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19화 (19/172)

◈ 19화. 너 내 헬창이 되어라.

‘이크 방송을 안 껐네.’

전화를 끊은 궁수가 깜빡했다는 듯 다시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이미 채팅창은 광고라는 말에 벌써 개판 5분 전이었다.

[와 벌써 광고도 받아? 머기업 다됐누;;]

[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받는다는게 프로틴 광고 ㅋㅋㅋㅋㅋ]

[나중에 닭가슴살이랑 언덕아머에서도 연락오겠네 ㅋㅋㅋ]

[제 찌찌의 비결이요? 다 이 닭찌찌 덕분이죠!]

ㄴ강제 퇴장되었습니다.

“뇌절하고 있어 이 새끼가.”

[ㅋㅋㅋ 찌찌좌 잘가…]

[아아 그는 좋은 JJIJJI였습니다.]

[찌찌좌… GG.]

“어휴, 아무튼 오늘은 여기서 방송 끕니다.”

시청자들이 뭐라 하기도 전 빠르게 방송을 꺼버린 궁수는 바로 집을 향했다.

게이트도 한 개 돌았겠다. 오늘은 일찍 돌아가 쉬고자 했다.

집에 도착한 궁수는 샤워를 하자마자 침대에 털썩 누워 기절하듯 잠에 빠졌다.

***

“하아암…. 진짜 잘 잤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기상.

눈이 번뜩 뜨이며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말 그대로 최고의 컨디션.

가볍게 세안을 마친 궁수가 휴대폰을 켰다. 새로운 쪽지가 두 통 도착해 있었다.

각각 성진과 광천에서 온 쪽지였다. 내용은 비슷했다.

새로운 조건을 조정했으니 다시 미팅 날짜를 잡아달라는 내용이었다.

“흐음….”

자신은 더 이상 뭘 할 필요가 없었다.

추가로 립서비스를 하지 않더라도 성진과 광천에서 치열한 루키 쟁탈전이 벌어질 것이다.

원래라면 유망주 하나에 이렇게까지 하지 않겠으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알아버렸다.

이제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아져 자존심 싸움이 되어버린 것이다.

양쪽 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곳이니 상당한 금액을 배팅할 것이다.

“까짓것 오늘 보자고 할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궁수는 쪽지를 작성했다.

[확인했습니다. 오늘 2시쯤 협회 대여 회의실에서 보시죠.]

간단한 쪽지를 궁수는 아무 고민도 하지 않고 양측에게 동시에 보냈다.

다소 매너 없는 행동이긴 했지만 굳이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오히려 둘을 붙여놓고 경쟁을 시켜야 더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내놓을 것이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남은 것 하나까지 전부!

그 다음 궁수는 프로틴프로에 전화했다. 성진이나 광천과는 다른 친절한 태도.

전화를 검과 동시 어제 들었던 여성의 목소리가 귓가를 채웠다.

“여보세요? 허가연 대표님?”

“예, 말씀하시죠.”

“다름 아니라 어제 말한 미팅 오늘 두시쯤 가능할까요?”

“두시요? 흐음….”

전화기 너머에서 무언가 뒤적이는 소리가 났다. 종이가 팔락거리는 소리가 나며 그녀가 곤란한 듯 말했다.

“아…. 그럼 저 말고 저희 직원을 보내도 괜찮을까요?”

“직원이요?”

“예, 제가 그때는 신상품 실험이 있어서.”

오!

프로틴프로의 신상품이라니!

그런 중요한 일을 하는데 나 따위 하찮은 헬창이 끼어들 수 없지.

궁수는 단숨에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그녀의 제안을 수락했다.

전화를 끊기 전 미리 언질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 참고로 두시에 성진이랑 광천 측도 함께 길드 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네? 두시라면 저희랑 겹치지 않나요?”

“별건 아니고 프로틴프로 측도 길드가 있다고 해서요. 그냥 말씀 드리는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이 정도면 그녀도 무슨 말인지 잘 알아먹었을 것이다.

“위치는 협회 대여 회의실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뚝.

전화가 끊어지며 궁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아침부터 프로틴 한잔을 마셨다.

아껴두었던 프로틴프로 한 봉지.

그걸 무려 세 스푼이나 넣고 쉐이크를 만들었다.

- 그건 뭔가 주인? 마치 천고의 보약처럼 마시는데.

“크으으으! 네 말이 맞아. 거의 보약이나 다름없는 거 거든!”

이게 성공의 맛인가!

평소에는 비싸서 프로틴프로 반스푼에 다른 프로틴을 섞어서 마신다.

하지만 지금의 쉐이크는 프로틴프로 100%!

궁수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고급 와인이나 명주도 아니고 고작 프로틴 쉐이크 하나에 감동하는 궁수였다.

***

시간은 1시 30분.

궁수는 아직 회의실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미리 와있던 광천과 성진이 치열하게 기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추가로 옆에서 바짝 쫄아 있는 프로틴프로의 직원은 덤이다.

제품 개발을 하다가 온 건지 흰색 가운을 입고 있었다.

안경에 더벅머리까지 전형적인 연구원의 표본이었다. 잠시 여유 있게 바깥을 바라보던 성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광천이 성진한테 대드는 날이 오다니.”

누가 봐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말투.

성진이기에 할 수 있는 태도였다.

하지만 상대는 광천, 성진에 다소 밀리긴 하지만 결코 무시당하지는 않는 길드다.

그도 스윽 성진을 바라보며 한마디 뱉었다.

“뭐…. 이번에 성진이 공략 실패한 A급 게이트 있잖습니까? 그거 사실 저희가 치웠거든요. 보상이 제법 짭짤하던데 그 덕분이죠.”

“허, 먹다 남은 찌꺼기나 먹는 게 잘 어울립니다.”

“먹지도 못하고 찌꺼기라뇨~”

두 스카우터의 시선에 불똥이 파직 튀었다. 프로틴프로의 연구원인 박선우는 멍하니 바깥 풍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난….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는가.’

멍하니 사색을 즐기고 있을 무렵 잠시 휴전에 들어간 성진이 말을 걸어왔다.

“음…. 그쪽은 누구시죠?”

얼핏 경계심과 깔봄이 느껴지는 말투였지만 선우는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저요?”

“예, 그쪽이요.”

“글쎄요. 전 그냥 대표님이 시켜서 왔는데.”

“흠, 뭐 알겠습니다.”

혹시나 다른 대기업에서 왔나 했으나 그런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저런 놈을 대기업에서 데려갔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자연스럽게 프로틴프로를 배제한 성진이 자꾸만 광천을 노려보았다.

원래는 조용히 접촉을 할 생각이었는데 도통 연락이 닿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보통 연락이 안 되면 그냥 관심을 끊어버리는데 그는 어쩔 수가 없었다.

방송을 하며 나온 여러 가지 장면이 너튜브와 같은 플랫폼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것 때문에 윗선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거기에 광천까지 끼어드니, 이건 단순히 루키 쟁탈전이 아닌 자존심 싸움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데려오라는 부장의 말에 그는 한 번 더 콧방귀를 뀌었다.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몇 백억을 버리면서까지 지켜야 하는지 참.

그 뒤로는 딱히 이렇다 말 할 것도 없어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철컥.

“오, 다들 와 계셨네요.”

문이 열리며 궁수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격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검은색 슬랙스에 파란색 후드티 그리고 화룡점정인 사선 슬리퍼까지.

궁수가 스카우터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앉은 궁수가 성진과 광천을 바라보며 툭, 말을 뱉었다.

“뭐해요, 조건 안주고?”

“아, 여깄습니다.”

“저희 것도 여기.”

궁수는 받은 조건들을 스윽 훑어보며 피식 웃었다.

추가된 사항이 몇 개 보이긴 하였으나 큰 차이는 느끼지 못했다.

파일을 내려둔 궁수가 성진과 광천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둘 다 거기서 거기네요.”

다시 말하면 ‘가진 거 더 꺼내봐’라는 소리였다.

궁수의 무례한 태도에 그들이 잠시 움찔하였으나 뭐라고 말을 하지는 못했다.

현 상황에서 갑은 궁수다.

자칫 궁수의 마음을 상하게라도 만들었다간 회사에서 제법 비난의 눈초리를 날릴 것이다.

어떻게든 서로를 이기기 위해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궁수의 비위를 맞춰야했다.

광천측이 먼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싱긋 웃으며 펜과 함께 궁수에게 내밀었다.

“이번에 국내에서 새로 나온 제네시소 G99의 매매 양도서입니다. 서명만 하면 바로 출고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신형으로요.”

“오?”

잠시 궁수의 얼굴에 흥미가 돌았다. 하지만 성진은 가소롭다는 듯 다른 종이를 한 장 위에 겹쳤다.

“최근 입고된 마제라티의 양도서입니다. 그래도 헌터님 능력이 있는데 이 정도는 타셔야죠.”

“오! 마제라티!”

두 장의 종이를 건네받은 궁수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근데 저 면허 없는데.”

“면허가….”

“없으시다구요?”

“네, 저 뚜벅이임.”

스카우터 두 명 모두 마치 또라이라도 보는듯한 눈빛으로 궁수를 바라보았다.

궁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흠, 여기서 끝인가요?”

“아…. 아닙니다!”

“헌터님 이걸!”

그 뒤로도 스카우터 들의 열정적인 어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차로 시작해서 계약금, 집, 연금, 땅 심지어는 건물까지 꺼내들었다.

사실 궁수는 그런 것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몇 천만 원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궁수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돈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승부를 보아야했다.

하지만 성진과 광천은 계속해서 물질적인 이야기만 툭툭 꺼낼 뿐이었다.

결국 아끼던 와인을 주겠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한숨을 푹 쉰 궁수는 프로틴프로에게 눈을 돌렸다.

“저 이름이?”

“박선우입니다.”

“대표님이 보내셨나요?”

“그렇죠.”

궁수가 유심히 그를 바라보았다.

광천과 성진의 어마어마한 제안에도 놀라기는커녕 표정은 시종일관 변하지 않았다.

‘혹시 프로틴프로 수입이 대기업 급인가?’라는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깍지를 낀 궁수가 턱을 올려놓고 박선우에게 물었다.

“그 쪽은 뭐 제안할거 없어요?”

“어….”

“뭐든 말해보시죠.”

이미 궁수는 성진이나 광천은 썩 내키지 않았다.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나는 방식이 썩 맘에 들지 않았다.

“이거 혹시 길드 제안임?”

“예, 그렇습니다만.”

박선우는 멍하니 광천과 성진을 번갈아보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으나 궁수는 딱히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저희도 급에 맞추려면 음….”

고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감정하게 말했다.

“프로틴 평생 무상지급?”

오.

“맛별로?”

“당근, 맛별로.”

“좋은데?”

“음, 이건 아직 개발 단계이긴 한데, 궁수님 전용 프로틴도 만들어 드릴 수 있음.”

“개인용이요!? 그런 게 가능해요?”

몇 십억 짜리 뇌물에도 무덤덤하던 궁수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궁수님의 정보가 필요하긴 한데….”

“얼마나 필요한데요?”

“손가락 한 개 정도?”

“쓰읍…. 손가락 하나 없으면 중량 떨어지는데.”

“농담임. 혈액 샘플만 조금 있으면 됨.”

궁수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십, 수백억을 거절하고 고작 프로틴에 반응한 궁수였다.

궁수가 마지막으로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길드 시설은요?”

“헬스 기구 93종 보유. 새로운 기구가 나올 때마다 사고 있음.”

궁수가 성큼 일어나 박선우와 악수를 나눴다.

몇십 억대의 화려한 조건을 제안 받을 때보다 훨씬 궁수의 표정이 밝았다.

“그렇다면 전 이쪽으로 가보겠습니다, 두 분 수고하셨습니다.”

“어…. 네?”

“프로틴…. 이면 보충제요?”

“예, 그럼 이만!”

궁수가 떠나고 남은 방에는 성진과 광천의 스카우터만이 남았다.

떠난 후에도 몇 분간 멍하니 궁수가 나간 문을 바라보며 쉽사리 발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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