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1화 (1/172)

◈ 1화. 헬창각성(1)

양궁 계의 초신성.

주몽의 부활.

백발백중의 사나이.

로빈후드의 재림.

나궁수가 고등학생, 그러니까 현역시절 불렸던 별명이다. 참고로 별명이 아니라 이름이 나궁수다.

아리따울 나

활 궁

손 수

이름마저 궁수인 남자.

그것이 나궁수였다.

그렇기에 학창시절 많은 놀림을 당했지만, 궁수가 활을 꺼낸 이후로는 놀림이 확 줄어들었다.

정확히는 줄어들게 만든 거지만.

“흐으으아!”

“좋다~ 자세 좋아 그대로 쭉 밀어!”

전 양궁 청소년 국가대표 나궁수.

이대로만 간다면 곧 세계양궁선수권 대회를 씹어 먹고 전설적인 선수가 될 거라는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달리 그는 너무나도 쉽게 쓰러지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터진 교통사고.

전지훈련을 위해 이동하던 중에 일어난 불의의 사고는 궁수의 왼팔을 망가트렸다.

나궁수는 어쩔 수 없이 꿈을 접어야만 했다.

“오늘 컨디션 좋은데? 10kg만 더 들어보자!”

“하아, 하아, 콜!”

“좋아 가즈아!”

그리고 지금 그 남자는.

“삼대…. 오백 오시~입!”

“키야!”

“아이고 나 죽네.”

헬창이 되었다.

땀에 젖은 나궁수의 검은 머리칼이 흔들렸다.

옆에서 자세를 잡아주던 헬스장 직원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도 나름 알아주는 헬창이지만 궁수 앞에서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와 미쳤다 진짜, 어떻게 스물한 살에 3대 550을 넘지?”

“후후후 이것이 양궁 선출의 클라스입니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양궁을 다시 하기 위해 재활에 힘썼다.

하지만 우리의 나궁수.

재능충 나궁수.

알아버리고 만 것이다.

헬스의 참맛을!

쇠질에서 느껴지는 담백함을!

샤워 후 거울에 비치는 조각 같은 자신의 몸매를!

“키야 복근 X되네.”

운동을 마친 궁수는 홀로 거울을 바라보며 각종 포즈를 취했다.

다른 사람에게 있어선 그저 울퉁불퉁한 헬창의 더러운 몸놀림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궁수는 거울을 바라보며 자아도취에 빠졌다.

난 존나 멋있어.

나궁수 이 미친 새끼 세상 혼자 살아.

넌 끝장이다 정말.

그렇게 밑도 끝도 없는 자뻑을 30분 정도 떨고 난 후 궁수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어 궁수 집 가냐?”

“그래야죠.”

“그래 조심히 가라, 근손실 조심하고.”

“근손실 안 나게 런지 하면서 가야겠네.”

“개뿔 평범하게 걸어가 무릎 닳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나궁수는 헬스장의 모습과는 조금 딴판이었다.

헬스장에서의 밝은 모습은 어디가고 조금 씁쓸한 표정이 자리 잡았다.

떠오른 달을 바라보며 아쉬운 듯 입을 열었다.

“오늘은 뚫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도 600의 벽을 넘지 못했다.

몇 달간 죽어라 노력해서 올린 게 겨우 10kg라니. 절로 힘이 빠져 어깨가 축 늘어졌다.

재활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완벽한 재활을 위해 너무 오랜 시간을 쓴 까닭에 양궁을 다시 시작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3대 1000…. 이번 생 안에 할 수 있으려나.”

남들이 들으면 농담이라며 웃어넘길 말이었으나 궁수는 진지했다. 겨우 세 자리 수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하…. 로니콜먼, 당신은 도덕책.”

전설적인 헬창의 모습을 부르며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나궁수의 뒷모습은 조금은 처량해 보였다.

“어 궁수 왔니?”

“아들 왔수~”

“밥은?”

“뭐 먹을지 알잖어.”

“어후, 어떻게 그렇게 먹고 사니? 엄마는 도저히 못하겠다.”

닭가슴살과 현미밥 쉐이크.

처음에는 따로 먹었지만 둘 다 워낙에 뻑뻑하여 그냥 전부 때려 넣고 갈아버렸다.

벌컥벌컥

“크흐으으! 그래 이 맛이지!”

닭 비린내와 현미의 텁텁함이 만나 만들어진 끔찍한 드링크!

마치 온몸의 근육이 환장하며 달려드는 듯한 그런 맛이었다.

나궁수는 자신의 어깨를 감싸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어휴.”

거실에는 어머니의 작은 한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 큰 아들이 저 지랄을 하고 있으니 부모 입장으로서는 절로 한숨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모두 3대 1000을 위한 길이다.

“키하아! 오늘도 더럽게 맛대가리 없군!”

“그게 맛이 있겠니? 차라리 밥을 먹지는.”

“에이 근손실 나.”

“어휴 그놈의 근손실.”

나궁수의 집안은 극히 평범했다.

오늘도 늦게까지 야근하시는 아버지와 가정주부 어머니 그리고 외동아들 나궁수까지.

평범한 가정에 고졸 백수 아들까지.

미래가 어둡구만 어두워.

현실에서 도망치듯 도피한 궁수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흘깃 TV를 바라보았다.

“엄마 뭐 보고 있어?”

“저것 좀 봐라 어떻게 사람이 자동차를 한 손으로 든다니?”

“아.”

TV에서는 헌터가 차에 깔린 사람을 구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영웅이라느니 은인이라느니 칭송받는 그의 얼굴에는 입가에 미소가 자리 잡아 있었다.

하지만 궁수는 그런 것 따위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헌터는 3대 몇이나 나올까.

초월적인 힘으로 일반인을 아득히 상회하는 사람들 그것이 헌터.

현대 사회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20여 년 전 처음으로 등장한 게이트.

공간이 찢어지며 갑작스럽게 등장한 문에서는 처음 보는 괴물이 쏟아져 나왔다.

총이나 수류탄 등 인간의 무기가 먹히는 놈들도 있었으나 그런 놈들은 극소수였다.

대부분은 인간의 화기는 먹히지도 않는 괴물들이었다.

그렇게 사회가 마비되고 어지러워지길 잠시 신비한 힘을 얻은 헌터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위력을 뽐내며 압도적으로 괴물들을 쓸어 담아 버렸다.

물론 쉽사리 죽일 수 없는 놈들도 더러 있었으나 결국에는 전부 헌터들의 손에 정리되었다.

그 과정에서 헌터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평온한 삶이 지속되는 것이다.

나궁수도 항상 헌터들에게 감사했다.

그들 덕분에 오늘도 자신이 무사히 쇠질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헌터…. 나도 헌터가 되면 3대 1000…. 아니 3대 10000도 가능하지 않을까?”

방에 들어온 나궁수는 가방을 대충 던져두고 침대 위에 털썩 누웠다.

헌터라느니 3대 1만이라느니 실없는 혼잣말을 되뇌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형광등이 지지직거리며 자꾸만 깜빡였다.

“아이씨, 저거 또 갈아야겠네.”

과도한 근육 때문에 팔을 들기 힘든 나궁수로서는 형광등 갈기보다 더 힘든 일이 없었다.

“엄마! 남는 형광등 있어?”

“거실 서랍장에 있어~”

“응!”

끼릭끼릭

“후…. 진짜 데드리프트 보다 이게 더 힘드네.”

자신의 팔은 이제 완전히 헬창다운 팔이 되어버렸다.

형광등을 갈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리니 꿈틀거리는 근육이 눈에 들어왔다.

멍하니 근육을 바라보던 나궁수가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의 나이도 이제 스물 하나.

뭐든 할 수 있는 나이지만 딱히 뭘 하고 있지는 않았다.

갑작스러운 자아 성찰에 현자타임이 와버린 궁수는 팔을 앞으로 쭉 뻗어 주먹을 쥐었다 폈다.

손 곳곳에 박혀있는 굳은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곤 쇠질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설정한 목표조차 이루지 못해 이런 꼴이라니.

“하아아 인생….”

형광등을 갈고서 상념에 빠진 나궁수가 한숨을 푹 쉬었다. 휴대폰을 뒤적이며 너튜브를 들어갔다.

각종 헬스, 건강 채널들이 즐비한 구독 목록.

하지만 평소와 달리 오늘은 나궁수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홀린 듯 검색창에 ‘헌터’라는 두 글자를 검색했다.

그러자 수백, 수천, 수만 개의 영상들이 쫘라락 나열되었다.

주로 헌터들이 몬스터를 사냥하는 영상이 담긴 영상이었다.

“대단하네….”

고작 검 한 자루로 자신보다 몇 배는 더 거대한 적들을 썰어버렸다.

가슴 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 사이다가 몰려왔다.

저절로 ‘크으으’소리가 날 정도로 통쾌한 영상이었다.

“이건 또 뭐야?”

쭉 내리다 보니 갑자기 영상 하나가 떡하니 눈에 들어왔다.

영상 제목은 [과연 헌터는 3대 몇이나 칠까?]

나궁수의 눈이 확 커졌다.

이미 자신의 손가락은 해당 영상을 터치하고 있었다.

버퍼링과 함께 영상이 시작되었다.

‘반갑습니다! 제목보고 들어오셨다시피 오늘은 C급 헌터는 과연 3대 몇을 칠지! 아! 저도 기대가 되는데요~!’

휴대폰 화면에서는 평소 나궁수가 즐겨보던 헬스 너튜버가 밝은 표정으로 진행을 맡고 있었다.

“엥? 이게 C급 헌터라고?”

간단한 소개가 지나자 평범한 체격의 C급 헌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름 오밀조밀하게 근육은 잘 잡혀 있었으나 그래봐야 일반인 수준이었다.

보디빌더 같은 우람한 근육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게 C급이라고? 아무리 봐도 좆밥인데?”

C급 헌터라 함은 그래도 나름 중견에서 베테랑에 들어가는 등급이다.

그런 만큼 헌터 개인의 힘도 엄청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상에서 보이는 남자의 외관은 아무리 해봤자 3대 300도 넘기 힘들 것 같았다.

그렇게 3분쯤 지나자 헌터가 스쿼트를 서서히 시작했다.

“엥? 30이 아니고 300?”

스쿼트에 300kg를 태운다니 일반인인 나궁수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 앞이라 일부러 센척하는 건가?

침을 꼴깍 삼키며 계속 화면을 주시했다.

하지만 그는 정말 300KG를 들 생각인 듯 어깨에 봉을 단단히 붙였다.

‘하나, 둘!’

남자는 어깨에 300kg의 아령을 매고 가뿐하게 스쿼트를 했다.

완전히 다리가 ㄱ자로 접힌 퍼펙트한 스쿼트였다.

심지어는

‘300kg 너무 가벼운데요? 바로 500kg로 가죠?’

“사, 삼백을 저렇게 쉽게?!”

가히 압도적인 괴력에 나궁수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저게 진짜 말로만 듣던 실전 압축형 근육인가? 말이 되는 거야?

멍하니 영상을 바라보니 어느새 3대 측정이 끝난 상태였다. C급 헌터의 성적은 3대 1850kg.

‘하아 아쉽네요, 잘하면 2000kg까지는 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뭐? 이처언?!”

그 뒤로는 별 말없이 너튜버의 인사와 함께 영상은 끝이 났다.

나궁수는 아직도 영상의 여흥을 느끼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영상을 보고 난 후 가장 먼저 느낀 것.

“누구는 몇 달을 X빠지게 노력해도 꼴랑 10늘었는데 이놈은 그냥 2천이라니.”

무언가 허탈했다.

자신도 저렇게 되고 싶었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본인 역시 안다.

헌터가 아닌 평범한 인간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생각을 떨치기라도 해야 했는지 마음과는 다르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나궁수가 검색창에 두드린 것은 다름 아닌 ‘헌터 수입’이었다.

헌터 수입

ㄴ 헌터 수입 1억

ㄴ 최강혁 헌터 월 310억.

억.

말 그대로 억 소리가 나올 정도의 금액이 검색창에 드리웠다.

와…. C급만 해도 이게 얼마냐?

더 이상 자신은 국가대표가 아니다.

그저 동네 헬스장이나 다니는 평범한 헬창일 뿐이다.

물론 허구한 날 PC방에서 죽치고 사는 돼지보다는 보기 좋겠지만 결과적으로 백수임은 다를 바 없었다.

다시 양궁을 하기에는…. 하 어림도 없지.

이미 3년이 넘게 활에서 손을 땠다.

이제 와서 갑자기 양궁을 한다고 한들 사라진 실력이 다시 되돌아올 리 만무했다.

헌터.

돈도 많이 벌고 3대도 어마어마하게 불릴 수 있는 꿈의 직업.

나궁수가 헌터에 대한 꿈을 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나도 헌터가 되고 싶다.”

3대를 위해서라도 근육을 위해서라도!

언젠가 거대한 건물을 통째로 들고 스쿼트를 하리라는 욕망을 가지고서!

“염병 괜히 봤나, 현타 오지네.”

지구를 지킨다거나 하는 사명 따위는 없었다.

그저 온통 근육과 3대 측정에 대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이란 걸 알기에 나궁수는 일찍이 생각을 접고 휴대폰을 옆에 던져두었다.

운동 후 피로감이 일제히 몰려왔다.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격렬한 운동 후 휴식이었다.

***

“흐으아!”

달아오른 궁수의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주변 여자 회원들이 자꾸만 나궁수를 흘깃거리며 훔쳐보았다.

“크으 궁수야 다른 회원님들도 너밖에 안 보는데 확 꼬셔버리지 그러냐?”

“됐어요, 형, 제가 무슨 연애에요.”

“뭐? 너 설마 남자 좋아하냐?”

“죽을래요. 형?”

퍽 실없는 농담을 하며 궁수는 대수롭지 않게 100kg가 넘는 바벨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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