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궁수 사기 직업임 아무튼 사기임(2)
D급 게이트를 순식간에 처치한 궁수가 심드렁히 샐러맨더를 바라보았다.
‘쟤도 뭔가 먹을 만한 게 있으려나.’
순간 생각했으나 지난 3일간 고생한 걸 떠올리며 고개를 휘저었다.
게이트도 닫혔겠다. 궁수는 성큼 허민에게 다가갔다. 죽음과 함께 싸늘하게 식어버린 샐러맨더의 시체를 해체하고 있었다.
“마석은 떴나요?”
“아쉽게도 없군요.”
“아쉽네요.”
혹시나 D급 마석이 드랍됐나 기대했는데 아쉬운 일이었다. 조용히 시체를 해체하던 허민이 입을 열었다.
“마법 궁수란 직업 어마어마하네요.”
“네?”
“명중률이 대단하던데요, 혹시 화살이라도 조종하시는 겁니까?”
“그런 능력이 있으면 좋긴 하겠네요, 순수한 실력입니다.”
처음 한두 발도 아니고 6마리를 활 12발에 제압했다. 운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그 경지가 까마득했다.
오히려 운이라고 보기가 더 힘든 수준이었다.
솔직히 궁수라고 조금 불안했는데 오히려 다른 딜러들보다 배는 더 일을 잘해주었다.
“성함이 나궁수라고 하셨나요?”
“예.”
이름까지 나 궁수요 하고 자랑하는 사람이네.
허민은 나궁수라는 특이한 이름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궁수님 덕분에 편하게 공략할 수 있었습니다.”
“뭘요, 마석이 떴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궁수를 데리고 편하게 공략했던 적은 처음이라 허민도 이 상황이 낯설 뿐이었다.
뭔지는 몰라도 마법 궁수라는 직업이 엄청난가보구나 할 뿐이었다.
해체를 마친 허민이 대기하던 협회 직원과 이야기를 마쳤다.
D급 게이트 클로징 비용인 이천만 원에 추가로 샐러맨더의 사체를 매입하여 총 사천만원의 돈이 생겼다.
원래는 인당 천만 원이 맞는 일이지만 어째서인지 궁수에게는 천오백만원의 돈이 입금되어 있었다.
“음? 저기요?”
“받아두세요, 사실상 궁수님 혼자서 공략한 거나 다름없는데, 그 정도는 받아주셔야죠.”
“아…. 그러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실제로 힐러도 한 게 아무것도 없어서 눈치만 살살 살폈는데 이렇게라도 보답을 할 수 있어 조금 양심의 가책을 던 듯했다.
힐러의 할 일이 적은 공략만큼 좋은 공략은 없다.
허민이나 다른 파티원들도 그 사실을 알기에 아무도 힐러를 나무라지는 않았다.
“저, 궁수님?”
“네?”
“저희는 오늘 계속해서 게이트 공략 진행할 생각인데, 어떠세요? 궁수님 몫은 두둑하게 챙겨드리겠습니다.”
오? 이게 웬 떡이냐?
헌터가 되고 이렇다 할 인맥도 없어 혼자 전전긍긍하던 궁수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몫은 더 챙겨준단다. 사람들도 좋아 보이고 궁수가 거절한 이유는 전혀 없었다.
“바로 가시죠!”
“감사합니다! 가시죠!”
사기가 잔뜩 오른 궁수와 파티원들은 해맑게 웃으며 다음 게이트를 향해 이동했다.
다음 게이트는 D급 던전형 게이트.
궁수가 가장 자신있어하는 게이트의 한 종류였다.
힐러인 이시연이 슬쩍 궁수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로 궁수 맞으시죠?”
“활 쏘시는 거 못 봤어요?”
“아, 아뇨! 그게 아니라 피지컬이 워낙에 좋으셔서요. 혹시나 활은 취미로 쏘는 게 아닌가 해서요.”
“에이, 취미로 쏴서 그 실력이면 국가대표 해야죠.”
그녀는 조금 어수룩하면서도 일은 확실히 해주는 타입이었다. 어찌됐든 일만 잘하면 궁수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실제로 자신은 후방에서 전투하기 때문에 딱히 위험할 일도 없었고 말이다.
“다 준비되셨으면 들어가시죠!”
“예, 좋습니다.”
“가죠!”
사기가 잔뜩 오른 궁수와 파티원들은 거침없이 게이트 안으로 진격했다.
D급 던전형.
코어형 게이트.
내부로 들어간 지 5분도 안되어 몬스터들이 등장했다.
몬스터는 다소 덩치가 있는 늑대들이었다. 머리가 두 개씩 달려있는 것도 그렇고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았다.
“트윈 헤드 울프로군요. 기동성이 높지만 방어력은 그닥 높지 않습니다. 달려드는 놈만 처내면서 공략 진행하죠.”
“예!”
최대 속도가 시속 팔십 킬로를 가볍게 넘는 녀석들이다. 따라가다간 자칫 진영 붕괴가 일어날 수 있었다.
굼뚠 샐러맨더보다 배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녀석들이다.
‘아무리 그래도 저건 무리겠지.’
쐐애애액!
그 말을 비웃듯 바람을 타고 날아온 화살이 순식간에 늑대의 머리를 관통했다.
깨갱!
한 놈에 두발씩.
두 머리를 모두 관통해버린 화살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계속 들어가요! 엄호할게요!”
말 그대로 미친 프리딜 각에 궁수의 입꼬리가 내려올 줄을 몰랐다.
[레벨업! - LV 20]
[레벨업! - LV 21]
[레벨업! - LV 22]
[스킬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스킬을 획득할 수 있나니 뭐나니 시스템 문구가 눈앞을 가렸지만 이미 궁수는 흥이 난 상태였다.
[원딜 안 물고 뭐하냐;;]
[짐승쉑 생각 수준 하고는ㅋㅋㅋ]
[월윅 컷!]
[ㅋㅋㅋ힐러 싱글벙글 연전연승]
[야, 근데 나 얘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궁수 붐은 온다!”
이에 기세등등해진 궁수가 멋있게 화살을 쏘며 소리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역시나 조롱뿐이었다.
[ㅇㅇ 궁수 하면 파티가 boom터지긴 하지.]
[선생님 앞으로 그런 헛소리 한 번 더 하시면 활 압수합니다.]
[누가 궁수 소리를 내었어!]
[이 새끼가 ㄹㅇ 멕시코 마약상보다 더 위험한 놈임.]
[응 그래도 궁수 비율 안 늘어~]
[맞네, 님들 얘 그거임, 전 양궁 국가대표.]
개중에서는 궁수를 알아보는 사람도 몇 있었다.
전 세계급 대회는 나가지 못했지만 국내 대회는 싹쓸이 했던 궁수였던 만큼 그에 관한 기사는 제법 퍼진 상태였다.
[??? 뭐임 진짜로?]
[여기 기사 있음 (링크)]
[와, 진짜네.]
[그럼 양궁 씹 유망주가 헌터 되서 궁수 찍고 날로 먹는 거임?]
[시발 ㅋㅋㅋ 양민학살 미쳤네.]
[이게 그 경력직 신입인가 그거냐?]
“오, 알아보시는 분도 계시네요. 맞습니다! 바로 제가! 한국 양궁의 자존심. 나궁수입니다!”
[메달도 없으면서 자존심 ㅇㅈㄹ 한국 자존심 다 뒤진 듯]
[ㅋㅋㅋ 아니네 무경력 신입 맞네ㅋㅋㅋ]
“시발….”
물론 무자비한 팩트에는 절로 입을 닫을 뿐이었다.
“비겁하게 팩트로 싸우네, 정정 당당하게 선동과 날조로 승부해야지.”
궁수는 투덜거리며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 나갔다. 궁수의 활약으로 이미 전투는 종료 된지 오래였다.
“궁수가 얼마나 멋진데 활알못 새끼들….”
물론 아무리 중얼거려 본들 거의 사백 명에 달하는 시청자 앞에서는 바람 앞의 촛불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나마 같은 무기인 천궁이 궁수의 편을 들어줄 뿐이었다.
- 후, 이래서 칼이나 들고 야만스럽게 싸우는 놈들이란.
“원거리 감수성이 1도 없다니까.”
얼마 안 되는 궁수와 천궁의 화합 현장이었다.
“조금 속도를 높이겠습니다!”
“네!”
늑대가 나오면 먼저 앞에서 막고 궁수가 그 틈을 이용하여 활을 쏜다.
결과는 언제나 백발백중.
다른 사람이 본다면 지루한 원패턴의 공략이었으나, 헌터들에게 있어선 이보다 편안한 공략이 없었다.
그렇게 코어를 부수는 순간까지도 위협은커녕 딱히 이렇다 할 생채기 하나도 입지 않았다.
후반에 가서는 거의 몬스터의 인영이 보임과 동시에 궁수가 활을 쏘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해체하는 시간이 공략 시간보다 더 오래 걸릴 지경이었다.
무사히 던전을 클리어 한 파티원들이 상처 하나도 입지 않은 모습으로 던전 밖을 나왔다.
원래는 힐러는 마력 탈진에 근거리 딜러들도 헉헉대야 정상이지만 그 누구도 다친 기색 하나 없었다.
[기사님 승차감 죽이는데요. 핸들링이 예술이네.]
[언니~ 나 죽어~~]
ㄴ죽어 제발.
벌서 두건이나 처리 했음에도 아직 시간은 3시를 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오늘 걸어둔 게이트를 다 클리어해버려 딱히 다른 게이트는 남는 게 없었다.
그나마 남는 게 C급 방출형 게이트 하나.
허민은 멤버들을 바라보며 머리를 굴렀다.
이 멤버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방출형 게이트다. 던전형 게이트에 비하면 비교적 난이도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저 괜찮으시면 이대로 C급 게이트 한번 진행해볼까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C급이요?”
“네, 저희가 기존에 걸어둔 게이트들은 다 클리어 해버려서 남은 게 C급 방출형 게이트가 전부네요.”
C급이라.
오늘 하루만 거의 오천만 원을 넘는 돈을 벌었다.
물론 궁수라서 가능한 일이지 기존 헌터들은 하루에 게이트 한 개도 담당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 이 정신 나간 헌터들은 하루 3개를 뛰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정신 나간 제안에 궁수는.
“가시죠!”
역시나 정신 나간 답변을 뱉었다.
E급 헌터가 C급 던전이라니. 그것도 주력 딜러로 말이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봤다간 웃어넘길 일이었다.
“그럼 바로 가도록 하죠.”
“옙!”
[와 하루 세탕을 뛴다고?]
[진짜 돈독 제대로 올랐누 ㅋㅋㅋㅋ]
[정보 - 하꼬 E급 헌터다.]
[전 국대잖어 ㅋㅋㅋㅋㅋ]
포션을 단 한 병도 마시지 않고 진행했기에 가져온 물품들도 여유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몬스터를 궁수가 전부 쓸어버리듯이 하여 체력이 남아돌았다.
지체 없이 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궁수도 C급 게이트의 공략에는 얼마나 걸릴지 몰랐기에 바로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과연 C급 게이트.
D급과는 그 통제 범위부터 사뭇 달랐다.
주변을 통제하는 협회 직원들의 눈빛에는 긴장감이 서려있었으며 거의 거리 전체가 통제된 상태였다.
“아, 헌터님들 오셨습니까.”
“예, 게이트 정보는요.”
“흠, 단일 방출형 게이트 같습니다.”
“단일이요!?”
“예.”
단일 방출형 게이트.
잡몹 몇 마리 내보내는 일반 방출형 게이트와는 달리 방출형 게이트는 보스몹 한 마리를 내보낸다.
그것이 실제 던전 보스만큼 강력하여 매우 껄끄러운 녀석들이다.
그렇기에 이런 경우는 보통 몬스터 등급은 D급이지만 상황을 고려하여 C급으로 격상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몬스터는 백색 이랑종입니다.”
“이랑이요? 그게 가능해요?”
이랑이면 늑대인가.
궁수는 잠시 고민하며 자신의 정보를 확인했다.
[LV - 30]
[직업 - 궁수]
[스테이터스]
[잔여 스테이터스 - 69]
힘 : 42
민첩 : 15
마력 : 10
체력 : 20
[현재 직업이 궁수입니다. 민첩과 체력을 추천합니다.]
레벨업을 하며 쌓인 스테이터스 포인트들이 제법 되었다.
마음 같아선 힘에 몰빵하고 싶지만…
궁수도 적당히 현실과 타협을 할 줄 아는 사내였다.
아까 보았던 스킬 획득도 그렇고 조금은 마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상남자 나궁수, 많이 죽었다.”
두 눈 질끈 감고 남은 스테이터스 포인트를 적절하게 투자했다.
[LV - 30]
[직업 - 궁수]
[스테이터스]
[잔여 스테이터스 - 0]
힘 : 86
민첩 : 20
마력 : 30
체력 : 20
[현재 직업이 궁수입니다. 민첩과 체력을 추천합니다.]
[3대 4000돌파. 천궁의 새로운 형태가 해방됩니다.]
무려 궁수가 다른 스테이터스 포인트에 25나 투자한 것이다.
원래라면 힘 능력치를 백 이상 넘길 수 있는 스테이터스 포인트였으나 궁수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제발 스킬이 좋은거여라.”
스킬창을 띄운 궁수가 눈앞에 3개의 선택지가 드러났다.
[스킬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더블 샷] [속성화살] [실명 화살]
“세 개 중에 한 가지만 획득할 수 있는 건가.”
찬찬히 스킬 설명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더블샷은 말 그대로 화살 한 개로 두 번 대미지를 줄 수 있는 기술이고 실명 화살은 자신이 실제로 눈을 맞추면 되니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러면 남은 스킬은 속성화살인데.
[속성화살 - F RANK]
[스킬 숙련도를 증가시킴에 따라 랭크와 위력이 증가합니다.]
[불] [물] [땅] [바람] 네 가지 기본 속성을 화살에 담을 수 있습니다.
“그냥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는데.”
- 흠, 조금 차이가 심하긴 하군.
궁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스킬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