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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병기 활-16화 (16/172)

◈ 16화. 마석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궁수의 눈이 싸늘하게 빛났다.

활솜씨 하나로 한국을. 아니, 어쩌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 뻔했던 남자.

그것이 나궁수였다.

긴장을 줄이고 집중력을 끌어올린다. 서서히 주변의 소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이 공간에 남아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듯한 그런 느낌.

시간이 멈춘 듯 세상이 회색으로 물들어가는 느낌이 궁수를 뒤덮었다.

집중력을 끌어올리자 찰나의 순간을 더욱 쪼개고 쪼개어 마치 세상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마치 지금처럼.

“지금.”

- 지금이다.

쐐애애애액!

멈춘 세상 속 창대하게 타오르는 백색의 화살이 늑대를 향해 날아갔다.

머리통을 노리며 날아간 활은 정확히 늑대의 동선을 예측하여….

콰지직!

놈의 머리통을 관통했다.

머리에 박힌 화살이 타오르며 늑대의 몸 또한 함께 이글이글 타올랐다.

[레벨업! - LV 36]

[레벨업! - LV 37]

[레벨업! - LV 38]

“쉽군.”

채팅창의 열광적인 반응을 기대한 궁수는 한껏 무게를 잡으며 말했다.

[ㅋㅋㅋㅋㅋ 줫발리고 겨우 이겼는데 ‘쉽군’ ㅇㅈㄹㅋㅋ]

[“아” 쉽군.]

[30분 내내 줫 발리다 겨우 이겨놓고 ‘쉽군’ㅋㅋㅋㅋㅋㅋ]

[억까들 이 악물고 달려드네 ㅋㅋㅋㅋㅋ]

“내가 이 새끼들을 쏴 죽였어야 했는데.”

돌아오는 거지같은 반응에 입술을 쭉 내밀었다.

궁수는 한숨을 푹 쉬며 협회 직원들을 불렀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서둘러 늑대가 쓰러진 곳으로 우루루 몰려갔다.

“여기있네요.”

전신이 새까맣게 타버린 늑대 시체가 쓰러져있었다.

궁수가 협회 측 직원들을 불러온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해체 좀 부탁드려요.”

“아, 해체비가 삼십만 원 정도 청구됩니다만 괜찮으시죠?”

“네, 부탁드립니다.”

여러 가지 중요한 소재들이 있다마는 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물건은 다름 아닌 마석이었다.

직원 둘이 달라붙어 열심히 늑대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제발 마석!’

[두구두구두구두구]

[ㄱㄴㅇ?]

[늑대 방송감 믿는다!]

[NO 마석, 뜨지 않습니다. 얻지 않습니다.]

“지금 마석 뜨지 말란 새끼들 싹다 벤이다.”

[YES 마석, 뜹니다, 얻습니다.]

“나쁜 새끼들.”

권력을 휘둘러 다시 채팅창 여론을 휘어잡은 궁수가 두근대는 마음으로 해체에 집중했다.

해체를 해주는 협회 직원은 헌터가 아닌 일반인이기에 다소 오래 걸렸으나, 고생한 걸 보상하듯 마석은!

“씨발.”

뜨지 않았다.

[나이스!!! 줴에에엔장! 늑대 네 녀석! 믿고 있었다고!!!]

[오이오이!!! 이 녀석 제법 방송을 알잖아!!!]

[늑대업! 늑대업! 늑대업!]

[김늑대 그는 신인가? 김늑대 그는 신인가? 신늑대 그는 김인가?]

[아아! 꽃이 지고서야 늑대인 줄 알았습니다…. 늑대좌, 당신은 도대체 어디까지 내다보신 것입니까!]

침울한 궁수와는 달리 채팅창에서는 한바탕 축제가 벌어진 상태였다.

- 크흠…. 원래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지.

“밴…! 배에에엔!”

그날 궁수의 방송에서는 대규모의 처형식이 이어졌다.

[시청자 수 - 1142]

물론 그렇게 쳐내고도 아직 시청자 수는 한참 남았지만 말이다.

궁수의 방송은 일주일도 안 되어 순식간에 중견기업 크기로 몸집을 키웠다.

“후…. 그래도 미션비는 챙겼으니까….”

미션 금액은 1250만 원에 달했다. C급 마석에는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었지만 이게 어디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미션금을 받았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5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제법 무리했기 때문에 온몸에 피로가 몰려왔다.

슬슬 방종각을 제며 궁수는 정산을 받았다.

다소 힘들긴 했지만, 통장에 찍힌 몇 천만 원의 숫자를 보니 다시 기운이 났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수고 많으셨습니다.”

“예, 수고하세요.”

[?? 주인장 어디가?]

[안돼 안 바꿔줘 계속해.]

[하꼬가 벌써 방종한다고 ㅋㅋㅋ? 세상 많이 좋아졌네.]

[선생님의 모자란 양심에 금구슬이 파르르 떨리는군요.]

“어 버려, 방송 끈다~”

[꺄아아아악! 어디가! 못가! 어디가!]

[역시 아리랑의 민족 ㄷㄷ 두 걸음도 못가 발병나겠누;]

[정신 나갈 것 같아정신 나갈 것 같아정신 나갈 것 같아정신 나갈 것 같아정신 나갈 것 같아정신 나갈 것 같아정신 나갈 것 같아정신 나갈 것 같아정신 나갈 것 같아 점심 나가서 먹을 것 같아.]

궁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방송을 꺼버렸다.

터덜터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그 모습에서는 왠지 모를 처량함이 느껴졌다.

옛날이라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겠으나 지금의 궁수는 다르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택시를 잡아 집으로 향했다.

“슬슬 독립을 해야겠지.”

어깨를 축 늘어트린 궁수가 저벅저벅 자신의 동으로 향했다.

- 계약자가 그러니 덩달아 나까지 피로하군.

“무기 주제에 개뿔이….”

26평의 아파트는 궁수가 함께 살기에는 다소 좁은 감이 있었다.

어쨌건 지칠 대로 지친 궁수는 이제 집으로 들어가 쉬고 싶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오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배달 전단지가 붙여있는 오래된, 하지만 추억이 가득한 집.

오래된 도어락이 삑삑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저 왔어요~”

“어, 아들 왔어?”

“네…. 음? 저분은 누구에요?”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거실에서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궁수를 확인한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대뜸 고개를 숙였다.

“아, 나궁수 헌터님?”

“네, 그런데 누구시죠?”

바로 궁수가 헌터임을 알아본 것도 그렇고 아마도 용건은 아버지가 아닌 자신에게 있는 듯했다.

성큼 명함을 내민 그가 악수를 청했다.

그곳에는 스카우터 ‘신명진’이라는 이름과 함께 성진 길드 마크가 박혀있었다.

“반갑습니다! 성진 길드에서 나왔습니다!”

“성진이요? 그런데 왜 저를?”

길드라 함은 보통은 대기업의 지원을 기반으로 만든 헌터들의 모임이다.

사실상 대기업의 개인 경호 업체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그 경호 업체가 다소 강력한 면이 있지만 말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5대 길드.

성진. 광천. 사독. 청룡. 유성.

이렇게 5개의 길드. 게 중에서도 성진이라 함은 단연 압도적인 자금력을 바탕으로 해외의 세계적인 길드와 비견될 정도였다.

광천이나 다른 길드들의 자본력도 제법이긴 하지만 성진에 비하면 한풀 꺾인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사독.

유일하게 대기업 스폰을 받지 않는 길드다.

모든 걸 실력과 실적으로 순위를 매기며 각종 더러운 일도 주저하지 않는 길드로 유명했다.

돈만 받을 수 있다면 말 그대로 뭐든지 말이다.

여튼 그중에서도 성진이라니.

궁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앉아서 이야기하시죠.”

“네, 그러도록 하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버지는 어색한 듯 계속해서 헛기침을 하셨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나올 생각이 없으신 듯했다.

“나궁수 헌터님?”

“네.”

침묵을 깬 것은 다름 아닌 성진이었다.

그는 일어나서 가방을 뒤지더니 여러 가지 서류를 가져왔다.

계약서 설명서 등 여러 가지 정보가 빼곡하게 적힌 종이 다발이었다.

“저희 성진에서 헌터님께 제시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한번 읽어보시죠.”

“네?”

서론 없이 바로 계약서를 꺼내든 성진의 태도는 잘 먹혀 들어갔다.

이렇게까지 당당한 것을 보니 계약 조건에 대해서도 제법 자신이 있다는 것이리라.

궁수가 대충 조건을 스윽 훑어보자 그가 거만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허…. 아무리 연락을 드려도 도통 받지를 않으셔서, 어렵게 묻고 물어서 찾아왔습니다.”

마치 자신이 이곳에 온 것이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양 그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너스레는 제법 거만했다.

“네, 뭐 잘 봤습니다.”

[4대 보험 가입.]

[헌터의 윤택한 생활을 위해 성진 건설의 사택 지급.]

[부상으로 인한 장기 결근일 경우 이를 위한 보조금 지급.]

[자녀 유학, 장학금 지급.]

[클로징을 위한 최신 장비 지급.]

[은퇴 후 성진그룹의 명예 임원직 채용. 정년X.]

[성진 병원의 모든 서비스 무료 이용.]

[이하 성진 그룹에 포함된 모든 서비스 무료 이용.]

좋다.

그것도 과도할 정도로.

과연 이것이 신입 헌터에게 어울리는 계약 내용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궁수는 넌지시 물었다.

“계약 조건이 엄청 화려한데, 혹시 모든 신입 헌터분들이 이렇게 받는 건가요?”

“물론 아닙니다. 저희 성진에서! 궁수님의 가능성에 투자를 하는 거죠.”

“그런가요.”

마치 접대 받는 기분이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궁수도 썩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궁수는 계약서를 유심히 바라보며 퉁명스레 대답했다.

조건 자체는 확실히 구미가 당겼다. 상대는 그 성진이다.

자금력 자체가 다른 그룹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전에 한 유망주의 집안이 사채업자에게 진 백 이십억의 빚을 단숨에 갚아준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한 사실이다.

다만 궁수는 다급하지 않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성진에서 자신을 직접 찾아왔다.

분명 냄새를 맡은 다른 곳에서도 궁수를 영입하기 위해 찾아올 것이다.

‘조금 더 빨아먹을 수 있겠네.’

궁수는 호쾌할지언정 바보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현 상황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 뚫어볼 수 있었다.

아마 성진은 자신이 몸값이 더 오르기 전에 미리 채가기 위해 급히 접촉을 시도한 것이다.

급하게 마음먹을 것 없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갑은 자신이다.

궁수의 입가에 한줄기 호선이 그어졌다.

너무나도 뻔한 행동, 아무리 대기업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들 결국 선택권은 궁수에게 있었다.

상황파악을 완료한 궁수가 헛웃음을 뱉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

덕분에 자신의 가치를 더욱 확실하게 확인했다. 그러면 이제 남은 일은 서서히 가치를 확고하게 높이는 것이다.

궁수는 몇 번인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크흠…. 금액적인 부분이나 여러 가지가 너무 커서 조금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따로 부모님이랑도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구요.”

“아…. 그, 그러신가요.”

단박에 수락할 줄 알았는지 그의 표정에 당황이 떠올랐다.

마치 다잡은 사냥감을 놓친 얼빠진 사자의 표정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궁수가 가증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를 응대했다.

“더 할 말 있으신가요?”

“아, 아뇨,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따로 전달하실 말씀 있으시면 연락 주시고요.”

“예, 알겠습니다.”

끝까지 줄타기를 하는 궁수였다.

신명진은 궁수의 태도에 혀를 내두르며 밖으로 나왔다.

사회 초년생이라고 얕보았다만 오히려 자신이 호되게 당했다.

“허 거참, 대차게 당했군.”

보통 이 정도의 조건을 내밀면 일반적으로는 헤벌레하며 바로 계약서에 사인을 지금 하면 되냐는 이야기부터 꺼내는데 그는 달랐다.

정확히 자신의 가치를 알고 기다릴 줄 아는 남자였다.

“오랜만에 나온 우량매물인데 돈 좀 깨지겠는걸.”

결국, 그도 영업직 샐러리맨이다.

거물 헌터를 데려온 스카우터.

보는 눈이 있는 스카우터.

직장 내의 신뢰도나 혹은 그로 인한 인센티브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건 다른 경쟁 길드로부터 승리해야 한다는 것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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