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벌레싹싹.
남은 프로틴을 전부 들이킨 궁수가 크으으! 하는 감탄사와 함께 말했다.
“고수혁씨!”
“네?”
“내일부터 저랑 같이 클로징하러 가요.”
“갑자기요?”
“네!”
궁수는 설사 고수혁이 거절할까 조금 걱정했다. 이미 그는 취직도 했고 거액의 연봉도 약속된 상태다.
다시 말해 더 이상 돈이 궁하지는 않다는 소리였다.
걱정하는 궁수와 달리 고수혁은 썩 궁수의 제안이 나쁘지 않았다.
“흠, 근데 제가 필요하나요?”
“저, 해체를 못하거든요.”
“아.”
그런건가.
전투가 아니고 해체뿐이라면 별 상관없다.
궁수가 좋은 사람인 것은 이미 확인했으니 이번에는 고수혁이 궁수를 도울 차례였다.
따지고 보면 이런 좋은 직장도 그가 소개시켜준 것이 아닌가?
‘그래, 은혜는 갚고 살아야지.’
생각을 마친 고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가시죠.”
“오! 진짜죠? 콜콜! 비용은 무조건 5대5로!”
“에이 전 1만 줘도 괜찮습니다.”
“어허이! 동료! 보수는 5대5!”
“8대2.”
“5대5.”
“7대3.”
한 명은 더 주겠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덜 받겠다고 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에이 기분이다! 6대 4!”
“콜! 헌터님이 6 내가 4!”
“오케이! 땡큐! 사딸라!”
극적인(?) 타협을 마친 궁수가 고수혁과 악수를 나눴다.
궁수의 폭업을 위한 클로징은 바로 다음날부터 시작되었다.
***
“어딜 덤벼 이 새끼가!”
쿵! 콰앙!
궁수에게 달려든 거대한 개미의 머리통이 터져나갔다.
이곳은 C급 던전 개미굴.
몬스터 하나하나의 전투력은 약하지만 그 수가 너무나도 많았다.
크기가 성인 남성만한 개미들이 계속해서 궁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하하하! 뒤져! 다 죽어!”
벌레 잡는데 불만큼 좋은 게 없다고 궁수는 엄청난 속도로 불화살을 쏘아대고 있었다.
화르르륵!
궁수의 공격 속도 자체도 상당했으나 그 수가 한 둘이 아니었다.
수백에 달하는 개미들이 우루루 달려드니 궁수로서는 무기를 바꾸어 들 수밖에 없었다.
“드루와! 드루와 이 새끼들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거리(?) 딜러 나가신다!]
[근원거리 딜러 가즈아아악!]
[나사장 장사 시작한단다!]
한 손으로는 활을 휘두르며 적을 죽인다.
다른 반대손은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 직접 개미의 머리통에 처박아 주었다.
[세수코 게섯거라!]
[벌레싹싹!!!]
[ㅂㄹㅆㅆ!]
[일개미 ㅈ밥 쉑들 ㅋㅋ 불개미였으면 이겼다. ㄹㅇ ㅋㅋ.]
[쓰흡 군침이 싹도노!]
ㄴ 이 새끼 베어그릴수냐?
“오우….”
안전한 곳에서 이를 바라보는 고수혁의 입장에서는 나궁수가 그저 미쳐 날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도 반쯤 미쳐 날뛰고 있었지만 말이다.
“달아! 너무 달아! 이빨 다 썩을 것 같아!”
한 놈 한 놈의 위력도 약한데 그 수까지 많다. 겨의 경험치 밭이라 해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레벨업! - LV 47]
“주모! 주모오!”
[속보 - 주모 과로사.]
[주모 샤따 내려!!]
[하앙~ 너무 달아~]
지칠 만도 한 대 궁수는 계속해서 울리는 레벨업 알람에 정신없이 활을 휘둘렀다.
개미는 끝없이 몰려왔다.
당장에 궁수를 뜯어먹기 위해 톱날 같은 이빨을 쩍 쩍 벌리는 것이 혐오스럽기 그지없었다.
“어딜 이 새끼가!”
콰직!
개미의 입속에 기다란 화살을 쑤셔 박은 궁수가 그대로 개미를 발로 차 밀어트렸다.
공격을 받은 개미는 파르르 떨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마력으로 만든 기다란 화살을 마치 창처럼 사용하며 거리를 벌렸다.
물론 궁수가 보여주는 창술은 몹시 조잡해 봐주는 게 힘들 지경이었다.
푸욱!
개미의 입속에 계속해서 화살을 처박으며 종횡무진 전투를 이어나갔다.
개미들의 단말마가 궁수의 귀에는 듣기 좋은 교향곡과 같았다.
평소에도 똘끼가 있지만 유독 사냥할 때 심해지는 궁수였다.
“끼요후! 아가리 벌려 화살 들어간다!”
- 크흠….
드넓은 개미굴에서 개미 학살이 일어났다.
궁수는 계속해서 활을 휘둘러 개미들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속성화살로 불을 일으켜 놈들을 태워죽이기도 하고 가까이 온 놈들은 모조리 머리통을 터트려버렸다.
말 그대로 세수코의 재림이었다.
아마 세수코가 이 방송을 보고 있었다면 실제로 궁수의 영입을 고민했을 정도로 말이다.
콰직!
“뭐야? 이게 끝이야?”
[선생님의 기막힌 살충 능력에 무릎 딱 치고 갑니다.]
[지가 다 죽여놓고 ‘이게 끝이야?’ ㅇㅈㄹㅋㅋㅋㅋ.]
[개미 : 엄마…? 아빠…? 다 어디 갔어?]
ㄴ 경험담이냐?
ㄴ ㅇㅇ 느그집 경험담.
ㄴ 그만해 미친놈들아.
이곳은 개미굴의 가장 깊숙한 곳, 소위 여왕 개미의 침소의 앞이다.
수많은 개미들의 여왕을 지키기 위해 달려들었으나 모두 궁수의 활에 정리되었다.
“뭐 괜찮은 거 있어요?”
“흠, 해봤자 마석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쯧.”
하긴 외피가 단단한 것도 아니고 고작 개미한테서 얻을게 뭐가 있단 말인가.
그나마 C급 마석이라도 몇 개 나와서 다행이라는 점이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마석이 나올 확률도 희박하여 나중에는 거의 로또라도 바라는 심정이다.
거의 80마리에 가까운 수의 개미들을 죽였는데 나온 마석은 고작 7개가 전부였다.
이 마저도 감지덕지라 뭐라 투정부릴 수 없었다.
그래, 저게 얼마냐.
6대 4를 해도 제법 될 돈이다.
다름 아닌 C급 마석이니까 말이다.
“해체 다 했으면 넘어가죠.”
“예, 마침 다 끝냈습니다.”
정갈하게 도구를 정리한 고수혁이 궁수를 따라나섰다.
개미들이 만든 조잡한 문이 궁수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상남자 궁수는 문은 손이 아닌 발로 여는 것이라 배웠다. 적어도 던전 안에서는 말이다.
쾅!
“띵동이다, 이 벌레 새끼야!”
[친절하게 초인종까지 눌러주누ㄷㄷ.]
[매너남 나궁수;]
카아아악! 카악!
안에서는 수많은 개미의 알을 관리하는 여왕 개미가 궁수는 노려보고 있었다.
궁수는 싱긋 웃으며 활에 화살 세 자루를 담았다. 불꽃을 머금은 화살이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벌레 잡는데 불보다 좋은 게 없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말이 있다. 이 상황은 오히려 초가삼간을 다 태워 버리는 게 이득이었다.
궁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활 세발을 시위에 걸자마자 쐈다.
카아악카아아악!
그것도 여왕개미가 아닌 알이 있는 방향으로.
카악! 카아악!
당황한 여왕개미가 분주하게 불을 꺼보려는 듯 날개짓을 하였으나 오히려 불꽃의 크기를 더욱 키울 뿐이었다.
[불타오르네.]
[파이↗어↘어↗어↘어↗.]
[싹 다 불태워라~]
“죽어! 다 죽어! 이 벌레 새끼들!”
여왕이 불꽃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도 궁수는 계속해서 화살을 쏘아대고 있었다.
어릴 때 한번 개미에게 물린 기억을 되살리자 제법 즐겁기까지 하였다.
“개미면 개미답게 밟혀 죽으라 이 말이야!”
화르륵!
어느덧 여왕개미의 안채가 통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여왕은 모성애가 강한 듯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불꽃을 끄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모두 무의미한 노력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왕개미의 몸에도 불이 옮겨 붙었다.
카아악! 카아아아악!
개미의 고통에 찬 비명이 개미굴을 울렸다. 하지만 여왕의 부름에 명할 신하는 싹다 궁수의 손에 죽은 후였다.
그렇게 10분쯤 지났을까?
쿵!
여왕개미가 불에 타 쓰러지며 궁수의 눈앞에 레벨업 알림이 떴다.
[레벨업! - LV 50]
태어나기 전의 알도 경험치로 합산이 되는 듯 제법 짭짤했다.
“150마리쯤 죽이면 5레벨 업인가.”
효율이 너무 구린데.
스킬 한 번에 열 마리씩 죽일 수 있는 게임과 달리 이것은 현실이다.
몬스터가 죽을 때까지 열심히 공격하여 직접 놈의 숨통을 끊어야한다.
물론 궁수의 레벨업 속도는 무시무시하게 빠른 상태였으나 본인은 그 속도에 만족하지 못했다.
“뭐 됐나.”
레벨도 50이다.
이대로 던전만 더 주구장창 돌다 보면 언젠가 100레벨을 찍을 것이다.
[LV - 50]
[직업 - 궁수]
[스테이터스]
[잔여 스테이터스 - 0]
힘 : 136
민첩 : 20
마력 : 40
체력 : 20
[현재 직업이 궁수입니다. 민첩과 체력을 추천합니다.]
[3대 6000돌파. 천궁의 새로운 형태가 해방됩니다.]
“오? 벌써?”
- 쓰흡, 벌써 3대 6000이라니.
“빨리 까보기나 해.”
- 쯧 재미없기는.
이제는 익숙한 느낌이 궁수의 손을 타고 올라왔다.
[3대 6000 - 컴파운드 보우.]
“와 컴파운드 보우가 된다고?”
- 흥, 이 몸은 효율을 생각할 줄 아는 보구다.
리커브 보우에 비해 사거리는 물론 배는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컴파운드 보우.
가격이나 관리 면에서 더럽게 까다롭다는 점이 있지만 천궁에게는 해당하는 말이 아니었다.
시험 삼아 화살 한 대를 끼운 궁수가 가볍게 손을 놀렸다.
쐐애애액!
“헉!?”
총알.
스나이퍼 급은 아니었으나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의 속도였다.
“너 진짜 물건이구나.”
- 자꾸 당연한 것 가지고 감탄하지 마라.
그러면서도 천궁의 말투는 아까보다 훨씬 부드러워져 있었다.
“새끼 부끄러워하기는.”
궁수도 제법 많이 컴파운드 보우를 다뤄보았다. 모두 하나같이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였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거의 두꺼운 철판도 가볍게 뚫어버릴 위력이었다.
장궁이 초장거리를 ‘견제’하는 느낌이라면 이 컴파운드 보우는 장거리를 강력하게 ‘공격’하는 느낌이었다.
말 그대로 목숨을 노리고 발사하여도 아무 손색이 없다는 의미다.
크기도 장궁에 비해서 작아 휴대성 또한 편리했다. 연사력 자체도 궁수가 사용하면 뛰어난 무기였다.
“하나 건졌네.”
새로운 무기를 획득했다는 기쁨에 궁수는 싱긋 웃었다.
천궁을 가볍게 쓰다듬은 궁수는 활활 타오르는 여왕의 방을 바라보았다.
불이 다 꺼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더 이상 태워먹을게 없던 불은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었다.
파삭!
여왕개미도 완전히 타버려 해체 할 것도 없이 몸이 재가 되어버렸다.
아쉽게도 마석은 뜨지 않았다.
“쩝, 조금 기대했는데.”
“마석이 항상 뜨는 건 욕심이니까요. 슬슬 나가시죠.”
“그래야죠.”
궁수는 기쁨 반 아쉬움 반으로 게이트 바깥으로 나섰다.
게이트 바깥을 나옴과 동시에 스마트폰이 시끄럽게 울어대었다.
조나셈에게 온 연락이었다.
“여보세요? 셈?”
“어, 클로징중인가?”
“방금 막 끝났습니다.”
“다행이군, 당장 마포로 와줄 수 있겠나?”
“왜요? 급한 일이라도 있어요?”
“번거로운 일이라 자네가 필요하네, 빨리 와주게.”
그가 번거롭다고 할 정도니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궁수는 벌써 마포로 가는 택시를 잡은 상태였다.
“수혁씨 빨리 타요!”
“네!”
급하게 택시를 타고 마포로 향했다. 마포 주변 게이트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
거의 마포구에 도착한 궁수가 셈에게 전화를 걸었다.
“셈! 마포 다 왔는데 어디에요?”
“어딘가? 혹시 다리 쪽에서 초록색 택시에 타고있나?”
“네!”
“다리만 건너고 멈추게나!”
끼이익!
“여기요!”
급하게 계산을 마친 궁수가 후다닥 택시에서 내렸다. 셈은 골치 아픈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