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서번트 증후군 마법사.
“설마….”
“네, 맞습니다. 이 놈 서번트 증후군이에요, 그것도 분야가 마법인 서번트 증후군.”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개사기 능력이 다 있지?
마법이 서번트 증후군이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마법 서번트 증후군이랑 일반 나궁수를 고르라면 분명 자신은 나궁수를 고를 것이다.
사랑해 나 자신!
“한번 직접 보시죠.”
이은우 팀장은 종이 한 장과 팬 하나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마법사는 흥미가 있는 듯 그 문제를 보자마자 반응했다.
“아니야 문제!”
“뭐가?”
“아니야! 문제! 문제 아니야!”
도통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는 마법사. 그에 반해 이은우의 표정은 놀라움으로 입이 떡 벌어져 있었다.
“왜요, 뭐 대단한 거예요?”
“마법에 있어서는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마탑이 증명한 식입니다. 식 자체에 결함을 찾기 위해 엘리트들을 세 달간 갈아 넣었죠.”
“…뭐라고요?”
“말 그대로입니다. 일반적인 재능은 아닌 것 같군요.”
마법사는 그런 것 따위 관심 없는지 팬으로 콧구멍을 후벼 파고 있었다.
이은우는 반신반의하는 궁수를 뒤로하고 다른 종이를 건네주었다.
문제를 봄과 동시에 마법사의 팬이 움직였다.
분명 뭔가 복잡한 수식 같은데 주변에 적힌 식이 하나도 없다.
- 허 말도 안 되는군.
“왜? 대단한 거야?”
- 그래, 대충 문제를 보아하니 저렇게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마법사는 계속해서 답만을 따다닥 적어내고 있었다. 해당 문제가 뭔지 전혀 모르는 궁수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 허! 다중 복합 술식을 저렇게 쉽게?
- 말도 안돼! 그런 역연산을 이런 나이에? 이게 무슨!
- 허 규격 외의 괴물이군.
“어느 정도인데 그래?”
- 궁술에 있어 네가 가진 재능과 비슷하다.
“미친, 개쩌네.”
궁수의 재능은 전 세계에서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천재적이다. 재능만 따지자면 첫 번째 손가락일지도 모른다.
그런 궁수의 재능과 비슷하다니.
제대로 그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과 만났다면 이 마법사는 이미 세계 랭킹에 이름을 올렸을 것이다.
“쉽다!”
10문제 가량 되는 문제를 1분 만에 풀어낸 마법사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였다.
답을 확인한 이은우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마탑이 근 5년에 걸쳐 해결한 난제들입니다.”
“설마….”
“네, 전부 맞았습니다.”
미친 재능.
그것 외에는 따로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양궁에 나궁수가 있었다면 마법사에는 그가 있었다.
“얘 이름은 뭐에요?”
이은우에게 물었으나 대답은 마법사가 하였다.
“나! 병신!”
“그래 너 병신인거 알아.”
“사람들이 나 부를 때! 병신! 그래서 나 병신!”
“…뭐?”
당황한 궁수가 은우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서류를 보여주었다.
실제로 이름을 적는 공간에는 ‘병신’ 두 글자가 적혀져 있었다.
“진짜 이름은 아닐 겁니다. 학대와 괴롭힘을 심하게 받다 보니 이렇게 바뀐 거겠죠.”
“허어….”
급 짠한 마음이 밀려오는 궁수였다.
“야! 너!”
“흐에엥?”
“어, 아니야 계속해.”
기운이 날 수 있도록 격려해주려 했건만 마법사는 콧구멍에 팬을 집어넣고 찐득한 콧물을 쫘악 뽑아내고 있었다.
궁수가 성큼 이팀장 옆으로 자리를 바꿨다.
“다른 정보는 뭐 없어요?”
“예, 없네요. 애초에 그 팀 자체가 가족 없는 고아들로 만든 팀이라서.”
“아, 그래요?”
팔락팔락 마법사의 정보를 살펴본 이은우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예, 고아 출신인 헌터들은 대부분 정부의 지원 아래 활동하게 됩니다.”
“하긴 괜히 나쁜 길로 빠지기 보다는 그게 더 낫겠네요.”
“그렇죠,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부터 시작하기보단 차라리 정부의 품에서 착실하게 성장하는 거죠.”
탁!
“궁수님?”
“뭐요.”
“궁수씨?”
“불안하니까 거기 앉아서 이야기하시죠.”
이은우가 능글맞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 헌터 궁수님께 맡기겠습니다.”
“싫은데요. 제가 미쳤다고 얘랑요?”
“크흠…. 꼭 좀 부탁드립니다.”
“애초에 얘 살인자인데요!?”
이은우의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심문실의 문을 닫고 다시 들어왔다.
“궁수씨, 마법사는 세계적으로 희귀합니다.”
“네?”
“더군다나 저 정도 수준의 마법사는 매우, 매우 희귀하죠.”
이쯤 되니 나궁수도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상급 헌터의 수가 적은 한국은 언제나 인재에 목말라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저런 수준의 마법사를, 그것도 역대급 천재 마법사를 버리라니.
“딱 한 달, 한 달만 보살펴주시면 됩니다.”
“보살피라고 해도… 제 코가 석자인데요.”
“딱 한 달만 보살펴주시면 됩니다. 그간 들어갈 다른 팀을 찾을 테니.”
“흐음…”
“뭐 헌터님이 괜찮으시면 계속 같이 다니셔도…. 농담입니다. 그렇게 보지 마세요.”
이은우의 간절한 눈초리 따위는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야 병신.”
“으헿?”
“…너 잘할 수 있냐?”
“으헤헤헿!”
아 진짜 이거 아닌 것 같은데.
심성이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머리가 너무 나쁠 뿐이다.
한숨을 푹 내쉰 궁수가 마법사와 눈을 맞추었다.
주변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코를 파는 그 모습은 다시 봐도 정이 뚝 떨어질 정도였다.
한번 꾹 참은 궁수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나법사다, 알겠냐?”
“법사?”
“그래, 병신 말고 법사로 가는 거야.”
“나법사? 내 이름?”
“그래, 알겠냐?”
콧물을 질질 흘리는 나법사가 멍하니 궁수를 응시했다.
크응!
“오우.”
- 음, 역시 신은 공평하군.
맹구 마냥 길게 늘어트린 콧물을 단숨에 빨아드린 나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법사!”
“그래! 나법사!”
“나법사! 난 나법사!”
“그래 새꺄. 나법사!”
“나법사! 나법사! 나법사!”
“나법사아아악!”
이 상황을 바라보며 이 방이 방음처리가 잘된 것에 감사하는 이은우였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은우가 물었다.
“어떻게, 그럼 바로 가시렵니까?”
“네, 그래야죠.”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가자 나법사!”
“간다!”
당당히 궁수를 따라가는 나법사.
그 발걸음에서는 묘한 경쾌함 마저 느껴졌다.
“나법사에 나궁수라…. 다음은 나전사에 나힐러인가.”
피식.
너털웃음을 지은 이은우가 만족스럽게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나궁수! 간다!”
“그래! 가자!”
“어디! 간다!”
“음, 일단 우리 길드 하우스?”
마침 타이밍 좋게 궁수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셈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며칠 전부터 셈은 좀 괜찮은 던전만 발견했다 하면 궁수를 불러대었다.
괜찮은 던전이라 함은 몬스터의 수는 많지만 그 위력은 약한.
하지만 주는 경험치는 동일해서 경험치 효율이 좋은 곳을 뜻했다.
괜찮은 게이트를 발견할 때면 여지없이 궁수를 부르니 궁수 입장에서는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여보세요?”
“지금 어딘가!”
“협회 쪽입니다.”
“마침 잘됐군! 위치를 찍어줄 테니 바로 오게나!”
“바로요?”
“왜? 뭔가 바쁜 일이라도 있나?”
궁수는 슬그머니 나법사를 바라보았다. 멍하니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바라보며 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래도 법사는 법사니까….’
이전 나법사가 보여준 압도적인 위력의 마법을 생각하면 데려가도 별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갑자기 폭주하지만 않으면 크게 위험하지도 않고 말이다.
“아닙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그래! 이번에는 꽤나 양이 되는 모양이니 기대해도 좋네!”
“예!”
***
시간은 오후 2시.
궁수는 나법사를 이끌고 셈이 찍어준 위치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셈이 협회 직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셈!”
“오 왔는가!”
여전히 부담스러운 근육이 씰룩거렸다. 그만큼 궁수를 환영한다는 뜻이리라.
악수를 건넨 셈이 궁수 뒤의 법사에게 눈을 돌렸다.
“음? 뒤의 남자는 누구인가?”
“음….”
뭐라고하지.
딱히 뭐라고 둘러대기도 귀찮았던 궁수는 그냥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예비 동료입니다.”
“동료면 동료고 아니면 아닌 거지 그런 게 어딨나! 하! 반갑군! 새로운 동료!”
물론 상남자의 피가 흐르는 셈에게는 이미 동료로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법사의 손을 잡고 붕붕 흔들었다.
“하! 자네는 몸을 좀 키워야겠군!”
“아프다! 놔라! 손!”
“아하하! 엄살이 심하군!”
파지직!
법사의 몸 위로 전류가 흘렀으나 셈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호쾌한 웃음을 지으며 소리쳤다.
“하하하! 보기와는 다르게 성깔 있는 친구였군! 아주 찌릿찌릿해!”
“놔라! 돼지! 근육뇌! 놔라!”
저 정도면 사람이 기절하고도 남을 정도의 전류인데 셈은 시종일관 크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5분쯤 지나고 나서야 해방된 마법사가 궁수 뒤로 스윽 숨었다.
“뭐.”
“무섭다. 근육.”
“나도 근육인데.”
“안 무섭다. 넌.”
“사람 차별하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만힐까지 현장에 도착했다. 힐과 셈은 보자마자 강렬한 하이파이브를 하며 근육을 부풀렸다.
“으으윽…. 근육이 더 늘었다.”
“다들 착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경계하지 마.”
“착한 근육은 죽은 근육뿐이다.”
“뭐라는 거야.”
준비를 마친 나만힐이 크게 소리쳤다. 오늘도 근육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이제 들어가지!”
“네!”
“다녀와라 궁수!”
“어딜, 너도 같이 가!”
“안 된다! 싫다!”
“돼!”
“아아아아악!”
질질질.
마법사가 단말마를 외치며 마지막으로 게이트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게이트 내부는 여전히 기분 나쁜 어둠이 깔려 있었다. 주변을 탐색하던 셈이 조용히 말했다.
“B급 코어형 던전이네, 몬스터 수가 제법 되니 마법사는 조심하게.”
“아픈 거 싫다!”
“그래! 아프면 안 되지 음!”
정말 기적의 의사소통이었지만 의미는 제대로 전달되었다.
방송을 킨 궁수가 활을 꽉 쥐고 던전 내부로 들어갔다.
주변을 경계하며 내부로 들어가니 저 멀리서 몬스터의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저게?”
둔탁한 외형에 거대한 체구.
- 골렘이다. 단단하긴 하지만 지능은 낮으니 큰 위험은 없을 거다.
조용히 정면을 주시한 셈이 친절히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골렘이군, 핵을 파괴하기 전까지는 계속 움직이는 놈들이지.”
“핵은 어디에 있는데요?”
“가슴 정중앙, 혹은 머리 둘 중 하나라네. 일단 부숴봐야 아는 거라 잘 모르겠군.”
“목숨이 두 개인 셈이네요.”
“응? 난 목숨이 하나다만?”
“…아. …네.”
궁수가 벌레라도 씹은 표정으로 셈을 바라보았다. 씩 입꼬리를 올린 썩소는 덤이다.
무안해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나만힐이 말했다.
“크흠! 골렘이 나오는 던전은 수가 워낙에 많아서 말이야 스피드하게 가자고!”
“간다! 돌멩이 부순다!”
골렘의 크기는 약 3m에 달했다. 그리고 그런 녀석들이 다섯.
셈이 먼저 검을 뽑아들었다.
“기습은 사나이가 할 행동이 아니지!”
너무나도 정직하게 놈들을 향해 셈이 돌진했다.
땅을 울리며 달려 나가는 그 기세는 골렘들 마저 주춤 할 정도였다.
마치 성난 황소가 투우사를 들이받기 위해 돌진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쿵!
골렘의 거대한 양 팔이 셈을 내려쳤다.
하지만 A급 헌터인 셈은 아무 피해 없이 간단히 대검으로 공격을 받아내었다.
“하하하하! 그래! 이게 전투의 고양감이지!”
공격을 받아낸 셈이 그대로 대검을 밀어내자 순간 골렘의 자세가 무너졌다.
“덤벼라 덤벼! 한 번에 들어오란 말이다 돌대가리들아!”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궁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화살에 시위를 걸었다.
스톤 골렘이라 일부러 위력이 강한 컴파운드 보우로 형태를 변환했다.
장궁을 사용할 정도로 강력한 녀석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쐐애애액!
공기를 가르며 날아간 화살이 골렘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쾅! 쾅!
하지만 골렘은 죽지 않고 주변을 내려치며 날뛰었다. 아마도 핵은 머리가 아닌 심장에 있는 모양이었다.
막상 머리통을 날려버렸음에도 살아 움직이는 골렘을 보니 신기하면서도 궁수의 활은 멈추지 않았다.
한 놈 당 두 발씩.
얼마나 그 속도가 빠른지 두 발이 동시에 나가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콰쾅!
“호오! 좋아, 좋아!”
궁수의 마법 화살에는 일반 화살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파괴력이 담겨있었다.
그렇기에 단단한 골렘에게도 화살이 먹혀들어가는 것이다.
골렘 다섯 마리를 처치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체감상 10분?
조나셈의 완벽한 어그로와 궁수의 예리한 활솜씨가 낳은 결과였다.
“오늘도 상태 죽이는군!”
“당근이죠!”
골렘은 해봐야 챙길 것이 마석 밖에 없어서 그리 해체가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생각보다 몬스터가 적은데요?”
“흠…. 그러게 신기하군. 원래는 바글바글한데 말이야.”
몬스터가 적은 만큼 던전 공략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질주하듯 던전을 쓸어버리다 보니 어느새 던전 코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 문 뒤에 코어가 잠들어있네, 다들 준비는 됐는가!”
“물론!”
“바로 가지!”
“남자는 빼지 않는다! 그저 전진할 뿐!”
셈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호쾌하게 코어의 문을 열었다.
“어?”
- 앞전에 골렘의 수가 적었던 이유가 있었군.
[??? : 남자는 빼지 않는다! 그저 전진할 뿐!]
[오늘부터 여자합니다.]
[속보 - 나궁수 성전환.]
내부는 마치 협회의 체육관을 연상시킬 정도로 넓었다.
다만.
“좀…. 아니 존나 많지 않나?”
방안 가득히 수백 마리가 넘는 골렘들이 눈을 빛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