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쾅쾅파티.
내부를 가득 채운 골렘들의 눈이 번뜩였다. 붉은 안광이 궁수와 파티원들을 주시했다.
“많다! 돌대가리 많다!”
“씨발….”
놈들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궁수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셈마저 한걸음 무르게 만들 정도였다.
- 계약자여.
“왜.”
- 그간 수고했다.
“이 미친 무기가 뭐라는 거야!”
상황은 절망적이었으나 뒤로 도망칠 수도 없다. 한번 던전에 발을 들인 이상 공략하기 전까지는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궁수가 거세게 활을 쥐었다.
어차피 물러설 곳도 없다. 마지막까지 저항이라도 해보자! 라는 생각이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라고 하였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음…. 둘 다 뒤질 것 같은데.”
문제는 그 상대가 말도 안 될 정도로 많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아니 근데 ㄹㅇ 위험한 거 아님 ;;?]
[누가 구조대 좀 미리 불러봐;]
[님 구조대 올 때까지 버티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 악질인 궁수의 채팅창마저도 궁수를 걱정할 정도니 말이다. 얼마나 상황이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후방지원 부탁하네.”
“예.”
비장한 표정을 지은 나만힐이 버프를 덕지덕지 바르고 셈 옆에 섰다.
주먹을 거세게 쥐자 그의 근육에 터질 듯이 힘이 들어갔다.
힐과 셈이 비장하게 장비를 착용하고 숨을 몰아쉬던 찰나.
“돌대가리! 가득! 펑펑! 파티!”
“뭐?”
“돌대가리 파티! 펑펑!”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뱉은 법사가 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활짝 미소 지으며 성큼성큼 골렘을 향해 나아갔다.
“야! 어디가! 위험하다고!”
“펑펑펑!”
[쟤는 또 뭐냐 ㅋㅋㅋㅋㅋㅋㅋ]
[자기소개 야무지게 하면서 가네 ㅋㅋㅋ]
[ㅋㅋㅋㅋㅋㅋ귀여운데 왜 ㅋㅋㅋㅋ]
일순간 얼어붙었던 궁수의 채팅창에 약간의 온기가 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재 상황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터트린다! 즐겁다! 행복하다!”
“이봐! 뒤로…. 허어억!?”
법사를 말리려던 셈이 깜짝 놀라 눈을 부라렸다.
“이런 미친.”
- 미쳤군, 미쳤어.
공간이 일그러질 정도의 마력이 법사의 주변을 울렸다. 온몸이 전율할 정도로 압도적인 마력이었다.
“펑펑! 파티!”
서서히 나법사의 몸 주변에서 푸른 마력이 실체화하기 시작했다.
나법사의 입에서는 룬어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ᚹᚷᛊᚺ ᚻ ᚨᚷ…”
- 이…. 이건!?
“왜! 뭔데!”
수백의 골렘들 위에 둥그런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태양처럼 빛나는 붉은 색의 마법진이었다.
[???????]
[뭐임????]
[저런 미친 광역 마법이 가능함???]
[찐따가 힘을 안 숨김ㅋㅋㅋ]
“ᚩᛗᚼ ᛃᛄᚹᚷᚣᛊ!”
방 안을 가득 채운 거대한 마법진이 나법사의 마력을 먹어 완전한 형태를 갖추었다.
나법사는 서글서글 웃으며 마지막 주문을 외쳤다.
“메테오!”
화아아아악!
“어…?”
- 뭐해! 빨리 도망쳐라!
“히이이이익!”
“궁수! 빨리 뛰어!”
“이런 미친 새끼가아악!”
한쪽 팔에 나법사를 든 셈이 미친 듯이 궁수 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나만힐은 심지어 얼굴이 보랗게 변한 상태였다.
“파티! 펑펑! 돌대가리 쾅쾅!”
“나 죽어! 아아아악!”
콰아아아아앙!
마법의 위력은 강력했다.
아니 강력하다 못해 던전을 때려 부술 지경이었다. 드넓은 던전을 뒤흔들 정도로 강력한 지진이 일어났다.
화아아아아악!
나법사의 모든 마력을 제물로 시전 된 마법은 감히 골렘 따위가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핵은 물론이요, 골렘의 몸 전체를 완전히 갈아버리고도 남을 위력이 동굴을 흔들었다.
“허억! 허억!”
겨우겨우 메테오의 범위에서 도망쳐 나온 궁수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셈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꺄르륵! 펑펑! 펑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존나 귀여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돌겠넼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파티 존낰ㅋㅋㅋㅋ]
[혼종 궁수, 혼종 힐러, 혼종 법사, 대머리 전샄ㅋㅋㅋㅋㅋㅋ]
ㄴ 대머리가 뭐 어때서 시발아.
ㄴ 제일 혼종이지.
ㄴ ㄹㅇㅋㅋ
스르륵 셈의 팔이 풀리며 나법사가 그 틈에서 빠져나왔다. 명백히 규격 외의 힘을 보여준 나법사가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 들어누웠다. 참 미소년 도련님 같은 얼굴에 그렇지 못한 마법 위력까지.
혼종도 이런 혼종이 있을까.
- 왜 네 주변에는 정상이 없는 게냐….
“그러게….”
쓰러진 나법사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 궁수를 바라보았다.
“뭐.”
“파, 티….”
마지막으로 엄지를 척 치켜세운 나법사는 그대로 기절했다.
“…병신.”
서서히 메테오의 여파가 잦아들자 궁수와 파티원들은 천천히 다시 코어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코어는 물론이고 골렘까지 모두 박살난 상태였다. 바깥으로 향하는 포탈이 일렁이고 있었다.
“…”
“…”
“…”
일순간 이유 없는 침묵이 일어났다.
“야”
- 뭐냐 주인.
“나 마법사 할래.”
- 뭐?
“마법사 한다고! 무슨 찌질하게 궁수야! 나도 쾅쾅 마법이나 쓸 거야!”
- 무슨 개소리냐 계약자여! 정신 차려라! 그리고 넌 어차피 저렇게 될 수 없다!
“난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런 나날을 지냈단 말인가….”
궁수가 날고 긴다 해도 이렇게 전장을 초토화 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압도적인 마법에서 비롯된 현자타임이 궁수를 후려쳤다. 그리고 그것은 셈과 힐도 마찬가지였다.
“허허….”
“크흐음….”
파티원들은 아무 말 없이 포탈을 타고 던전 밖으로 나갔다. 곤히 잠든 나법사만이 기분 좋은 잠꼬대를 할 뿐이었다.
“으헤헤, 펑펑….”
나법사가 깨어날 때는 거의 해가 다 저물어갈 시간이었다.
마치 아침잠을 잔 듯 상쾌하게 기지개를 핀 마법사가 기운차게 소리쳤다.
“쾅쾅 파티!”
“개뿔이 쾅쾅이다. 이 새끼야!”
일어나자마자 궁수가 나법사의 머리를 꽁 쥐어박았다. 하마터면 몬스터가 아닌 법사에게 몰살당할 뻔했다.
“아프다! 아프다!”
“우린 죽을 뻔했다 이 자식아! 뭐? 쾅쾅 파티? 머리통이 쾅쾅 돼볼래?”
“허허허, 너무 그렇게 윽박지르진 말게나, 덕분에 무사히 살아나왔지 않았는가.”
“그건, 그건 맞는데요.”
“살렸다! 내가! 내가! …그런데 나 뭘 살렸다?”
“어휴….”
궁수와 파티원들은 프로틴프로의 휴게실에 와 있었다.
말만 휴게실이지 1인 침대가 여럿 놓여 있어 숙면실이나 다름없었다.
‘야근하다 피곤하면 여기 와서 뻗나보네.’
근무하는 직원들을 불쌍하게 바라보던 궁수가 입을 열었다.
“야.”
“야. 아니다! 나법사다!”
그는 새로운 이름이 마음에 드는 듯 계속 그 이름만을 고집했다.
뭐 병신보다는 훨씬 보기 좋아 궁수도 뭐라 하지 않았다.
“아무튼, 너 어떻게 할 거야, 집은 있어?”
“집?”
“네가 자고 머무르는 곳 말이야.”
“아 있다!”
“오! 어딘데?”
그래도 그는 능력 있는 헌터다. 머리가 조금 모자라긴 하지만 나름 그 수익도 대단할….
“협회! 2층 화장실 3번째 칸!”
…대단하겠지?
“너 돈은? 그래도 나름 줄 거 아냐 협회에서.”
“돈! 친구들 줬다!”
“뭐? 친구?”
“주면 맛있는 거 준다 해서 다 줬다!”
“…얼마나 줬는데?”
“나오는 거 전부!”
궁수가 인상을 팍 쓰며 이마를 짚었다. 다른 놈도 아니고 이런 놈에게 사기를 치다니.
“혹시나 물어보는데 뭐 줬냐?”
“사탕!”
“…사탕? 내가 아는 그 사탕?”
“핥으면 달콤하다! 사탕 두 개면 한 끼를 버틸 수 있다!”
“세상에 맙소사!”
“이런 못돼 먹은 놈들을 봤나!”
“쯔쯧…. 가엽군.”
어느새 들어온 가연과 고수혁도 혀를 차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궁수가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얘, 우리 길드에 넣죠?”
“소속된 길드 없어요?”
“없죠, 어차피 갈 곳도 없잖아요.”
나법사는 멍한 표정으로 콧구멍을 후벼 파고 있었다.
과즙미 넘치는 귀공자 같은 외모에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뭐…. 능력도 확실하다 하니까.”
“그럼 넣는 겁니다?”
“네, 가이드는 궁수씨가 해주시는 거죠?”
“제가요? 왜요?”
“본인이 데려왔으니 본인이 책임져야죠.”
“아니 그게 무슨 애완동물 데려온 애도 아니고….”
궁수는 말을 끊으며 흘깃 나법사를 바라보았다. 양쪽 콧구멍을 파며 파낸 코딱지를 후 후 불어내고 있었다.
애완동물이 더 낫지 않을까.
일순간 그런 생각을 한 궁수였다.
“까짓것 제가 챙겨보죠, 뭐.”
그래도 능력 하나만큼은 확실한 녀석이다. 살짝 모자란 면이 있지만 나름의 히든카드로의 역할을 맡겨 볼만 했다.
“계약서 써야하니까 데리고 와요.”
“네, 들었지? 가자.”
“흐에?”
“…. 저 누나 따라가면 맛있는 거 준대.”
“맛있는 거! 간다!”
“하아….”
벌서부터 앞날이 깜깜해지는 궁수였다.
***
“일어나 이 놈아!”
“흐으으 잔다, 더 잔다….”
“지금 시간이 오후 두시다 이 새끼야!”
“모른다! 내일까지 잘 거다!”
“닥쳐 일어나!”
다음 날 협회의 본부 휴게실.
집에서 연락을 기다리던 궁수는 참다못해 본부로 직접 찾아왔다. 또 나법사가 일어나길 기다린 지 1시간.
그 결과가 이거다!
“일어나 이 새끼야!”
화아악!
이불을 빼앗은 나궁수가 나법사를 들어 올렸다. 마치 쌀 포대를 매듯 어깨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가서 좀 씻어!”
“싫다! 물 차갑다!”
“그러니까 씻으라는 거다!”
- 무슨 애도 아니고….
샤워실에 나법사를 던져둔 궁수가 씨익, 씨익 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오후부터 기운이 좋군?”
“밤 10시에 자서 오후 2시에 일어나는 게 사람입니까, 곰이지.”
“뭐 사육사는 자네니까, 자네가 알아서 하게.”
“하….”
얼마 지나지 않아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법사가 샤워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음.”
어디에 또 들이 받았는지 코에서 피가 질질 흐르고 있었다.
어쨌든 씻기는 씻었는지 이전과 같은 하수구 냄새는 나지 않았다.
“이거 먹고 바로 나와, 일해야지.”
초콜릿 프로틴 바를 건네준 궁수가 스마트폰으로 주변의 게이트를 확인했다.
B급?
B급 한번 가봐?
“셈 우리 둘이서 B급 갈 수 있을까요?”
“B급?”
“네.”
“흠…. 방출형이면 가능하지.”
“방출형이면 음….”
던전이면 몰라도 방출형은 일반도시다. 그런 곳에서 저 미친놈이 날뛰게 두었다간….
“…. C급 던전형으로 갑시다.”
“푸하하하! 잘 생각했어!”
마침 딱 괜찮은 게이트도 하나 있겠다. 궁수는 슬쩍 셈에게 고개를 돌렸다.
궁수의 실력도 대단하지만 앞에서 버텨주는 탱커의 유무는 전투의 질이 달라진다.
앞에서 몬스터들의 관심을 끌어주는 것만으로 궁수는 편하게 딜을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할 일이 있어서…. 미안하군, 다음에 같이 가지.”
“아…. 아쉽네요.”
“하! 이놈의 인기란.”
“늬에늬에.”
궁수는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고수혁에게 다가갔다.
고수혁만큼 해체를 깔끔하게 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꼭 데리고 가는 사람이다.
그렇게 다 같이 택시를 타길 20분, 어느새 게이트 앞으로 도착했다.
게이트 앞에서는 여러 협회 측 직원들이 모여 게이트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 헌터님 오셨습니까.”
천궁을 든 궁수의 뒤에서는 나법사와 고수혁이 뭉그적뭉그적 걸어오고 있었다.
꼴에 마법사라고 로브를 뒤집어쓴 나법사는 몇 번을 로브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
“뒤에 계신 분들은 동료분들 인가요?”
“…아닙니다.”
“네?”
“궁수씨! 같이 가요!”
“느흫헤!”
“부르는데요?”
“아니라고요”
철푸덕!
“크허억!”
“아이고 법사씨!”
결국 로브를 질질 끌던 나법사가 넘어졌다. 곧바로 일으켜 세우는 고수혁과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린 나궁수.
대환장 파티라는 건 이런 걸 뜻하지 않을까 싶다.
“개, 개성 있는 동료분들이시네요.”
“흐흑…. 바로 게이트 들어갈게요.”
“네, 알겠습니다.”
“둘 다 빨리 와!”
역시나 던전 내부는 어두컴컴한 동굴이었다. 천장의 종유석에서는 물이 뚝뚝 흘렀고 바닥은 울퉁불퉁하여 이동에 불편했다.
C급 던전.
메탈 테일 렛트 서식지.
꼬리가 강철로 되어있어 기다란 꼬리를 휘둘러 공격한다고 한다.
크기는 대략 성인 남성의 몸통만 하다.
그 수도 제법 될뿐더러 위력도 강력하기에 원거리 직업이 상대하기는 조금 버거운 면이 있었다.
공략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전 방송을 킨 궁수가 말했다.
“너 이번에는 절대로 그 마법 쓰면 안 된다.”
“마법?”
“그거 있잖아, 운석 떨어지는 거.”
“쾅쾅 파티!”
“안 된다고!”
궁수가 거의 애원하듯 나법사를 설득했다.
그런 간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법사는 자기 하고 싶은 말만을 지껄이고 있었다.
“언제나 쾅쾅 파티!”
“안돼! 다른 마법도 많잖아. 다른 거 써.”
“찌릿찌릿 파티?”
“그래 좀 위력 조절하면서, 알잖아, 그치?”
“알겠다! 찌릿찌릿!”
“어휴.”
고수혁이 순간 둘을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그쯤 하고 공략 들어가시죠.”
“아, 그래야죠.”
나법사의 페이스에 휘말린 궁수도 번뜩 정신을 차리고 활을 집어 들었다.
고수혁이 불빛으로 주변을 밝히며 공략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