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또라이 마법사 구하기(2)
“진정하세요! 저희는 당신을 구조하러 온 겁니다!”
“사람들 나만 보면 때려, 사람은 아파, 그러니까 사람 죽어.”
“무슨 그런 궤변을!”
상대는 마법사. 수준으로 보건데 그것도 상당히 높은 레벨의 마법사다.
궁수가 마법사를 본적이 없기도 하지만 적어도 방금 보았던 화력을 일반적인 마법사가 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은우의 머리에 땀이 삐질 흘렀다.
‘최소 B급이다.’
마법을 사용하는 데에는 수많은 연산이 필요하다.
마력을 사용하여 연산을 거쳐 복잡한 수식을 풀고 난 후에야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마저도 실수하면 자폭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것이 마법사의 캐스팅 시간이 긴 이유였다.
하지만 눈앞의 마법사.
캐스팅 시간이라고는 너무나도 짧았다.
마법의 위력은 캐스팅 시간에 비례하기 마련인데.
오히려 저놈은 거의 없다시피 하는 캐스팅 시간에 압도적인 위력의 마법을 뱉어내었다.
- 강하군.
적어도 근접 전투원인 이은우에게 있어서는 다소 귀찮은 적이었다.
그렇다고 물증도 없이 범죄자 취급하며 죽일 수도 없으니 그로서는 난처할 따름이었다.
정부 소속 헌터라는 것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갈팡질팡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고민하던 사이 뒤에서 궁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팀장님 숙여요!”
“네?!”
대답과 달리 이미 그의 허리는 90도로 접혔다. 이팀장의 등 위로 제압용 화살 두 발이 날아갔다.
화악!
솟아난 불길이 궁수의 화살을 막아섰다. 그와 동시에 궁수가 있던 자리에 벼락이 떨어졌다.
“궁수씨 뒤로!”
아마 그대로 자리에 있었다간 다른 시체들과 똑같은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당신에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이팀장이 간절한 눈빛으로 그에게 소리쳤으나 흑화 할대로 흑화 한 그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파! 죽어! 죽어!”
아무래도 정상인은 아닌 듯 내뱉는 말이 너무나도 단순했다.
하지만 마법의 위력은 그와 정반대로 너무나도 예리하고 정확했다.
빵빵 터지는 위력에 단숨에 궁수를 노리는 정확도까지.
게다가 저걸 죽이지 않고 제압하라니.
“칫…! 궁수님 뒤로 빼세요!”
“네? 왜요!?”
스르릉.
보다 못한 이은우가 인벤토리에서 진검을 꺼내들었다.
“설마 죽이게요?!”
“필요에 따라선 그래야죠.”
“흐으음….”
궁수도 썩 사람을 죽이는 것이 내키진 않았다.
아무리 날고 기는 헌터라고 해도 사람은 사람이다.
당연히 살인 경험이 있을 리 없는 궁수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낮선 일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저 헌터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저 그럼 제가 한번 제압을 해봐도 될까요?”
“네? 궁수씨가요?”
“네, 해보고 안 되면 부탁드릴게요.”
“…흐음 위험하다 판단되면 무시하고 개입할 겁니다.”
“얼마든지요.”
마법사의 수는 적다.
더군다나 저 정도 수준의 마법사는 더더욱 적다.
저런 마법사를 잃으면 국가적인 차원의 뼈아픈 손실이다.
그렇기에 이은우도 궁수의 제압을 허락한 것이다.
“오지마! 죽어! 아프게 하지마!”
“저건 뭐 애도 아니고.”
다행히도 가까이 가지만 않으면 굳이 찾아와 공격을 하지는 않는 듯했다.
“뭐 마법사 공략 방법 같은 거 없어?”
- 적의 마법을 피하고 화살을 꽂아 넣으면 된다.
“….”
- 눈빛이 몹시 아니꼽구나, 계약자여.
“어휴, 쓸모없는 새끼.”
- 크흠…. 아직 네 레벨이 미약하여 딱히 공략 방법이 없단 말이다!
궁수는 먼저 활을 장궁의 형태로 바꾸었다. 아주 기다란 봉이 활시위에 걸렸다.
혹시나 뚫어버릴 경우를 대비해 화살촉은 뭉툭한 상태였다.
물론 이것도 잘못 맞으면 즉사지만 말이다.
“적어도 칼로 쑤시는 것보다는 낫겠지.”
이은우는 A급 헌터다.
아무리 상대가 마법사라고 한들 그라면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층 마음이 편해졌다.
“하나!”
궁수가 시위를 당겼다. 마치 셋에 쏘겠다! 라는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둘!”
쐐애애액!
물론 간악한 궁수는 일부러 한 박자 빠르게 화살을 날렸다.
화살촉이 뭉툭해서 그런지 썩 속도가 맘에 들지는 않았다.
화아악!
땅에서 솟아난 화염이 간단히 궁수의 화살을 막았다.
“역시 안 먹히나.”
상대는 마법사다.
분명 신체 능력은 부족할 터 그 말은 궁수가 한번만 제대로 접근하면 승산이 충분하다는 소리였다.
다시 컴파운드 보우로 형태를 바꾼 궁수가 계속해서 비살상용 화살을 장전했다.
“그래 한 번 해보자!”
궁수의 손이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빨라졌다. 어차피 대상은 정지해있다.
궁수는 화살로 놈의 마력이 다 떨어질 때까지 공격을 퍼부을 작정이었다.
“하지마! 그냥 죽어!”
“죽여봐 그럼!”
하지만 일이 그리 간단히 풀리지는 않았다.
콰앙!
궁수가 있던 자리에 다시 한 번 벼락이 내리쳤다.
가볍게 바닥을 굴러 피한 궁수는….
“흐거어억!”
바로 위에서 벼락이 한발 더 내려왔다.
“궁수씨!”
털썩 주저앉은 궁수의 다리 사이에 정확히 벼락이 내려쳤다.
“야! 이건 아니지 개새끼야!”
마치 심장이 떨어질 뻔했을 정도로 궁수는 깜짝 놀랐다.
다행히도 벼락은 연속해서 떨어지지 않았다.
“시발!”
결국 궁수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무기는 듀얼 보우건이었다.
탓!
투다다다다!
보우건 특유의 빠른 연사속도가 적을 향해 날아갔다.
궁수가 손으로 쏠 때보다 배는 빠른 연사속도에 마법사도 방어에 정신을 쏟았다.
그 와중에도 가끔 벼락이 내려치긴 하였으나 방어에 급급한 마법사의 눈먼 공격은 궁수를 맞출 수 없었다.
대놓고 놈을 향해 뛰어가거나 하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서서히 마치 원을 그리면서 놈의 영역 안으로 파고들었다.
- 마력 소모가 상당하다. 조심하거라.
“알고 있어!”
마력 소모가 심한 듀얼 보우건 특성상 궁수의 마력은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마법사의 불길은 조금 잦아들었을 뿐 아직도 건재했다.
‘칫, 마법사라 그런가, 마력 하나는 끝내주네.’
마법의 위력이 강하기 때문에 그만큼 마력의 사용량도 크지 않을까 생각했던 궁수의 실착이었다.
서서히 마력이 바닥나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슬슬 승부수를 띄워야만 했다.
시계방향으로 돌던 궁수가 갑자기 획 방향을 틀어 반대 방향으로 가는 척하더니 그대로 한 번 더 틀어 놈을 향해 돌진했다.
‘이 정도 거리라면!’
궁수가 달려올 때마다 주변에 낙뢰가 떨어졌다.
그나마 지금도 보우건을 쏘고 있어서 망정이지 맨몸으로 덤벼들었다간 통구이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장궁!”
천궁의 모습이 그새 장궁으로 바뀌었다.
궁수는 활로 후려치려는 듯 활 끝을 잡고 놈을 향해 도약했다.
“죽어!”
“싫어 이 새끼야!”
뜨거운 불길이 궁수를 노리고 화악 몸집을 키웠다. 불꽃은 궁수의 아래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다시 말해 궁수가 마법사의 영역 속으로 들어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화아악!
마치 부메랑을 날리듯 궁수가 거침없이 천궁을 집어 던졌다.
“끄허어억!”
- 크허어억!
거세게 날아간 천궁이 그대로 마법사의 머리를 후려쳤다.
“나이스!”
마법사가 코피를 터트리며 기절했다. 그와 동시에 아래에서 이글거리던 불꽃도 완전히 잦아들었다.
승리!
거칠게 숨을 몰아쉰 궁수가 땀을 닦아내었다. 마치 이승과 저승 사이를 오간 기분이었다.
결국, 궁수도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헌터님! 괜찮으십니까!”
“허억, 허억. 일단은요.”
거칠게 숨을 몰아쉰 궁수가 천궁을 지팡이 삼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이 당장에 주저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허리춤에 단단히 고정 시켜둔 프로틴을 시원하게 원샷 한 궁수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였다.
“흐으으! 이제 좀 살겠네!”
“일단 바로 나가도록 하죠.”
파각!
이은우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던전 코어를 부쉈다.
“바로 나가시죠.”
“그래야겠어요.”
마법사를 등쳐 맨 은우가 먼저 포탈 밖으로 향했다. 따스하게 내리쬐는 태양이 이토록 반가울 수 없었다.
마법사를 단단히 포박해 차에 실은 은우가 몇 번이고 궁수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번 일은 헌터님이 아니었다면 분명 크게 힘들었을 겁니다.”
“네 맞습니다. 제가 다했죠.”
“크, 크흠 그건 맞습니다만!”
“어쨌든 저 사람은 잘 부탁드려요. 멀쩡한 사람은 아닌 것 같던데.”
“물론 그래야죠, 수고 많으셨습니다.”
궁수는 후련한 마음으로 바로 집으로 향했다. 땀범벅인 옷을 벗고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시니 몸이 노곤해졌다.
“흐으, 오늘은 더 이상 일 못해.”
돈은 한 푼도 벌지 못했지만 별 상관없다.
이미 이번 주에 번 돈만 해도 충분했다. 궁수가 잠시 눈을 붙였다.
할 수 있다면 이대로 내일 아침까지 자고 싶은 심정이었다.
***
띠리리리링! 띠리리리링!
궁수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궁수는 눈을 찡그리고 시간을 확인했다.
“뭐야, 세 시간밖에 안 지났잖아.”
궁수는 잠긴 목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헌터님?”
“네, 왜요.”
“아, 쉬고 계신 와중에 죄송합니다만, 지금 바로 협회로 와주실 수 있나요?”
“예?”
마치 이미 퇴근했는데 직장 상사가 불러 한 번 더 회사에 간 느낌이 이런 걸까.
머리를 헝클어트린 궁수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물었다.
“왜요, 제가 굳이 필요하나요?”
“이 분이 궁수씨가 오지 않으면 절대로 입을 열지 않겠다고 해서요.”
“네?”
“지금도 양손으로 자기 입을 막고 있습니다.”
“허어…?”
무슨 그런 정신병자가…. 생각해보니 정신병자 맞네.
아직 시간은 오후 4시다. 이미 잠도 다 깨버렸기 때문에 다시 잘 수도 없는 노릇.
궁수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으며 대답했다.
“갈게요.”
***
“아니 그러니까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말을!”
“….”
협회의 취조실에서 책상을 쾅 쾅 두드리며 분노한 이은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아 궁수님 오셨습니까!”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남자는 정말로 양손으로 입을 막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고개가 돌아가며 궁수를 마주했다. 그의 동공이 확 커지며 궁수를 향해 삿대질하기 시작했다.
“사과해!”
“혹시 그 말은 사과로 너 새끼 대가리를 후려쳐 달란 뜻이니?”
“사과해! 아팠어! 사과해!”
무슨 이런 미친놈이 다 있지.
마법사는 분명 성인이었다.
눈 밑 깊숙이 박힌 다크서클에 남자치고는 상당히 길고 찰랑이는 검은색 머리칼.
“아팠다! 사과해!”
“팀장님 그냥 이 새끼 죽이죠?”
“아하하…. 조금만 참으시죠.”
거의 30분이 넘는 시간동안 유치한 공방이 이어졌다.
“사과해.”
“싫은데?”
“사과해.”
“싫어.”
“사과해.”
“싫.”
오죽하면 그 이은우도 둘을 한심하게 쳐다볼 정도였다.
저게 진정 다 큰 성인의 태도인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한숨을 푹 내쉰 이팀장이 궁수를 향해 말했다.
“궁수님, 혹시 서번트 증후군이라고 알고 계십니까?”
“그 그거요? 한 분야에서만 천재인 그런 거.”
“예, 서번트 증후군은 자폐증의 일종으로 말 그대로 한 분야에 대해서는 천재성을 보이는 증후군입니다.”
여기까지 말하니 궁수도 대략 그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