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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병기 활-9화 (9/172)

◈ 9화. 궁수의 첫경험(2)

이시은.

그녀는 나름대로 협회에서 잔뼈가 굵은 직원이었다.

비록 헌터는 아니지만, 게이트를 관리하고 헌터들이 공략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지금은 E급 게이트 주변을 통제하며 담당 헌터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궁수와 김진우.

두 사람 모두 E급 헌터였다. 심지어 한 명은 직업이 궁수란다.

“하아…. 또 시체 치우겠네, 미리 구조팀이라도 불러 놔야 하나.”

E급 게이트는 E급 헌터 세 명 내지 네 명이서 공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하고자 하면 두 명이서도 못할 건 없었지만 한 명의 직업이 워낙 안 좋은 탓에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녀는 한숨을 푹 쉬며 헌터넷에 들어갔다. 한국 최대 크기의 헌터 전용 커뮤니티인 헌터넷.

그곳에는 제법 덩치가 큰 거물들도 상주할 정도로 나름 한국 헌터의 중심지 같은 곳이었다.

그녀는 익숙하게 게시글을 작성했다.

[방금 E급 게이트에 E급 헌터 둘 들어갔는데.]

ㄴ한 명은 궁수고 한 명은 근접 딜러인거 같은데 이거 구조대 미리 불러두는 게 낫겠지?

과연 수십만이 이용하는 커뮤니티답게 순식간에 댓글이 여럿 달렸다.

ㄴ궁수?ㅋㅋㅋㅋㅋㅋ 육개장 잘하는 장례식장이나 찾는 게 더 빠를 듯.

ㄴㅇㄱㄹㅇ 뭔 궁수임, E급에 궁수 하나 고기 방패 하나면 노딜이라 둘러싸여 죽기 딱 좋은데.

ㄴ하필 왜 궁수 같은 걸 골라서 ㅋㅋㅋㅋ

ㄴ관부터 먼저 맞춰둬라ㅋㅋ

ㄴ얘 방송 켰는데? 이놈 아니냐? [링크]

ㄴ헐 진짜네

ㄴ실시간 자살 방송;

***

[ㅎㅇ?]

[신입 헌터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궁수]

[세계 최강 궁수ㅇㅈㄹㅋㅋㅋㅋㅋㅋ]

“오! 여러분 어서오세요!”

과연 분류를 헌터와 공략으로 해 두어서 그런지 시작부터 팔십 명에 가까운 인원이 모였다.

헌터인 이유도 있었지만 다른 대기업 방송인들이 방송을 키지 않아서도 있었다.

게다가 궁수 헌터.

애초에 헌터 자체의 수도 얼마 되지 않을뿐더러 궁수의 수는 더더욱 적었다.

게다가 이시은이 헌터넷에 올린 글 덕분에 초반 시청자가 제법 모인 상태였다.

물론 그래봐야 78명이지만 말이다.

“궁수님.”

“네?”

“시청자분들이 조금 짓궂기는 한데…. 나름의 애정 표현이라고 이해해 주세요.”

“아, 걱정 마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응 우리가 갑이야~]

[궁수님 딜이 안 들어와여]

[하 우리 궁수 뭐하냐고 탱커가 딜금인게 말이 되냐?]

[근데 ㄹㅇ 궁수임? 몸은 무슨 성기사인데]

[ㅋㅋㅋㅋ화살 다 떨어지면 활로 후두려 패나봄]

“어, 어떻게 아셨어요? 진짜 그러는데.”

- 크흠, 그건 되도록 피하도록 하지, 어차피 화살도 충분하지 않은가.

활을 휘두르니 어쩌니 하는 말을 들은 천궁이헛기침을 뱉으며 한마디 했다.

“아무튼, 잡담은 이쯤하고 마저 공략 진행하죠.”

“알겠습니다. 제가 전위를 맡을 테니 후방 지원 부탁드립니다.”

“네, 걱정마세요.”

헌터가 되고 처음으로 진행하는 던전 공략이었다. 견학이 아닌 제대로 된 공략.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궁수도 이를 인지하고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다.

E급 던전이라고 하여 무시하는 일 따위는 전혀 없었다. 평소보다 기감을 몇 배는 확장하여 주변을 살폈다.

“잠깐만요.”

“네?”

“앞에 뭔가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조용히 기척을 죽이고 천천히 앞으로 발을 돌렸다.

케르륵!

케르르륵?

고블린인가.

초록색 몸에 툭 튀어나온 이빨.

짜리몽땅한 키에 손에 들고 있는 작은 몽둥이까지. 그런 녀석들이 총 다섯 마리.

“고블린이군요. 제가 전위를 맡겠습니다. 헌터님은…. 어?”

고블린과 궁수까지는 거리가 제법 있었다. 분명 사정거리 안이지만 맞추기에는 제법 무리가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쓰읍, 후우우….”

탓!

쐐애애액!

날아간 마력 화살이 여지없이 고블린의 머리를 관통했다.

케르르륵!?

케륵!

케륵!

눈이 어두운 고블린에게 있어서는 무언가 날아오는 파공음 소리 하나에 아군 하나가 죽어 나가는 무서운 일이 벌어진 것이리라.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적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콰직!

콰득!

케르윽!

케에엑!

그렇게 옆에 있는 동료가 둘이나 더 죽었다.

적의 위치는 알 수 없고 남은 동료는 한명.

고블린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도망 이외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콱!

케헤엑!

푸욱!

크헤에엑!

궁수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전발 적중.

그래도 궁수, 과거 활 솜씨 하나로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 뻔했던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헌터가 되어 그 수준이 배는 증가한 상태.

고작 고블린 따위가 궁수에게서 도망치기에는 너무나도 급이 낮았다.

마지막 한 마리의 죽음까지 확인한 궁수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쉽네요.”

“네? 아…. 네 뭐….”

정말로 쉬워서 한 말이었지만 방송의 시청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

[??? 뭐임?]

[몰라; 슉 날아가더니 억하고 죽음;;]

[저 아이들도 다 가정이 있었을 텐데…]

[ㅠㅠ선생님의 마물 감수성에 무릎을 탁치고 갑니다.]

[아니 그런데 이 거리에서 5발 올 히트치는 게 말이 됨?]

“아, 뭐 기본 아닙니까? 궁수가 이 정도는 해야죠.”

사람들에게 궁수의 기준을 확 끌어 올려버린 궁수였으나 별 상관없었다.

오히려 이 정도도 하지 못한다면 궁수라는 이름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이제 시작인데 너무 놀라지 마시죠, 쭉쭉 들어갑니다.”

“예 가시죠!”

졸지에 신난 김진우도 마음을 편히 먹고 공략을 진행했다.

사실 그 뒤로는 공략보다는 과녁 맞추기에 가까운 일이었다.

거의 보이지도 않는 거리에서 궁수가 적을 발견하고 움직이기도 전에 적들을 처리했다.

운동 능력과 지능이 낮은 고블린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후! 이번에도 전발 적중!”

뭐 이런 괴물 같은 사람이 다 있지…?

궁수가 신기에 가까운 궁술을 보여줄 때마다 채팅창은 계속해서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나궁수 그는 신인가? 나궁수 그는 신인가? 나궁수 그는 신인가? 나궁수 그는 신인가?]

[어이 오늘부터 궁수 중 최고는 ‘나궁수’다.]

[닉값 ㅆㅅㅌㅊ]

[나궁수!나궁수!나궁수!나궁수!나궁수!나궁수!]

[오빠 나 죽어!(덜렁)]

ㄴ이 새끼 쏴 죽여.

입소문을 타고 어느새 시청자 수는 이백 명을 넘기고 있었다.

김진우는 입꼬리가 올라가다 못해 찢어질 지경이었다.

이게 웬 떡이냐!

김진우가 여태까지 던전에 들어와 한 일이라고는 고블린을 해체하고 아이템을 수집하는 게 전부였다.

편안함으로 따지자면 고급 리무진에 맞먹는 수준!

궁수는 궁수대로 활을 난사할 수 있어 신난 상태였다.

다만 여태까지 적중률 100%라는 말도 안 되는 실력을 구사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 사이 궁수의 방송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수출되기 시작했다.

***

[요즘 궁수 클라스]

[영상]

게시물에 영상은 다름 아닌 궁수가 던전을 공략하는 모습이었다.

활 쏠 때만을 짜깁기하여 마치 매드무비처럼 만든 영상이었다.

만약 일반적인 양궁장이나 훈련장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모두 ‘오 대단한데?’ 정도로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영상 내에선 실제로 던전을 공략하고 있었다.

고블린이 얼핏 보이자마자 회색빛 화살촉이 공기를 찢고 날아갔다.

결과는 언제나 백발백중.

이 모든 게 훈련이 아닌 실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세상은 언제나 영웅에 목말라 있었다.

게다가 그동안 쓰레기 직업이라 불리던 궁수가 말도 안 되는 위력을 보여주니 관심을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새로운 유망주의 등장은 언제나 관심이 끌릴 수밖에 없는 맛있는 소재였다.

“허, 여러분들 너무 쉬운데요, 이거?”

[ㅇㅇ E급이 좆밥이지 뭐.]

[윗놈 고블린 1대1도 발릴 것 같은데.]

[E급은 쉽지, 근데 궁수가 E급 던전 상대로 명중률 100%? 그것도 원샷 원킬? 오우 쉣]

“말했잖아요, 여러분들 궁수 개 좋다니까? 다들 궁수하세요 궁수!”

[응 좆까 ㅋㅋㅋ]

[어딜 멀쩡한 헌터 병신 만들려고]

[이 새끼가 진짜 사회악이었네, 추천할게 없어서 궁수를 추천해?]

[개가 좋아하긴 하겠네요, 멍멍 개새끼야]

“아니 여러분, 저희가 무슨 민족입니까? 고주몽의 민족이에요 여러분! 양궁 대회만 열렸다 하면 메달 싹쓸이하는 민족이라고!”

[응 ㅋㅋ 로빈후드 1승.]

[응 ㅋㅋ 레골라스 1승.]

[응 ㅋㅋ 김은빈 1승.]

[김은빈이 누구임?]

[난데.]

[ㅂㅅ 뭐라는 거야.]

물론 아무리 궁수가 좋다고 떠들어 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았지만 말이다.

“궁수님, 슬슬 보스룸이 보입니다.”

“후…. 네, 뭐 정비할 것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혹시 모르니 최대한 경계하면서 들어가도록 하죠.”

애초에 이 던전은 코어형 던전이 아닌 보스형 던전이다. 다시 말해 던전을 지배하는 보스가 있다는 소리였다.

여태까지 고블린들이 나왔기 때문에 보스 또한 고블린이 나올 가능성이 컸다.

고블린 왕이라던지 고블린 족장이라던지 하는 녀석들 말이다.

김진우가 보스룸의 굳게 닫힌 문을 확 열었다.

“우으윽…. 이게 무슨 똥내야.”

방 내부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악취가 심하게 났다. 궁수는 미간을 찡그리며 횃불을 든 김진우를 먼저 들여보냈다.

그도 여태까지 보여준 궁수의 화려한 활 솜씨를 보았기에 선뜻 먼저 보스룸 내부로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취이이익.

“히익!?”

돌로 만들어진 왕좌에 무슨 돼지 같은 놈이 한 마리 앉아있었다.

주변에는 암컷으로 보이는 고블린들이 쓰러져 헉헉거리고 있었다.

“아 시발. 내눈.”

[ㅗㅜㅑ]

[씹 머꼴인데, 햇반 가져와]

[윗놈 강퇴좀.]

[222222222]

[333333333333]

절로 얼굴이 찡그려질 정도로 징그럽기 그지없었다.

나름 미녀인 모양인지 암컷 고블린들이 왕에게 교태를 부렸지만, 궁수의 눈에는 더러울 고블린의 몸짓일 뿐이었다.

게다가 저 보스 몬스터.

고블린이 아닌데?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배에 입을 뚫고 나오는 긴 송곳니, 초록색 피부에 돼지코, 탐욕스러운 표정까지.

소위 오크라고 불리는 괴물이었다.

“이건…. 안 된다.”

형체를 확인한 김진우가 이를 악물고 서서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오크 최소 D급 마물로 분류되는 녀석들이었다.

놈의 상태를 보건데 저건 D급도 아닌 C급 정도는 되어 보이는 수준이었다.

E급과는 궤를 달리하는 괴물이 왕좌에 앉아 더러운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게다가 그 옆에는 자신의 몸과 거대한 몽둥이가 세워져있어 공포감이 배는 증가했다.

“우리끼리는 못 해, 지원을 요청해야 해.”

빠르게 견적을 잰 김진우가 조심스럽게 궁수가 있는 곳까지 발을 옮겼다.

그렇게 지원을 말하려는 순간.

타앗!!

“어어어?!”

“이런 미친!”

“뒤로 빠져요!”

당황한 김진우를 뒤로 밀치며 궁수가 앞으로 돌진했다. 궁수가 취해야 할 행동으로 보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탱커에게 어그로를 맡기고 후방에서 안전하게 딜을 뽑아내는 직업.

적어도 김진우에게 인식되는 궁수란 그런 직업이었다.

그마저도 화살이 다 떨어지면 짐꾼으로 전락하는 쓰레기 직업.

그것이 자신이 알고 있던 궁수였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그런 궁수와는 꽤나 거리가 멀었다.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눈빛을 하고 저돌적으로 돌격했다.

궁수도 무모한 도전을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가 오크에게 돌진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실은 전투에 들어가기 전.

- 음, 오크로군.

“저놈 많이 쎄?”

- 지금 네 수준에 걸맞은 상대지, 잘못 방심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라.

“흐음….”

궁수는 잠시 고민하며 오크를 바라보았다. 사실 E급 헌터 둘로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게다가 현재 시청자 수는 약 사백오십 명.

이미 나궁수라는 이름을 제법 퍼트리고도 남았다. 그렇기에 고민이 되는 것이다.

굳이 자신이 목숨을 걸면서까지 놈을 상대해야 하는지.

더군다나 그간 고블린들을 잡아 경험치를 독식하다 시피 하여 레벨은 10레벨에 도달한 상태였다.

그렇게 상념에 잠긴 궁수에게 넌지시 천궁이 말을 흘렸다.

- 이건 전에 들었던 말인데 오크의 허리뼈를 갈아 마시면 근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군.

“뭐? 진짜로?”

- 물론이지. 오크의 활력은 모두 허리에서 나온다고들 하지, 그런 허리를 갈아서 마시면 정력 활력 근력의 성장은 새삼 말할 것도 없지!

타앗!

천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궁수는 벌써 오크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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