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궁수의 첫경험(1)
“진짜 오랜만에 몸 제대로 풀었네.”
- 허, 뭐라 말이 안 나오는군.
“반했냐? 하, 곤란하다 곤란해.”
- 저 방정맞은 주둥이만 닫았어도 참 좋았을 것을.
궁수는 조용히 과녁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쏴놓고 보니 자신도 참 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역시절의 궁수도 거의 중심의 원에 화살이 꽂혀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원이지 지금처럼 일점에 다 꽂아 넣지는 못했다.
헌터가 좋긴 좋구나.
괜히 주먹을 쥐었다 피는 궁수였다.
짝짝짝.
“음?”
“이야! 너 이 자식 이게 허…! 거 말이 안 나오네!”
입을 떡 벌린 아저씨가 감탄하며 연신 찬사를 보냈다.
거의 신기에 가까운 신화 속 로빈후드가 부활했다 해도 믿을만한 정도의 실력이었다.
“오랜만에 몸도 풀었으니 이만하고 가볼게요.”
“잉? 벌써가게?”
“네, 뭐 준비해야 할 게 있어서요.”
“에잉…. 아쉽구먼, 종종 찾아올 겨?”
“그래야죠.”
궁수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양궁장 밖으로 나갔다. 아저씨는 아쉬움을 감추기 위해 퉁명스레 웃으며 궁수를 보내주었다.
“짜식, 어떻게 못 본 사이에 활 솜씨가 더 괴물 같아 졌어?”
이 전에는 괴물신인 같은 느낌이라면 헌터가 된 지금은 괴물 그 자체에 가까웠다.
그것도 다른 괴물들 따위 가볍게 씹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괴물.
***
띠디딕! 띠디딕!
다음날 아침 시끄러운 알람이 궁수의 귓가를 후려쳤다.
“으어어…. 일어나, 일어난다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로 세수를 마친 궁수가 멍하니 바나나를 집어 들었다.
바나나 두 개에 초코 맛 프로틴 한잔.
궁수의 오랜 루틴 중 하나였다.
부모님은 이미 두 분 다 외출하시고 아무도 없었다.
궁수는 멍하니 소파에 앉아 남은 바나나를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TV를 트니 오늘도 헌터들이 공중파를 지배하고 있었다. 예능, 뉴스 심지어는 드라마나 음악 방송까지도.
“참 다재다능한 양반들이야.”
평소라면 백수라는 사실에 현타가 왔을 시점이지만 더 이상 자신은 백수가 아니다.
그렇다.
대한민국 연봉 순위 1%의 고소득자가 될!
헌터 나궁수인 것이다!
물론 그만큼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지만 말이다.
조용히 아침을 다 먹으니 천궁이 찡찡대었다.
- 계약자, 그래서 사냥은 언제부터 시작인가.
“사냥? 게이트 클로징 말해?”
- 뭐든 좋다! 빨리 적을 죽이러 나가자!
어제 보여준 궁수의 활솜씨 때문에 천궁은 이른 아침부터 제법 달아오른 상태였다.
당장에 화살을 쏘아 적들의 목을 꿰뚫어야 흥분이 가라앉을 것 같았다.
“까짓것 가볼까.”
- 좋다! 적들의 미간에 화살을 꽂아주마! 으하하하!
“쏘는 건 나인데.”
- 쏴 주는 건 나다!
“어휴, 그래 그런 걸로 하자.”
아침부터 힘 빠지게 말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던 궁수는 조용히 말을 넘겼다.
일단 바로 협회부터 찾아가면 되려나.
막상 헌터만 되었지 딱히 뭘 제대로 전해 듣지 못한 궁수는 협회 건물로 이동했다.
뭐라도 들어야 하든 말든 하지.
파란 후드티에 검정 고무줄 바지.
도통 헌터로는 보이지 않는 복장이었다.
백수에 가까운 복장이었으나 궁수의 어깨에는 천궁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허리춤에 매어둔 화살통에는 가득히 채워진 회색빛 마력화살은 한 번 더 궁수가 헌터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배고프당. 이따 뭐 먹지, 기왕이면 고기 먹고 싶당.’
정작 본인은 아무 생각도 없지만 말이다.
- 이번 정거장은 서울 헌터 협회입니다.
버스가 멈추고 궁수는 성큼성큼 협회 건물로 들어갔다.
정갈하게 옷을 차려 입은 협회 직원들이 힐끔힐끔 궁수를 흘겨보았다.
“저기요, 게이트 클로징을 하고 싶은데요.”
“네? 클로징이요?”
“예, 딱히 전해 받은 게 없어서요.”
“성함이 어떻게 되실까요?”
“나.궁.수요.”
시끄러운 로비 속 카운터에서 키보드 소리가 타닥타닥 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명단에서 궁수를 찾아낸 직원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어제는 정보 등록 과정이라 안내를 받지 못하셨나 봐요. 3층에 가시면 필요한 장비들을 지급해 드릴 겁니다.”
“감사합니다.”
3층은 1층보다는 사람이 적었으나 그래도 제법 많은 인원이 건물을 차지하고 있었다.
“저, 여기에 오면 장비를 지급해준다 해서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나궁수요.”
“네, 나궁수님 확인했습니다. 잠시만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궁수를 호명했다.
궁수는 피곤한 표정으로 카운터에 성큼 다가갔다. 아침부터 사람 많은 곳에 오니 기가 빨리는 기분이었다.
“여기 마력폰입니다.”
“마력폰? 이게 뭔데요?”
“쉽게 말하자면 헌터 전용 스마트폰입니다. 설명서를 함께 동봉해 드렸으니, 확인하시면 됩니다.”
물건을 받은 궁수가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이미 자신의 기본 정보를 토대로 개통까지 완료된 상태였다. 오년도 넘은 자신의 구식 스마트폰과는 그 급이 달랐다.
“와, 오백 도에서도 버텨? 영하 백오십 도?”
각종 여러 가지 기능들이 쓰여 있었다.
총알도 버틴다느니 마력으로도 충전이 가능하다느니 여러 가지 대단한 기능들이 있었지만, 궁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두 가지였다.
1. 주변에 있는 게이트를 표시합니다. 담당 헌터가 있을 경우 초록색, 그렇지 않을 경우는 붉은색으로 표시됩니다.
2. 던전 내부에서 얼마든지 인터넷이나 전화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와 이건 쩌는데.
그 아래에는 마석을 사용하여 어쩌니 저쩌니 하는 설명들이 적혀 있었다.
물론 궁수가 본다고 알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리고 따로 받은 바디캠.
던전 내부, 혹은 게이트 정보 수집을 위한 물건이라 한다.
무게도 거의 없다시피 하는 수준이고 크기도 작아서 그냥 옷에 끼워두면 전부 촬영이 되었다.
추가로 휴대폰에 연결 기능까지!
“이런 걸 다 무료로 지원한다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궁수가 이내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공략 가능 게이트를 체크하니 서울 주변에서 출현한, 혹은 출현할 예정인 게이트들이 보였다.
낮은 등급의 게이트인 만큼 그 수는 제법 되었으나 대부분 다른 헌터들이 먼저 공략을 신청한 상태였다.
그나마 하나 남은 것은 E급 던전형 게이트였다. 혼자 들어가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웠다.
“흐음…. 혼자 가는 건 좀 그런데.”
- 왜, 계약자여 설마 겁먹은 건가? 나라는 전설의 보구를 가지고도?
“당연하지, 넌 안 죽잖아.”
- 쯧, 남자가 겨우 그것 하나에 겁먹어서 그런 꼴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군.
“뭐?”
- 그렇지 않나? 3대 3000이라느니 천궁의 소유자라느니 하는 놈이 S급도 아닌 고작 E급에 겁먹어서야.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 뻔한 도발이었다. 궁수도 이를 알고 있었고 천궁의 의도를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궁수는 이내 싱긋 웃으며 그 제안을 수락했다. 도구에게 주인의 위엄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래, 까짓것 네가 있는데 뭐가 무섭겠냐?”
- 좋다, 그 기세다.
“그 전에 잠깐만.”
이동하기 직전 헌터용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김진우 - 오전 11:43]
[저, 혹시 괜찮으시면 같이 공략하는 거 어떠십니까?]
“음? 뭐지?”
게이트 어플을 통해 날아온 메시지가 떡하니 화면 중앙에 표시되었다.
궁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답장을 보냈다.
[나궁수 - 오전 11:43]
[그쪽은 누구신데요.]
[김진우 - 오전 11:43]
[헌터 김진우라고 합니다. 게이트 공략대 참가 가능한지 연락드립니다.]
[나궁수 - 오전 11:44]
[공략대 없어요. 단독 클로징입니다.]
[김진우 - 오전 11:44]
[네?]
그야 뭐 이런 반응이겠지.
대뜸 E급 던전형 게이트를 혼자 클로징 하겠다니. 어지간한 상위급 헌터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김진우 - 오전 11:44]
[그러니까, 혼자 공략하신다는 건가요?]
[나궁수 - 오전 11:44]
[네, 그런데요.]
김진우는 생각했다.
E급 게이트 클로징을 혼자 한다니, 그것도 저렇게 자신감 넘치게.
뭔가 엄청난 은둔 고수가 아닐까?
잘하면 자신도 잘 끼워져 버스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도박 수가 있기는 했지만, 김진우는 그 도박에 걸어보기로 했다. 원래 헌터의 생활 자체가 도박 아니겠는가?
[김진우 - 오전 11:44]
[혹시 탱커 한명 같이 가실 생각 없으신가요? 짐꾼으로 쓰셔도 좋습니다.]
[나궁수 - 오전 11:44]
[음….]
아 이건 진짜다!
저 남자는 분명 ‘나 혼자서도 가능한데 굳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저 여유 있는 태도를 본다면 분명히 상위 헌터일 것이다.
물론, 현실은 E급 신인 헌터였지만 말이다.
“어때? 데려 가볼까?”
- 흠, 네가 정할 일이지. 뭐 겁먹었다면 같이 가도 좋다. 겁쟁이 녀석.
“아싸, 같이 가야지.”
- 뭐…. 뭣!? 네놈은 자존심도 없나!
“자존심이 밥 먹여 주냐? 죽으면 끝이거든?”
이 자식 헌터 감수성 떨어지네.
[김진우 - 오전 11:44]
[정 힘드시다면 정산 비율을 7대 3으로 낮추셔도 좋습니다. 물론 헌터님이 7입니다.]
오?
궁수의 답장이 늦어지자 자칫하면 버려질 수도 있다는 마음에 다급해진 김진우가 급히 말을 바꿨다.
정산 비율을 3만 해도 나오는 금액은 나쁘지 않다.
특히나 김진우 같은 하급 헌터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간절한 돈이었다.
[나궁수 - 오전 11:45]
[네, 좋습니다. 위치는 알고 계시죠?]
[김진우 - 오전 11:45]
[네! 알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나궁수 - 오전 11:45]
[예, 바로 가겠습니다. 거기서 뵙죠.]
[김진우 - 오전 11:45]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 무슨 개꿀이냐?
돈도 굳고 사람도 구했겠다. 궁수는 입꼬리가 절로 치켜 올라갔다.
공략 장소는 이미 철저하게 격리되어 있었다.
경찰과 헌터 협회에서 나온 직원들이 주변을 통제하며 사람들의 진입을 막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담당 헌터님 되십니까?”
“예, 여기요.”
헌터 카드를 꺼내며 보여준 궁수가 안으로 들어갔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김진우가 궁수를 알아보고 성큼 다가왔다.
‘와, 근육 봐 미쳤는데.’
단순히 외관만으로 그를 강자라고 생각한 김진우가 눈을 빛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헌터 김진우라고 합니다!”
“아, 반갑습니다. 헌터 나궁수입니다.”
“아…. 궁수요? 설마 직업은 아니죠?”
“네? 네, 이름이 나궁수, 직업도 궁수입니다.”
아이씨, 이거 느낌 이상한데.
궁수란다, 궁수.
세계 헌터 협회 딜러 기준 최하 DPS를 자랑하는 그 쓰레기 직업 궁수!
물론 최상위 1%의 궁수들은 그 수준이 다르겠지만 E급 던전이나 도는 궁수가 수준이 높을 리 없었다.
‘후우…. 그래 상위 헌터들이 받아주질 않으니 혼자 도는 거겠지.’
진우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휴대폰을 뒤적이는 궁수에게 다가갔다.
“뭐 하세요? 방송이라도 키시게요?”
“네? 웬 방송이요?”
“요즘 유행하잖아요, 어차피 바디 캠도 있으니까, 휴대폰이랑 연동해서 방송 키는 거죠.”
“그렇게 하면 뭐가 좋아요?”
궁수도 BJ나 스트리머 같은 것들은 알고 있다. 다만 헌터가 방송을 킨다는 것은 궁수에게 있어 신선한 경험이었다.
“인지도죠, 후원도 제법 짭짤하고요.”
“그걸 누가 봐요?”
“엄청 봐요, 일반인 입장에서는 저희가 신기하잖아요, 막 마법도 부리고 괴물들 죽이고.”
“하긴 그렇네요. 협회에서는 뭐라고 안 해요?”
“오히려 헌터들이 일반인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면서 추천하던데요.”
호오, 그렇다 이거지?
궁수도 나름 소싯적 꽤나 매스컴을 탔던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룰 수 없는 꿈.
그런 만큼 관심에 목말라 있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들의 관심만큼 달콤한 것도 없으니 말이다.
“그거 하면 얼마나 버는데요?”
“음, 너튜브랑 후원 수입까지 합치면 제법 되죠, 이건 비밀인데….”
진우가 주변의 눈치를 보더니 스윽 궁수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저도 이번 달 사백 벌었습니다.”
“네?! 그렇게나요!?”
“쉿! 쉿!”
여기까지 들었으면 이미 설명은 끝났다.
김진우 같은 하급 헌터도 월 사백만 원이다.
설마 헌터 재능충인 본인이 저것보다 못 벌겠는가?
“바로 가시죠.”
평소 운동 관련 너튜브나 방송을 즐겨보는 궁수에게 방송 플랫폼을 다루는 것은 너무나도 쉬웠다.
방 이름은…. 뭐 이 정도면 되겠지.
[생] - [국내 최고 헌터 궁수의 게이트 공략 방송]
“바로 가시죠.”
“옙!”
그렇게 기상천외한 첫 게이트 공략 방송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