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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병기 활-21화 (21/172)

◈ 21화. 맛 좋은 프로틴을 위해.(2)

“원하는 연봉 말해보세요.”

“어…. 그러니까, 일…. 일억?”

“알겠습니다. 십억 드리죠.”

“허어어억!? 십억이요!?”

이미 그녀는 고수혁을 잡기로 마음먹었는지 그 열배에 달하는 금액을 불렀다.

‘하긴 이 정도 수준의 회사면 그 정도는 상관없나.’

물론 다른 대기업들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그래도 프로틴프로의 수입은 제법 대단한 편이었다.

다른 프로틴보다 가격이 조금 높긴 하였으나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상품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헬창들도 웃돈을 주고도 얻지 못해 난리인 것이다.

거침없이 십억을 들이민 것만 봐도 그렇다.

고수혁은 십억이란 말에 잠시 흔들렸다. 나도 있고 주변 시설을 보니 사기꾼도 아닌 것 같고.

애초에 이런 건물을 지을 돈이 있는 양반이 사기를 칠까?

결국, 현실과 타협한 고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헌터라도 자신은 전투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보조계열 헌터라는 설움은 고수혁의 등을 더더욱 들이 밀었다.

연봉이 10억이란다 10억.

적어도 보조 직업이라며 무시하는 다른 헌터들과 무리해서 클로징을 하기보다는 자신이 가치를 알아주는 곳과 일을 하고 싶었다.

“계약서부터 쓰시죠.”

“궁수님도 오세요. 길드 가입하셔야죠.”

“좋습니다.”

길드 계약서는 성진이나 광천보다 훨씬 허접했다.

기본적인 계약서의 틀은 잡고 있었으나 기본적인 조건 자체는 심하게 비교됐다.

하지만 조건 하나.

[평생 프로틴 종류별 무한 지급.]

프로틴프로의 프로틴!

그것도 종류별 무한 지급이라니!

헬창에게 있어서는 어떤 것과도 맞바꿀 수 없는 호사였다.

고수혁도 계약을 완료한 듯 책을 꺼내 그녀와 열렬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책에는 마물에 대한 정보들이 적혀 있었고 다른 노트는 그가 헌터를 하면서 따로 메모해둔 것들이었다.

차분히 상황을 지켜보던 궁수는 어느 정도 대화가 종결되자 다가가 물었다.

“어떻게, 조금 방도가 있을 것 같아요?”

“흠…. 잘하면 될 것도 같아요.”

고수혁은 노트에 적어둔 정보를 토대로 조합하며 여러 가지 레시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수혁씨? 이거 맞아요?”

“네, 맞아요. 물론 인간이 먹을 수 있는 레시피입니다.”

“와아…. 인간은 생각보다 더 대단한 생물이었구나.”

그곳에는 마물의 여러 가지 신체 일부가 적혀 있었다.

대부분 D급이나 E, F급 같은 낮은 등급의 마물이었으나 그 구성요소가 꽤나 혐오스러웠다.

“고블린 귀, 트윈 헤드 울프의 꼬리, 오크 척추, 뭐? 척추?”

“아, 일반 오크의 척추면 됩니다.”

“으으윽….”

대부분 거의 헐값에 팔리는 것들이라 딱히 중요치는 않았으나 유독 한 가지 재료에 중요한 듯 별표가 처져 있었다.

“이건 뭐에요? 눈?”

“싸이클롭스의 눈입니다. 이게 제일 중요해요.”

“프로틴…. 맞죠? 건강 보조 식품?”

“물론이죠, 프로틴이 아니면 뭡니까.”

“어…. 음, 네.”

완성 돼도 난 안 먹어야지.

“완성되면 궁수님 먼저 넉넉히 챙겨 드리겠습니다.”

오우 쒯.

노골적으로 표정을 구겼으나 고수혁은 상관치 않고 다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궁수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이번에는 허가연이 성큼 궁수에게 다가왔다.

“나궁수씨? 필요한 재료가 있어서 그런데 좀 구해줄 수 있나요?”

“뭔데요.”

“싸이클롭스의 눈이요.”

“…네?”

왜 이 인간들은 남의 눈알에 집착하는가. 그것도 사람도 아닌 괴물의 눈을.

아닌가, 사람 눈보단 나으려나.

“B급 보스인데, 흔하게 등장하니까 잡을 수 있을 거에요.”

“저 혼자서요!?”

“아뇨, 다른 길드원이랑 같이요.”

B급 게이트 입장 가능 인원은 최대 4명이다. 궁수 포함 네 명이서 B급 게이트 돌파라니.

“걱정 마세요. 저희 길드는 A급 헌터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A급이요?!”

“네, 아까 보셨죠? 그 대머리이신 분.”

“아.”

유일하게 머리털이 하나도 없는 헬창이 한명 있었다.

얼마나 반질반질하면 조명이 머리에 비춰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분이 A급이에요, 물론 다른 분들도 다 B급 정도는 됩니다.”

“네? 그런 사람들이 왜…. 아.”

“네, 그렇죠.”

진성 헬창인 그들에게 있어서는 이곳만큼 운동하기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기구의 수준은 물론이며 매번 양질의 프로틴까지 제공해준다.

이곳은 그야말로 헬창의 낙원!

“뭐, 좋습니다. 언제쯤 가면 되는데요.”

“오늘 바로요.”

“…네? B급 게이트를 아무 준비도 없이 간다고요?”

“다들 실력자들이니 별 문제 없습니다.”

의심이 갔지만 워낙에 확신이 넘치는 그녀의 말에 결국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분들에겐 이미 말씀드려 놨으니 가보세요.”

“예, 알겠습니다.”

밖으로 나가니 헌터들이 먼저 대기하고 있었다.

“오! 이번 일은 신입과 같이 하는 건가! 기대되는군!”

“열심히 하겠습니다!”

우락부락한 근육몬이 스스럼없이 궁수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방금 전까지 함께 땀을 흘리던 전우다.

어색한 느낌은 추호도 없었다.

아까 2시간동안 운동을 하며 이미 얼굴은 익혀둔 상태였다. 헬창끼리 느껴지는 유대감은 근육만큼이나 단단했다.

“나는 길드장 조나셈일세! 뭐, 어차피 실질적인 운영은 허가연이 다 해줘서 바지 길드장이지만 말이야! 하하하!”

“네! 신입 나궁수라고 합니다! 이름부터 존나 쎄보이십니다!”

“음! 그렇지! 나는 강한 남자 나셈! 셈이라고 불러주게!”

“네! 저는 나궁수입니다! 아무렇게나 불러주십쇼!”

악수를 나눈 궁수와 나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 미소를 띠우고 믿음직스러운 시선으로 서로의 근육을 살폈다.

크으 근육 죽이네.

전사인 듯 거대한 대검을 들고 있었다. 대머리인 점을 제외하면 완벽한 쾌남이었다.

다음은 옆에서 대기하던 다른 헬창이 궁수에게 다가왔다.

옆에는 기다란 스태프를 들고 있었다.

마법사? 힐러?

“반갑네! 나는 나만힐이라고 하네. 공략대에서 힐러를 맡고 있네!”

“정말 이름부터 천상 힐러시네요!”

“하! 같은 나씨끼리 잘해보지! 자네 어디 나씬가?”

“저요? 오로 나씨요.”

“호오?”

궁수의 농담에 피식한 나만힐이 살갑게 다가왔다.

“그래? 나는 존시나 씨라네!”

“오 좀 치는데.”

“이래봬도 나름 복싱 선수였지.”

“오오오오.”

분위기는 꽤나 화기애애했다. 다 같은 헬창이라 그런 건지 처음 보는 사람들 치고는 분위기가 썩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저희 이렇게 셋이서 공략 가나요?”

“음, 그렇다만?”

“흐음….”

B급 게이트에 헌터 셋이라니.

그것도 A급 셋도 아니고 A, B, C급 헌터 한명씩.

“궁수님 잠시만요!”

“음? 수혁씨?”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온 고수혁이 후다닥 달려왔다.

“하아, 하아, 아직 안 가서 다행이다.”

“이제 갈려고요. 왜요?”

“저도 데려가요!”

“네? 수혁씨를요?”

“제가 직접 해체해야 해서요. 꼭 같이 가야합니다.”

F급 헌터 추가라니.

궁수는 괜찮을까 싶은 마음에 돌아보았으나 다른 멤버들은 별 상관없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괜찮다니까, 같이 가시죠.”

그렇게 궁수의 첫 B급 클로징이 시작되었다. 그것도 단 4명…. 아니 3명이서 말이다.

***

“사이클롭스는 어떤 놈인가요?”

“별 거 없네. 그냥 대머리에 외눈박이 거인이지.”

“말만 들어도 존나 쎄 보이는 건 착각인가요.”

“걱정 말게, 그 정도는 아니고 실수하면 죽는 정도지! 정말 심장 쫄깃하지 않는가!”

“아하, 저 집에 갈래요.”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궁수가 표정을 와락 구겼다. 자동차의 손잡이를 당겼으나 문은 굳게 잠겨 열리지 않았다.

“열어! 열라고!”

“폭주 기관차는 멈추지 않아 BOY♂”

“시바아아알! 이렇게 된 이상 노빠구 돌진이다!”

“그래! 그래야 내 길드원 답지!”

- 음! 동료들이 뭘 좀 아는군! 적들의 피로 내 전신을 물들이리라!

미쳐 돌아가는 차량 속에서 유일한 정상인이 있었으니.

“시발….”

다름 아닌 뒤에서 가방을 끌어 앉고 절망적으로 욕을 되뇌는 고수혁이었다.

B급 게이트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셈이 미리 수배를 해둔 듯 협회 직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나름 B급 게이트라 그런지 현장에는 삼엄한 긴장감이 흘렀다.

“키야! 게이트 때깔 죽이네!”

“싸이클롭스 눈깔 딱대!”

“하악! 눈알을 뽑아버려!”

“헌터님들 제발 진정하라고요!”

다만 공략을 온 헌터들의 상태가 이상했을 뿐이다.

“저…. 조나셈 헌터님?”

“오! 자네가 담당자인가? 수고가 많군!”

“크흠…. B급 단일 방출형 게이트입니다. 아시죠?”

“그럼! 알고 왔지! 위험하니 뒤로 빠져있게나!”

“모쪼록 최대한 피해가 적게 부탁드립니다.”

마지막 말은 가볍게 씹어버린 조나셈이 게이트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당당한 걸음걸이에는 두려움이라곤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게이트 수치 최대! 후퇴합니다!”

협회 측 직원이 소리쳐도 그는 빠지지 않았다. 거들먹거리며 등에 매고 있는 대검을 손에 쥐었다.

“저거 괜찮아요?”

“아마도? 생각 없이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니까.”

“흠, 위험해 보이는데.”

어느새 활의 형태를 바꾼 궁수가 화살을 메기며 게이트를 겨누고 있었다.

- 오는군.

천궁의 말과 동시에 게이트가 쫙 벌어지더니 거대한 괴물이 한 마리 튀어나왔다.

근육질의 거대한 몸에 투박한 손.

머리통에는 쫙 찢어진 입과 거대한 눈알이 하나 달려있었다.

키만 5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싸이클롭스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셈! 피해요!”

“흐으읍!”

콰앙!

괴물이 게이트에서 나옴과 동시에 셈이 거대한 대검을 휘둘렀다.

둔탁하게 생긴 대검은 깔끔하게 놈의 다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헐!?”

“와!”

나만힐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으나 나궁수와 고수혁은 깜짝 놀라 눈을 부라렸다.

쿠워어어어어어!

분노한 사이클롭스가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어떤 공격도 조나셈을 맞출 순 없었다.

“역시 셈, 여전하군.”

“우리 올 필요 없었던 거 아니에요?”

“에이, 그런 게 어딨나, 다 도움이 되니까 데려 온 거지.”

그런 말을 하면서 나만힐은 신성력을 일으키고 있었다.

B급 힐러의 버프라니!

난생 처음 보는 버프에 궁수는 눈을 빛내며 그를 바라보았다.

나만힐의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온 신성력은 그대로 조나셈…. 이 아니라 나만힐에게 들어갔다.

“엥?!”

그의 전신에 새하얀 신성력이 깃들기 시작했다.

“만힐님?”

“하! 보고만 있자니 좀이 쑤시는군, 다녀오겠네!”

“네? 뭐요? 님 힐러 아니에요!?”

“하하하하! 적을 죽이면 아군이 상처 입을 일도 없지! 후방지원 부탁하네!”

땅을 박차고 뛰어나간 나만힐이 순식간에 사이클롭스 앞에 도착했다. 있는 힘껏 도약한 그가 거세게 지팡이를 쥐었다.

화아아악!

신성력을 잔뜩 머금은 지팡이가 그대로 사이클롭스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 위력은 B급 마물인 사이클롭스조차도 휘청이게 만들 정도였다.

“요즘 힐러 개쩌네.”

뒤늦게 방송을 킨 궁수의 채팅창에서도 난리가 났다.

[??????????????]

[이 집은 궁수도 그러더니 힐러도 왜 저럼?]

[아니 활이랑 지팡이만 든다고 궁수 힐러 아니라고.]

[ㅋㅋㅋㅋㅋㅋ 버프를 지한테 걸고 뛰쳐나가넼ㅋㅋㅋㅋ]

[근데 저 사람들 누구임? 웃긴 건 둘째 치고 존나 쎄보이는데.]

A급이라 해도 저런 움직임이 가능하나?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깔끔한, 하지만 그 위력도 강력한 조나셈은 계속해서 놈에게 상처를 남기며 전투에서 우위를 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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