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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공략당해 버렸다-152화 (152/153)

152화

<에필로그>

" 정말 이상하단 말이야... 분명 중간고사가 끝난지 얼마되지 않은 것같은데 기말고사라니, 분명 뭔가 잘못 된거야."

책상에 엎드린체 곱슬이가 투덜투덜이야기했다. 그 말에 격한 공감을 하는건 이 부실 내에서 딱 한명뿐. 오직 윤아만이 그말에 동조하며 강하게 긍정했다.

" 맞아! 뭔가 이상해! 제대로 놀아보기도 전에 공부해야지~라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 여러가지 일이 있었으니 그런거겠죠."

윤아의 말에 필기하고 있던 지윤이가 담담하게 답했다. 고등학교보단 중학교가 먼저 끝나다보니 이 부실에 가장 먼저 와있는 것은 보통 지윤이다. 예전에는 가끔 일이 있을때만 오곤 했지만 요즘엔 거의 매일 찾아오고 있는 기분이다.

" 그 여러가지 일에 지윤이가 머리스타일을 바꾼 이유도 있어?"

" 대충은요. 왜요, 이상한가요?"

윤아의 말처럼 지윤이는 언제부터인가 양갈래를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언제나 생머리를 고집하던 모습과 다르게 이젠 기분에 따라 바꾸기도 하지만, 가장 자주하는 것은 지금과 같은 양갈래를 한 모습이었다.

" 아니. 무척 잘어울리네."

지윤이에 말에 답한 것은 조용히 독서를 하고 있던 청이였다. 청이는 그런 지윤이를 보며 다 안다는 것처럼 빙그레 웃어서 지윤이는 살며시 시선을 피했다. 역시 저 선배만은 여전히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 청이 선배. 우리 학교는 시험을 1년에 두번만 보면 안되요? 모의고사까지 치면 대체 몇번을 보는거야..."

" 의외네요. 당신이라면 시험은 일찍끝나는 날이구나 하고 좋다고 집에 갈줄 알았는데."

" ....그정도로 막장은 아니거든?"

투덜거리듯 말하는 곱슬이의 말에 청이는 빙그레 웃었다.

" 미안하지만 그건 무리일것같은데? 거기다가 내가 대한민국 교육과 싸우는 시간보다 곱슬이가 공부해서 좋은 점수를 받는게 빠르겠지♪"

언제나와 같은 상쾌한 답변이었다. 그 답변에 죽은 눈으로 시험범위를 훑어보던 곱슬이는 문득 생각났는지 지윤이를 향해 물었다.

" 아, 그러고보니 네 언니는 어디로 갔냐? 오늘 당번도 아닌데 늦네."

" 글쎄요. 구더기 오빠가 찾으러 갔으니 금방 데리고 오겠죠."

" 아니면 상혁이가 데리러 와주길 기다리는거 아냐?"

윤아가 살짝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지윤은 아파오는 머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기야 요즘 언니라면 그럴 수도 있다. 정말이지 언니가 그렇게나 심각할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지윤이다.

" 수연이가 정말 그렇게 사랑스러울 줄이야. 옆에서 보는 나까지 괜히 콩닥이는거 있지?"

" 그 냉랭한 계집애의 모습을 생각하면 정말 반전도 그런 반전이 없지. 뭐, 지금도 예전처럼 말하곤 하긴 하는데 확실히 속을 뒤집을 정도로 달라붙어있는 시간이 많다고 해야하나..."

넌 참 속도 넓다. 그런 시선을 담아 곱슬이가 윤아를 바라보자 윤아는 아하하~하고 웃으면서 싱긋 웃었다.

" 어쨌든 해피엔딩이잖아."

" 대충은 그렇겠지."

윤아의 말에 곱슬이가 턱을 괴며 말했다. 지윤은 곱슬이의 말에 최근의 언니를 떠올렸다. 확실히 대충은 해피엔딩이었다. 상혁이와 사귀게 되고 좀더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게 된 언니. 하지만 결국 어머니와 화해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요즘은 다투는 일이 많고, 언니도 전처럼 어머니의 말에 쉽게 수긍하지 않는다.

그 태도에 어머니도 언니에게 끙끙거리고 참다가 간혹 터지곤 하고... 지윤은 그것을 좋다고 해야할지 나쁘다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전과 같이 단절된 대화와 삭막한 관계로 돌아가는게 좋냐고 하면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과 같은 모습이 마음에 드냐면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적어도 전과 달라지긴 달라졌다는 것이 지윤이의 위안이었다. 이대로 계속 시간이 지나고 언니가 나이를 먹고 자신이 나이를 먹는다면 무언가 또 달라지는게 있겠지.

더 나빠질지도, 좋아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윤은 믿는다. 언젠가 가족 모두가 사이좋게 대화할 수 있는 날을. 분명 올거라고 믿고 있다.

' ...그 가족에 설마 그 남자가 끼게 될려나...'

지윤은 언젠가일지 모를 날을 생각하며 눈을 가늘게 뜨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너무 나갔나- 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헤어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남녀관계라는 것은 보통 사귀기 전까지의 과정보다 사귀고 난 후의 관계가 더욱 문제다.

하지만 언니의 경우엔 사귀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

어차피 앞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의 관계도. 그리고 어머니와 언니의 관계도. 결국 모두 계속계속 변해갈테니 말이다. 지윤은 창밖의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지금 어딘가에 있을 언니를 생각했다.

- - - -

" 또 여기에 있었던 거야?"

상혁은 옥상에 멍하니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는 수연이를 보며 피식 웃었다. 날씨도 추워지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매번 옥상에 올라와 있는 수연이의 모습에 상혁은 매번 그 날의 고백을 떠올리게 된다.

' 공략당해 버렸다는 거야!'

정말, 수연이다운 고백이 아닐 수 없었다. 설마 그런 순간까지 그렇게 고백할 줄이야. 상혁이 수연이의 옆에가서 털썩 앉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연이가 그 어깨에 고개를 기대온다.

" 너는 참 따뜻하구나."

" 네가 계속 이런 곳에 있어서 차가워진 거지."

둘은 그렇게 말하고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한점 보이지 않는 하늘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저 파란하늘 위에 수연이의 어머니가 지켜보고 있을까 하니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자신이 보았던 꿈과 같은 것은 수연이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뭔가 굉장히 판타지 적인 것은 둘째치고 그런 것을 이야기해서 수연이를 굳이 심난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연이는 지금의 어머니의 일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이다.

" 어제도 어머니와 싸웠어."

" 어제도?"

" 응. 그게 전기세가 많이 나왔다고 컴퓨터같은거 하는 시간좀 줄이라고 하지 뭐니? 난 집에서 컴퓨터 별로 하지 않는데. 분명 춥다고 전기장판을 하루종일 틀어놓은 그쪽이 문제였을거라고 하다가 싸웠어."

투덜거리며 말하는 수연이의 말에 상혁은 '저, 전기세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자신은 딱히 그런 것에 구애받은 적이 없었던 것같았다. 이렇게 공주님같은 소녀가 전기세 때문에 어머니와 다투다니.

수연은 하아, 하고 작게 한숨을 쉬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이제 기말고사구나."

" 응."

" 공부는 했니?"

" 당연하지!"

이번엔 자신있다고!라고 강하게 어필하는 상혁이의 말에 수연은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보다가 검지손가락으로 상혁이의 볼을 쿡 찔렀다.

" 겨우 그정도로 자만하긴 일러. 만약 등급합이 내 두배 이상이면 각오하는게 좋을거야."

" ...노력해볼게."

전 과목이 1등급이라고 치면... 자기가 맞아야할 등급을 머리속으로 복잡하게 생각하던 상혁의 볼에 뭔가 따뜻한게 닿았다. 그야말로 갑작스런 키스-라기보단 뽀뽀라고 해야하나.

" 이, 이건 너무 갑작스럽지 않냐? 분위기도 그렇고."

" 어머나, 나는 그냥 방심한 것같기에 한번 해본것 뿐이야. 그런 너의 반응은 참 재밌다고 생각해."

쿡쿡, 거리고 웃으며 말하는 수연의 말에 상혁은 어깨를 떨궜다. 그 부끄러워하던 수연이가 맞나 싶을정도로 스킨쉽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사귀기 전엔 그렇게 진도가 나가지 않더니 막상 사귀게 되니 남들앞에서 손잡는 것도, 스킨쉽을 하는 것도 거리끼지 않았다.

어떤 의미론 너무 남자다워서 상혁이가 당황할 정도다. 하지만 그게 싫으냐면 당연히 그것은 아니다. 너무 과하지 않고, 절재하며 표현하는 수연이의 스킨쉽은 좋아하면 좋아했지 절대로 싫어할리가 없었다.

전생에 남자였던게 원인인지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것은 너무 잘알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려나.

" 기말고사가 끝나면, 2학년이네."

" 그러게. 빠르구나, 고등학교에 입학한지 벌써 1년이 지나고."

하아, 하고 뿌옇게 나오는 입김을 바라보며 수연은 생각했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될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1년전과는 너무나 많은게 달라졌다. 어머니와의 관계는... 수연은 오히려 지금이 낫다고 생각한다.

매번 싸우긴 하지만. 그렇게 심한 다툼은 아니고 상혁이가 무사히 눈을 뜬 후, 새 어머니에 대한 분노는 사실상 거의 사라졌다.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때나, 공포심이 깃든 눈으로 자신을 보는 것보단 잔소리를 하고, 화가난 시선으로 바라보는게 좋다.

" 나, 역시 아직 뭐가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 응?"

수연이의 갑작스러운 말에 상혁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보았다.

" 사랑받고 싶다-라는 것은 내가 바라는 꿈이고 소망이지만. 현실적으로 볼때 직업같은것은 아니니 미래를 염두해두자면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야할 것 같아서."

" 너야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되잖아?"

그러니 그 하고 싶은 것이 딱 이거다, 라고 할만한게 없는 수연이다. 뭐든지 잘한다-라지만 그것은 노력에서 얻는 성취감도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힘들게 노력해서 할 수 없었던 것을 한다. 그것이 수연이에겐 없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바로 그것을 잘하게 되어버리는데 무슨 성취감이 있겠는가.

그런 수연이의 생각을 읽었는지 상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그렇지만 뜻데로 되지 않는게 있지. 이건 어때? '선생님'이라던지."

" 응?"

" 내가 생각하는 너에게 가장 힘든 일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선생님이 되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해도 해도 네 마음처럼 되지도 않을테고."

거기다 남들과 대화하는 것에 약한 수연이라면 애초에 학생들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부터가 의문이다. 수연도 그것을 잠시간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 그건 나름 재밌겠네. 제법이잖니. 나중에 또 재밌는 생각이 나면 알려주렴."

" 그래,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고등학교 생활도 아직 2년이나 남았고."

2년.

그것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1년동안 이렇게 많은 것이 변한 자신을 볼때 앞으로 2년은 또 어떤 것이 얼마나 많이 달라질까 두렵고 기대되는 시간이다.

무엇을 하고 싶다.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이 머리속을 멤돌지만 지금 바로 정할 필요는 없는 것들이다. 아직 자신은 어리고 시간은 많다.

" 하지만-."

상혁이 쪽으로 천천히 시선을 돌리며 말하는 수연이의 말에 상혁은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려 수연이와 시선을 마주쳤다.

" 내가 무엇을 하게 되더라도, 내 옆에는 네가 있어주면 해."

" 그건 당연하잖아."

씨익, 웃으면서 말하는 상혁이의 말에 수연은 살며시 미소지었다. 언젠가 자신이 또 도망치고 싶어질 때가 올지 모른다. 아니 분명 올 것이다. 그때가 오면 이녀석이 자신을 다시 잡아주었으면 한다. 도망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상혁이가 힘들때면 자신이 반드시 잡아줄 것이다.

자신은 약하다. 그리고 상혁이도 약하다. 개개인은 너무나 나약하고, 쉽게 상처받고 남들을 피하기 바쁜 겁쟁이지만 함께라면 분명 괜찮을 것이다.

수연은 과장된 모습으로 상혁이 쪽으로 몸을 돌리며 상혁이를 향해 두 손가락을 피며 말했다.

" 자. 여기에서 선택지야."

" ...뭐야, 갑자기 선택지냐."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상혁은 떨떠름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 상혁이의 태도에 수연은 싱긋 웃고는.

" 하나, 나를 꽉 안아준다."

말하자면, 복잡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으니 자신을 안심시켜달라는 의도였다. 이런 점은 변하지 않는 수연이의 솔직하지 않은 마음이다.

" 둘, 나에게 멋진 키스를 한다. 어떤 것이 좋겠니?"

둘다 상혁이에겐 나쁠 것없는 선택지였다. 상혁은 그 말에 머리를 긁적이더니 천천히 수연이를 품에 안았다. 최대한 다정하게, 수연이가 춥지 않도록 보듬어 껴안았다.

그리고 수연이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 둘 다."

귓가에 들린 조그마한 소리에 수연은 귓볼을 붉게 물들이며, 볼을 부풀렸다.

" ...그러면 선택지가 아니지 않니. 정말 욕심이 많구나?"

" 그래서 싫어?"

능글 능글하게 웃으며 말하는 상혁이의 말에 수연은 으으~하고 노려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 ....욕심쟁이."

" 칭찬 고마운데."

삐쭉 입을 내밀고 있는 수연이의 입술에 상혁은 천천히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다.

나는 그런 상혁이를 향해 속으로 투덜거리다가 이내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인생은.

이어달리기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에게, 선생님이나 친구에게 받은 꿈이라는 바턴을. 또는 자신의 출발점에서 들고 달리기 시작한 바턴을 들고 자신의 길을 계속해서 달리는 경쟁.

경쟁속에서 힘겹게 달려 자신의 바턴을 다른 사람에게 건내줄 때까지. 그리고 그 후에는 자신의 바턴을 받은 사람이 이길 수 있도록 응원하며 달리기를 지켜본다.

그 바턴은 저마다 여러가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떨어트릴 때가 있을지 모르고 넘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기해서는 안된다. 자신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리고 자신이 바턴을 건내줘야할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러니 앞으로도 나의 이어달리기는 계속 될 것이다.

다음, 나의 바턴을 들고 달리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나의 달리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完>

============================ 작품 후기 ============================

후기는 조금 나중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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