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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병기 활-18화 (18/172)

◈ 18화. 너 내 헌터가 되어라(2)

“저 등급업 하려고 왔는데요.”

“뭐야, 너 전에 걔 아니냐? 궁수?”

“네, 맞는데요.”

“뭘 벌써 와 등급 올릴게 뭐 있다고.”

“그럼 E급 헌터가 C급 게이트 혼자 클리어 하는데 가만있습니까?”

“…뭐? C급?”

당황한 그녀가 놀란 눈빛으로 궁수를 바라보았다. 오죽하면 손에 들린 담배가 재떨이에 툭 떨어질 지경이었다.

“시발 어디서 이 새끼가 구라를 쳐?”

“거 직접 확인해 보시죠? 기록 다 남잖아요.”

“하, 딱 기다려. 구라면 죽을 줄 알아.”

“늬에 늬에.”

타다다다닥.

그녀의 신경질적인 타자 소리가 검사실을 울렸다.

주변에서 함께 근무하던 몇 명의 직원들이 이젠 익숙한 듯 귀마개를 꽂았다.

저 인간 또 저러네, 하는 듯한 표정은 덤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뭐라고 하지는 못한다는 점이 참 아쉬울 따름이었다.

검색을 완료한 그녀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궁수를 바라보았다.

“너 뭐냐?”

대뜸 날아온 질문에.

“제 이름은 나궁수, 취미로 히어로를 하고 있습니다.”

팩트가 섞인 드립으로 대답했다. 뭐 시민들을 지킨다는 시점에서 히어로는 맞으니 말이다.

물론 상대는 그런 것 따위 받을 줄 모르는 딱딱한 사람이었다.

“너 레벨은 몇이냐?”

“41”

“뭐? 사십 일?”

“응, 왜?”

“아니 며칠 전까지 0렙이던 신입 헌터가 갑자기 와서 지 레벨이 사십 일이라는데 너 같으면 믿겠냐?”

“왜 못 믿어? 누군지는 몰라도 조각 미남에 성격도 좋고 능력도 좋은 쾌남일 듯.”

이제는 궁수도 거리낌 없이 반말을 툭툭 뱉었다. 상대도 저러는데 자신만 예의를 차릴 이유가 없었다.

그녀도 별 상관없는 듯 자연스레 궁수의 말을 받아쳤다.

아무리 그녀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궁수를 바라본들 데이터는 거짓말하지 않는 법이다.

쌓여있는 궁수의 업적은 그렇듯 언제나 탄탄하게 밑바닥을 지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단독 클리어? 너 솔직히 말해 돈 주고 조작했지.”

“내가 그럴 돈이 있으면 헌터를 안 했지.”

아무리 부정해본들 결국에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C급 게이트 단독 클리어라니. 아무리 던전형이 아닌 방출형이라 해도 C급은 C급이다.

그 말은 C급 헌터가 최소 네 명은 모여야 공략이 가능하단 의미였다.

“하, 됐고 전투력 측정이나 하게 검사실로 들어가.”

“거 참 성격 더럽네.”

“닥치고 빨리.”

궁수는 투덜대면서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전에도 보았던 검은색 기둥이 중앙에 떡하니 박혀있었다.

“바로 시작해?”

“어, 네 알아서 해, 어차피 제일 높은 전투력 수치로 표기되니까.”

“오케이.”

이미 게이트 한 개를 정리하고 온 터라 몸은 풀린 상태였다.

“일단은 활부터 쏴볼까.”

마력을 흘려 넣은 천궁에 궁수가 작게 속삭였다.

“장궁.”

연사력은 구리지만 위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활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화살통에 마력을 주입하여 거대한 화살을 한 대를 만들어내었다.

그 모습은 화살보다는 차라리 창에 더 가까웠다.

전투시에는 다소 궁수의 폼이 살짝 무뎌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전투가 아니다. 급한 상황도 아니고 그저 앞의 기둥을 향해 화살을 꽂아 넣으면 됐다.

마력을 더욱 주입하니 궁수의 화살에 화르륵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속성 화살이 거대한 창과 같은 화살에 적용되었다.

“아직, 이 정도로는 애매해.”

마력을 더욱 투자하여 이번에는 바람의 기운까지 실었다.

마치 화살에서 거대한 불꽃 토네이도가 휘몰아치는 듯했다.

- 호오?

“그래! 화력이 이 정도는 되야지!”

검사실을 가득 채우는 화려한 불꽃이 작렬했다.

화아아아악!

콰드드드득!

“와, 이걸 버틴다고?”

화살은 잘 먹혀 들어갔다. 실제로 검은 기둥에 절반 이상 틀어박혀 있었다.

하지만 관통을 생각했던 궁수에게 있어서는 다소 아쉬운 결과였다.

“이런 미친 새끼가!”

“엥? 왜!?”

다만 검사실에서 대기하던 신경질녀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스피커가 찢어질 정도로 날카로운 소리였다.

분노는 아니었다. 황당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허…. 아냐, 검사 끝났으니까 나와.”

“그래,”

진짜 이 여자 조울증인가?

어떻게 사람이 한결같이 재수 없을 수 있는지에 감탄하며 궁수는 밖을 나왔다.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방금 전 자료를 분석하고 있었다.

“왜 그래, 뭐 문제 있어?”

“어, 존나.”

“…진짜로?”

표정이 워낙에 진지했기에 궁수도 덜컥 겁을 먹었다.

꿀꺽.

침을 꼴깍 삼킨 궁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문제가 뭔데.”

“허어….”

모니터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그래프들이 마구 배치되어있었다.

궁수가 본다고 뭘 아는 것도 아니었기에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는 인상을 팍 쓰며 대답했다.

“너무 쎄.”

“…뭐?”

“존나 쎄다고 이 정도면 거의 B급…. 거의 준 A급 수준이라고.”

“내가…?”

“그래, 도대체 뭘 하고 다녔길래 이런 미친 위력이 이렇게 나와?”

- 흥! 누구를 사용하는데 이 정도는 기본이지!

궁수가 한 것은 꾸준히 사냥하고 레벨을 올렸을 뿐이다. 뭘 했냐고 물어본들 막연했다.

“아무튼 내가 존나 쎄다는거지?”

“뭐, 요약하면 그렇지.”

“그럼 나 바로 A급 헌터 될 수 있는 거야?”

“되겠냐?”

“어.”

“지랄.”

그 뒤로 그녀의 짤막한 설명이 이어졌다.

애초에 A급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협회가 내건 임무를 완수해야 한단다.

궁수는 아쉬운 마음에 입술을 쭉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B급은 가능하나?”

“B급 게이트도 가본 적 없는 놈이 뭘, C급은 가능하겠네.”

“쓰흡…. C급?”

C급도 나쁘진 않다. 원래 등급이 E급인 걸 생각하면 2단계나 올라간 셈이다.

“C급도 배부른 줄 알아, C급 헌터들 평균 레벨이 50대인 건 알아?”

“그럼 난 더 대단하네, 40레벨대에 걔들 다 발랐으니까.”

“아니, 그, 하 됐다. 그래 너 잘났다. 헌터증이나 내놔.”

헌터증을 스캐너에 집어넣고 몇 번 키보드를 두드리자 금세 헌터증에 새로운 정보가 기입되었다.

C급 헌터 나궁수!

마치 예전 선수시절 받은 상을 본 기분이었다. 절로 입가에 호선이 그어졌다.

“그래도 유능한 놈이 있는 건 좋은 거지, 자 가져가라.”

“떙큐~”

“빨리 꺼져, 꼴 보기 싫으니까.”

“늬에 늬에~”

문 밖으로 나가는 순간까지 쌍욕을 들으며 궁수는 성큼 밖으로 나왔다.

더 이상 자신은 E급 헌터가 아니다. C급이다!

직장인이 승진한 기분이 이런 걸까?

가슴이 붕 뜨며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가려했다. 궁수는 이 해맑은 기분으로 다시 방송을 켰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C급 헌터 나궁수입니다!”

대놓고 자랑하려는 의도가 팍팍 느껴지는 말투.

장난기 심한 시청자들이 들어옴과 동시에 C드립을 팍팍 치기 시작했다.

[헌터님 C급 축하드려요~]

“아하하 별 말씀을요~”

[완전 ‘C급’ 이시네요~]

“네, 맞습니다~”

[정말 C급다운 수준이셔요!]

[키야! C급 인생이네요!]

“아하하 너 새끼 밴.”

잠시 시청자들과 투닥거리던 궁수의 눈에 다른 채팅이 한 개 들어왔다.

[님 근데 길드는 어떻게 됨?]

“아, 길드요? 아직은 안 정했어요, 전에도 말했듯 제가 마음에 드는 곳으로 가려고요.”

[뭐 씹 하꼬 길드 그런데??]

[성진 광천 다 왔는데 뭐가 문제임 ㅋㅋㅋㅋ]

[그냥 공모전을 열어라 새꺄 ㅋㅋㅋ]

.

“공모전같은 소리하네.”

분명 다른 길드들도 눈에 부을 키고 궁수를 잡으려 할 것이다.

길드들의 난입으로 개판이 되기 전에 무언가 생각해봐야 했다.

“하…. 달달한 프로틴 한잔 땡기네.”

[ㄹㅇ 헬창쉑 먹는게 닭찌찌, 프로틴 밖에 없누;]

[진짜 길드 관계자들이 마지막 프로틴 한 방울 안 나온다고 병 핥은걸 봤어야 함.]

[길드에서 보낸 쪽지도 다씹는 놈인데 그런거 신경 쓰겠음? ㅋㅋㅋ]

‘아 쪽지함.’

전에 광천도 그렇고 자신에게 쪽지를 보냈다고 하였다. 궁수는 스마트 폰을 뒤져 헌터 앱을 들어갔다.

실제로 편지봉투 모양의 아이콘 위에 9라는 숫자가 띄워져 있었다.

“어디보자.”

편지봉투를 터치하니 봉투가 열리며 안에 있던 쪽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큼지막한 길드는 성진과 광천 그리고 그 외에는 여러 중견 길드들이 궁수에게 쪽지를 보냈다.

궁수의 예상과는 달리 그리 수가 많지는 않았다.

‘하긴 성진이나 광천에서 왔으니 의미 없다고 생각하려나.’

자신이 생각해도 굳이 대기업을 버리고 다른 중소 길드로 갈 이유는 없었다.

다만 대기업이라고 무조건 잘 챙겨준다는 이유는 없지 않은가.

궁수는 쪽지를 보낸 다른 길드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검색했다.

“여기는…. 음 너무 작고. 이건 또 뭐야? 사장이 불륜? 에잇 부도난 놈들이 왜 나한테 연락을 해?”

그나마 보낸 중소 길드에서도 멀쩡한 놈은 없었다. 쪽지를 하나하나 삭제하며 남은 쪽지는 하나.

“어? 여기는….”

- 뭐냐? 좋은 곳이냐?

다름 아닌 프로틴 회사였다.

길드로서 초대한 것은 아니고 궁수에게 광고 제의를 하기 위해 쪽지를 보낸 것이었다.

프로틴프로.

말 그대로 프로틴의 프로라는 뜻이었다. 생산량이 얼마 되지 않아 구하기가 꽤나 어려운 브랜드였다.

다른 프로틴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단백질 양에 칼로리는 훨씬 낮으면서 단맛은 압도적으로 높다.

심지어는 설탕이 전혀 들어가지 않음에도 그런 맛이 나는 것이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

하지만 생산량이 현저하게 적어 거의 웃돈을 주고 사야하는 양질의 프로틴이 바로 프로틴프로의 프로틴이었다.

이미 궁수의 손가락은 쪽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느릿한 전화 연결음이 잠시 귓가를 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는 연결되었다.

“여보ㅅ….”

“안녕하세요! 쪽지 보고 연락드립니다.”

혹여나 마음이 바꿀까 궁수가 급하게 말을 꺼냈다. 상대는 적잖게 당황한 듯 말을 절었다.

“나궁수 헌터님?”

“네, 맞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성인 여성의 목소리였다. 궁수는 비서겠거니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광고건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데 담당자 바꿔주실 수 있나요?”

“제가 담당자입니다.”

“네? 그래요?”

“프로틴프로 대표이사 허가연입니다.”

프로틴 회사 대표라길래 분명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남성을 생각했던 궁수에게는 나름 충격이었다.

그도 모르게 ‘이런 프로틴을 만드는 사람이면 얼마나 대단한 헬창일까?’라는 생각까지 하곤 했다.

그래도 그런 대단한 물건을 만드는데 분명 뭔가 있을 것이다. 궁수는 조용히 대답했다.

“전화로 하기는 좀 그렇고 미팅은 어떠신가요.”

“괜찮으신 날짜를 말해주시면 스케줄 잡도록 하겠습니다.”

“흠, 시간 좀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 잠깐만요!”

전화가 끊어지기 직전 궁수가 다급히 그녀를 불러 세웠다.

“혹시 프로틴프로도 길드가 있나요?”

프로틴프로는 그리 큰 회사가 아니다.

대기업이라면 이미 몇 톤의 프로틴을 찍어내겠으나 프로틴 프로는 그렇지 않았다.

허가연은 작게 웃음소리를 내고는 대답했다.

“있습니다. 대단한 곳은 아니지만요.”

“아,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궁수는 거기서 그칠 뿐 별도로 대답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궁수가 프로틴프로에 상당한 관심이 있다는 것은 표현할 수 있었다.

사장의 입장에서도 자신이 만든 기업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이는 좋으면 좋았지 싫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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