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목숨 건 현장 체험학습(1)
“개운하고 좋군요!”
난생처음으로 마력이란 걸 사용해보았다. 마치 땀에 젖은 옷을 벗는 것처럼 상쾌한 힘이었다.
밖에서 대기하던 그들이 성큼 다가왔다. 두 사람 모두 어째서인지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왜 그러시죠?”
“…아닙니다. ‘궁수’님, 대단하군요.”
“에이 기본이죠. 뭘.”
한쪽은 직업을 다른 한쪽은 이름으로 알아들었지만, 대화는 별 차질 없이 흘러갔다.
잠시 키보드를 두드리던 그녀는 5분쯤 지나 기지개를 쭉 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스트레칭 저렇게 하는 거 아닌데.
입이 근질근질 했지만 그녀는 이를 싸그리 무시하며 말했다. 마치 귀찮으니 빨리 나가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제 5층으로 가셔서 헌터 관리 카드 받고 가시면 돼.”
“바로 나오나요?”
“어, 비싼 거니까 잃어버리지 말고.”
“잃어버리면요?”
“협회에서 다시 줘, 여기 돈 많아.”
“크흠!”
은우의 헛기침과 함께 대화는 끝났다. 건네받은 카드는 제법 화려했다.
투명한 카드에는 마치 홀로그램처럼 자신의 얼굴과 헌터 등급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거 주민등록증 같은 거니까,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세요.”
“알겠어요.”
E급 헌터 나궁수.
“응? 이거 원래 E급부터 시작이에요?”
“가끔 있어요, 한 단계 위부터 시작하는 헌터들.”
“오오오!”
“재능 있다는 거죠, 축하해요.”
옷깃으로 카드를 몇 번이고 닦은 궁수가 눈을 빛내며 카드를 바라보았다.
그렇다.
이제 나도 헌터다!
백수가 아니라 헌터!
사람들의 선망을 받으며 정의를 지키고 돈도 장난 아니게 버는 헌터인 것이다!
“흐흐흐흐흐.”
“음….”
은우가 잠시 궁수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뭐 나도 저때는 저랬으니까.
혼자 미래의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상상을 하고 있는 궁수에게 다가간 은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이후에 일정 있으십니까?”
“딱히 없는데요? 음…. 굳이 고르자면 헬스?”
“급하지 않으시다면 잠시 시간 좀 내어 주시겠습니까?”
“뭔데요?”
“별거는 아니고 초보 헌터 분들에게 무기를 지급해 드리는 서비스가 있습니다.”
거짓말이다. 그런 서비스 따위 없다.
정부 직속 헌터도 아니고 고작 신입 헌터에게 그런 걸 줄 리가 없지 않는가?
그냥 궁수의 경우가 특이한 것이다.
참 탐난단 말이야.
궁수의 능력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팀에 들이고 싶다는 욕구를 강하게 만들었다.
자신은 정부 소속의 헌터. 소위 공무원이다.
물론 국가 아래에 모인 헌터인 만큼 복지도 상당하다.
의료보험, 자녀 유학, 집, 은퇴 후 연금 등 상당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그것들은 일반 헌터들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이었다.
이은우의 능력이라면 이미 50평대의 집에 멋진 스포츠카를 사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억지로 국가의 아래에서 근무하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경찰에 근무하셨던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자신이 헌터가 되어 힘을 실어드려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그의 아버지는 일찍이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괴물에게 죽었지만 말이다.
그런 그의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저 남자는 무조건 잡아야 한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1년만 늦어도 그의 몸값은 천정부지 모르고 하늘 높이 치솟을 것이다.
그러기 전에 미리 잡아둘 필요가 있었다.
궁수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만 휴대폰을 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사실은 통장을 확인한 기쁨의 미소였지만 타인이 보기에는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협회가 좋긴 좋네요! 바로바로 돈도 들어오고!”
통장에 찍힌 700만원이라는 숫자는 궁수를 웃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런 궁수를 바라보며 은우는 익숙하게 목에 걸린 ID 카드를 가져다 대고 무기고의 문을 열었다.
“오시죠.”
“네!”
처음에는 일개 헌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생각보다 직함이 높은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무기고에 함부로 들어갈 수 있을 리 없었다.
“이곳은 N등급 노말등급 무기부터 레어, 잘하면 에픽 무기도 제법 숨어있는 곳입니다. 상부에는 제가 말씀 드릴 테니 하나 집어보시죠.”
“예!”
헌터 제 4팀 팀장 이은우.
그가 열람할 수 있는 무기고는 딱 여기가 한계였다.
이미 상부에는 무기 한 개를 반출한다고 말해뒀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무슨 그런 하급 무기까지 하나하나 보고하냐며 귀찮아했다.
“뭐든 좋으니 하나 집어보시죠!”
“알겠습니다!”
궁수의 눈이 빛나며 주변을 탐색했다.
그도 일단은 세계를 뒤흔들 뻔한 양궁 선수다. 활을 보는데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는 것이다.
“흠…. 훅킹이 구리네, 이건 드로잉이 왜 이따구야? 얼씨구? 앵커도 개판이네? 이건 그립은 나쁘지 않은데 릴리즈가 영 아닌걸.”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전부 개소리다. 오히려 장인만큼 무기를 가리는 사람이 없다.
매캐한 먼지가 쌓인 창고에서 궁수는 열심히 수십 수백 가지 활을 쥐어보았다.
나름 에픽 등급의 활도 몇 가지 있었으나 까다로운 궁수를 만족시킬 순 없었다.
“썩 끌리는 활은 없네요.”
“그러십니까.”
“그냥 이거 하나 가져갈게요.”
궁수는 그나마 가장 손에 감겼던 활을 한 자루 꺼내 들었다.
그것은 N등급의 평범하기 짝이 없는 무기였다.
궁수가 현역시절 사용하던 활이 그리워졌다. 어차피 부러져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지만 말이다.
이은우가 직접 다가와 휴대폰을 켰다.
그는 협회에 등록된 갤러리를 뒤지며 궁수가 고른 활을 찾았다.
“N급 무기입니다, 별 능력은 없고 노멀 무기에요.”
“그나마 제 손에는 이게 낫네요.”
“등급에 상관없이 자신에게 맞는 무기를 쓰는 게 좋죠. 그걸로 하시겠습니까?”
“네!”
은우는 잠시 활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무리 보더라도 N급 잡동사니에 불과했다.
딱히 숨겨진 능력도 뭣도 없는 일반 활일 뿐이었다.
‘뭐 자기가 맘에 든다니까.’
N급이면 협회에서 오히려 잘 처분했다고 할 것이다. 기부 한 셈 칠 테니까.
만족스럽진 않은 듯 입술을 쭉 내민 궁수는 대충 활을 집어 들었다.
“헌터님 이후 시간 어떠신지요?”
“에이 자꾸 작업 걸지 마세요.”
“크흠…. 이후 게이트 견학을 시켜드릴까 하는데 어떠세요.”
“견학이요? 갑자기?”
“네, 미리 미리 게이트라는 게 뭔지 알아보고 마물들을 체험해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궁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헌터도 됐겠다.
맘에 들진 않지만, 무기도 얻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압도적으로 부족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경험.
활 쏘는 재능이야 몰라도 경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직하게 만들어가야 하는 법이다.
게다가 이곳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업종이다.
말이 정의의 수호자니 영웅이니 하지만 결국은 목숨을 건 극한직업이라는 말이다.
그런 궁수에게 체험이라는 제안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가시죠!”
“좋습니다, 주변에 D급 게이트가 하나 있습니다. 거기로 가시죠.”
“네!”
***
검은색 밴에 몸을 실은 궁수가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반 자동차와는 내부가 확연히 달랐다. 각종 GPS에 붉은 점들이 콕콕 박혀있었다.
아마도 게이트를 뜻하는 듯 보였다.
“궁수님, 게이트에 대해서는 알고 계십니까?”
“아뇨!”
잠시 부하 직원에게 명령을 내리던 은우가 이내 궁수의 옆에 앉았다.
태블릿을 가지고 차차 궁수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현장 진입 전에 간단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그가 태블릿에 슥슥 글씨를 쓰며 그림을 그려주었다.
퍽 애들 장난 같은 그림 솜씨였으나 그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게이트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방출형 게이트.
던전형 게이트.
파도형 게이트.
“먼저 방출형 게이트는 가장 흔한 게이트입니다. 말 그대로 게이트가 열리고 괴물이 나오는 구조입니다.”
“네.”
“다만 방출형 게이트의 나은 점이라면 대체로 나오는 마물의 등급이 낮다는 겁니다. 높아봤자 C급 보통은 D급 이하의 마물들이 주를 이루죠.”
태블릿에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괴물이 하나 그려졌다. 마치 어린 시절 그림 동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물론 아주 가끔 상위 마물들이 나오긴 합니다만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니 별로 걱정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다음은요?”
“다음은 던전형 게이트입니다.”
태블릿 화면에는 둥근 원 안에 물음표가 그려져 있었다.
“던전형 게이트는 변덕이 심합니다. 등급도 S에서 F까지 뒤죽박죽이죠.”
“그래도 몬스터가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요?”
“아닙니다. 던전형 게이트도 몬스터가 바깥으로 나옵니다. 그것도 때로 몰려서요.”
그려진 둥근 원이 두 갈래로 와작 무너졌다.
그는 아래에 ‘던전 브레이크’라는 글자를 추가하며 설명을 이었다.
“던전형 게이트가 한 달 이상 방치되게 되면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합니다.”
“던전 브레이크요?”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아마 던전 내에서 태어나는 몬스터들이 던전이 품을 수 있는 수를 넘었을 때 발생한다고 추측됩니다.”
그는 안 좋은 추억이 있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설명을 이었다.
때때로 혀를 차며 설명을 하는 것이 꽤나 호되게 당한 기억이 있는 듯했다.
“이 경우는 일이 복잡해집니다. 밖으로 나온 몬스터들을 모두 죽이고 던전으로 들어가 던전 코어를 부수던 혹은 던전의 주인을 죽이던 해야 합니다.”
“그것 참 더럽게 귀찮네요.”
“그렇죠. 그렇게 최대한 빠르게 처리해야하는 게이트입니다. 자칫 잘못해서 던전의 주인이 밖으로 나오기라도 한다면…. 상상도 하기 싫군요.”
그리고 마지막 파도형 게이트.
이은우는 몇 번이고 원을 그리며 별표를 그렸다.
“파도형 게이트, 가장 무섭고 예측이 불가능한 게이트입니다.”
“왜요?”
“성질은 방출형 게이트와 비슷하나 몬스터의 강함이나 그 수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기 때문이죠.”
그가 갑자기 검색 포털에 들어가 ‘호주 파도형 게이트’라는 말을 검색했다.
마치 체르노빌을 연상하듯 아니 오히려 그것보다 더욱 처참한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이전 호주에서 처음 파도형 게이트가 발생했을 때의 상황입니다. 세계랭킹 10위권 헌터 3명과 다수 상위급 헌터들의 희생으로 겨우 막을 수 있었죠.”
“헐….”
정말로 거대한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도시에는 폐허밖에 남지 않았다.
원래 호주 자체가 건물이 많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그곳의 풍경은 마치 산불이 꺼진 후 새까맣게 타버린 세상 같았다.
“그 이후로는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만, 파도급 게이트가 열리면 그건 전 세계급의 재앙으로 여겨집니다.”
“기억나네요, 거의 반 년 간 그 뉴스만 나왔던 거 같은데”
꿀꺽
궁수의 목울대가 울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거대한 대륙 하나를 휩쓸어버리는 게이트 그것이 파도형 게이트의 위력이었다.
그렇게 잠시 분위기가 가라앉을 무렵 차가 멈추고 현장에 도착했다.
은우는 차에서 내리며 마저 궁수에게 설명을 이었다.
“저희가 견학할 게이트는 D급 던전형 게이트입니다. 던전 보스형은 아니고 코어를 부숴야하기 때문에 난이도는 낮은 편입니다.”
“코어가 보스형보다 낮아요?”
“네, 보스형은 잡몹을 거쳐 보스까지 죽여야 하지만 코어형은 그냥 코어만 부수면 되거든요.”
미리 현장에서 대기하던 다른 헌터들이 은우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그들은 경례를 하며 은우 앞에 섰다.
“헌터 김수현 인사드립니다! 게이트는 D급 던전 코어형 게이트 입니다!”
“그래, 나도 같이 들어갈 거니까 걱정 말고.”
“이은우 팀장님이 같이 가주시면 저희야 너무 고맙죠!”
“뭐래, 준비나 제대로 해.”
이은우는 제법 실력이 있는 듯 나름대로 선망을 받고 있었다.
하긴 정부가 꾸리는 헌터의 팀장급이니 나름 그 실력도 대단할 것이다.
그것도 잠시 김수현이 궁수를 바라보았다.
“이분은 누구십니까?”
“신입, 그냥 견학이나 좀 시켜주려고 데려왔어.”
“오오! 신입이라니!”
그가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궁수를 바라보았다. 궁수의 몸을 한번 훑더니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 정부 쪽으로 들어갈 생각 없는데.
아마 신입 헌터가 아닌 정부 측 신입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뭐 분위기는 나쁘지 않으니 궁수는 적당히 웃으며 악수를 받아주었다.
잡담도 잠시 준비 완료라는 말과 함께 바로 게이트의 돌입을 준비하였다.
“궁수씨는 저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네.”
“여차해도 다른 팀원들이 지켜줄거니 걱정 마세요.”
그들에게 있어서도 D급 게이트는 어려운 일이 아닌 듯 전체적으로 가벼운 분위기였다.
그러나 단 한명도 허투루 준비하는 사람은 없었다. 과연 베테랑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가장 앞에 서있던 헌터가 소리쳤다.
“게이트 돌입합니다!”
“가시죠.”
그 말과 동시에 궁수도 저벅저벅 함께 따라 들어갔다.
한손에는 활을 들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