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목숨 건 현장 체험학습(2)
마치 수면이 몸 위를 훑는 듯한 느낌과 함께 게이트 속으로 들어갔다.
이를 처음 느껴보는 궁수에게는 제법 신기한 경험이었다.
게이트 내부는 어두운 동굴이었다.
횃불이나 조명 없이는 한치 앞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천장의 종유석과 울퉁불퉁한 바닥은 궁수에게 있어 껄끄럽기 그지없었다.
처음 와보는 게이트에 신기해하는 궁수와는 달리 다른 헌터들은 합을 맞춘 듯 순식간에 진영을 만들었다.
각자 머리와 팔에 조명을 장착하여 동굴 내부를 환하게 비추었다.
휙휙
손짓 몇 번만으로 완벽한 전투태세를 갖춘 헌터들이 주변을 통제했다.
‘멋있다.’
마치 특수부대가 수신호 몇 번으로 행동을 하는 것처럼 그들의 움직임은 깔끔했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반응은 없습니다. 혹시 모르니 경계하면서 가죠.”
엄밀히 따지면 그들도 겨우 D급 게이트에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지는 않는다.
다만 신입도 있고 뒤에 팀장도 있고 하니 평소보다 잔뜩 힘이 들어간 상태였다.
새끼들 이럴 때만 빠릿빠릿해요.
물론 이은우 본인은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원율이 절망적인 정부 헌터에게 있어서 능력 있는 신입은 절실한 법이다.
게이트 클로징 보다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혈안이 된 상태였다.
다만 궁수는 그 사실을 모를 뿐.
평소 잘 쓰지도 않는 수신호들을 사용하며 공략을 진행하는 그 모습은 은우에게 있어 보여주기식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뭐, 해봐야 D급이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
본 공략대는 C급도 무리 없이 공략이 가능한 인원이다.
운만 따라준다면 B급도 공략이 가능할 정도.
거기서 자신이 들어왔다.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전방 마물 5개체 발견, 수준은 E급, 제거합니다.”
“확인.”
저 지랄을 이번 공략 내내 봐야한다니 그게 괴로울 뿐이었다.
딱히 마력에 크게 걸리는 것도 없으니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외형은 징그러운 다리가 달린 거미였다.
높이 1미터 정도의 거대한 거미는 징그럽기 그지없었다.
그런 놈들이 대략 5마리.
정말 징그럽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지만 그 헌터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마력을 일으키고 있었다.
타앗!
땅을 박차고 날아간 남자가 순식간에 거미의 머리를 베어 갈랐다. 거미의 초록빛 혈액이 파악 튀었다.
오오?
그와 동시에 다른 4마리가 남자를 향해 거미줄을 발사했다.
끈적한 거미줄은 그대로 남자를 휘감는 듯 했으나 남자의 칼질 두 번에 거미줄이 힘없이 툭 떨어졌다.
“대단한데요.”
“글쎄요.”
궁수는 눈을 밝히며 전투를 관전했으나 은우는 심드렁하게 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새끼들 신입 앞이라고 겉멋만 잔뜩 들어서는 말이야, 나중에 정신교육 한번 해야겠어.
불필요한 행동들이 눈에 뻔히 보였다.
그러던 말던 궁수는 시종일관 감탄하며 전투를 바라보았지만 말이다.
“와! 뭐야!”
뭐 본인이 좋아하니 됐나.
E급 마물 다섯에 8분 정도.
다른 동급 헌터들에 비해 대단히 양호한 수준이었다.
“다들 한 가닥 하시는데요?”
“기본이죠.”
“오오.”
다음, 그 다음 이어지는 전투도 별것 없었다. 비교를 하는 게 미안할 정도의 명백한 수준차이.
결과는 늘 압도적인 헌터의 승리였다.
그렇게 꼬박꼬박 마석을 챙기며 더욱 던전 깊숙이 진입했다.
별거 없는데?
D급 던전이라는 말과 달리 공략은 너무나도 쉽게 진행되었다.
어느 정도냐면 그냥 슥삭 하면 몬스터들의 몸이 슥삭 잘려나갔다.
“조금만 더 가면 코어입니다. 아직 끝난 거 아니니 긴장 계속 잡고 가죠.”
갈림길 없이 일자로 쭉 이어진 동굴은 정말 너무나도 쉬웠다.
“원래 D급이 이렇게 쉽나요?”
“아하하! 쉽다뇨, 저희들이 있어서 편히 가시는 겁니다!”
“캬! 믿음직스럽네요!”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공략의 매끄러운 진행도 있었지만, 궁수의 밝은 성격도 한몫했다.
“그런데 보통 던전이면 함정이라거나 좀 더 여러가지로 있지 않나요?”
“있죠, 드글드글합니다.”
“그런 것 치고는 제법 얌전한데요?”
“뭐…. 등급 자체가 낮은 것도 있지만, 이곳 마물들은 함정을 설치할 정도로 지능이 높지 않으니까요. 이번 던전은 함정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음! 든든하네요!”
“저희만 믿으십쇼!”
궁수는 싱글벙글 웃으며 계속해서 헌터들을 따라갔다.
그렇게 계속해서 들어가던 와중 잠시 궁수의 시선을 잡은 것이 있었다.
혹시나 뭐라도 있을까 주변을 면밀히 바라보던 궁수는 벽에 달린 막대를 발견했다.
워낙에 자그마한 막대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눈치 채지 못한 상태였다.
호기심이 발동한 궁수가 잠시 대열에서 이탈했다.
“궁수씨?”
“아 잠시만요. 신발 끈이 풀어져서, 바로 따라가겠습니다.”
“그 정도는 기다려드릴 수 있습니다.”
“아뇨! 어차피 일자굴이고 천천히 걸어가시면 따라갈게요.”
“흐음…. 예 뭐.”
어차피 전에 있던 마물들은 싹 처리해두었다.
그 외에 위험요소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은우는 고개를 돌렸다.
궁수는 슬쩍 아까 발견해둔 막대로 다가갔다.
보잘 것 없는 평범한 막대였다.
“에이씨 뭐야, 그냥 막대잖아.”
던전에서 종종 발견된다는 히든 아이템이 아닐까, 일말의 기대를 품었던 궁수는 실망하며 괜시리 막대를 탁 후려쳤다.
철컥.
“뭐? 철컥?”
마치 수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궁수의 귓가를 울렸다.
“어어어?! 씨발 이게 무슨 끄아아아아악!”
“뭐야!? 궁수씨! 괜찮아요?!”
비명소리를 듣고 서둘러 달려온 헌터들이 궁수를 찾아 소리 질렀으나 이미 궁수는 발밑에 뚫린 구멍으로 훅 떨어지고 말았다.
“아이 어디까지 내려가는 거야!”
다행히도 구멍은 수직적인 구조는 아니었다. 경사를 타고 마치 미끄럼틀처럼 쭉 미끄러져 떨어졌다.
쿵!
“아이쿠!”
화려하게 엉덩방아로 착지한 궁수가 묻은 흙을 털어내며 주변을 확인했다.
“…헐.”
알.
그것은 수많은 거미들의 알이었다.
새하얀 막으로 감싼 알은 징그럽기 그지없었다. 자꾸만 꿈틀대는 것이 곧 나오려고 하는 놈도 있을 지경이었다.
“시발.”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자신이 큰 소리를 지르거나 혹은 자극이라도 줬다간 자신은 반드시 좆된다는 것을 말이다.
궁수는 최대한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며 혹시나 밖으로 향하는 길은 있을지 확인했다.
“저깄다.”
문이라고 하기도 뭐한 구멍이 뚫려있었다. 잘하면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용히…. 조용히 가는 거야.”
궁수는 까치발을 들고 조심스럽게 문을 향해 나아갔다.
쾅!
“아이쿠!”
“야! 피해! 피하라고!”
“끄아아악! 형님!”
“궁수님! 구하러 왔습니다!”
구멍을 타고 내려온 다른 헌터들 때문에 조용히 빠져나가려던 궁수의 계획은 처참히 부서지고 말았다.
“어머 시발.”
좆됐네.
음 이것은 순도 100% 좆됨이다.
궁수는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눈으로 이를 악물고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프로인 만큼 바로 소리를 낮추고 입을 막았으나.
샤아아악!
캬아아악!
이미 때는 늦었다.
알에서 깨어난 굶주린 아기 거미들이 멤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궁수도 후다닥 파티원들의 곁에 다가갔다.
“어차피 소형 개체다! 못 죽일 거 없어! 차분하게 대응해!”
이은우도 직접 검을 뽑아들고 날아드는 거미들을 막고 있었다.
촤아아악!
푹!
샤아아악!
놈들은 해봤자 30CM 정도의 거미다.
그 수가 몇 천이 넘었으나 일반인이면 몰라도 전투에 도가 튼 헌터들을 상대로는 평범한 벌레일 뿐이었다.
게다가 이은우.
과연 정부 주요 헌터인 만큼 그의 검술은 가감없는 위력을 보여주었다.
마력을 둘러 이글거리는 그의 검이 여지없이 거미들을 죽였다.
“그럼 나도!”
“뒤로 빠져요!”
“앗 넵.”
궁수가 어리버리 타는 사이 이미 상황은 종료되었다.
혹시나 다른 개체의 개입을 걱정했으나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거의 2시간이 넘는 전투에 헌터들도 지친 듯 땀범벅이었다. 체력이 한계인 듯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습니까?”
“네, 감사합니다.”
“후…. 견학 온 신입이 다치기라도 했다간 제 체면이 말이 아니었을 겁니다. 별일 없어서 다행입니다.”
“은우씨 덕분이죠.”
다행히도 그는 막대를 건드려서 이곳에 떨어진 사실은 모르는 듯 크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갑작스럽게 발동한 함정에 불행히도 말려든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리라.
“일단 여기부터 나가죠, 길이 조금 틀어졌습니다.”
주변 정리를 마친 다른 헌터가 검에 묻은 혈액을 털어내며 말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이었다.
“앗, 네 바로 가시죠.”
궁수는 마치 기사들에게 호위 받는 공주의 기분을 느끼며 바깥으로 향하는 통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의 통로에 다다를 무렵. 갑자기 어깨를 흠칫 떠는 은우가 크게 소리쳤다.
“뒤로!”
“네?”
화악!
은우의 갑작스러운 외침에 궁수는 영문도 모른체 확 끌려갔다.
다른 헌터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뒤로 빠진 상태였다.
칵칵칵카칵칵
“어…. 어어?”
천장에서 거대한 거미가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저건 거미라고 부를 수 있나?
상체는 인간 여성의 상체에 하체는 징그러운 거미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새빨간 안광이 번뜩였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다른 헌터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적을 바라보던 이은우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아무래도 쉬운 상대는 아닌 듯했다.
그녀의 이마에 박힌 검은 뿔이 더욱 그녀를 흉측하게 보이는데 일조하고 있었다.
“아쉬워라…. 한 번에 다 먹을 수 있었는데.”
벽을 타고 성큼성큼 내려온 거미가 혀를 날름거렸다.
콰직! 콰지직!
“흐으읏…! 역시 내가 낳은 아이들이야, 너무 맛있어.”
“뭐 저런 미친년이 다 있지?”
그녀는 바닥에 널브러진 거미 시체들을 뜯어 먹으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초록빛 혈액이 낭자하며 그녀의 입가가 초록색으로 변했다.
그렇지 않아도 징그러워 죽겠는데 한층 더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건 말건 이은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대상은 소통이 가능한 수준의 적, 최소 준 A급 마물이다.”
그 말과 함께 다른 멤버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준 A급.
A급 보다는 약하지만 B급 보다는 강하다는 뜻이리라. 고요하던 다른 멤버들이 마력이 서서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궁수씨는 뒤로 빠지세요.”
“어차피 죽으면 저도 죽는 거 아닙니까, 뒤에서 조금이라도 돕겠습니다. 그냥 죽는 거 보단 뭐라도 해봐야죠.”
“흐음…. 정 그렇다면 여기. 궁수씨, 연습을 위해서 챙겨 온 화살입니다.”
은우가 화살 한 통을 건네주었다. 딱히 효과는 없는 일반 화살이었다.
“엄호하겠습니다.”
먼저 서서히 은우와 헌터들이 그녀의 주변을 경계했다.
사나운 마력을 두르고 적의 행동은 물론 눈짓 손짓 하나하나까지 전부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후…. 너무 오랜만인데.”
궁수가 활대에 시위를 겨누었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잡아보는 활이었으나 어째서인지 어색하진 않았다.
[직업의 효과를 받고 있습니다.]
[명중률과 위력이 소폭 증가합니다.]
아, 그런가.
분명 자신은 양궁을 접었을 터인데 팔에 이질감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전성기 시절보다 더욱 매끄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보인다.”
더 이상 자신은 양궁 선수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적을 죽이는 궁수인 것이다.
궁수의 눈이 싸늘하게 빛났다.
“거리는 사정거리 안이다.”
애초에 내부는 그다지 넓지 않았다.
5M가 넘는 거구의 거미를 맞추는 것 따위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다만 급소를 노릴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그리고 여기에 있는 사람은 한국 양궁계의 최고 재능충이었던 나궁수였다.
“우선은 눈이다.”
먼저 시야를 가리자는 마음에 활을 들어 눈을 겨누었다. 궁수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바람은 없다. 그럼 고려해야 할 것은 중력으로 인한 포물선의 궤적이다.
내 명석한 머리로 계산한 결과.
1도 모르겠군.
어차피 감이다.
자신은 현역 시절 감으로 한국 최고 어쩌면 세계 최고의 자리를 넘봤던 사람이다.
그에게 있어 감은 단순히 감이 아닌 천재적인 재능의 한 종류였다.
“이쯤인가.”
쐐애액!
쏘아진 화살이 맹렬한 속도로 그녀의 눈을 향해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대기하던 헌터들이 달려들어 전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