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새대가리 컷!
이야기를 나누기도 잠시 저 뒤에서 다른 협회 측 지원이 소리쳤다.
“게이트 반응 최대치! 후퇴합니다!”
“어이쿠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예, 걱정하지 마세요.”
게이트가 요동치며 마물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피?
인간의 몸에 새처럼 달린 깃털. 날카로운 발톱까지.
하늘을 날아다니는 하피였다. 팔에 깃털이 박혀있어 멋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흐으음, 여기가 그분이 말씀하신 곳인가. 썩 나쁘진 않군.”
하지만 깃털이나 여러 가지 부위가 쓸모가 많아 비싸게 거래되는 몬스터의 한 종류였다.
“스킬 확인.”
[속성화살 - F]
[파이어 에로우]
적을 멸하는 창대한 불을 머금은 화살을 발사합니다.
[워터 샷]
물의 기운을 머금은 화살을 발사합니다. 적중 시 일정 시간동안 적의 이동 속도를 낮춥니다.
[어스 에로우.]
적을 적중시킬 시 타격 부분을 말라붙게 만듭니다. 해당 부분을 한 번 더 공격 시 추가 대미지를 줄 수 있습니다.
[에어 샷]
바람의 힘을 담아 가까이 접근한 적을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흠, 그럼 물부터.”
땅을 달리는 것도 아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녀석이니 궁수의 입장에서도 제법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원거리 딜러도 그런데 근거리 딜러인 다른 헌터들에게는 거의 공격이 불가능한 존재였다.
“워터 샷!”
“크흑?! 뭐냐!”
시작과 동시에 날아간 화살이 하프의 팔에 박혔다. 그와 동시에 하프가 날아올랐다.
“저게 느려진 거라고!?”
마치 물에 젖어가는 듯한 모습과 함께 하프의 한쪽 팔이 축축하게 젖었다.
고작 물에 젖은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계속해서 마력이 요동치며 하프의 움직임을 억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날아다니는 속도는 워낙에 빨라서 활을 제대로 겨누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궁수님 저거 맞출 수 있겠어요?”
“몰라요!”
이미 두 발이 넘게 빗나간 상태였다.
불규칙하게 하늘을 나는 표적은 궁수에게 있어서도 처음 상대하는 놈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오기가 났다.
“그래,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 조심해라. 잘못하면 위험할 수 있으니.
“알아, 그래 보여.”
심지어 궁수의 옆에는 힐러인 이시연도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으하하하하! 역시 인간의 조작한 활로는 이 몸을 맞출 수 없지!”
“즈스끄그…?”
이를 악문 궁수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여태까지 대충 쏴도 훅훅 다 맞았기에 솔직히 조금 방심한 느낌도 적잖이 있었다.
“후우…. 쓰읍 후우….”
활시위를 당긴 채 천천히 호흡을 고른다. 차분한 들숨과 날숨이 궁수의 머리를 싸늘하게 식혔다.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놈이 날아오르는 궤적이 조금씩 눈에 익었다.
“스읍….”
들숨이 들어간 순간, 마치 세상이 멈춘 것처럼 시야가 정지했다.
그것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세상에서 나 혼자만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
시위를 떠나간 활이 정확히 하프의 궤적을 노리고 날아갔다.
불이 붙어 뜨겁게 타오르는 파이어 에로우가 놈의 머리통을 노렸다.
“그래 처음부터 이랬어야지.”
콰직!
“끄아아아악!”
“어? 저걸 피해?”
획 머리를 꺾어 치명상은 피했으나 놈의 반대쪽 날개에 불이 붙었다.
한쪽 날개라도 괜찮으면 몰라도 반대쪽도 워터 샷을 맞은 상태였다.
“크흐으윽! 이 대로 혼자 갈 것 같으냐!”
“구질구질하게 굴지 좀 마, 이 새끼야!”
놈이 추락하며 눈으로 좇기도 힘들 속도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시연씨 튀어요!”
“네!”
이시연이 후다닥 궁수에게서 멀어졌다. 놈의 어그로는 어차피 궁수에게 끌려있었다.
활에 마력을 한껏 끌어올린 궁수가 악랄한 미소를 지었다.
- 이런 시발.
“함께 폭사하자!”
“꺼져!”
콰아앙!
마력을 머금은 천궁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날아오는 녀석을 후려쳤다.
보통의 활이라면 진즉에 활대가 부러졌겠지만, 천궁은 보통 활이라고 하기엔 머금고 있는 격 자체가 달랐다.
뻐어억!
“크헤에엑!?”
놈의 대가리에 보기 좋은 활 자국이 새겨졌다. 궁수는 그대로 쓰러진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빌어먹을!”
쾅!
“쿠헤엑!”
“새 대가리가!”
쾅!
“뒤질거면!”
“아아아악!‘
쾅!
“곱게 뒤져야지!”
쾅!
“사…. 살려!”
“안돼, 죽어!”
콰앙!
화려하게 작렬한 활이 그대로 놈의 머리통을 짓이겨놓았다.
[이게 K - 궁(?)수다!]
[멀리 있으면 활로 쏘고 가까이 오면 활로 패누 ㅋㅋㅋㅋㅋㅋ]
[새대가리 컷!]
[그러게 치킨국한테 나대면 안 돼지ㅋㅋㅋ]
다소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레벨이 우수수 증가했다.
[레벨업! - LV 31]
[레벨업! - LV 32]
[레벨업! - LV 33]
과연 C급 보스 몬스터.
한 마리를 잡았을 뿐인데 레벨이 무려 3개나 증가했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날 C급 게이트의 보상금 전액은 궁수에게 전해졌다.
궁수는 부담스럽다며 조금씩 챙겨주려 했지만 다들 고개를 저으며 궁수에게 돈을 몰아줄 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돈을 받기에는 체면도 있고 여러모로 썩 내키지 않은 이유였다.
“오늘 하루 정말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 예 헌터님들도요.”
다른 헌터들이 궁수에게 할 말이 있는 듯했으나 궁수는 신경도 쓰지 않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하루에 게이트 세 개를 돌았다. 그것도 거의 단독 클리어 수준으로 말이다.
물론 거의 경험치를 혼자 쓸어먹다시피 했기 때문에 레벨업 속도도 어마어마했다.
다만 궁수도 사람이다.
그러니 피곤하지 않고는 배기랴.
뒤늦게 몰려온 피로에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
공략과 함께 방송이 끝나고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이 한 개 올라왔다.
[전 국가대표 헌터]
[오늘 낮에 공략 방송 봤는데 이놈 뭐임?]
[영상]
[채팅창 보고 알았는데 얘 전에 유명했다며.]
[링크]
[???? 뭐 임? 저게 말이 됨?]
ㄴ 그러게 나도 보고 개 놀람.
ㄴ 몬스터가 맞아주는 수준인데?
[전 양궁 선수라도 저게 말이 되냐?]
ㄴ 몰라, 보면서 침 질질 흘렀음.
[든든하다 K - 궁수!]
ㄴ ㄹㅇㅋㅋ
[그렇지, 이게 궁수지 ㅋㅋㅋ]
ㄴ 어떻게 활이 총보다 더 믿음직스러워 보이누
[아니 궁수충 양성하지 말고 글 내리라고 ㅋㅋㅋ]
[저런 궁수들 양성할 수 있으면 개이득인데?]
전에 궁수가 방송했을 때 올라온 게시물이 서너 개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거의 열 개가 넘는 게시글들이 올라왔다.
게시글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하급수적으로 물타기가 시작되었다. 그만큼 궁수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흔한 궁수의 전투방법]
[영상]
그동안 우리가 궁수를 잘못 알고 있었던 거 아닐까? 사실은 누구보다 더 상남자 직업인데 말이야.
[궁수충 처내.]
[어딜 활쟁이를 상남자에 비벼.]
ㄴ 언니 오호호 웬일이양
ㄴ 꺼져.
[안녕하세요. 로빈 후드입니다.]
ㄴ그렇습니다. 제가 한국의 나궁수입니다.
[로빈후드는 후드만 입고 싸우나? 깔!깔!깔!]
ㄴ 신고된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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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내가 미안해 이 미친놈들아.
거의 페이지 3개를 나궁수에 관한 내용들로 가득 채울 수준이었다.
물론 개중에는 갑자기 나타난 신입이 커뮤니티를 어지럽히는 것에 불만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궁수의 영상을 몇 개 돌려본 그들은 순식간에 돌변하여 열렬한 궁수의 극성팬이 되었다.
수십 개의 주접 게시물들이 게시판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니 말 다했다.
원래라면 루키급 헌터의 등장은 이렇게까지 큰 소재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게시글 5~6개 정도?
하지만 궁수는 어그로가 끌리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먼저 말도 안 되는 실력은 기본에 궁수라고는 믿기 힘든 전투 스타일.
게다가 전 국가대표라는 사실은 더욱 그를 흥미롭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너튜브에 올라간 그의 영상은 이천만 조회수를 뚫고 삼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순히 활만 잘 쏜다고 얻을 수 있는 조회수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말도 안 되는 활 솜씨와 화살이 다 떨어졌을 때 드러나는 궁수의 거친 전투 스타일이 이끌어낸 결과였다.
“크어어어 쿨….”
그리고 그 주인공은 아무것도 모르고 달콤하게 꿈나라를 여행 중이었다.
***
띠리리리링! 띠리리리링!
“아오! 뭐야….”
아침부터 신랄하게 울려대는 전화 벨소리에 한껏 꿀잠을 자던 궁수가 눈을 떴다.
인상을 잔뜩 쓰고 휴대폰 화면을 바라본 궁수가 한층 더 인상을 구겼다.
“누구야 이건 또.”
보통이라면 모르는 번호라도 한 번쯤 받아보겠으나 지금의 궁수는 자신의 달콤한 아침잠을 방해받아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전화를 끊은 궁수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일어났다.
일어남과 동시에 벽에 세워둔 천궁을 손에 쥐었다.
- 아침부터 뭔가 계약자여, 네 표정이 몹시 징그럽구나.
“안정되네.”
- 겨우 그런 이유라면 빨리 놓아라. 사내새끼의 두꺼운 손길을 아침부터 느껴야 한다니, 기분이 몹시 더럽구나.
“확인할게 있어서 그래, 인마.”
어제 스테이터스를 몰빵하여 새로운 무기 능력이 개방되었다.
추가로 얻은 스테이터스 포인트까지 전부 힘에 넣으니 거의 구십에 가까운 스테이터스가 완성되었다.
[LV - 33]
[직업 - 궁수]
[스테이터스]
[잔여 스테이터스 - 0]
힘 : 95
민첩 : 20
마력 : 30
체력 : 20
[현재 직업이 궁수입니다. 민첩과 체력을 추천합니다.]
[3대 4000돌파. 천궁의 새로운 형태가 해방됩니다.]
천궁을 손에 쥔 궁수에게 저릿한 전류가 흘렀다. 머릿속에 새로운 정보가 기입되었다.
[3대 4000 - 듀얼 크로스 보우]
“듀얼 크로스 보우?”
척 이름만 들어도 간지가 줄줄 흐르다 못해 넘치는 수준이었다.
천궁에 마력을 넣은 궁수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듀얼 크로스보우.”
마력을 머금어 변화한 크로스보우는 마치 궁수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손에 착 들어맞았다.
“호 오오…. 오우씨, 죽이는데.”
물론 궁수는 크로스 보우를 쏴 본 적이 없다 듀얼 크로스 보우는 더더욱.
하지만 궁수의 재능이 그것을 ‘활’이라고 인식한 순간 이미 게임은 종료되었다.
궁수는 후다닥 아무렇게나 옷을 입고 휴대폰을 들었다.
‘어디 괜찮은 게이트 없나.’
C, D급이면 몰라도 E, F급 게이트는 궁수에게 있어 제법 쉽다고 생각되는 게이트였다.
이거 괜찮은데.
D급 던전형 게이트.
코어형 게이트에 인원도 나쁘지 않다. 세 명이서 공략을 진행 하려는 듯 최대 인원은 3명이었다.
궁수는 지체 없이 메시지를 넣었다.
[나궁수 - 오전 11:03]
[안녕하세요, 혹시 남는 자리 있을까요?]
자리가 남는 걸 봤으나 그냥 예의상 물어본 말이었다. 상대방도 흔쾌히 그 제안을 수락했다.
[이수진 - 오전 11:03]
[네, 남아요! 혹시 직업이 어떻게 되시나요?]
아.
와버렸다.
궁수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회전들이 일어났다. 사실대로 말할까?
적당히 거짓말을 좀 섞을까?
자신도 이틀간 충분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수백이 넘는 시청자들이 찬사를 보내왔다.
조금은 궁수의 인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궁수는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사실대로 답장했다.
[나궁수 - 오전 11:03]
[궁수입니다.]
설레는 순간.
돌아온 그녀의 대답은.
[이수진 - 오전 11:04]
[아, 죄송해요, 궁수는 좀….]
완벽한 거절이었다.
[나궁수 - 오전 11:04]
[아…. 예,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이수진 - 오전 11:04]
[죄송해요ㅠㅠ 안전한 클로징 하세요.]
궁수는 입술을 쭉 내밀고 답장을 씹었다.
‘허 지들도 똑같은 하급 헌터면서.’
괜히 투덜대는 궁수였다.
다시 게이트를 뒤적이던 궁수의 눈에 E급 던전형 게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유형은 보스형.
아직 아무도 신청하지 않아 공략대도 따로 꾸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쓰읍…. 어떻게 해 말아?”
- 새로운 힘을 써 봐야 하지 않겠나. 계약자여.
“역시 그렇지?”
- 음, 후회하지 않을 거다.
궁수는 결국 E급 게이트를 선택했다.
까짓것 혼자 해보지 뭐, 내가 동료가 없지 가오가 없냐?
자신감에 차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