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맛좋은 프로틴을 위해.(1)
박선우와 함께 밖으로 나간 궁수가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떡하죠?”
“모름, 저도 받은 건 이게 전부임.”
“참 대단하네요. 대표님도.”
“저희 회사라도 가실?”
“가도돼요?”
“아마도.”
프로틴프로 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택시에서 내린 궁수가 우드득우드득 몸을 풀었다.
사옥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그래도 매출이 제법 될 텐데 평범함. 그 자체였다.
“저희는 지하가 개쩜.”
“지하요?”
“네, 지상은 그냥 프로틴 생산하는 곳이고 지하가 메인임.”
띡!
박선우의 아이디카드를 찍으니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지하는 5층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그는 바로 지하 2층을 선택했다.
“아마 오늘은 신제품 테스트 때문에 다 지하 2층에 있을 거임.”
“신제품이 뭔데요.”
“마석을 이용한 차세대 헌터 전용 프로틴.”
띠리링!
지하 2층입니다.
엘리베이터의 친절한 안내와 함께 지하의 문이 열렸다.
- 호오! 이곳이 계약자가 말한 보약을 만드는 곳인가!
“와, 씨 미쳤는데.”
방 내부는 마치 첨단 무기를 제작하는 미래 연구소 같은 느낌이었다.
각종 정밀 기계들이 움직이며 연구자들이 열띤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게다가.
“쓰으으읍! 하아아아, 그래 이 향기.”
방 내부에서 느껴지는 텁텁한 프로틴 향은 궁수로 하여금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설마 자신이 그 프로틴프로의 연구실에 와보게 되다니!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궁수에게는 두고두고 자랑할 일이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박선우가 토도도도 뛰어나갔다. 그곳에는 흑발의 여성이 연구원들을 지시하고 있었다.
“계약 따옴, 인센티브 꼭 주삼.”
“뭐?! 진짜 왔다고!?”
“나도 건물, 땅, 외제차 다 버리고 프로틴에 넘어오는 미친놈은 처음 봄.”
궁수는 부끄러운 듯 몸을 멋쩍은 표정을 지은 채 성큼 다가갔다. 웨이브진 검은 머리칼에 빨간색 안경.
검은 스타킹을 필두로 한 여성용 정장에 가운을 걸쳤다.
그럼에도 외모는 단연 압도적이라 그녀는 회사 내 여러 직원들에게 흠모를 받고 있었다.
“뭐야, 근육질이 아니잖아.”
물론 궁수 입장에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지만 말이다.
허가연이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궁수에게 다가왔다.
“어…. 나궁수씨?”
“네, 허가연 대표님 맞죠?”
“예, 제가 대표긴 합니다만…. 허어.”
그녀도 정말 계약을 따올 줄은 몰랐는지 당황하여 궁수를 바라보았다.
“왜죠?”
“뭐가요.”
“성진이나 광천이 조건을 허투루 내걸지는 않을 것 같아서요.”
아, 그런가.
궁수는 피식 웃으며 검지를 이마에 짚었다. 뭣 같은 자세는 덤이다.
“이곳에…. 프로틴이 있었으니까.”
“아…. 예.”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징그러운 눈으로 처다 보기까지 했다.
“크흠…. 뭐 이곳의 프로틴은 제가 정말 좋아하거든요, 구하기 어렵단거 빼고는 단점이 없으니까요.”
가슴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진짜로 궁수가 프로틴프로의 프로틴을 먹는 날은 생일이거나 기록을 갱신했을 때 자축의 의미였다.
“네, 뭐 저희 쪽 물건이 우수하긴 하죠.”
“네, 그래서 광고가 들어왔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음, 지금 신제품 개발하는데 한번 보실래요?”
“그 헌터 전용 프로틴이요?”
“네, 미리 귀띔을 해줬나 보네요.”
그녀를 따라가니 새로운 프로틴에 대한 미세 공정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미 임상을 통한 안전성은 확인했어요. 인간이 먹어도 아무 문제없고요.”
“그럼 뭐가 문제인데요?”
“단가가 조금 세다는 거?”
“아. 하긴.”
“뭐, 오신 김에 운동이라도 좀 해보실래요?”
검사실 아래에서는 여러 근육질의 남성들이 웃통을 까고 운동하고 있었다.
궁수가 평가하기에도 대단한 근육이었다.
“전부 자연입니다. 스테로이드 복용은 일체 없죠.”
“저게요? 와….”
궁수의 근육은 압축형 근육이다. 크기는 부족할지 몰라도 그 근육에서 나오는 효율은 남달랐다.
수많은 헬스 기구들이 궁수를 유혹했다.
‘스읍…. 안 그래도 요즘 헬스를 뜸하게 하긴 했는데.’
마치 강아지 앞에 맛있는 음식을 두었을 때처럼 입에 침이 고였다.
이를 알아본 그녀는 한마디를 뱉었다. 결코 궁수가 거절할 수 없는 한마디를 말이다.
“궁수씨도 운동하고 헌터용 프로틴 드셔보실래요?”
“…진짜요?”
“네.”
투다다다다!
이미 궁수는 저 아래 헬스장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헬스장에 도착하니 다른 헬창들이 궁수를 맞이해주었다.
다들 근육의 형태가 아름다운 진성 헬창이었다. 궁수는 전우애를 넘어 존경심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반갑슴다!”
“뭐야, 신입인가?”
“네! 이번에 새로 들어오게 된 나궁수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쇠질 먼저 해도 되겠습니까!”
“소개도 전에 쇠질부터 당기다니! 헬창으로서 예의가 바른 친구로군! 빨리 들어오게!”
“넵! 감사합니다!”
몸을 푼 궁수가 거리낌 없이 웃옷을 벗어 던지며 헬스 기구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나같이 몇 천만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헬스 기구들.
궁수에게 있어서 이곳은 놀이공원보다 더 재밌는 곳이었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상황을 지켜보는 허가연.
“흐흐흐흐 역시 좋아할 줄 알았어. 츄릅…. 크으으 저거지, 캬…. 이두 삼두 어떡해! 꺄아아악!”
그렇다.
그녀는 진상 근육 마니아였다.
다만 본인은 근육을 만들기 싫어하는 상당히 특이한 종류의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아직까지 시집은커녕 연애도 해보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
2시간에 달하는 운동을 마친 궁수가 땀에 흠뻑 젖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위로 올라왔다.
“오…. 오우.”
그녀는 뺨을 두드려 겨우 정신을 차리고 궁수를 맞이했다.
입가에 흐르는 침 한 방울까지 후다닥 닦아내고 덤덤하게 궁수 앞에 섰다.
궁수의 배에 새겨진 선명한 식스팩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여태껏 본 근육 중에 2…. 아니 단연 1티어!’
“뭘 그리 열심히 봐요.”
“아, 아뇨 근육의 수준이 대단하다 싶어서요.”
“네? 그걸 알 수 있어요?”
“일단은 저도 전문가입니다.”
“알겠으니까, 빨리 프로틴이나 주세요.”
궁수가 프로틴을 달라고 재촉 했다. 보라색 프로틴이 물을 만나 유려하게 흔들렸다.
‘블루베리 맛인가?’
열심히 프로틴 통을 흔든 궁수가 시원하게 한입 들이켰다.
아.
마치 마력이 온몸 근육 곳곳에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맛!
그 맛은!
맛은….
“우욱!”
“아아 역시나.”
정말 끔찍했다. 마치 세상 모든 향신료를 수돗물에 때려 박은 걸 그대로 마시는 느낌?
각종 이상한 향들이 코를 후벼팠다.
가슴을 탕탕 후려치며 겨우 프로틴을 넘긴 궁수가 연신 헛구역질을 해대었다.
- 삼켜라 계약자여! 원래 몸에 좋은 약은 쓴 법이다!
“아니 이건 그냥 맛이…. 우욱!”
단순히 맛없는 수준이 아니라, 차라리 마물 고기를 뜯어먹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수준의 처참한 맛이었다.
“으으으, 이거 맛 왜 이래요.”
프로틴프로의 다른 맛좋은 제품들과는 그 맛이 너무나도 아니 일반 시중의 프로틴보다도 떨어졌다.
그녀는 검지로 자신의 입술을 두드리며 대답했다.
“그게 효과는 확실히 좋은데 맛이 영 그렇단 말이죠. 들어가는 마석 대비 가성비도 썩 좋진 않고요.”
“어으…. 이건 안 팔릴 것 같은데요.”
“팔리긴 팔릴거에요, 뭐 ‘근육에 미친놈이라면 먹어봐라’ 이런 느낌? 어찌됐든 효과는 확실하니까요.”
그녀는 익숙하게 원래 제품의 프로틴을 타 궁수에게 건네주었다.
“자, 이거 마셔요.”
병을 받은 궁수가 시원하게 프로틴을 원샷했다.
달콤하고 담백한 프로틴은 절로 궁수의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그래 이거지.”
“뭐, 저대로 판매해도 문제는 없지만, 여태까지 쌓아온 회사의 이미지도 있으니까요. 어떻게든 개량을 해야 하는데.”
순식간에 프로틴 한 컵을 원샷한 궁수가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맛만 좋으면 되는 겁니까?”
“네, 효율은 저희가 알아서 조정할 테니 맛을 좀.”
“흠, 알겠습니다.”
궁수는 휴대폰을 켜 최근 대화 내역을 들어갔다. 스크롤을 내리니 금방 그와의 대화 내역이 눈에 들어왔다.
요리사 고수혁.
맛 좋은 요리로 탁월한 버프를 걸어주는 그라면
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궁수 - 오후 05:21]
[고수혁 헌터님, 저 기억나시나요?]
메시지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답장이 도착했다.
[고수혁- 오후 05:23]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그렇지!
기쁜 마음에 주먹을 꽉 쥔 궁수가 급히 휴대폰 타자를 두드렸다.
[나궁수 - 오후 05:23]
[물론이죠, 그때 주신 음식 덕분에 다음 공략도 편안했습니다.]
[고수혁 - 오후 05:23]
[에이 뭘요. 다 헌터님이 대단하신 덕분이죠.]
고수혁은 별거 아닌 듯 겸손을 떨었으나 실제로 그의 요리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요리 하나가 레벨 하나에 달하는 효율을 낼 수 있으니 말이다.
버프 시간이 그리 길진 않지만 나름대로 효과 하나는 훌륭했다.
[나궁수 - 오후 05:24]
[지금 잠깐 시간 괜찮으신가요?]
[고수혁 - 오후 05:24]
[지금요? 네, 별 상관은 없는데, 왜요?]
이를 확인한 나궁수가 성큼 허가연에게 다가갔다.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자랑스러운 듯 말을 이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두 번째로 대단한 요리사입니다. 이 사람이면 해결해줄 겁니다.”
“두 번째요? 첫 번째도 아니고?”
“첫 번째는 우리 엄마.”
“아…. 네, 뭐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이 문제만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궁수는 급히 고수혁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사정을 들은 고수혁은 잠시 고민하더니 일단 찾아가보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삼십분 뒤 1층에 도착한 고수혁이 무사히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지하로 들어왔다.
여전한 요리사의 흰색 복장이 특이한 남자였다.
“궁수님!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궁수의 손을 덥석 잡은 고수혁이 반가운 듯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친 고수혁이 이번에는 허가연을 바라보았다.
짧은 목례.
간단한 인사를 마친 허가연이 바로 설명에 들어갔다. 차세대 헌터용 프로틴.
자세한 정보는 말하지 않고 기본적인 정보만을 전달했다. 그것만으로도 고수혁은 표정을 와락 찡그렸다.
“그렇게 하니까 맛이 없죠. 일반 정제한 마석을 갈아버리면 효율이 나오지도 않을 테고요. 이거 도대체 얼마에 팔 생각이에요?”
역시.
대충 분석표만 보고도 단번에 문제점을 짚어낸 고수혁이 하나하나 팩트를 때려 박기 시작했다.
기대감 없던 허가연의 표정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고수혁이 설명을 끝냈을 때 그녀는 씨익 미소 짓고 있었다.
“고수혁이라 하셨나요?”
“네.”
막상 후련하게 말한 고수혁은 허가연이 성큼 다가오자 그새 쫄아 버렸다.
- 쑥맥이군.
“그러게.”
눈을 깔고 개미 목소리로 소심한 대답을 뱉었다. 허가연은 전혀 상관하지 않고 다짜고짜 고수혁에게 악수를 내밀었다.
“저희 개발팀으로 들어오세요, 연봉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네?”
“원한다면 집도 이 주변으로 한 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녀는 궁수를 영입할 때보다 훨씬 더 열성적인 상태였다. 당황한 고수혁에게 그녀는 계속해서 제안을 던졌다.
고수혁이 얼빠진 표정으로 궁수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