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궁수의 첫경험(3)
“궁수님?!”
“뒤로 빠져요!”
눈을 빛내며 들어간 궁수는 입가에 침까지 고여 있는 상태였다.
손에는 이미 다섯 발의 화살이 겨눠져 있었다.
“이리와 사랑스러운 새꺄!”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징그러운 모습의 오크가 갑자기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오크를 바라보는 궁수의 눈에서는 꿀이 흐를 지경이었다.
타타타타탓!
겨누어진 다섯 발의 화살이 여과 없이 오크를 향해 날아갔다.
“어엇!?”
공기를 뚫고 날아간 화살은 분명 적들을 적중시켰다. 다만 그 대상이 주변에서 교태를 부리던 고블린들 이라는 것이다.
다름 아닌 오크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져 희생한 것이다.
“뭐 시발 저런 게 다 있지?”
궁수는 인상을 쓰며 다시 활을 겨누었다. 오크도 갑작스러운 공격에 분노하며 몽둥이를 집어 들었다.
취이이익! 취이이이이익!
“와 저거 개 빡쳤네.”
쿵! 쿵! 쿵!
육중한 다리로 땅을 박차며 오크가 궁수에게 달려들었다.
궁수도 이에 질세라 끈질기게 오크로부터 도망치며 후방으로 화살을 날려대었다.
도망가는 와중이라 조금 정확도가 떨어지긴 하였으나 거의 90%가 넘는 화살들이 오크에게 날아갔다.
다만 오크의 몽둥이에 모두 막혀 힘을 쓰지 못할 뿐이다.
“아니 무슨 저런 게 다 있어!”
몽둥이에만 거의 백 발이 넘는 화살이 꽂혔다. 그럼에도 몽둥이는 튼튼하여 생채기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
“아오, 시발! 좀!”
쿵쿵쿵쿵!
취이이이익!
붉은 눈을 빛내며 오크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살만 뒤룩뒤룩 쪄있어 그닥 속도가 빠르진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아할 수는 없는 것이 제대로 공격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라 뭘 어쩔 수가 없었다.
“진짜 씹 돼지 새끼가 뭔 공격이 들지를 않아!”
다급한 궁수와는 달리 지금 채팅창에서는 축제가 벌어졌다.
[그럼 그렇지 궁수가 뭔 딜임, 가서 짐이나 들렴.]
[ㅋㅋㅋㅋㅋ 아니 이캐이캐 저캐저캐 하라고.]
[그 와중에 카이팅은 야무지누 ㅋㅋㅋ.]
[다른 직업이었으면 이미 팔 자르고 줘 팼다. ㅇㄱㄹㅇㅋㅋ]
아무리 시간을 쏟아 부어도 딱히 이렇다 할 유효타를 만들지 못했다.
- 계약자, 슬슬 마력이 말라가기 시작한다.
“뭐?! 벌써?”
- 벌써라니, 네가 쏜 화살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느냐? 애초에 보유한 마력양도 확인하지 않고 막 쏴대는 꼴이라니!
“그런 거 몰라!”
- 아무튼 이제 남은 마력에 신경을 쓰면서…. 어! 잠깐! 지금 뭐하려는…. 아아아악!
궁수가 활을 고쳐 들고 확 방향을 틀었다. 궁수 특유의 회색 마력이 활을 휘감았다.
- 네놈! 내 존귀한 옥체에 상처라도 나면 어쩔 샘이냐!
“고작 이거로 상처나면 그게 에고웨폰 수준이겠지!”
- 크흑! 에고웨폰을 이렇게 무식하게 쓰는 놈은 너밖에 없을 거다!
“무기가 원래 다 이렇지 뭐!”
콰아앙!
천궁과 몽둥이가 거세게 격돌했다. 보스룸 내부가 떠나갈 듯 거대한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취이익!?
“돼지 두루치기로 만들어주마!”
쾅! 쾅! 쾅!
궁수의 싸움이라고는 볼 수 없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몽둥이는 계속해서 궁수를 노려왔고 궁수 또한 치열하게 오크의 머리통을 노렸다.
[이것이 궁수다! - 절망편.]
[허어? ‘궁수’입니다만? 뭔가 문제라도?]
[ㅋㅋㅋㅋㅋㅋ씹 상남자 궁수였누.]
[이게 어딜 봐서 궁수야 ㅋㅋㅋㅋ.]
[ㄹㅇ 헬창궁수 그 자체.]
[삼겹살과 닭가슴살의 싸움ㅋㅋㅋㅋㅋ]
평소 날카롭고 재빠른 이미지의 궁수와는 달리 지금 궁수의 싸움은 뒤가 없는 광전사에 더 가까웠다.
궁수도 오히려 지금 더 편한 느낌을 들고 있었다.
쫓기며 의미 없는 견제만을 날리던 방금 전에 비해 이쪽이 훨씬 더 가망이 있어 보였다.
실제로 서서히 궁수가 오크의 공격을 후려치며 가끔씩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한 번만, 한 번이면 된다.
궁수의 눈이 포악하게 바뀌었다. 마치 빈틈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일부러 크게크게 활을 휘둘러 오크의 몽둥이를 최대한 바깥쪽으로 후렸다.
하지만 금세 다시 돌아와 제대로 된 공격을 하기에는 그 틈이 턱없이 부족했다.
- 오른팔! 오른팔을 노리란 말이다!
“아오! 말이 쉽지!”
궁수도 몽둥이를 든 오른팔을 집요하게 후려치고 있었다.
하지만 놈은 몽둥이를 놓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강하게 무기를 움켜쥐었다.
놈도 궁수의 의도를 알아챈 듯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기름기 가득한 돼지 같은 미소였다.
“이 돼지 새끼가?”
바깥에서 활을 쳐내던 궁수가 이를 악물고 한걸음 더 다가갔다.
억지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욱 화끈한 몽둥이찜질이 궁수를 노렸다.
이를 악문 궁수의 활이 급급히 몽둥이를 막았다.
쾅! 쾅!
“크흐그윽…!”
마침내 오크와 거의 30cm 남짓한 거리에 도착한 궁수가 크게 활을 휘둘렀다.
활이 날아오는 몽둥이를 후려치며 순간 오크의 자세가 무너졌다.
“단궁!”
그와 동시에 활이 팍 길이가 줄어들었다.
기다란 리커브 보우로는 놈의 품속에서 날뛰기에는 다소 부적합한 면이 있다.
단궁을 마치 단검을 쥐듯 역수로 움켜쥔 궁수가 훌쩍 뛰어올랐다.
취이이이익! 취이익!
“뒤져 제사상 돼지 대가리 같은 새끼야!”
콰지직!
에고 웨폰은 궁수를 배신하지 않았다. 오크의 머리통에 에고 웨폰이 처박혔다.
취이이익…. 취익….
쿵!
[레벨업! - LV 13]
[레벨업! - LV 14]
[레벨업! - LV 15]
[레벨업! - LV 16]
[레벨업! - LV 17]
끝까지 취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오크의 육중한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허억, 허억…. 내가, 내가 이겼다 이 새끼야!”
마치 철천지원수를 바라보듯 궁수가 이를 갈았다.
콰드득!
오크의 머리에서 천궁을 뽑아든 궁수가 머리를 찰랑이며 땀을 흩뿌렸다.
- …개 같은 새끼.
“에이, 나중에 깨끗하게 닦아줄게.”
던전 클리어는 확실했다. 실제로 궁수에게 들리는 레벨업 소리가 이를 더욱 실감나게 하였다.
오크의 혈액과 뇌수로 더러워진 천궁만이 홀로 쌍욕을 내뱉을 뿐이었다.
“궁수님! 괜찮으세…. 허억!?”
“네, 괜찮습니다.”
전투 후에 남은 흔적은 생각보다 더 처참했다.
오크의 머리통은 거의 다 터져 있었고 궁수의 활은 오크의 머리통에서 나온 오물들로 더럽혀진 상태였다.
“김진우씨?”
“아, 아 네!”
사냥을 마친 궁수가 싱긋 웃으며 진우에게 다가갔다.
이 전부터 사냥은 궁수가 몬스터의 해체와 재료 수집은 김진우가 해왔기 때문이다.
“얘 등뼈 좀 분리해서 저한테 주실 수 있을까요?”
“네? 등뼈요?”
“예, 지금 바로요.”
“네…. 뭐 알겠습니다.”
김진우는 해체용 단검으로 능숙하게 오크를 해체했다.
숱하게 해왔던 해체 덕분에 그의 해체 스킬은 도가 틀 지경이었다.
오크의 등뼈를 깔끔하게 뜯어낸 김진우가 그것을 성큼 나궁수에게 건네주었다.
“일부러 살점을 좀 붙였습니다. 뭐 감자탕이라도 해 드시게요?”
“츄릅…. 따로 쓸 곳이 있어서요.”
적어도 21세기에 오크를 보고 입맛을 다시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걸 왜 먹어?]
[베어구릴수가 여깄었누;]
[조만간 오크 등뼈 먹방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키야 군침이 싹도누;]
[햇반 가져와!]
[위에 두 놈 식성 대단하누; 우리집 바퀴벌레도 먹어주삼.]
그 뒤로 김진우의 화려한 해체 기술 덕분에 오크도 화려하게 분해되었다.
“어!? 어어!? 이런 미친!”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습니까!?”
“마석이요! 무려 D급마석이라고요, 원래 잘 뜨지도 않는 건데!”
김진우는 영롱하게 빛나는 보라색 마석을 탐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도 처음 보는지 눈빛에는 놀라움이 서려있었다.
“마력이 그렇게 귀해요?”
“물론이죠! 열 마리 잡아야 겨우 한 개 뜰까 말까한데! D급 마석만 해도 개당 천만 원이라고요!”
“처…. 천이요!?”
궁수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저 돌덩이 하나에 프로틴이 몇 백 키로그램이라니.
김진우는 최대한 부드럽게 마석을 손질하여 따로 가져온 주머니에 넣어 궁수에게 건네주었다.
“여태까지 얻은 마석입니다. 방금 사냥하신 오크의 D급 마석 한 개 나머지는 고블린의 E급 마석 여섯 개입니다.”
“음? 이렇게 다 주시면 진우씨는요?”
“저야 한게 없는데요, 괜찮습니다.”
말은 그렇지만 김진우의 속마음은 아까워 피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한 거는 딱히 뭐 없어서 달라고 할 수 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 그냥 상급 헌터랑 연결이나 하나 만들었다 치자.
아직 궁수가 E급 헌터임을 모르는 김진우에게 있어서 이것은 상급 헌터와의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궁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E급 마석 3개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정산 비율도 7대 3 인데, 이 정도는 챙겨 가시죠.”
“가…. 감사합니다!”
김진우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마석을 받아들었다.
보통 상위 헌터들이라면 애초에 자신에게 마석을 줄 생각조차 안했을 것이다.
조금 성격 더러운 놈에게 걸렸다간 비율이 9대1 아니 9.5대 0.5까지 밀려났을지도 몰랐다.
아아…! 이렇게 착한 분을 내가 의심했다니!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쿨하게 마석을 건네주었다.
“그럼 저거까지 챙겨서 나가죠.”
남은 것은 오크의 몽둥이.
C급 마물의 무기다. 일반 나무 몽둥이처럼 보이지만 그 강도는 웬만한 강철을 씹어 먹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꿀꺽.
저것만 해도 얼마일까.
장신구나 다른 아이템의 가격과 무기의 가격은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일반 몬스터도 아니고 보스 몬스터의 무기라면 더더욱.
다만 크기가 너무 거대하여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현저하게 적었다. 적어도 동일 성능대비 다른 무기보다는 가격이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 하더라도 몇 천 만원은 가볍게 호가한다는 사실을 김진우는 알고 있었다.
“흐읍! 으라차!”
한쪽 어깨에 몽둥이를 집어든 궁수가 상쾌한 모습으로 소리쳤다.
“챙길 것도 다 챙긴 것 같은데 나가죠!”
“옙!”
전에도 느꼈던 신기한 느낌이 궁수를 휘감았다. 포탈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궁수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크으! 클리어 성공!”
바깥으로 나오니 미리 대기하던 협회 측 직원이 깜짝 놀라 궁수를 바라보았다.
궁수는 대수롭지 않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툭 뱉었다.
“저기요?”
“아, 네! E급 고블린 던전 클리어 확인했습니다.”
궁수는 던전 내부에서 획득한 전리품들을 쏟아내었다.
전리품 매각과 수입은 주로 협회의 일이었다.
원한다면 헌터가 직접 판매하여도 상관은 없지만 저런 부산물 하나하나까지 신경 쓰기에는 귀찮기도 하고 헌터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D급 마석 한 개, E급 마석 세 개 확인했습니다.”
“다른 거는요?”
“다른 전리품들은 현재 환산중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차피 대금은 모두 협회에서 지불한다.
그녀는 하급 헌터들의 설움을 알기에 줄려면 더 주려고 했지 적어도 돈을 깎아먹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게 하여 클리어 금액을 합쳐 나온 궁수 몫의 금액은 이천칠백만 원.
추가로 무기값을 합쳐 약 오천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웬만한 직장인의 연봉에 맞먹는 양의 돈이었다.
그날 너튜브에는 영상 몇 개가 올라갔다.
직업이 궁수인 헌터가 백발백중의 활솜씨로 적을 죽이는 것부터 마지막에 활을 들고 적을 후려패는 모습까지.
[이것이 K - 궁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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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문을 탄 해당 영상은 미친 듯한 기세로 조회수가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헌터의 소식에 민감한 여러 길드들이 해당 영상의 주인공을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작 그 동영상의 주인은.
- 후! 이제야 속이 좀 후련하군!
“우웨에엑!”
천궁의 말대로 오크의 등뼈를 끓여 먹었다가 식중독으로 고생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