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3화 (3/172)

◈ 3화. 저게 어딜 봐서 궁순데

그렇게 멍하니 있기도 잠시.

건물 밖에서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헌터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여기다! 마력 파동이…. 어?"

"형님 왜 그래요!"

몬스터를 처리하는 것은 일분일초를 다투는 일인 만큼 만반의 태세를 갖춘 헌터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내부로 들어왔다.

하지만 이미 헌터로 각성한 궁수에 의해 상황은 종료된 후였다.

“이게…. 무슨?”

궁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헌터들의 표정에 온갖 감정이 모두 묻어나왔다. 호기심 놀람 당황 경계.

그야말로 온갖 감정이 솟아나고 있었다.

“혹시 그쪽이 처리하신 건가요?”

“이거요? 네, 뭐 그렇게 됐네요.”

헌터들이 놀란 눈빛으로 헬스장 내부를 훑어보았다.

부상자도 없고 사상자도 없다. 정말로 저 남자가 괴물을 쓰러트린 것이다.

궁수는 씨익 입가를 끌어 올렸다.

그 상황에서 궁수는 헬창의 패기를 부리고 싶어서 가볍게 툭 말을 내뱉었다.

“하…. 별 거 아니더라구요.”

“!?”

궁수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이마에 손을 탁 짚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전형적인 씹덕 망상충의 포즈였으나 궁수의 근육은 이를 사실로 만들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들 중 대표로 보이는 사람이 성큼 궁수에게 다가왔다.

“저, 헌터님?”

“네?”

“저희는 정부 3팀에서 나온 헌터입니다,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저요? 궁수요.”

“네?”

헌터들이 잠시 스마트폰을 들고 멍하니 당황했다. 궁수는 다시 한 번 말했다.

“궁수라고요, 궁수.”

“아뇨, 헌터님 직업 말고 헌터님 성함이요.”

“그러니까 이름이 궁.수 입니다. 나궁수.”

잠시 서로 눈을 스윽 맞은 헌터들이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궁수에게 말했다.

“흐음…. 정말 이름이 나.궁.수 입니까? 가명으로 하시면 몬스터 사체 부산물에 대한 보상을 지급 받기 어려우십니다.”

“아니 진짜로, 나.궁.수 그게 제 이름입니다. 직업이 아니고요.”

“에이 사람 이름이 어떻게 나궁수…. 진짜요?”

“네.”

보상이라는 말에 궁수가 또박또박 자신의 이름을 설명했다.

원한다면 자신의 주민등록증마저 보여줄 기세였다.

헌터들은 그럼에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헌터 명단을 검색했다.

하지만 아직 헌터 등록도 하지 않은 궁수가 명단에 나올 리 만무했다.

“뭐야, 없는데?”

“네? 잘못 검색하신 거 아니에요?”

“봐봐 안 나오잖아.”

헌터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궁수는 슬며시 어제 막 각성한 사실을 말했다.

“저 아직 등록 안했습니다.”

“네? 등록을요?”

“어제 각성했거든요.”

“네?”

잠시 헬스장에 적막이 흘렀다.

궁수는 시종일관 해맑은 표정으로 미소 지었고 헌터들은 그런 궁수를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조금 어이는 없었지만 그래도 헌터들은 최대한 진지하게 궁수를 대했다.

각성하고 고작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E급 마물을 쓰러트렸다.

지금은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다.

저 남자는 꼭 데려가야 한다.

각성하고 하루도 안 되어 E급 마물을 때려잡았다.

그 수준은 가히 선천적으로 헌터를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무방했다.

“헌터님 지금 잠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지금요?”

“네, 헌터 등록이나 보상금 문제도 있으니까요.”

“흐음…. 보상금은 얼마나 나오죠?”

“E급 마물이니까…. 적어도 700만원 정도는 나오겠네요.”

700만원!?

칠백이라는 소리에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미 궁수는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긴 지 오래였다.

거의 프로틴 10년 아니 20년 치가 넘는 돈이다.

궁수는 벌써 군침이 질질 흐르는 상태였다.

“헌터님들? 가시죠.”

“네, 바로 가죠.”

“관장님 저 다녀올게요!”

“아…. 응 그래라.”

칠백이면 프로틴이 몇 키로그램이냐!

굳이 프로틴이 아니더라도 돈 들어갈 곳은 얼마든지 있었다.

궁수는 콧노래를 부르며 협회 건물을 향해 이동했다.

***

“키야 건물 때깔 죽이네.”

궁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헌터들을 따라 들어갔다. 마치 63빌딩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규모의 빌딩이었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니 널찍한 강당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뭔지 몰라도 여러 가지 기구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는 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오오! 협회는 참 좋은 곳이네요!”

기구들에 마음을 빼앗긴 궁수가 눈을 빛내었다. 헌터들은 당황한 듯 어이없는 미소를 지으며 답해 주었다.

“측정실입니다. 체력 단련실은 여기 아래 지하에 있고요. 여기는 헌터님의 기초 정보를 취득하여 헌터 등록을 할 겁니다.”

“그럼 검사 같은 걸 하는 건가요?”

“예, 담당하는 직원이 시키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예!”

내부는 생각보다 더 삭막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흰색 가운 차림의 여성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주변에 쌓인 캔커피와 몬스터는 덤이다.

협회 혹시 악덕기업인가…?

그 정도로 그녀의 눈가에 다크서클은 심각했다.

“아으 측정실에서 담배 피지 마세요.”

“그럼 네가 퇴근 좀 시켜줄래?”

일면식이 있는 사이인 듯 헌터와 그녀는 거리낌 없이 대화를 했다.

남자가 뭐라고 말을 하자 여성이 성큼성큼 궁수에게 다가왔다.

“뭐야 이 헬창은.”

‘뭐야 이 꼴초는.’

후우.

담배연기가 여과 없이 궁수를 훑었다.

담배를 대단히 혐오하는 궁수로서는 절로 얼굴이 찡그려질 수준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끄라며 으름장을 두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나궁수입니다.”

“뭐?”

“아하하 직업이 아니라 이름이 나궁….”

“알아, 시끄러워.”

음.

저 여자 X나 밥맛이다.

궁수는 조용히 분을 삭이며 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검사죠?”

“신체검사, 바디 프로필 작성, 능력 확인. 끝.”

“아, 예.”

거 철벽이 따로 없구만.

궁수는 익숙하게 안내를 따라 검사를 치뤘다.

애초에 거의 다 헬스장에서 밥 먹듯이 하던 것들이라 오히려 신이 날 정도였다.

그렇게 순식간에 다른 검사들을 처리하고 마지막 검사. 여자의 안내에 따라서 궁수는 어떤 방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이건.”

방 내부는 온통 새 하얬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검은 기둥 하나가 떡하니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방구석에 달린 스피커에서 밥맛녀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스피커로 들으니 한층 더 딱딱하기 그지없다.

저 여자는 진짜 목소리까지 밥맛이네.

그런 궁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는 설명을 이었다.

“헌터의 등급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검사다. 검사 방법은 간단해 마력을 쓰든 뭘 쓰든 가장 강력한 공격을 저 기둥에 때려 박으면 된다.”

“마력? 어떻게 쓰는데요?”

“마력이란 헌터들의 힘의 원천이라고 불리는 특수한 힘으로서….”

“아니 어떻게 쓰냐고.”

“마…. 마력이란….”

요컨대 자기도 모른다 이거구만.

하긴 헌터도 아니고 고작 일반인이 그런걸 알 리가 있나.

궁수는 저벅 저벅 검은 기둥 앞에서 섰다.

딱딱하다. 차갑다.

평범한 돌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돌과는 달리 부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물론 일반적인 돌도 단단하지만 적어도 ‘헌터 나궁수’에게 평범한 돌이란 스펀지와도 같았다.

“뭐지 이게?”

가볍게 똑똑 두드려 보았지만 별 의미는 없었다. 오히려 조명을 받은 돌에 자신의 얼굴이 비추어 보였다.

마치 흑요석과 같은 단단함이었다.

“흐음…. 이거 몇 번 연습해도 되는 거죠?”

“네, 만족하실 때까지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최대 위력으로 관측이 되니.”

“알겠습니다!”

그렇다 이거지?

이미 다른 검사들로 몸은 워밍업이 끝난 상태였다.

가볍게 통통 스탭을 밟은 궁수가 배운 적도 없는 엉성한 쉐도우 복싱을 하며 어깨를 풀었다.

팡! 팡! 팡!

“와우.”

쉐도우 복싱이라 하기에도 뭐한 주먹질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그 파괴력 하나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주먹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궁수의 주먹이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야.”

“네.”

“저거 진짜 궁수 맞아?”

“자기 말로는 그렇던데요.”

“…요즘 궁수들은 혹시 근거리 딜러냐?”

팡! 팡!

실제로 나궁수는 위빙과 더킹을 반복하며 계속해서 속도를 늘리고 있었다.

복싱의 재능이 아닌 그저 압도적인 신체능력이 만들어낸 기현상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랴아!”

콰앙!

나궁수의 주먹이 검은 기둥을 강타했다. 궁수의 무지막지한 일격을 맞은 검은 기둥은.

“잉? 뭐야!?”

조금의 생채기도 나지 않았다.

물론 궁수의 주먹도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했다.

도대체 뭘로 만든 거야?

하지만 진심을 담아 때렸던 궁수에게 있어서는 제법 충격적이었다.

물론 마력은 조금도 사용하지 않은 공격이었다. 애초에 사용하는 방법도 모르지만 말이다.

와 씨, 이거 안 되겠는데.

단 한 번의 타격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드릴이나 곡괭이도 아니고 주먹으로는 부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를 안타깝게 바라본 은우가 마이크를 쥐었다.

물론 마력을 사용한다고 신입 헌터에게 깨질 정도로 약한 물건도 아니었기 때문에 간단하게 팁이나 주고자 입을 열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헌터들은 각성과 동시에 마력의 운용을 깨닫는다.

각성하면 몸속으로 방대한 양의 마력이 밀고 들어오는데, 오히려 그 힘을 자각하지 못하는 궁수가 더 이상했다.

“나궁수씨?”

“네?”

“어제 각성하셔서 아직 마력을 다루실 줄 모르는 것 같아 제가 조금 말씀 드립니다.”

“오! 네!”

마력의 ㅁ자도 느끼지 못하는 궁수에게 있어서 그 말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과도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마력은 본디 헌터에게 있어서 생명이나 다름없는 힘입니다.”

“네.”

“일반인은 느낄 수 없지만, 마력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지금 궁수씨가 숨 쉬는 그곳에도 말이죠.”

물론 공기중의 마력을 느낄 정도라면 적어도 A급 헌터 정도는 되어야 한다.

어찌됐든 마력이 어디든 있는 건 사실이니 틀린 말은 없었다.

궁수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먼저 편하게 자세를 잡고 서요.”

“후우… 편하게라.”

심호흡을 하며 궁수는 평소와 다름없이 서서 검은 기둥을 바라보았다.

“좋습니다. 그 다음은 편안하게 호흡하며 몸에 흐르는 마력을 느껴봅시다.”

흐르는 마력을 느끼라니.

무리한 요구에 궁수의 눈썹이 순간 꿈틀거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한 헬창이던 궁수더러 마력을 느끼라 한들 뭘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잘 모르겠는데.

“흐으으음….”

뭔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 뿐 딱히 이거다! 라고 할 만한 느낌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대자 보다 못한 헌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음…. 급박한 상황에서 힘을 발휘하는 유형도 있습니다만.”

“급박한 상황이요?”

“뭐 가족이 위험하다던가 사랑하는 사람이 위기에 빠진 그런 거요.”

“그런 거 없는데요.”

“뭐 그런 ‘급박한 상황’을 예를 들어보자 이거죠.”

세상 평온한 헬창에게 급박한 상황이 뭐가 있겠는가. 궁수는 스스로 머리를 굴리며 차분하게 생각했다.

급박한 상황…. 흐음 급박해야해.

일단은 무인도?

그래 나는 무인도에 조난당했다.

그것도 나 혼자서 물도 식량도 제대로 조달할 수 없는 장소에 홀몸인 거다.

허억!? 잠깐!

“오! 마력이?!”

궁수의 몸에서 회색 마력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젠장! 무인도에 가면! 무인도에 갇히면!”

“그렇지! 아무리 헌터라도 무인도에 홀로 갇히면 급박할 수밖에….”

“쇠질을 못하잖아! 근손실 온다고!”

콰아앙!

“…뭐?”

마력을 한껏 머금은 주먹이 그대로 검은 기둥을 강타했다.

오죽하면 그 강렬한 마력에 실험실 내부에 아지랑이가 낄 정도였다.

“후우…. 후우….”

서서히 안개가 걷히고 실험실 내부를 확인하자.

“뭐야 시발!”

옆에 있던 그녀의 입에서 앳된 욕이 튀어나왔다.

“궁수라며 미친놈아!”

“자기 말로는 그랬다니까요?!”

검은 기둥은 별로 파손된 흔적은 없었다.

다만 측정 기록 자체가 너무나도 이상했다.

이제 막 각성한 궁수가 낼 수 없는, 오히려 대검사나 마법사들을 상회하는 공격력 결과 값이 측정 됐다.

“X발 저게 뭔 궁수야!”

궁수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상 해맑은 표정으로 검사실 밖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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