더블로 가!”
“네, 묻고 더블로…. 뭐요?”
궁수가 선택한 게이트는 다름 아닌 방출형 B급 게이트였다. 그것도 단일 방출형 게이트.
탱커도 없는 C급 헌터 두 명으로 B급 게이트라니. 완전 자살행위가 따로 없었다.
원래라면 협회에서 허가하지 않을 일이었으나.
이미 눈에 불이 붙은 궁수는 이은우에게 전화를 걸어서까지 게이트를 따내고 말았다.
그도 궁수와 법사의 능력이면 별 문제없다 판단했는지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야 이 미친 인간아!”
“닥쳐! 존나 누구도 날 막을 순 없어!”
“없어! 없어!”
“전 안 갑니다! 두고 가요!”
“수혁씨.”
나궁수가 고수혁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는 안 갈겁… 흐어억!?”
“읏샤!”
고수혁의 허리를 잡고 들쳐맨 나궁수가 급시 택시를 잡았다.
“놔! 놓으라고 미친놈아!”
“괴물을 잡기 위해서는 때때로 미친놈이 되어야하는 법이지!”
화악!
“분당으로 가죠!”
고수혁을 뒷자리에 던져둔 나궁수가 바로 목적지를 말했다.
“아아악! 문 열어! 문 열라고!”
“출발! 출발!”
택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 금세 목적지에 도착했다.
고수혁이 처절하게 택시 문을 잡고 버텼으나 나궁수의 우악스러운 손길을 버틸 순 없었다.
그래놓고 하는 말이.
“심판이 있어야 경기를 계속할 수 있죠!”
“심판! 공정하다!”
그나마 자신이 비전투원이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 고수혁이 터덜터덜 뒤로 빠졌다.
“저 미친놈들….”
우울한 쌍욕은 덤이다.
“게이트 반응 최대치입니다!”
게이트를 확인한 직원들이 후다닥 뒤로 흩어졌다.
“이번에야 말로 승부를 내자!”
“좋다! 바다! 바라던!”
궁수가 듀얼 보우건을 꺼내들었다. 한쪽에는 불꽃이 다른 한쪽에는 대지의 기운이 깃들었다.
나법사도 지지 않겠다는 듯 마력을 일으켰다.
한 손에는 붉은 화염이, 다른 한 손에는 파지직 거리는 번개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치 게임 속 최종보스를 상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게이트 앞에 긴장감이 흘렀다.
이윽고
게이트가 일렁이며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기다란 뿔에 툭 튀어나온 이빨.
날카로운 발톱에 등에 달린 날개까지.
소위 가고일이라 불리는 괴물이었다. 동시에 높은 방어력과 까다로운 공격 패턴으로 유명한 녀석이기도 했다.
하지만.
“뒤졌다고 세 번 복창해라 이 새끼야!”
“뒤졌다! 세 번!”
지금은 굶주린 두 헌터의 먹잇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