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또라이 마법사 구하기(1)
다음 날.
잠들어있던 궁수의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알람 소리가 아닌 전화 벨소리였다.
다행히 이미 일어나 있었기에 궁수의 단잠을 방해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지?”
모르는 번호였으나 일단 받아보기로 했다.
“여보세요?”
“나궁수 헌터님?”
“네, 맞는데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익숙한 목소리였다.
“누구시죠?”
“접니다. 이은우 팀장.”
“아, 팀장님이셨구나. 왜요?”
평소와 달리 상기된 목소리였다.
무언가 골 아픈 일이 있는 듯 그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헌터님의 도움이 필요해서 말입니다.”
“네? 도움이요?”
“예, 현재 다른 팀들은 전부 원정을 나간 상태라 인원이 여의치 않습니다.”
“뭔데요?”
일단 들어보기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궁수는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깊은 한숨 소리가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왔다.
“다름이 아니라 구조대를 꾸려야 해서 말입니다.”
“구조대라면 게이트요?”
어젯밤이 뉴스에서 보았던 일이 떠올랐다. 공략에 실패한 C급 게이트.
“혹시 C급 게이트 말 하시는 건가요?”
“알고 계시는군요.”
“어제 뉴스에 나와서요.”
“네, 매스컴에도 그 일이 퍼져 신속하게 구출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 상황에서 제가 필요하고요?”
“지금 뽑아갈 인원이 모자라서 말입니다.”
정부소속의 정규 팀들이 있기는 하였으나, 주로 일반 헌터들이 하기 버거운 일을 처리하다보니 오죽하면 ‘정부 측 헌터를 찾아야 할 때는 집보다 게이트로 찾아 가야한다.’ 라는 말이 돌 지경이었다.
오늘도 대부분의 팀들은 모두 현장 지원을 나간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급히 구조대를 짜려고 하니 제대로 된 인원을 뽑기가 참 애매했다.
“흐음…. 그런가요.”
궁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딱히 돈이 필요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만 게이트 구조.
혹여나 어떤 위험한 상황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봐야 자신은 C급 헌터다.
미증유의 강력한 적이라도 등장하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고민하던 궁수를 바라보던 천궁이 입을 열었다.
- 계약자여.
“왜.”
- 두려운가?
“뭐?”
- 두렵냐고 물었다. 설마 나 같은 천고의 보물이 있는데 설마 하급 마물에게 겁먹은 건가?
“하, 이 새끼 봐라.”
궁수의 말이 턱 막혔다. 얼마 전 조나셈을 만나 느꼈던 상남자의 기운이 움찔 거렸다.
“무조건 내가 이기지! 가자!”
- 흠! 바로 그거다 계약자!
“급하게 요청하고자 해도 주변에 여유 있는 헌터님들이 없어서 말입니다.”
결정적으로 미안한 듯 말끝을 흐리는 이은우까지.
궁수가 참전할 명목은 충분했다.
헌터의 이미지를 위해서든 해당 헌터를 위해서든 궁수는 굳게 마음을 먹었다.
“가시죠.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헌터님!”
“별 말씀을요, 다 돕고 사는 거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은우가 궁수에게 게이트 위치를 알려주었다.
궁수는 움직이기 편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천궁을 챙겨 바깥으로 향했다.
물론 프로틴을 한 병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여기, 이름 없는 마법사가 한 명 있다.
“빨리 빨리 움직여 병신아!”
동료애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싸늘한 말투. 마법사는 멍하니 동굴 안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오, 씨발 저딴 새끼를 왜 데리고 와가지고.”
“팀장님 그냥 슬쩍 버리죠? 던전에서 사람 죽는 거야 흔하잖아요.”
조금이지만 말은 알아들을 수 있다.
던전 한 가운데에서 죽인다느니 마느니 하는 섬뜩한 내용이었으나 마법사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으로 멍하니 동굴을 응시할 뿐.
“헤에….”
정상적인 사람은 아닌 듯 마법사는 시종일관 바보같은 소리를 내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침이 가득 고여 때때로 주르륵 침이 흘렀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모두들 자신을 보고 병신이라 불렀다.
“뭐라 말이라도 해봐 이 새끼야!”
“헤에….”
헤에.
바보 같은 웃음이 전부였다. 이 전까지는 보는 눈이 많아 참고 있었지만 이곳은 던전 내부다.
그가 잠시 자신과 마법사의 카메라와 휴대폰을 모두 껐다. 구타 전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한 작업이었다.
“후우, 시발 넌 내가 만만하냐?”
“헤에?”
그의 주먹이 올라갔다. 팀장도 눈을 돌리며 모르쇠로 방관했다.
뻐억!
털썩!
헌터의 주먹이 마법사의 턱에 꽂혔다. 특성상 육체가 약한 마법사는 헌터의 주먹 한 방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그는 마법사를 구타했다.
가슴이나 배 등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계속해서 후려쳤다.
그저 화풀이를 위한 폭력이었다.
“흐그으윽!”
“시발 아프냐? 맞으니까 좀 정신이 들어 병신아?”
마법사의 입가에서 미약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마법사의 머릿속 깊은 곳에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떠올랐다.
이전 자신이 지내던 고아원 원장의 학대.
폭언, 감금, 폭행이 너무나도 당연시 되었던 그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고아원에 대한 기억이었다.
고아원장도 고아원도.
화르륵!
“어어?!”
마법사의 몸에서 화르륵 푸른 불꽃이 일어났다.
당황한 헌터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타앗 뒤로 빠졌다.
“아프다, 너 나 왜?”
마법사는 여전히 멍청한 표정으로 헌터를 바라보았다. 말은 바보 같지만 미세하게 목소리가 떨렸다.
마법사 주변의 마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그, 그거야 시발 니가 좆같이 행동하니까 그렇지! 아무리 뇌 병신이라도 그렇지 시키는대로도 못해? 너만 아니었어도 우리 팀 실적이 이러진 않았어!”
“실적? 팀? 이상해.”
이상하다.
자신은 저들의 팀이었던 적이 없는데.
가라해서 갔고, 오라해서 왔을 뿐이다.
언제부터 자신이 팀이라는 게 됐는지 마법사는 이해되지 않았다.
아프다.
어째서?
그런 것 모른다. 분명한 것은 저 남자가 자신을 아프게 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아프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죽인다.”
싸울 줄 몰라서 싸우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그저 아무것도 몰라서.
적을 쓰러트려야 할 이유가 없어서, 누구도 자신에게 뭘 하라고 시키지 않아서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저 놈은 자신을 아프게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쩌면 다른 모든 사람이 그럴지도 모른다.
아프지 않으려면 죽여야한다.
그냥 죽이면 된다. 그래야 비로소 자신은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파지지지직!
“허어억!?”
한 손에는 불.
다른 한 손에는 무시무시한 황금빛 전류가 흘렀다.
“이, 이봐! 진정해!”
“이런 미친!”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팀장이 이를 말려보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분노한 마법사의 마력은 끝을 몰랐고 저들은 이미 마법사가 죽이기로 결심한 이들이다.
“이봐! 잠깐만 기다려! 진정하라고!”
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으나.
파지지직!
화르르르륵!
“끄아아아악!”
“으아아악!”
결정에 번복은 없었다.
어두운 던전에 시체 두 구가 늘었다.
카가가가가각!
소리를 들은 마물들이 순식간에 마법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자극에 민감한 괴물들은 금세 마법사의 위치를 알고 몰려들고 있었다.
“너네도 아프게한다? 나?”
하지만 그 어떤 괴물도 마법사를 공격할 순 없었다. 마물이 다가올 때마다 주변에 시체가 늘 뿐이었다.
***
“여기에요?”
“예, 그렇습니다.”
던전형 게이트가 불길하게 일렁였다.
“흠, 근데 그 인원으로 C급을 클리어 못 할 수 있나요?”
“뭐, 특별한 일이 없다면 클리어하는 게 정상이죠.”
“그러면 뭔가 일이 있다는 거네요.”
“아무래도 그렇다고 봐야죠.”
화살통 가득히 화살을 채운 궁수가 가볍게 몸을 풀었다. 일부러 방송은 키지 않았다.
안에 갇힌 헌터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저희 둘이서 괜찮겠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이것저것 챙겨왔으니 괜찮을 겁니다.”
“흠, 믿습니다?”
“물론이죠. 이럴 시간 없습니다. 빨리 가시죠.”
마치 수면을 관통하는 듯한 느낌과 함께 궁수의 몸이 게이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흠 평범한 던전 같은데.”
“혹시 모르니 조심히 진입하죠.”
딱히 이렇다 할 함정도 없었다. 중간중간 전투의 흔적은 보였으나 고전한 흔적은 아니었다.
몬스터의 초록빛 혈액만이 뿌려져 있을 뿐 사람의 붉은 피는 조금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고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흔적들에 이팀장도 갸우뚱 고개를 기울였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닌 것 같네요.”
“그렇군요.”
평소에는 호쾌하게 정리했던 던전이 오늘따라 한층 무겁게 느껴졌다.
울퉁불퉁 불규칙적으로 모난 땅을 밟으며 어두운 던전 내부로 들어가니 저 멀리서 사람 모습이 보였다.
쓰러져 있는 두 명은 약간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를 발견한 이은우가 급하게 달려 나갔다.
한쪽 무릎에 사람을 눕히고 맥을 짚었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체에서 맥박이 느껴질리 없었다.
불에 탄 듯 새까맣게 변한 그들의 표정에서는 당황과 공포가 동시에 느껴졌다.
“죽었나요?”
“…그런 모양입니다.”
시체를 수습한 이은우가 잠시 눈을 감고 애도를 표했다.
“신고 받은 인원은 총 세 명입니다. 조금 더 들어가 보죠.”
“네.”
왜 마물이 뜯어먹질 않았지?
순간 그런 생각이 든 궁수였으나 찰나였다. 던전은 감히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이다.
- 허튼 곳에 정신 팔지 말고 집중해라.
“그래야지.”
신입 헌터인 궁수가 예측한다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두르죠.”
“네.”
속도를 높여 던전 내부로 들어갔다. 주변에 종종 마물들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모두 다 불에 그을려 새까맣게 탄 시체였다.
“흐음….”
이은우도 이상한 듯 주변을 경계하며 던전 속으로 달려갔다.
20분쯤 달려 나갔을까.
저 멀리서 서있는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잠시만요. 여기서부턴 천천히 가죠.”
“예.”
사람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멍하니 눈앞의 코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빠진 표정으로 계속해 코어를 바라볼 뿐이었다.
“저기요! 괜찮아요?”
“….”
대답은 없었다. 다만 그는 스윽 고개를 들려 궁수를 바라보았다.
감정 따윈 느껴지지 않는 새까만 눈이 궁수를 마주했다.
다만 바라만 볼 뿐 그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한참을 지나도 그가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자 은우가 먼저 그에게 다가갔다.
궁수는 혹시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새로운 화살을 뽑았다. 제압을 위해 화살촉을 뭉툭하게 만든 화살이었다.
뭐, 이것도 맞으면 엄청 아프겠지만.
아무튼 죽지는 않으니 별 상관은 없을 것이다. 혹시 모르는 상황에 화살 한 개를 시위에 걸어두었다.
조금 가까이 다가가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발음이 눌려 다소 어눌한 말투였다.
“아프다? 너네도 날?”
“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때렸다 둘. 나.”
“예…?”
“아팠다. 그래서, 죽였다. 이제 안 아프다.”
매우 단편적인 말이었으나 의미 자체는 확실히 전달되었다.
화아아악!
“빠져요!”
궁수가 소리 지른 것과 이은우에게 불길이 작렬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래도 A급 헌터 이은우.
그런 공격 따위 맞아줄 정도로 허술한 인간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