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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병기 활-11화 (11/172)

◈ 11화. 궁수 사기 직업임 아무튼 사기임(1)

“으으…. 아직도 배가 부글부글거려.”

- 흠, 뭐 성장통이라고 생각해라.

“그래, 몸에 좋은 약은 쓰다고들 하니까….”

물론 거짓말이다. 오크의 등뼈에는 그런 효능 따위 전혀 없었다.

순수한 신입 헌터가 능글맞은 무기에게 속아 넘어갔을 뿐이다.

그래도 삼 일쯤 지나자 몸이 다소 괜찮아졌기에 궁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시간은 오후 여덟 시.

퇴근 후 식사를 마친 부모님이 거실에서 TV를 보며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슬슬 헌터에 대한 내용도 말해야 하는데.’

지난 삼 일간 온몸의 힘을 쏟아내느라 미처 말하지 못했다. 이게 다 저 빌어먹을 무기 때문이다.

궁수는 그래도 나중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저 빌어먹을 활을 당장 변기통에 처박아야 화가 조금 풀릴 것 같았으나 결국 손해 보는 건 자신이었다.

‘넌 나중에 보자.’

화살은 사용하지도 않고 활만으로 던전 공략을 다짐하는 궁수였다.

끼이이익.

“어머니?”

“응~ 아들 몸은 좀 괜찮아?”

“네, 좀 나아졌어요.”

“그러게 좀 보고 먹어 뭘 또 잘못 주워 먹었길래 삼 일 내내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니.”

“그르그으….”

잠시 살기가 다분한 미소를 지은 궁수가 부모님 옆에 앉았다. 마침 TV에서는 헌터에 대한 내용이 뉴스로 나오고 있었다.

“저, 어머니 아버지.”

“응, 왜 아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응? 뭔데?”

“저 취직했어요.”

“뭐? 취직!?”

사과를 깎던 어머니가 깜짝 놀라 눈을 둥그렇게 떴다.

팔을 다친 이후로 궁수가 워낙에 기운 없이 지냈기에 딱히 취업이란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순간에 자신의 미래를 잃어버렸으니, 궁수의 부모님도 뭐라고 하기가 참 껄끄러운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자식이 취직했다고 하니 이 얼마나 자랑스러우랴.

“뭐니? 너 다니던 헬스장에서 써주겠다 그러니?”

뭐든 좋았다. 그저 자신의 아들도 다른 이들처럼 평범하게 직장을 다닐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궁수의 아버지도 관심 없는 척 궁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저, 헌터가 됐습니다.”

“…뭐? 헌터?”

“네.”

헌터의 연봉이나 그 부유함은 잘 알려져 있다.

다만 헌터로서의 위험성도 이미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바이다.

그렇기에 헌터가 더더욱 대중들에게 영웅 취급을 받는 것이다.

“궁수야, 그거 위험하지 않니?”

“크흠…. 일단 마저 말해보거라.”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건 궁수의 아버지가 스윽 입을 열었다. 궁수는 침을 꼴깍 삼키고 말을 열었다.

먼저 휴대폰으로 자신의 통장 상태를 보여주었다.

[나궁수님의 통장 잔고 - 50,084,768원]

“아…. 아들? 설마 나쁜 일 한 거 아니지?”

“아니에요, 제가 오늘 하루 동안 번 돈이에요.”

“하루 동안 벌었다니?”

“던전을 다녀왔어요. 공략도 손쉽게 진행했고요.”

부모님 두 분 다 표정이 미묘해졌다.

물론 취직도 좋고 돈도 좋다.

다만 자식을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런 위험천만한 곳에 보낸다는 것이 썩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들 있잖아….”

“그리고, 저 다시 활을 쏠 수 있게 됐어요.”

“활…? 정말!? 아들 진짜야!?”

“네, 던전도 전부 활 덕분에 편하게 진행할 수 있었어요.”

부모님의 눈빛에 이체가 흘렸다. 아버지 헛기침을 몇 번 하며 입을 열었다.

“거, 그래서 잘할 수는 있고?”

“보시면 아시잖아요. 아무 상처도 없죠?”

“삼 일간 탈난 건 뭐냐?”

“그건 다른 거 때문에….”

궁수가 잠시 이를 악물었다. 하필이면 그 빌어먹을 천궁 때문에 일이 꼬였다.

궁수의 아버지 나백수는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있냐.”

“물론이죠.”

“아들, 그래도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엄마는 아들 없으면….”

“여보.”

나백수가 아내의 손을 쥐었다. 자글자글한 주름에 세월이 느껴지는 손이었다.

“한번 해봐라.”

“넵!”

“다만, 꼭 최고가 되거라.”

“물론이죠.”

생각해보면 자신의 아버지는 늘 그랬다. 나쁜 일이 아니라면 뭐든지 해보라고.

혹시라도 진로를 그쪽으로 정했다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고 말이다.

상남자 나궁수는 그 자리에서 천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사천만 원을 모두 부모님의 계좌에 보내버렸다.

어차피 당장 나가서 살 것도 아니고 천천히 독립할 생각이기 때문에 큰 상관은 없었다.

“엄마, 가족 계좌 한번 봐보실래요.”

“음? 왜?”

오 년도 더 된 구형 스마트폰을 가져온 궁수의 어머니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이고 아들! 이게 뭐니!”

“효도한다는 셈 치고 가져가세요,”

“그래도 한두 푼도 아니고 이건 너무 많잖니.”

“어차피 전 돈 관리 잘 못해서 엄마가 그 돈은 가지고 계셔요, 아버지랑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셔도 좋고요.”

사천만원.

궁수에게도 절대 적은 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가족에게 주는 돈이다, 아깝다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저 돈이면 프로틴이 얼마냐….’

아마도 들지 않았을 것이다.

‘크흑, 잘 가라 내 헬스 기구 종합세트.’

아마도.

***

“흐음, 괜찮은 던전 없나.”

다음날 궁수는 멍하니 휴대폰을 뒤지며 게이트를 찾았다.

D급? 이거 내가 가능하나?

D급 방출형 게이트. 던전형 게이트에 비해서는 난이도가 비교적 낮은 편이다.

하지만 혹시나 한 마리라도 놓친다면 뼈아픈 실책이다.

그렇기에 훨씬 세심한 공략이 필요한 게 바로 방출형 게이트다.

현재 인원 3/4 [원거리 딜러 구함.]

이거 딱 나인데?

궁수는 바로 메신저를 켜 조심스레 문자를 보냈다.

[나궁수 - 오후 12:07]

[자리 아직 남나요?]

[허민 - 오후 12:07]

[네, 남아 있습니다. 오실건가요?]

[나궁수 - 오후 12:07]

[예.]

[허민 - 오후 12:07]

[직업이 어떻게 되시죠?]

궁수라고 메시지를 치던 나궁수가 흠칫하며 손가락을 멈췄다.

그렇지 않아도 천대받는 직업이다. 일부러 궁수는 한번 꼬아 다르게 대답했다.

[나궁수 - 오후 12:07]

[마법 궁수입니다.]

[허민 - 오후 12:08]

[마법 궁수요?]

[나궁수 - 오후 12:08]

[네, 특수 직업입니다.]

[허민 - 오후 12:08]

[흠…. 딜은 잘하실 수 있으시죠?]

마법 ‘궁수’ 그래도 궁수라는 뜻이다.

괜한 불안함에 허민이 되물었으나 궁수만큼 딜을 잘 넣는 헌터도 몇 없어 차라리 훨씬 더 잘된 일이었다.

[나궁수 - 오후 12:08]

[그 부분은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허민 - 오후 12:08]

[그럼 삼십 분까지 게이트 앞에서 모이죠.]

[나궁수 - 오후 12:08]

[예, 이따뵙죠.]

궁수는 후다닥 옷을 입고 활을 챙겨 밖으로 이동했다.

“한 분 더 오시기로 했는데…. 아 저기 오시네요.”

“헉, 헉…. 죄송해요, 좀 늦었죠?”

“아뇨 괜찮아요, 뭐 따로 필요한 건 없으시죠?”

“예, 딱히 없습니다.”

지하철을 탈걸 그랬나.

오늘따라 유난히 서울의 교통이 한층 더 북적북적 거렸다.

“그러면 바로 들어가시죠.”

“예.”

가슴팍에 달린 카메라를 키고 미리 방송을 켰다.

저번 공략에서 제법 강렬한 인상을 줘서 그런지 처음부터 삼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궁하 (궁수 하이라는 뜻ㅎ)]

[ㄱㅎ]

[ㄱㅎ]

[ㄱㅎ]

순식간에 채팅창에 쫘라락 올라가며 격하게 궁수의 방송을 환영했다.

“닥치세요, 오늘은 다른 분들이랑 공략 진행해야 하니까.”

[하읏…! 시작부터 포상 뭐야?]

[오빠 나 죽어! (덜렁)]

[닥을 어떻게 칩니까 깔깔깔!]

[윗놈 모가지부터 치자.]

오늘도 수많은 악질 시청자들이 본격적으로 궁수를 쪼아대기 시작했다.

방출형 게이트이기 때문에 주변이 넓게 통제되어 있었다. 개미 한 마리도 들어올 수 없게 틈틈이 벽을 쳐둔 상태였다.

미리 대기하던 협회 직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곧 게이트가 열립니다! 전투 준비하세요!”

성인 남성만한 크기의 기계가 맹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당장에라도 기계를 해체하기 위해 숙련된 협회 측 엔지니어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곧 옵니다! 게이트 반응 최대치! 기계 후방으로 옮겨!”

마치 해체만 수백 번을 해본 듯 재빠르게 움직이는 엔지니어들이 순식간에 게이트 판독 기계를 분해했다.

직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후방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제가 전위를 맡겠습니다. 찬우씨는 같이 섭시다. 나머지 분들은 후방지원 부탁드리겠습니다.”

힐러 하나. 탱커 하나 근거리 딜러 하나.

그리고 궁수.

파티 조합 자체도 쓸만했다.

보통은 궁수 대신에 마법사가 들어가지만, 마법사는 구한다고 쉬이 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궁수가 마력을 일으키자 화살 통 가득히 회색빛 화살이 가득 찼다.

시위에 화살을 걸치고 조용히 게이트를 노려보았다.

가아아악!

‘도마뱀?’

“샐러맨더에요! 무기가 녹을 수 있으니 최대한 방어적으로 가겠습니다!”

불을 내뿜는 도마뱀이었다.

치이이익!

놈의 몸에서 내뿜는 뜨거운 증기에는 조금 닿기만 해도 바로 화상을 입을 지경이었다.

“흠, 어딜 쏘는 게 좋을까.”

- 눈. 먼저 눈을 맞춰 무력화시키고 그 틈에 다리를 꺾어 무게중심을 잃게 만들어야지.

“흠, 확실히 몸이 크긴 하네.”

견적을 잡은 궁수가 전위를 향해 소리쳤다.

“제가 무력화시키면 바로 다리를 공격하세요!”

“무력화라니 어떻….”

쐐애애액!

뜨거운 증기를 뚫고 날아간 두 발의 화살이 정확히 샐러맨더의 양 눈을 꿰뚫었다.

“뭣?!”

“와, 뭐야!?”

가아악! 가악!

순식간에 시력을 잃은 샐러맨더가 날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 눈먼 공격이었다.

하급 헌터도 아니고 D급에 달하는 헌터들이 이를 맞아 줄 리 없었다.

콰직! 콰드득!

궁수는 계속해서 화살을 날리며 조금씩 자잘하게 대미지를 누적해 나갔다.

쿵!

[레벨업! - LV 18]

그렇게 육중한 샐러맨더가 결국 헌터들의 맹공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D급 마물을 이렇게 쉽게 잡는다고?’

샐러맨더.

몸에서 계속 타오르는 열은 물론이고 무는 악력 자체도 어마어마해서 상대하기 까다롭기 그지없는 녀석이다.

보통 한 마리에 거의 한 시간 심하면 두 시간씩 걸리는 녀석인데 방금은 한 시간은커녕 거의 이십 분도 되지 않아서 놈을 쓰러트렸다.

‘운이겠지?’

샐러맨더의 눈은 거의 사람의 눈보다 살짝 큰 정도였다.

더군다나 이 거리에서 동료를 피해 정확히 샐러맨더의 양 눈을 맞춘다니.

적어도 천운이 따라주지 않는 한 불가능했다. 허민은 운이 좋았거니 생각하며 다시 방패를 들었다.

아직 공략은 끝나지 않았다. 한 번 더 게이트가 일렁이더니 이번에는 다섯 마리의 샐러맨더가 일제히 등장했다.

한 번에 다섯 마리는 다소 무리가 있었던 만큼 허민은 지체 없이 후퇴를 결정했다.

“뒤로…!”

쐐애애액!

“어?”

여지없이 다시 화살이 날아왔다.

허민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잠시 자리에서 기다렸다.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날아온 열 발의 화살은 단 한발도 예외 없이 샐러맨더의 눈을 적중시켰다.

가아악!각아아악!

가아아아악!

갑자기 시력을 잃은 샐러맨더들은 난리가 났다. 오히려 적아를 구분하지 못하고 서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오늘 샷발 괜찮네.”

감탄이라도 할법한데 궁수는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 계속해서 다음 화살을 장전하고 있었다.

[원거리 확정 실명 얍!ㅋㅋㅋㅋㅋ]

[티몰도 3초 실명인데 얘는 영구 실명이누;; 영자 너프 안 하냐?]

[근데 진짜 이런 놈이 뭐하다가 이제 나왔냐ㅋㅋㅋ 뭔 활 솜씨가ㅋㅋㅋㅋ]

[막 십 년간 동굴 안에서 활만 쏜 거 아님?]

ㄴ 씹덕 망상충 OUT

[힐러 아무것도 안하고 씹날먹했네 ㅋㅋㅋㅋ]

[힐러 : ㄲㅓ억 잘 먹고 갑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나온 다섯 마리의 샐러맨더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자기들끼리 싸우다 픽픽 쓰러져 죽고 말았다.

[레벨업! - LV 19]

D급 게이트 클로징까지 걸린 시간 약 오십 분.

동급 헌터들이 만든 기록이라 보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일렁이던 게이트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게이트가 완전히 사라진 곳에는 그저 허공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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